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희와 제임스 위픽
강화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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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하는 것에 대한 오해와 집착, 실망, 수용, 체념.

뭐... 이것이 동경이라는 감정에 국한된 하위 카테고리는 아닐 것이다.

누구나 품었던 과거의 애착에 대해 짧은 기억들을 소환한다.

강화길 작가라서 좀 더 '기이함'을 기대한 면도 있는데, 기대보다는 평이했다.

위픽 시리즈는 짧게 집중하게 읽는데 아주 좋은 시리즈.

- 그때 용희는 내게 말했다. 이해한다고, 알고 있다고, 자기도 그런 적이 있다고. 이유 없이 서러워지고 삶의 모든 것이 실망스러워지는 순간이 있다고. 그럼 너는 어떻게 해? 내 질문에 용희는 비장하게 말했다.
"그래도 살아가야지. 제임스해야지." - 28

- 돌이켜보면 그렇다. 그 시정 우리는 어떤 감정에 한번 빠져들면 거기서 잘 벗어나지 못했다. 멈추지 못했다. 방법을 잘 몰라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그 감정에 일부러 오래 젖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냥 그게 좋았으니까. - 38

- 이 소설을 쓰고, 몇 달 후에 이사를 했다.
물건을 많이 버렸다.
차마 버릴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그래도 버렸다.
어차피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다 웃긴 시간이었다. - 작가의 말

2025. feb.

#영희와제임스 #강화길 #위픽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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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하는 흑발 민음의 시 239
김이듬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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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추락하고 난도질 당한 어떤 영혼.
그런 이미지를 떠올리며 읽었다.

이쪽으로 저쪽으로 충돌하는 어떤 것 들이 해석을 어렵게 하기도 한다.
쉬운 시어가 주는 혼동이 있다.

- 나는 침묵과 고요를 말하기에 이르렀다
지금은 묵언수행 중입니다
거듭 강조하던 어린 불자처럼
관광객 붐비던 가을 산사처럼 - 불우 이웃 중

- 나는 작은 숲을 가졌고 나무는 느리게 자란다
뾰족하고 부드러운 나무는 자기가 공기를 바꾸는 줄 몰랐다
대들보나 재목이 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의 꿈은 한층 더 사람으로 살다 죽는 것일까 - 평범한 일생 중

- 사랑한다는 말은 해 본 사람이 더 많이 한다
사랑의 총량은 말로 소모될까
잔인한 인간의 친절을 생각한다 - 살아 있는 시체들의 낮 중

- 머리 위로 먹구름 같은 기차가 지나간다 매시간 정각마다 범람하는 햇빛은 턱밑까지 흘러내린 눈물은 어떻게 사라지는가 우리는 밤의 늪에서 기어 나온 악어 떼처럼 공포를 모르고 가끔은 살아 있다고 착각한다 - 나의 수리공 중

- 덜 살아 있었고 조금 죽었다
아름다움은 미진했으므로 완벽했다 - 예술과 직업 중

<나는 춤춘다>
나는 춤춥니다
춤추기 시작했어요
파도가 파고드는 검은 모래 위에서
아름다운 눈발은 전조였죠
폭우 속에서

우선 가슴을 옮깁니다 마음이 아니라 말캉하고 뾰족한
바로 그 젖가슴 말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너무 일찍 감정을 가지죠 다음으로
들린 발을 뒤로 보내는 겁니다

뒷걸음질이 중요합니다 나는 아직 스텝을 다 알지 못하고
몸을 잘 가눌 줄도 몰라요
내 몸은 내가 지탱해야 합니다 허벅지와 허벅지가 스치도록
발꿈치와 발꿈치가 스치도록 이동할 겁니다
모래에 뒤꿈치를 묻은 채 서 있지는 않을 거예요 멈춤과 정적을 좋아하지만
추종하지는 않아요 무한을 봐요 파도가 회오리는 치는

수평선 너머에 시선을 두는 겁니다 눈을 내리깔지 마세요
당신이 오른쪽으로 움직일 때
나는 왼쪽으로 갑니다
당신이 당신 편에서 동쪽으로 갈 때 나는 나의 서편으로 심장을 밀고 가요

가슴 맞대고 춤추는 겁니다
마주 보지만 얼굴을 살피지는 말자는 겁니다
바다 바깥으로 해변 밖으로 나가라는 방송이 거듭될수록
서로의 어깨 깊숙이 손바닥을 붙이는 겁니다

이곳에 살기 위하여
피하고 흥분하고 싸우기도 하듯이
나는 춤추겠다는 겁니다
눈 감고 리듬을 느껴 봅니다

당신이라는 유령,
다가오는 죽음을 인정하고 포옹하면서
매 순간의 나를 석방합니다
나는 춤을 춥니다

뒤로 가는 것처럼 보일 거예요
(전문)

- 괜찮아, 괴물아
목걸이를 던져 주면 가슴을 보여 주는 사람들이 올 거야
무너져도 괜찮아
우리는 감미롭게 슬퍼하고 우리는 악하다 - 발코니 중

2025. jan.

