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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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지극히 리얼한 한국 사회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글을 읽는데 좀 지친 상태다.

그래서인지 좋아하는 작가의 단편들 임에도 큰 흥미를 끌지 못한 채 읽어버리기만 한 것 같다.

어디에선가 자신의 삶과 운명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 겨우 스물하나였던 나는 그게 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런 내면의 균열이나 변화가 필요하다는 예감은 하고 있었다. 상해야 한다면 돌이킬 수 없게 상하고, 다쳤다면 그 다쳐버린 상태를 내보일 수 있는 무른 마음을 갖는 것. 하지만 그때는 그런 마음의 형질을 헤아릴 수가 없었고 너울처럼 나를 덮는 나쁜 상태를 이기기 위해서는 더 견고해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 13,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

- 꼬마가 담장 너머로 홀짝 넘어간 뒤 더는 달아나지 않고 대치하면서, 기오성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한국이라고 말할 수 없는 여러 압력들이 생각난 그는 당황했고, 꼬마가 재차 묻고 나서야 페퍼로니에서 왔어, 라고 답을 했다고 했다. 페퍼로니가 뭐였는데요? 함께 출연한 게스트가 묻자 그는 글쎄요, 하더니 잠시 말을 끌었다. 그러고는 결국 아무 데서도 오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었을까요, 라고 했다. - 160,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2024. jul.

#우리는페퍼로니에서왔어 #김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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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계단 -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밀리언셀러 클럽 2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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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작품이라는데, 솔직히 주인공들의 색채가 얕아서인지 심심한 편이었다.

애초에 사형수의 원죄를 무엇 때문에 그토록 믿고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하고.

상해치사로 복역하다 출소한 준이치에게 유족에게 찾아가 사죄하라는 대목에선 으악하는 기분이 되었는데....
일본은 실제로 그렇게 하는 건가? 유족이 과연 가해자를 다시 보고 싶을지... 게다가 준이치는 사실 죽은 자에게 일말의 죄책감도 없는데...

난고가 자신의 직업 탓에 행한 사형실행에 대한 자책이 결국 죄인으로 수감되는 결론으로 이끄는 걸까? 그렇다면 너무 가혹하다.

어쨌든 내면의 방향이 조금 다른 이야기라 몰입이 덜 되는 경향이 있다.

- 법률은 옳습니까? 진정 평등합니까? 지위가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머리가 좋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나, 돈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나쁜 인간은 범한 죄에 걸맞게 올바르게 심판받고 있는 것입니까? - 367


2024. jul.

#13계단 #다카노가즈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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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계단 -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밀리언셀러 클럽 2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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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작품이라는데, 솔직히 주인공들의 색채가 얕아서인지 심심한 편이었다.

애초에 사형수의 원죄를 무엇 때문에 그토록 믿고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하고.

상해치사로 복역하다 출소한 준이치에게 유족에게 찾아가 사죄하라는 대목에선 으악하는 기분이 되었는데....
일본은 실제로 그렇게 하는 건가? 유족이 과연 가해자를 다시 보고 싶을지... 게다가 준이치는 사실 죽은 자에게 일말의 죄책감도 없는데...

난고가 자신의 직업 탓에 행한 사형실행에 대한 자책이 결국 죄인으로 수감되는 결론으로 이끄는 걸까? 그렇다면 너무 가혹하다.

어쨌든 내면의 방향이 조금 다른 이야기라 몰입이 덜 되는 경향이 있다.

- 법률은 옳습니까? 진정 평등합니까? 지위가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머리가 좋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나, 돈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나쁜 인간은 범한 죄에 걸맞게 올바르게 심판받고 있는 것입니까? - 367


2024. jul.

#13계단 #다카노가즈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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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쓸 것, 뭐라도 쓸 것 - 마치 세상이 나를 좋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금정연 지음 / 북트리거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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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하는 부모, 글을 써야 하는 작가. 두 가지의 정체성이 써 내려간 일기.

착실하게 때로는 의욕 부진으로 띄엄띄엄 써 내려간 일기가 하루하루 채워나간다는 개념 없이 지내고 있는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자라나는 아이를 바라보는 애틋한 마음도 일면 이해가 되지만, 나와는 상관이 없어서 그럴까 관조하게 되는 그런 기분.

그러나 늘 재미있게 읽게 되는 작가라 살짝살짝 웃으며 읽게 된다.


- 처음 일기를 쓴 건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알 수 없어서였다. 흔적 없이 사라진 하루들이 쌓여서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됐다. 계절이 바뀌고 나이를 먹었다. 인쇄가 잘못된 책처럼 인생의 페이지가 듬성듬성 비어 버린 기분이었다. 그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나는 생각했다. 일기를 쓰자, 기억을 기록으로 바꾸자, 기록이 다시 기억이 될 수 있도록. - 16

- 요즘은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아무 의미 없이 흘려보낸 것만 같은 시간과 경험이라도 지금의 내가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었다는 생각. 말하자면 모든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모든 것은 필요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무거웠던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진다. - 53

- 어제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면서, 내 일기는 있었던 일들과 그것에 대한 약간의 코멘트, 그리고 푸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스타일을 조금 바꿔 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깊은 사유와 성찰, 전망과 고뇌... 같은 것을 쓰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치만 음, 쓸 수 있었으면 진작에 쓰지 않았을까? - 190

