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와 빵칼
청예 지음 / 허블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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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인 윤리성의 상실로 불편함을 야기하는 이야기.

상식과 윤리로 스스로를 단련하며 어울려 살아가는 원활한 과정을 찾아가는 것이 문명의 한 조건일텐데,
지금은 그런 것들보다도 자신의 이익과 유불리에 더 많은 의미를 두는 시대가 되었다고 느껴진다.

윤리적이라고 자부하는 이들도 이중적인 삶을 살기도 하겠지만, 그 위선도 '선'의 일부 아닌가.
그래서 '위선이라도 떨며 살자' 라는 말이 호응을 얻는 것이다.

작가가 밝혔듯, 일부러 위악을 떠는 인물들을 그렸고, 그 위악이 독자를 끊임없이 불쾌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장치가 된다.

위악의 통쾌함을 혹은 불쾌함을 목도하기까지 너무 길게 보여지는 주인공의 억압의 상태 서술은 사실 일상에 너무 흔한 일이라 결국 조금은 통쾌하지 않을까 기대하며 읽었는데,
결코 그러지 않았다는 점이 의미 있다.

자비 없는 카타르시스.. 별로 없었다.

조금 지루한 전개와 충격이라고 설정된 후반이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아서 전체적인 재미는 반감되었다.

- 자유가 우릴 추하게 만든다. - 9

- "우리 예전에 정말 좋았지?"
"지금도 좋잖아."
"그럼 내일도 좋을까?"
한 손 운전을 그토록 두려워하는 수원이 불안한 눈으로 나를 보더니 한 손을 뻗어 내 손을 감쌌다. 따뜻했지만, 햇살의 온도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온기였다.
"좋아지려고 이렇게 일찍 일어난 거야."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진다는 믿음으로 우리는 살아간다. 하지만 제법 많은 인간이 과거를 동경하게끔 설계되었다는 걸 은주와 수원을 알고 있을까. - 18

- 모든 사람이 자유로워지기 전에는 그 누구도 자유로워질 수 없고, 모든 사람이 도덕적이기 전에는 그 누구도 완전히 도덕적일 수 없다. 또한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기 전에는 그 누구도 완전히 행복해질 수 없다. - 허버트 스펜서 <사회정학> 중

- 나는 쉬운 선택지를 택했다. 관계가 불편해지는 것보다 일상에 모순을 더하는 일이 쉬웠다.
같은 정당이라면 아무리 멍청한 소리를 해도 지지하는 정치인을 머저리다 욕할 필요가 없다. 친구가 장사하면, 아무리 바보 같은 물건이라도 좋다고 홍보해 주는 사람을 거짓말쟁이다 욕할 필요도 없다. 사람은 다 그렇게 살고 있다. 사람다움의 본질은 때때로 얄팍하다. - 124

- 나는 너를 존중할 수 있다.
단 네가 나를 존중할 때만. - 125

- "이 일에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 건가요?"
그녀의 말을 듣고서야 머릿속, 금이 간 전구의 필라멘트에 불이 들어왔다. 이제야 모든 게 환해졌다. 나는 정말이지 세계를 조금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다. - 151


2024. aug.

#오렌지와빵칼 #청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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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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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진짜 그만 읽어야지 하고 매번 생각하는데...
막상 신간이 나오면 사읽고 있는 작가가 클레어 키건이다.

취향이 아닌데 왜 그런지 모르겠네.
읽고 나면 불쾌함이 마음속에 가라앉는데도 그렇게 되고 만다.

불행하고, 삭막하고, 빈곤한 삶들을 들여다 보게 돼서라고만은 말할 수 없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언어를 잃은 사람들 처럼 과묵하거나 표현하는 행위를 억압당한 사람들 같다.
그럼에도 계속 읽게 되는 건 아마, 그 안에서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비추는 빛 같은 작은 가능성과 희망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나는 다음에 나오는 키건의 책을 또 사겠지...

- 그는 어머니의 어머니를, 그렇게 먼 길을 가서 시간이 한 시간밖에 없는데도 바다에 들어가지 않았던 할머니를 생각한다. 강에서는 수영을 그렇게 잘했는데 말이다. 그라 왜 그랬냐고 묻자 할머니는 바다가 얼마나 깊은지 몰라서 그랬다고 말했다. - 160. 물가 가까이 중

- 그녀는 무엇도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이미 일어난 과거를 말로 표현하는 것은 무의미해 보였다. 과거는 곧잘 배신을 했고, 천천히 움직였다. 자기만의 속도로 결국은 현재를 따라잡을 것이다. 게다가 어차피, 뭘 할 수 있을까? 후회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고 슬픔은 과거를 다시 불러올 뿐이었다. - 196, 퀴큰 나무 숲의 밤 중

2024. aug.

#푸른들판을걷다 #클레어키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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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의 루시 - 루시 바턴 시리즈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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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바턴 시리즈.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구매했다.

팬데믹과 가족의 이야기고, 겪고 난 후라 더 와닿기는 하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더 내가 늙어버린 기분이 드는데, 그런지는 꽤 오래 되었고 그 가라앉은 기분에 읽어서 더더욱 공감이 되는 이야기다.

노년의 삶이 외롭고 고립감이 들지 않게 유대를 만들어 주는 것이 코로나라는 전염병이라는 점. 위기에는 과연 그렇게 되는것이 가족인가 싶다.

늙는 다는 것은 체력의 한계를 실감하고 때때로 마주치는 죽음의 순간이 새로운 만남보다 많아지는 일인데, 루시 바턴 시리즈에서 다른 스트라우트의 캐릭터들이 등장인물로 툭툭 튀어나오는 것이 그런 관계의 고리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루시가 보는 환시는 이야기가 조금 환상적인 면이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주려는 장치같다. 루시의 일생이 어느 정도 비현실적인 환상성이 있다는 그 점 말이다.