#표류하는흑발 #김이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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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여신 - 사납고 거칠고 길들여지지 않은 여자들의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외 지음, 이수영 옮김 / 현대문학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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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국적, 성 정체성, 인종의 작가들이 모였지만, 이름으로만 추정해도 아시안은 인도계 말곤 없는 듯해서 조금 실망. 동아시아계가 없다는 점이 여성의 시각을 담는데 큰 구멍이 된다는 점을 언급하고 넘어가고 싶다.

그럼에도 여성과 소수자의 목소리를 담는데 진심이었던 영국의 비라고 출판사의 50주년 기획물이라는 점이 흥미로워서 골랐다.(물론 마거릿 애트우드가 참여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지만)

냉소적 유머가 넘쳐나는 사이렌이 등장하는 <뜨개질하는 요물들>과 <진짜 사나이>가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 믿기 힘들겠지만,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인 19세기 말에도 독서가 여성에게 해로울 수 있다는 관념이 꽤 흔했을 정도니, 나는 경고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이 책을 집어 든 여성은 영영 회복이 어려울지 모른다. 눈을 혹사해 시력을 잃을 수 있고 흡수한 내용을 감당하기엔 심신이 너무 예민하여 신경이 괴이하게 곤두설 게 분명하다. 이 어리석은 진취성을 계속 고집하겠다면 적어도 남자 하나를 섭외해 먼저 읽게 하고 어떤 부분이 적절한지 결정하게 하라. 그렇다. 그것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벗어나는 길이다. (...) 엄밀히 말해 비라고virago는 '영웅적이고 호전적인 여성'을 일컫지만 칭찬의 의미가 아닌 유사어도 많다. 수다쟁이biddy, 개년bitch, 무서운 아줌마dragon, 입이 험한 여자fishwife, 한을 품은 여자fury, 잔혹녀harpy, 할망구harridan, 화냥년hussy, 가십녀muckraker, 잔소리꾼scold, 악녀she-devil, 요부siren, 성질이 불같은 여자spitfire, 싸움닭termagant, 사나운 여자tygress, 독설가vituperator, 구미호vixen, 촌년wench...... 나는 이 모든 것들의 합체가 되고자 소망한다. 왜냐하면 이 멸칭들이 전부 자립을 위해 떨쳐 일어서는 여성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모욕적 칭호로 여성을 폄하하려는 시도는 새로울 것이 없다. 인간이 처음 언어를 발화한 이래, 고약한 호칭으로 여성을 조금 더 유순하고 공손하게 만들며 여성의 장소를 동굴 속으로만 한정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 이 글을 쓰는 지금 정치, 노동, 보건, 교육에 걸쳐 여성과 남성이 드디어 동등한 경기장을 마주할 가능성은 135년 후로 추산된다. 내 평생에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내 자식들에게도, 손주 대에서도...... - 서론 중

- 계속할게. 참가를 오래해온 멤버들은 전에도 들었겠지만 양해해줘. '경계의 존재들 뜨개질 모임'이 존재하는 이유는, 다른 모든 연맹, 클럽, 분과, 조합, 협회, 표준, 정체성, 문화적 틈새, 분류에서 대개 제외되어온 이들을 위해서, 기존에 인정받는 집단에 혹은 학문적 범주에 들어가지 못했거나 순응하기를 거부한 우리를 위해서야. - 뜨개질하는 요물들, 마거릿 애트우드

- 추라일은 가부장제의 희생자로 남자들에 대한 복수를 시행하는 여자야, 내가 말했다. 일종의 페미니스트 아닌가?
하지만 사악한 정령이잖아, 제이나브가 말했다. 성적 자제력을 모르고 매혹적이니까 사악하지.
가부장제의 죄책감이 구현된 존재야, 내가 말했다. - 보리수나무의 처녀귀신, 카밀라 샴지

- 30년 이상을 살아오며 캐슬린은 성급하고 참을성 없고 성격 나쁘다는 소리를 들어왔다. 건방지고 퉁명스럽고 사나우며 말이 많고 까다롭게 따지고 고집 세며 반항적이고 가시 돋친 '싸움꾼'이라고.
'진정해, 아가씨!' '성낼 필요 없잖아!' 하지만 정말 그런가? 시민들은 이 문제 많은 세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불평 한마디 해서는 안 되는가? 혹은 성을 내는 게, 사실상, 가장 긴급한 의무가 아닌가? - 가사 고용인 노동조합, 엠마 도노휴

2024. nov.

