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일기 - 세상 끝 서점을 비추는 365가지 그림자
숀 비텔 지음, 김마림 옮김 / 여름언덕 / 2021년 1월
평점 :
품절


고양이가 가게 안 종이상자에서 편하게 잠든 모습은 전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이라도 좋아하는 것 같다.
캡틴의 인기란....

니키가 다른 업종에 종사하게 되었다는 후기가 반가웠다. 서점주인장 숀과 니키 모두 행복한 결과라면. 블랙북스의 실사판같은 이야기랄까.

1997년 영국 공정거래처에서 도서정가제는 불법이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한다. 효율적이고 실익이 있게 서점, 출판사, 작가의 보호가 전제된다면 가능하겠지? 그럼 책읽는 인구가 더 들어야겠지 어쨌든?

- 나 또한 그랬듯이 멋모르는 사람들에게 중고서점 운영은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는 난로 옆에서 안락의자에 슬리퍼 신은 발을 올리고 앉자 입에 파이프를 물고 기번이 쓴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고 있노라면, 지적인 손님들이 줄줄이 들어와 흥미로운 대화를 청하고 책값으로 두둑한 현금을 놓고 나가는 그런 목가적인 일이 결코 아니라는 효과적인 경종으로 울려준다. - 8

- 여자들이 소설을 훨씬 더 많이 읽는다고 생각하는 오웰의 성적 고정관념은 요즘에도 대체로 통하는 편이다. 남자는 ‘존경할 만한 소설만 읽는다‘와 같은 주장은 요즘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아주 너그럽게 봐줘도) 시대착오적이지만 말이다. - 128

- 그 손님이 일행에게 ˝아마존이 더 싸˝라고 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 내가 지나간 다음 안 들리게 얘기해도 좋으련만 그 잠깐을 기다려 주는 예의조차 없다니. - 156

- ‘무례하게 굴긴 싫지만.‘하는 식으로 말문을 여는 것은 ‘난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지만.‘이라고 시작하는 말과 똑같은 경계경보를 올린다. 복잡하게 말할 필요가 없다. 무례하게 굴기 싫으면 무례하게 굴지 않으면 된다.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면, 인종 차별주의자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된다. - 317

2021. dec.

#서점일기 #숀비텔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깨비 2022-04-05 0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꽤 읽었는데 아직 317쪽까지는 안 읽었나 봅니다.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면, 인종 차별주의자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된다. 정말 명언입니다.

hellas 2022-04-05 03:15   좋아요 1 | URL
참... 고난 서점 일기죠 ㅋㅋ
 
지루한 이야기 창비세계문학 53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석영중 옮김 / 창비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면과 무욕망의 나날을 지나고 있는 명망있는 노년의 학자.
명예로운 퇴진을 하기에는 용기가 부족하고, 오랜 세월 살아온 신념은 삶을 무겁게만 한다.
결국 인간이 무언가를 실행하는 것이 인류와 자연에 민폐라는 불멸의 진리를 에둘러 말하는 것도 같다.

‘지루한 이야기‘ 라는 제목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실존에 대해 성찰해 볼 기회가 된다.

해설의 타이틀이 ‘모호하고 슬픈, 그래서 매혹적인‘인데 전혀 모호하지 않다. 예리한 통찰이다.
그 해설이 제목은 체호프라는 작가에 대한 인상이라고는 하지만 체호프도 마찬가지로 모호하지 않다.

까쨔라는 어린 여성이 현상에 대해 의문하고 고민하는 젊은 지성으로 등장하는 점도 매력적이다.

- 한마디로 말해서 뒤를 돌아보면 내 인생 전체가 재능있는 손끝에서 창조된 아름다운 예술품처럼 느껴져. 어제 내가 할 일은 그저 피날레를 망치지 않는 일뿐이야.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답게 죽어야 하지. 만일 죽음이란 것이 실제로 닥쳐온 위험이라면 나는 그것을 교사이자 학자이자 그리스도교 국가의 시임에게 어울리는 방식으로 맞이해야겠지. 즉 용감하고 평화로운 영혼으로 말이야. 그렇지만 나는 지금 피날레를 망치고 있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너에게 손을 내밀며 도와달라고 애원하고 있어. 그런데 너는 그냥 빠져 죽으라고, 그게 순리라고 말하고 있어. - 63

- 저는 과연 누굴까요? 제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저는 부정적인 현상이죠? 그렇지요? - 87

- 누군가는 고주망태가 되어 예술을 속악하게 만들었고, 신문은 대중한테 아부하느라 속악하게 만들었어요. 똑똑한 인간들은 철학으로 속악하게 했죠.
철학이랑은 아무 상관도 없어.
상관 있어요. 누군가가 무언가를 철학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한다면 그건 즉 그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의미해요. - 89

- 우리 스스로가 존재의 고결한 목적과 자신의 인간적 가치에 관해 잊은 채 생각하고 저지르는 일들을 제외한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얼마나 아름다운가. - 180

- 저는 제 작품의 행간에서 경향성을 읽고 저를 철저한 자유주의자나 철저한 보수주의자로 규정하려는 사람들이 무섭습니다. 저는 자유주의자도 아니고 보수주의자도 아니고 정진주의자도 아니고 수도사도 아니고 무관심주의자도 아닙니다. 저는 자유로운 예술가가 되고 싶습니다. 단지 신께서 그렇게 될 수 있는 능력을 안 주신 게 유감스러운 따름입니다. 저는 어떤 형태건 거짓말과 폭력을 혐오합니다. 바리세미즘과 아둔함과 전횡은 장사꾼의 집이나 경찰서에서만 횡포를 부리는 게 아닙니다. 저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과학 속에서. 문학 속에서 그것을 봅니다. 꼬리표와 라벨은 편견입니다. 제가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것은 인간의 몸, 건강, 지성, 재능, 영감, 사랑, 그리고 절대적인 자유입니다. 거짓과 폭력이 어떤 형태를 취하건 간에 그것들로부터의 완벽하게 벗어나는 그런 자유말입니다. - 204

2021. dec.