- 일단 한고비는 넘겼다 생각하며 남아 있는 다음 마감들을 생각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지금 내 심정에 꼭 맞는 표현을 며칠 전 박서련 작가가 쓴 2017년 5월 6일의 일기에서 발견했다. 이런 표현이다.
어떤...... 막막함이...... 중첩되었다. - 211

- 스톡홀름에서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던 악셀 린덴은 어느 날 도시 생활을 접고 시골 목장으로 내려가 양을 치기 시작했다. 목장 생활을 시작하고 두 번째로 맞은 봄, 5월 6일의 일기를 린덴은 이렇게 썼다.
다들 느끼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속 불가능하다. 이 세상에 지속 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세상이 지속 가능했던 적도 없다. 그런데 다들 별일 아닌 척한다. 좋은 생각이 있는 척, 바꿀 수 있는 척한다. 왜들 그러는지 잘 모르겠다.
내말이. - 212

2024. aug.

#매일쓸것뭐라도쓸것 #금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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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
셸리 리드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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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 농장에 애정을 가지고 강인하게 생을 헤쳐나가는 여성 빅토리아.

떠돌이 인디언 소년 문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온 생을 그 사랑의 증거로 살아가는 이야기라니 오랜만에 로맨스가 넘치는 소설을 읽었다.

무지에서 비롯되는 혐오가 일상이고 상식이던 시절이라서 생기는 비극이 어떤 삶을 보여줄지 읽는 내내 궁금했다.

무지의 혐오의 희생자 중 한 명이었던 이웃 루비앨리스도 역시 흥미로운 캐릭터다. 외로운 두 명의 삶이 짧은 시간이지만 든든한 우정으로 변하는 시간도 소중했고. 후반부에서는 놓쳐버린 아들 루카스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이 두 모자의 역사가 조금은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읽게 된다. 
모든 일의 원흉인 동생 세스가 어느 순간 나타나 분탕질을 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는데, 의외로 싱겁게 미약하나마 개과천선을 했나? 싶은 모습으로 잠깐 등장한 점은 다행이랄까.

비극적이지만 착하고 자연주의적. 한여름에 읽기 좋았다.

- 어느 순간 숲에, 바다에, 산에, 그리고 세상에 외친다.
나는 이제 준비가 되었다고. - 애니 딜러드

- 한때 강이었으나 지금은 저수지가 된 물 밑에서 썩어가는 마을, 물속에서 조용히 잊힌 마을이 있다고 상상해 보라. 불어난 물이 마을을 집어삼킬 때 이곳의 기쁨과 고통까지 모조리 앗아갔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어린 시절의 풍경은 우리를 창조한다. 그 풍경이 내어주고 앗아간 모든 것은 이야기가 되어 우리 가슴에 남고, 그렇게 우리라는 존재를 형성한다. - 14

- 어깨를 으쓱하고 방긋 웃으며 대답하는 그의 모습은 소유에 관해 내가 모르는 뭔가를 아는 사람 같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는 정말로 그랬다. 그는 내게 본질을 제외한 모든 것을 비운 삶이야 말로 참된 삶이라는 사실을, 그런 수준에 도달하면 삶을 지속하겠다는 마음 외에 그다지 중요한 게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그때 이런 말을 들었더라면 나는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우리를 엮은 끈을 점점 더 가까이 잡아 당겼다. - 32

- 그러나 이런 사소한 일, 마치 나를 부르는 듯한 석탄 수송 열차의 기적 소리, 사거리에서 마주쳐 길을 묻는 이방인, 흙길에 떨어진 갈색 술병처럼 별일 아닌 사건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놓는다.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어도 우리 존재는 탐스럽게 잘 익은 복숭아를 조심스럽게 수확하듯 신중하게 형성되는 게 아니다. 끝없이 발버둥 치다가 그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을 거둘 뿐이다. - 38

- 그녀는 푸르스름한 손을 가슴에 포개고, 어깨 옆에 웅크린 개 한 마리, 그녀의 몸에 딱 붙어 잠자는 개 네 마리와 함께 누구나 바라는 모습으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나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녀의 삶과 죽음이 반가웠다. 루비앨리스의 삶은 너무나 기이하고 독특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내 인생과 겹쳐져 있었고, 루비앨리스의 죽음은 내가 겪은 유일한 호상이었다.
"흐르는 강물처럼."
나는 윌을 대신해 루비앨리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직이 속삭였다. - 280

- 목사님이 기도하는 동안 나는 고개를 숙여 묘에 참배했고,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고했다. 새로운 삶이 내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지난날의 선택을 끊임없이 돌아보며 의심했다. 그러나 우리 삶은 지금을 지나야만 그다음이 펼쳐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도가 없고 초대장이 없더라도 눈앞에 펼쳐진 공간으로 걸어 나가야만 한다. 그건 윌이 가르쳐주고, 거니슨강이 가르쳐주고, 내가 생사의 갈림길을 수없이 마주했던 곳인 빅 블루가 끊임없이 가르쳐준 진리였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내가 나아가야 할 다음 단계가 내 앞에 펼쳐져 있었고, 나는 그걸 믿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이 장례식을 끝으로 아이올라와 나 사이 인연의 끈이 끊길 것이었다. 그러면 나는 곧 내 길을 떠날 것이다. - 281

2024. aug.

#흐르는강물처럼 #셸리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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