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하고 순박한 마음의 소유자 핍에게 주어진 평생의 꼭두각시 놀음이랄까.
상류 사회로의 편입에 대한 욕망. 단 하나 원했던 사랑의 패배.
그런 것들이 통속의 통속으로 버무려진 이야기.
인간이 어쩌면 그렇게 잔인하게 남의 인생에 난입해 난도질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인간이 어쩌면 그렇게 타인에게 관대하고 깊은 사랑을 줄 수 있는지도 보여주는 이야기다.
핍이 조금더 냉정하고 이성적이고 잔머리를 잘 굴리는 사람이었다면 행복과 불행의 무게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인생의 양면을 오롯이 살아내게 하려면 그런 캐릭터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디킨스의 이야기를 엄청 좋아하지는 않지만,
인생을 그리는 탁월함은 부정할 수 없다.
매부인 조와 비디, 매그위치와 허버트가 핍에게 주어진 위대한 유산 아닌지.
- 뜻밖에 면죄부가 주어진 내 좀도둑질 행위에 대해 내 마음 상태는 그 일을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 망ㅁ의 밑바닥에 선한 양심이 조금은 남아 있었다고 나는 믿고 싶다.
발각될까 하는 두려움에 더 이상 떨지 않아도 되었을 때, 내가 조 부인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 같은 여린 감정을 조금이라도 느꼈다든가 하는 기억은 없다. 하지만 나는 매부 조만은 사랑했다. - 그건 아마 다른 무엇보다도, 나의 그 어린 시절에 선량한 그가 나로 하여금 그를 사랑하도록 허락해 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에 관해서는 내 속마음이 그렇게 쉽게 편해지지 못했다. 나는 조에게 모든 진실을 털어놓아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많이 생각했다. - 78
-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이다, 핍. 그런데 이보게, 이건 내가 자네한테 아주 진지하게 말하고 싶은 거라네. 난 불쌍한 우리 어머니에게서, 고되게 노예처럼 일만 하면서 정직한 마음에 상처만 입고 평생 하루도 마음 편하게 지내지 못하는 그런 여자의 모습을 너무나 뼈저리게 보았단다. 그래서 여자에게 올바른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잘못을 저지르는 걸 끔찍이 두려워하게 되었단다. 그래서 차라리 다른 방식으로 잘못을 해서 내가 좀 불편하게 사는 것이 둘 중에 그래도 낫겠다고 생각했지. 물론 핍, 괴로움을 당하는 게 나 혼자라면 얼마나 좋겠니. 이보게, 자네가 ‘따끔이’한테 얻어 맞는 일이 없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 모든 걸 내가 대신 당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지. 하지만 그런 건 오르락내리락 평평한 인생사의 기복처럼 어쩔 수 없는 거란다, 핍. 그래서 난 네가 그런 부족한 점들을 잘 참고 넘어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 94
- 난 지쳤단다. 미스 해비셤은 말했다. 기분 전환이 필요해. 그런데 세상 사람들과는 관계를 끊었지. 자, 놀아 보거라. - 110
- 우리 누나의 양육방식은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이 누구한테 양육을 받든지 간에 아이들이 존재하는 조그만 세계에서, 부당한 처사만큼 아이들에게 예민하게 인식되고 세세하게 느껴지는 것은 없다. 아이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처사가 그저 조그만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는 작은 존재이고 아이의 세계도 작다. 그리고 그런 작은 세계에서 아이의 흔들목마는 비율로 칠 때, 우락부락한 아일랜드 사냥개만큼이나 커다랗고 높이 솟은 존재로 보이는 법이다. 유아기 때부터 내 마음속에는 부당한 처사에 대한 끊임없는 갈등과 거부감이 형성되어 있었다. 말을 할 줄 알게 되었을 때부터 나는 누나가 변덕스럽고 폭력적인 억압으로 나를 부당하게 대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나를 손수 길러 준다고 해서 그것이 곧 나를 마구 패대기치며 기를 권리를 누나에게 부여한 것은 아니라는 확신을 나는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 내가 당한 그 모든 처벌과 구박, 밥굶기와 잠 못 자기, 그리고 참회를 강요하는 그 밖의 여러 고행들을 통해 나는 이 확신을 키워 나갔으므로, 내가 정신적으로 소심하고 매우 예민하게 된 주된 원인은 바로 혼자서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이 확신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아간 탓에 있다고 믿는다. - 118
