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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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더스 키퍼스를 물려받은 홀리에게 닥쳐온 사건.

코로나, 안티 백서들, black lives matter, 인종주의. 노년의 삶의 질에 대한 것들...

장기간에 걸친 연쇄 실종이 존재하지만 수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놀라웠달까.
누군가의 생명은 이 세상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고, 잊어버리는 것으로 외면, 위안 삼는 게 아닌지 생각한다.

식인에 대해 정신병적 집착과 노화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과 두려움이 엘리트 의식에 잠식되어 있는 인간에게 몰빵되었을 때, 그런 인류가 저지르는 범죄라는 점에서 '정의를 구현' 한다는 일종의 사이다적 쾌감은 적은 편이다.
결국 그런 인간들은 죽어 사라지는 게 유일한 해답일 것만 같은 막막한 체념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정한 인간관계들이 우리 삶 속에 수없이 많은 위험들로부터 우리를 얼마나 지켜주는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홀리 기브니의 홀로서기가 잘 이루어 지고 있어서 다행이다 싶고, 갑작스러운 엄청난 유산 상속으로 해결되지 않고 쌓여버린 가족 간의 갈등 문제도 어찌 될지 궁금하다. 뭐 주인공이니 결국 이겨내겠지만.

그리고 변치않는 스티븐 킹의 깊고 깊은 트럼프 혐오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이구나 싶은 반가움이 늘 있다.

이야기에 중요한 문장은 아니지만 이 부분이 좀 웃겨서 남겨둔다.

- 마흔은 젊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하는 나이다. 그러지 않고 "요즘 마흔은 예전의 스물다섯"이라는 식의 자기계발서에나 나옴직한 헛소리를 믿기 시작하면 점점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 12

- 홀리는 그가 회신하지 않았다는 걸 안다. 그녀가 짐작하기로는 이렇다. 불안한 퍼넬러피가 인터넷이나 페이스북에서 파인더스 키퍼스를 찾아보니 두 명의 파트너가 두 개의 업무용 연락처를 쓰는데 한 명은 남자, 한 명은 여자다. 불안한 퍼넬러피는 남자에게 연락했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퍼넬러피의 말마따나 '응급 상황'이 벌어지면, 적어도 처음에는 암말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종마에게 연락한다. 암말은 대비책이다. 홀리는 파인더스 키퍼스라는 마구간에서 암말로 지내는 데 이골이 나 있다. - 42

- 빌이 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신이 곧 사건은 아니에요. 당신과 사건을 동일시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요. 그러면 절대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상황이 악화되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 - 75

- 대부분의 사건은 달걀처럼 잘 바스러져요. 왜냐고요? 범인들은 대부분 멍청하거든요. 나쁜 짓을 저지를 때는 똑똑한 인간들도 바보가 돼요. 안 그러면 애초에 그런 짓을 저지를 이유가 없겠죠. 그러니까 사건을 달걀 다루듯 해요. 톡톡 금을 내서 깨서 버터와 함께 프라이팬에 풀어요. 그런 다음 그걸로 맛있는 오믈렛을 만들어 먹어요. - 422

- 올리비아 킹즈버리에게서 이야기를 들었겠지. 그런데 정황이 비슷하잖아. 심지어 쪽지마저 비슷해. 카스트로는 "지금까지 참을 만큼 참았어." 보니 달은 "더는 못 견디겠다." 두 실종 사건의 간격이 9년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경찰이 코로나 때문에 인력난을 겪지 않았다면,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시위가 폭력 사태로 번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지 않았다면, 모터 자전거나 그냥 자전거나 스케이트보드가 아니라 시신이 한 구만이라도 발견됐다면......
"그걸 바라느니 돼지가 하늘을 날아서 온 사방에 똥비가 내리길 기다리는 편이 낫겠네." 홀리는 중얼거린다. - 461

-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을 보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착각으로 밝혀진다는 것. 이지는 이렇게 말한 다음 뜻밖의 결론을 내렸다. 악에는 끝이 없어요. - 583

2024. sep.

#홀리 #스티븐킹 #파인더스키퍼스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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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과 부동명왕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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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야 괴담, 흑백의 방이 돌아왔다.

첫 번째 청자였던 오치카의 무탈한 출산과 더불어 진행되는 이야기.

어려운 시절을, 개인의 고난을 이겨내는 소시민들의 이야기라서 늘 정이 간다.