#복수의여신 #마거릿애트우드 #산디토츠비그 #시엔레스터 #카밀라샴지
#엠마도노휴 #커스티로건 #캐럴라인오도노휴 #헬렌오이예미 #린다그랜트 #키분두오누조 #엘리너크루스 #수지보이트 #앨리스미스 #레이첼시퍼트 #클레어코다 #스텔라더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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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은 나무 7은 돌고래 민음의 시 55
박상순 지음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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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적인 시들.
시인 이상이 조금 연상되었다.

독서는 명확히 개인적인 일이므로 철저히 나에 입각해 시어와 싯구에 나만의 감상과 해석을 얹게 된다.
그게 개인적으로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인지 현실감은 최소화한 느낌이어서
시에서조차 현실적인 면을 찾는 것이 해석에 편리한 나는 거리감이 있는 시들.

- 오늘도 나는 썩어 가는 내 몸속에 갇혀 나의 우상을 만날 것이다. 내가 웅크린 만큼 나의 우상은 나를 가둔 나의 몸을 더 깊게 파헤치며 내 앞에 나타날 것이다ㅏ. 지금 나의 우상이 나에게 다가올 준비를 하고 있다. 낸 몸을 파헤치며 통로를 만들고 있다. - 나는 더럽게 존재한다 중

- 나는 상자 속에 누워
꽃 피는 소리를 들었다 - 세 개의 귀를 가진 나 중

- 어디에도 내가 없는
내 꿈속에도 내가 없는
나의 꿈 - 내가 없는 나의 꿈 중

2024. dec.

#6은나무7은돌고래 #박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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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천사 문학과지성 시인선 411
허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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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하고 허무함이 가득한 시선.

남아 있는 생이 지리멸렬하지만 작게 불어오는 바람에 문득 생을 작게 조금 기뻐하는 그런 시라고 늘 생각한다.

좋아하는 시인이다.

- 아름다운 선 하나에
고개 숙이는 날이 있다. - 시인의 말

- 알약들처럼 빗방울이 성긴 저녁. 용케 젖지 않은 자들의 안도 속에 하루가 접히고 있었다 - 삽화 중

- 몰락은 사족 없이도 눈부시다. 내밀한 서사가 창자밀려 나오듯 밀려 나와 있는 몰락은 눈부시다. 미리 약속하지 않았으므로 몰락은 눈부시다. - 몰락의 아름다움 중

< 후회에 대해 적다 >

"혼자 아프니까 서럽다"는 낡은 문자를 받고, 남은 술을 벌컥이다가 덜 자란 개들의 주검이 널려 있는 추적추적한 거리를 걸었다. 위성도시 5일장은 비릿했다.

떠올려보면 세월은 더디게 갔다. 지금은 사라진 하숙촌에서 나비 떼 같은 사랑을 했었고, 누군가의 얼굴이 자동차 앞 유리창에 가득할 때도 그게 끝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아득해지지 않았으니 세월은 너무 더디다.

이제 어떡해야 하는 거지

아득해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 스스로 가해자가 되어 문자로 답을 보냈다. 지금에 와서 나를 울린건 사랑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었을 뿐. 그 이상은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비를 피해 은하열차처럼 환한 전철 속으로 뛰어들었고. 나는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바짓단이 다 젖도록 거리에 서 있었다.
(전문)

- 나의 소혹성에서 그런 날들은 다른 날과 같았다. 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생은 그저 가끔씩 끔찍하고, 아주 자주 평범하다는 것을. - 나의 마다가스카르 3 중

- 도망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들은
원래 없었다.
아주 느린 속도로
기억은 말라가고
인광처럼
시간은 가끔 반짝였을 뿐이다. - 미이라 2 중

- 말로 꺼내지 못한 신념들이 타들어가던 시간. 봄날은커녕 이것도 저것도 아니었던 시간. 남지도 사라지지도 못한 내 탓이라고 치자. 하여튼 타인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 계급이다. - 좌표 평면 중

- 알면서도 다 알면서도 잔해를 남겼다. 후회한다. 돌아가고 싶다. 내가 짓고 내가 허물었던 것들에게. - 무념무상 2 중

- 허연의 시에서 부고는 죽음을 과거형으로 박제하는 말이 아니라, 서서히 죽어가는 일의 소식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따라서 부고로서 쓰이는 시는 죽어가는 일에 대한 시며, 그렇기 때문에 생생한 삶에 대한 시고, 궁극에는 미지를 탐구하는 시이기도 하다. - 해설 중

2024. dec.

#내가원하는천사 #허연 #문학과지성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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