- 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나는 그날 내가 보았던 모든 것들을 깊이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내가 천한 막노동꾼 소년이라는 점과, 내 손이 거칠다는 것, 내 구두가 두껍고 흉하다는 것, 네이브를 잭이라고 부르는 천박한 습관을 내가 지니고 있다는 것, 내가 어제까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무지하다는 것과, 전체적으로 볼 때 내가 비천하고 불량한 존재라는 사실 등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 122
- 자, 그러니 핍, 이제 진정한 친구로서 내가 너에게 해 주는 말을 잘 듣거라. 진정한 친군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네가 만약 똑바른 길을 가는 걸로 비범하게 될 수 없다면, 비뚤어진 길로 가는 걸로는 더더욱 그렇게 될 수 없을 거다. 그러므로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말거라, 핍. 그리고 잘살다가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하거라. - 134
- 조는 길까지 나를 배웅해 주러 나와서는 나한테 도움이 될 작별의 말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길길이 날뛰기도 하다가, 핍, 길길이 날뛰지 않기도 하다가, 핍 - 인생이란 바로 그런 것이란다!” - 214
- “네가 나를 비난하든 칭찬하든......” 불쌍한 비디는 대답했다. “너는 그것과 상관없이 내가 여기에서 내 능력이 미치는 모든 것을 언제나 열심히 할 거라는 점은 믿어도 될 거야. 네가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떠나든지 간에, 너에 대한 내 기억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을 거야. 다만 신사라고 해서 남을 부당하게 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그렇게 말하면서 비디는 고개를 돌렸다. - 277
- 너는 그걸 받아야만 해! 우린 우리한테 주어진 지시에 복종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권이 없어, 너와 나는 말이야. 우린 우리 자신의 의지를 따를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야, 너와 나는 말이야. - 30
- 그겨는 나에게 손을 내밀고는 미소 띤 얼굴로 잘 가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그녀 역시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대로 선 채 그 집을 바라보며, 그녀와 함께 그 집에서 산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와 함께 있을 때 내가 결코 행복하지 않고 오히려 언제나 비참하기만 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 41
- 나는 이 모든 것에서 깨달았다. 비록 그 때문에 비참한 심정이 되었고, 또 그것으로 인해 내 종속된 처지를 새삼 통렬하게 의식하고 심지어 비하감까지도 통렬하게 느꼈지만, 나는 이 모든 것에서 깨달았다. 에스텔러가 남자들에 대한 미스 해비셤의 원한을 풀어 줄 도구로 의도되어 있다는 것과 에스텔러가 일정기간 동안 그런 의도를 만족시켜 주기 전까지는 나한테 주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이 모든 것에서 깨달았다, 왜 내가 그녀의 상대로 미리 정해져 있는지를. 남자를 매혹하고 고문하고 해를 끼치도록 그녀를 세상에 내보낼 때 미스 해비셤은 그녀가 모든 구애자들의 손이 닿지 못하는 곳에 있으며, 그래서 그녀를 차지하려는 경쟁에 뛰어든 모든 남자들은 필연적으로 실패하게 되어 있다는 악의적인 확신을 가지고 그럴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것에서 깨달았다, 비록 상을 탈 승자로 예정되어 있지만 나 역시 교묘하고 뒤틀린 술책에 의해 그동안은 고통당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 모든 것에서 깨달았다. - 98
- “어머니께서는 아셔야만 해요.” 에스텔러가 말했다. “저는 어머니께서 만들어 낸 존재라는 것을 말이에요. 칭찬이든 비난이든, 성공이든 실패든, 전부 다 어머니 몫이에요. 말하자면 내 모든 것이 어머니의 몫인 거예요.”