어리석어 보이고 나이브해 보이는 이들이지만 현대의 인간이 가진 교활함이 덜한, 선의에 대한 사회적 믿음이 좀 더 공고한 시대를 그리고 있어서 그런듯 싶다. 

아이를 낳지 못한 여자, 남편의 폭행에 시달리고, 남편의 가족들에게 냉대 받아 쫓겨나온 여자, 결혼을 하지 않은 여자, 남편 없이 아이를 낳은 여자. 이들 모두 공동체의 부정적인 시선을 견디며 살아야 하고 구성원으로서 자리 잡기 어려운 시절에 그런 여성들을 보듬어주는 공동체 동천암이 생기고 그를 돌봐주는 신이 있다는 이야기는 아프기도 하지만 따뜻한 면이 있어 가장 와닿는다. 그게 청과 부동명왕.

악귀가 들린 붓에 얽힌 괴담을 듣고 화공의 꿈을 어렴풋이 가지고 있던 도미지로는 그림을 포기하겠다 생각하지만, 인간의 염원을 담은 종이 인형 마을 괴담을 듣고는 다시금 그리고자하는 마음이 솟구쳐 오르는데 과연 집안에서의 역할이 모호한 차남 도미지로는 자신의 꿈을 좇게 될지...

- 사람은 누구나 평생에 걸쳐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간다. 때로는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인생의 덧없음을, 사랑의 아름다움을, 사라져 가는 영혼의 애틋함을, 모든 것을 다 태우고도 여전히 연기를 내며 남아 있는 증오의 끈질김을.
그런 이야기를 듣기 위해 미시마야의 별난 괴담 자리는 계속될 예정이다. - 10

- 누구의 마음속이든 물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하지만 묻고 대답을 얻는다 해도 전부 달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매번 묻다가는 귀찮아서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러니 말없이 서로 양보하고, 서로 배려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본심 같은 건 캐물어 봐야 소용없다. 그것이 움직이지 않는 진실이라고는 말할 수 없으니까. 진실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 114

- "너는 네 자리를 지키고 속세에서 주어진 역할을 다함으로써 충분히 불도에 귀의할 수 있다."
지금은 아직, 이런 말을 들어 봐야 납득할 수 없을 게다. 그래도 괜찮아. 속았다고 생각해도 좋으니 내 말을 따라 다오.
"언젠가 반드시 네가 네 길을 올바르게 걷고 있다는 증거가 나타날 게야. 그게 어떤 형태로 어디에서 나타날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나타날 게다." - 128

- 도미지로는 손으로 얼굴을 덮고 있었다. 뜨거운 눈물로 젖은 눈꺼풀 속에 여러 정경이 떠오른다.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의 마음을 가진 화신들. 그 눈에 깃든 웃음과 눈물. 그 존엄함, 그 다정함. 그것은 분명히 '생명'이었다.
그리고 싶다. 나는 역시 그림을 그리고 싶다. 이런 것을 그리고 싶다. 도미지로는 지금 흑백의 방에 앉아, 도도히 흘러넘친 그 마음에 삼켜지고 있다. - 479

2024. sep.

#청과부동명왕 #미야베미유키 #미시마야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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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 문학과지성 시인선 399
이수명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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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의 시들이 취향에 맞았다.

<불가능한 벽> <나는 너의 시체를 가지고 있다> 가 좋았다.

- 바닥에 놓여 있어도
내 두 발은 가라앉지 않는다.
돌로 누르고 눌러놓아도
일요일은 떠오르고
돌과 함께 떠오르고
돌과 함께
나를 깨뜨린다. - 일요일의 아침 식사 중

- 소용돌이가 내게로 왔다. 와서 멈추었다. - 어떤 소용돌이 중

- <나는 너의 시체를 가지고 있다>
나는 너의 불을 가지고 있다. 얼어붙은 불, 가만히 불어본다. 너는 불을 깨닫지 않는다.

어두워지는 저녁, 도시의 귀환을 끌어안고 땅 밑을 걸어간다. 심장에 박힌 발을 떼내었지 더 넓은 지푸라기 떼들을 기다리면서

너를 해치고 너를 되돌려주는 일

하늘을 때려눕힌다. 하늘을 따라간다. 다만 움츠러들었던 검은 스토브와 허겁지겁 솟구친 오늘 싹이 난 눈금에 대해 친절할 것이며

움직이지 않는 노래를
얼어붙은 너의 입속에 남겨둘 것

굳어진 태양이 벽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바라본다. 나는 마치 최후의 날씨가 되어 일몰을 미루고 일몰을 버린다.