#지루한이야기 #안똔체호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검은 노래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선집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지음, 최성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저 뜨겁다.
들끓는 그의 마음은 그보다 더 했을테지만.

이 위력있는 시가 다시금 실제 일상을 비추는 시가 되지는 않기를 바란다.
몹시 위태로운 세계라서 안도할 수가 없다.

- 여기서 시를 기다린건 아니다 ;
내가 온 건
찾아내고, 낚아채고, 움켜쥐기 위해서다.
살기 위해서다. - 위령의 날 중

- 두려움 없이 가방에서 꺼낼 수 있는 한권의 책을 위해,
맑은 하늘 한 조각을 위해
우리는 투쟁한다. - 좀 더 많은 걸 위해 중

- <단어를 찾아서>

솟구치는 말들을 한마디로 표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사전에서 훔쳐 일상적인 단어를 골랐다.
열심히 고민하고, 따져보고, 헤아려보지만
그 어느 것도 적절치 못하다.

가장 용감한 단어는 여전히 비겁하고,
가장 천박한 단어는 너무나 거룩하다.
가장 잔인한 단어는 지극히 자비롭고,
가장 적대적인 단어는 퍽이나 온건하다.

그 단어는 화산 같아야 한다.
격렬하게 솟구쳐 힘차게 분출되어야 한다.
무서운 신의 분노처럼,
피 끓는 증오처럼.

나는 바란다. 그것이 하나의 단어로 표현되기를.
고문실 벽처럼 피로 흥건하게 물들고,
그 안에 각각의 무덤들이 똬리를 틀기를,
정확하게 분명하게 기술하기를,
그들이 누구였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지금 내가 듣는 것,
지금 내가 쓰는 것,
그것으론 충분치 않기에.
터무니 없이 미약하기에.

우리가 내뱉는 말에는 힘이 없다.
그 소리는 적나라 하고, 미약할 뿐.
온 힘을 다해 찾는다.
적절한 단어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찾을 수가 없다.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전문)

2021. dec.

#검은노래 #비스와바쉼보르스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 엄마 맞아? (반양장) - 웃기는 연극 움직씨 만화방 1
앨리슨 벡델 지음, 송섬별 옮김 / 움직씨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족이라는 집단이 얼마나 복잡한 사정과 감정의 집합체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이야기.

엘리슨 벡델이 좋은 작가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지만,
자신의 온 생애를 서술하고,
그런 과정에서 자기를 찾아가고,
위안을 얻고,
극복하고,
좌절하고 등등의 일들을 겪어 내는 이런 열정을 가지려면
자기애가 어느 정도여야 할까?
거대한 자아를 보고 있다는 느낌 그런 기분이 계속 동반된다.

- 이 책에서 ‘재능있는‘이란 ‘똑똑함‘보다 ‘예민함‘을 뜻한다. - 60

- 내 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것이 있다.
결핍과 간극과 공백이 있다.
하지만 그 대신 어머니는 내게 다른 것을 주셨다.
아마도, 훨씬 더 값진 것.
그녀는 내게 출구를 주었다. - 294

2021. dec.

#당신엄마맞아 #엘리슨벡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댈러웨이 부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8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치지 않고 반복되는 자살충동 그리고 우울증.
이런 심리상태로 살아가면서도 찬란한 세계를 경탄의 시선으로 바라 볼 수 있었던 작가, 안타깝고 아이러니하다.

참으로 우아하고 세련된 시점의 이동이지 않는가.
의식의 흐름이라기 보단 카메라의 시선이 흘러가듯 인물 사이를 건너 다니는 구성이 멋지다. 그리고 그 구성을 산만하다 느껴지지 않게 이끌어 내는 능력까지.

클라리사 델러웨이, 삶에 대한 긍정의 자세를 모두 안아 존재하는 사람.

- 아무도 없었다. 그녀의 말은 시들어 떨어졌다. 로켓이 떨어지듯이. 그 불꽃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면서 어둠에 굴복하고, 어둠이 내려 집과 탑의 윤곽 위에 쏟아진다. 황량한 언덕들과 윤곽이 부드러워지다가 어둠속에 묻힌다. 그러나 비록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도, 밤은 그 모든 것으로 충만하다. 빛깔도 없고, 불켜진 창문 하나 보이지 않지만, 사물은 좀 더 육중하게 존재하며, 밝은 대낮에는 드러나지 않는 것을 암암리에 내비친다. 새벽이 가져다 주는 안도를 빼앗긴 채 어둠속에 함께 웅크리고 있는, 거기 어둠 속에 뒤엉켜 있는 사물들의 혼란과 불안을. 새벽이 벽돌을 흰색과 회색으로 씻어내고 유리창 하나하나를 비추며 들판에서부터 안개를 걷어버리고 평화로 이 풀을 뜯는 적갈색 암소들을 보여 줄 때면, 모든 것을 다시금 눈앞에 차려지고, 다시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혼자다. 나는 혼자야! - 34

- 이런 세상에 자식을 낳을 수는 없었다. 고통을 영속시킬 수도 없고 이 탐욕스러운 짐승들, 지속적인 감정이라고는 없고 변덕과 허영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짐승들의 자손을 늘릴 수도 없었다. - 120

2021. Nov.

#댈러웨이부인 #버지니아울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