“오, 저것 좀 봐, 저것 좀!” 미스 해비셤은 사무치는 분노로 소리쳤다. “저것 좀 봐, 자기를 키워 준 이 난롯가에서 저렇게 무정하고 배은망덕하게 굴다니! 이 가련한 가슴이 처음 상처 받고 피를 흘리고 있을 때, 자기를 품 안에 받아들여 이 난롯가에서 여러 해 동안 그토록 깊은 애정을 쏟아부어 주었건만 저렇게 굴다니!“
”적어도 저는 그 계약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어요.“ 에스털러는 말했다. ”그 계약이 맺어졌을 때, 제가 비록 걷고 말할 수는 있었지만 그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어머닌 무엇ㅇ르 바라는 거지요? 어머닌 저에게 매우 잘해 주셨고, 저는 모든 것을 어머니에게 빚지고 있어요. 그러니 자, 무엇을 바라는 거지요?“
”사랑을 바란다.“ 미스 해비셤은 대답했다.
”그건 이미 받고 계시잖아요.“
”아니야, 받지 못했어. “ 미스 해비셤이 말했다.
(...)
”저렇게 거만할 수가, 저렇게 말이야!” 미스 해비셤은 두 손으로 자신의 허연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신음하듯 말했다.
“저에게 거만하라고 가르친 사람이 누구죠?” 에스텔러는 대답했다. ”제가 그 가르침을 잘 배워 실천했을 때 저를 칭찬한 사람이 누구죠?“
”저렇게 무정하다니, 저렇게 말이야!“ 미스 해비셤은 아까와 같은 동작을 또 하며 신음하듯 말했다.
”저에게 무정하라고 가르친 사람이 누구죠?“ 에스텔러는 대답했다. ”제가 그 가르침을 잘 배워 실천했을 때 저를 칭찬한 사람이 누구죠?“
”그렇다고 나에게까지 거만하고 무정하게 군단 말이냐!“ 미스 해비셤은 두 팔을 내뻗으며 완전히 비명에 가깝게 외쳤다. ”에스텔러, 에스텔러, 에스텔러, 그렇다고 나에게까지 거만하고 무정하게 군단 말이냐!“
에스텔러는 한순간 일종의 조용하지만 놀란 표정으로 미스 해비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밖에는 동요의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 순간이 지나갔을 때 그녀는 다시 난롯불을 내려다보았다.
”저는 어머니께서 왜 이토록 비이성적으로 행동하시는지 알 수 없어요.“- 101
- ”밝게 빛나는 촛불 주위에는......“ 에스텔러는 그를 한 번 흘끗 보며 대답했다. ”나방과 온갖 종류의 혐오스러운 벌레들이 꼬여 드는 법이야. 촛불이 어떻게 그걸 막을 수 있겠니?“ - 112
- 난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난 네놈들이 절대 따라가지 못할 훌륭한 신사를 기르고 있단 말이다, 이놈들아!’ 그놈들 가운데 한 놈이 다른 놈에게 ‘저자는 몇 년 전에 죄수였다오. 그리고 지금도, 비록 운이 좋아 부자가 됐지만, 역시 무식한 상놈일 뿐이라오.’라고 말했을 때, 내가 뭐라고 말했는지 아느냐? 난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비록 내가 신사가 아니고 배운 것도 전혀 없지만 난 유식한 신사를 소유한 몸이시다. 네놈들은 모두 가축과 땅을 소유하고 있지만, 너희 중에 그 누가 잘 길러 낸 런던 신사를 소유하고 있단 말이냐, 이놈들아?’ 이런 식으로 난 계속해서 참고 살아갔단다. - 131
- ”오!“ 그녀는 절망적으로 소리쳤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미스 해비셤, 저에게 상처 주기 위해 당신이 무슨 짓을 한 거냐는 말씀이라면 그건 제가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당신은 거의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떤 상황이었든 그녀를 사랑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그녀는, 결혼했겠지요?“
”그래.“
그건 불필요한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황폐한 이 집에 새로이 더해진 황폐함은 이미 그 사실을 나에게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 - 268
- 사랑하는 비디, 일찍이 내 인생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던 것을 나는 그 어떤 것도 잊지 않았어. 그리고 일찍이 내 인생에서 조금이라도 자리를 차지했던 것 역시 거의 잊이 낳았어. 하지만 내가 한때 가련한 환상이라고 불렀던 그것은 모두 사라졌어. 비디. 그래, 모두 사라졌어!”. - 422
2022. nov.
#위대한유산 #찰스디킨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