너를 바꾸지 않고 너를 여러 개로 바꿀 뿐인 저녁

나는 너의 시체를 가지고 있다.
네가 없는 너의 시체

이제 아무것도 너를 가로질러 가지 않는다.

- 나는 발생하지 않은 채로 지속된다.
내가 심었던 것을 내가 파낸다. 존재하는 것 존재하려는 것 존재가 풀리는 것을. 내가 파낼 때 진행되기 시작하는 식물을 - 나는 발생하지 않은 채로 지속된다 중

2024.. sep.

#언제나너무많은비들 #이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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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2 - 3부 4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2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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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화, 봉순이의 참담한 마지막 모습이 기구한 운명의 여성인 월선이와 겹쳐 보이는 면이 있다.
적을 두지 않고 살아온 그럼에도 미움과 멸시의 대상이 되었던 그 시절의 여성들.

상현과 송장환의 대화에서 평가되는 주갑의 인간적인 요소들이 차마 그들이 벗어던지지 못한 체면치레의 씁쓸함을 담고 있었다는 것. 비극적인 것을 낙천으로 발산하고 천진하면서 능수능란한 모습을 가진 주갑을 생각하면 그런 그들의 인물평이 부러움으로 여겨진다.

명희의 애정 없는 결혼생활과, 인실과 오가다 지로와의 이어질 수 없는 인연, 환국을 짝사랑하는 소림, 새로운 세대의 여러 인연들이 서술된다.

초반의 인물들은 하나 둘 세상을 뜨고 어리기만 하던 세대가 이제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닌 채로 일제 강점기의 시대를 깨우치고 있어서 이야기가 흥미로워 진다.

- 지나친 겸손은 오만보다 나빠. 위선이며 비굴해진다. - 170

- 해 질 무렵, 새들이 잠자리를 찾아 날아가는데 용이네 집에서 곡성이 울렸다.
"초상났구나."
마을 사람들이 용이 집을 향해 달려간다. 상가에는 홍의 사무치는 울음소리, 보연의 호들갑스런 곡성말고는 모든 절차가 정연하게 행해지고 있었다. 장지도 마련돼 있었고 영팔이, 연학이, 그리고 뜻밖에 두만 아비까지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사돈뻘인 한경이가 의관을 차려 입고 나타났으며 최 참판댁 언년이 부부도 와 있었다. 보연이가 시아버지 병간호를 하기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평사리에 온 것은 석 달 전의 일이었다. 홍이는 진주에 있으면서 이따금 평사리를 다녀가곤 했는데 보름 전부터 휴직을 하고 아비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와 있었다. - 319

- 불시에 당한 일도 아니었고 오래 전부터 각오를 했었는데, 아니 어쩌면 아버지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몰라. 한데 사람이란 죽을 때가 되면 모두 죽는다, 왜 그렇게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 - 331


2024. jul.

#토지 #박경리 #3부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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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와 그의 주인 - 드니 디드로에게 바치는 3막짜리 오마주 밀란 쿤데라 전집 15
밀란 쿤데라 지음, 백선희 옮김 / 민음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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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니 드니로..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 원작을 읽은 지 오래라 기억이 가물하고
애초에 이 책 자체에 큰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단 쿤데라 전집을 사 모을 때 산 책이다.

포스트모던한 점이 흥미를 끌어올리기도 하지만, 이번 작품은 지루하게 읽었다.

- 감성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이지만 그것이 가치처럼, 진리의 기준처럼, 행동을 정당화하는 증거처럼 간주되는 순간 위험해진다. 더없이 고결한 애국심이 최악의 혐오스러운 행동까지 정당화할 수 있다. 하여, 서정적 감정으로 가슴이 벅차오른 사람이 성스러운 사랑의 이름으로 비열한 짓거리를 저지르는 것이다.
합리적 생각을 대체한 감성은 무분별과 불관용의 토대가 된다. 그것은 카를 구스타프 융이 말했듯이 "폭력의 상층 구조"가 된다. - 13

2024. sep

#자크와그의주인 #밀란쿤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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