등장인물들 사이에 생략되어 있는 말들이 많이 있지만, 설명이 굳이 필요치 않았다. 그렇게 다 이해가 되는 이야기다.

백인 여성의 삶을 글로 쓰는 나이 든 백인 여자라고 루시 바턴을 폄하하는 말을 하는 백인 남자가 
둘째 딸의 바람난 사위 놈이라니, 너 따위가 그런 말할 주둥이가 있다니 싶은 지점에서 Jonna  빡이 쳤다. 

- 그 친구는 엘시가 집에서 죽었는데, 911에 전화를 걸었지만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숨져 있었다고 알려주었다. 우리는 잠시 더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내가 이 친구를 위로할 수 없고 이 친구도 나를 위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걷고 또 걸었지만 터널 속 같았다. 계속 울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 36

- 왜 사람들이 다 다른지 누가 그 이유를 알겠는가? 우리는 어떤 본성을 타고나는 것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세상은 우리를 이리저리 휘두른다. - 56

- 그리고 나는 또한 깨달았다. 슬픔은 혼자만의 것이라고. 맙소사, 슬픔은 혼자만의 것이다. - 66

- 이 나라의 인종주의가 갑자기 폭발하여 터져 나온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 149

- 나는 윌리엄에게 말했다. "내 어린 시절 전체가 록다운이었어. 누구도 보지 못했고 어디로도 가지 않았어." 이 말의 진실이 내 안 깊숙한 곳을 강하게 찔렀고, 윌리엄은 그저 나를 보며 이렇게만 말했다. "알아, 루시."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생각해 보지도 않고 반사적으로 반응 했다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날 저녁에 나는 너무 슬펐다. 어린 시절에 고립되어 보낸 두렵고 외로운 시간은 결코 나를 떠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 내 삶의 각기 다른 시점에 깨달은 것처럼 - 깨달았다. 
내 어린 시절은 록다운이었다. - 227

- 하지만 나는 다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나는 깨어 있었고, 생각했다. 우리 모두 스스로가 큰 무게를 두는 사람들 - 그리고 장소들 - 그리고 사물들- 과 함께 산다. 하지만 우리는 무게가 없다. 결국에는. - 245

- 이 삶에서 앞으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은 선물이다. - 290

- 그리고 그 순간 이 생각이 내 마음을 스쳤다.
우리는 모두 늘 록다운 상태에 있다는 생각. 단지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 그저 그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우리 대부분은 그저 헤쳐나가려고 애쓸 뿐이다. - 372

2024. aug.

#바닷가의루시 #엘리자베스스트라우트 #루시바턴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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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없는 애인 문학과지성 시인선 391
김이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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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을 쓰기엔 오래 전에 읽었다.
일단 플래그를 붙여둔 부분만 옮겨 적어 놓겠다.

- 눈이 와, 여긴 함박눈이야
네 목소리를 듣고
별안간 난
한 번도 함박눈을 맞아보지 못한 걸 알았어
평범한 기쁨을 떠나 있는 것 같아
엄청난 사태로부터도
늙은 시인에게서 사랑 없는 일생을 살았다는 말을 들을 때처럼 싱거운 얘기지 - 함박눈 중

- 문학적인 선언문을 쓰자는 말은
왕에게 속한 신성한 것을 그냥 불러서는 안 되는 폴리네시아 인처럼
은유로 도피하라거나
수사적 비유를 사용하라는 뜻은 아닐 텐데
나는 한 줄 쓰는 데 좌절하고 애통함에 무기력하다
그리하여 난 또다시 적의 문제로 적을 만들게 될 것이다
나는 내가 시적이지 않은 시를 쓰며
시인답지 못하게 살다
문학적이지 않은 죽음을 맞게 되길 빈다 - 문학적인 선언문 중

-그러니 이 시는 내가 쓴 게 아닙니다
내 안에 침묵한 당신은 내 말의 시작
이 시의 끝이고 한계 - 제가 쓴 시가 아닙니다 중

2024. jun.

#말할수없는애인 #김이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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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를 것이다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1
정보라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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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분노가 창작의 동력이라는 작가의 말에 수긍하게 되는 단편들이다.

끊임없이 바른 방향으로 향하는지 돌아보는 노력을 하는 작가라 좋다.

자신의 이야기엔 교훈이 없다고 말하지만,
모든 단편에 생각해야 할 지점들이 담겨 있고, 그것은 꽤 살아가는데 중요한 이슈들이다.

- 그는 모든 것을 후회하고 모든 것에 통탄했다. 그러나 마음 속에 간직한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가슴 찢어지는 기억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살아가야 할 그 막중한 책임에 대해서만은 절대로 후회하지 않았다. - 52, 나무

- 한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다른 사람들 판단하겠는가. - 110, 가면

- 어머니와 할머니들은 아이들을 품에 안고 조용조용 목소리를 낮추어 오래전 같은 땅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웃음과 눈물과 춤과 노래와 전쟁과 피와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었다. 그 이야기 속에서 두 검객의 칼은 창이 되기도 하고 활이 되기도 했으며 두 거인은 형제가 되기도 하고 오랜 벗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소중한 사람이 쓰러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피눈물을 흩뿌리다 뒤따라 저승길을 택하는 결말만은 누구나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들은 땅 위에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살았고, 현재의 시간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오래전의 사람들에게도 그들 나름의 기쁨과 슬픔이 있었고 삶과 죽음이 있었으며 세상 모든 것은 그렇게 엮이고 겹치어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의 이야기로 형형색색 물들 때에야 비로소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것을 배웠다. - 227, 산

2024. jul.

#아무도모를것이다 #정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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