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짧은 한국사 - 읽는 것만으로 역사의 흐름이 머릿속에 들어온다
김재원 지음 / 빅피시 / 202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를 '한 권'에 담기 위해서는
- [세상에서 가장 짧은 한국사], 김재원, <빅피시>, 2022.


"이 책은 과거를 향한 쓸데없이 신중한 접근을 삼간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거꾸로 반감부터 드는 게 인간이 아니던가. 마치 역사를 알면 세상 삼라만상의 비밀을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할 생각도 없다. 그럴수록 역사는 더 지루해진다. 역사라는 학문이 지금까지 과도하게 유통되면서도 정작 사람들의 뇌리에 남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 [세상에서 가장 짧은 한국사], <프롤로그>, 김재원, 2022.


오래전 소설을 써보고 싶었지만 잊고 살다가 고개를 돌려보니 중년이 되었다. 서평이라도 써서 남겨보려고 책을 읽다보니 문득, 모든 책이 '역사' 책이라는 걸 깨달았다. 철학도, 문학도, 사회과학도, [자본론]이나 [종의 기원]도 결국 '역사'로 보였다. 
그래서 굳이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 '역사' 관련 책만 읽지는 않는다.
인류가 남긴 모든 책에는 '역사'가 들어 있기에 독자는, 그 책에 담긴 '역사'를 찾아내는 탐정이 되면 된다.


역사학자 김재원은 [세상에서 가장 짧은 한국사](2022)라는 담대한 제목의 책을 통해 너무 신중하게 다루어서 지루해졌거나 또는 입시용으로만 공부했기에 대입시험 후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한국사'를 경계하며 "쉽게 그러나 가볍지 않게 떠나는 한국사 여행"(같은책, <프롤로그>)을 제안한다. 

그에 따라 저자는 <고대>를 다룬 1장에서 고조선과 삼국시대를 대표적 사건 중심으로 서술하면서 연속적 서사에 필요한 다른 이야기들은 과감하게 생략한다. 예를 들어 고조선은 단군왕검 신화와 청동기에서 철기시대로 전환과정으로 정리하고 말지 고조선 내부의 국가체제, 사회문화, 주요인물 세부내용들은 건너뛴다. 부여라는 국가의 중요성은 잠시 언급하고 나서 삼국시대는 철기를 기반으로 한 중앙집권적 고대국가의 틀을 갖춘 고구려-백제-신라의 특징, 즉 정복약탈국가 고구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백제, 배신의 아이콘 신라와 이에 가려진 가야를 순식간에 정리하고 만다. 한 권으로 엮기에는 신석기 시대부터 국가체제를 갖추었을 수도 있었을 고조선과 고대국가체제 이전부터도 삼국 또는 열국시대가 가능했을 수도 있다는 논쟁거리는 들어설 자리가 없다. 급하게 넘어가야 하니 사료가 별로 없는 남북국 시대 발해는 본격적으로 언급할 여유도 없다.

2장의 <고려시대>는 남북국 시대의 남국 통일신라 말기 후삼국의 영웅인 궁예와 견훤, 왕건을 시작으로 고려시대의 굵직한 흐름을 잘 정리하고 있는데, 지방 호족 분권정치의 시작 및 광종과 성종의 개혁, 묘청의 서경반란의 배경인 문벌귀족 이야기와 이 체제가 초래한 무신정변, 원나라의 사위나라로서 고려의 위상 등의 흐름이 잡힌다. 입시용으로 외울 내용은 과감히 생략하고 흐름만 잡아도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생소한 <고려시대>는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이 책 중 가장 추천하고 싶은 장이 바로 2장 <고려시대>다.

3장 <조선시대>는 정도전과 이성계의 역성혁명의 본질을 '부동산', 즉 '계민수전'의 토지개혁으로 간단히 정리하는데, 정도전의 성리학 관료국가를 뒤집은 이방원의 왕권강화와 수양대군의 계유정난 이후 두차례의 중종 및 인조반정과 왜란과 호란의 전란 등 굵직한 사건과 그 속의 인물들 중심으로 흐름을 잡고 있다. 다들 알만한 성군 세종의 업적이나 붕당정치의 실체와 장단점 등을 논하기에 한 권으로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임진-정유왜란과 정묘-병자호란 등 조선의 국운을 꺾은 대전쟁들은 한반도 국지전을 넘은 대륙까지도 아우르는 동아시아 세계대전이라는 인식은 공감할 만한 내용이다.

4장 <근현대> 또한 구구절절 1960년의 4.19, 1961년의 5.16, 1979년의 10.26과 12.12, 1980년의 5.18이나 1987년 및 2016년 민주항쟁 같은 전통적 서사를 벗어난다.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면서 전두환 군사독재는 일언반구도 안하는 이유가 이승만과 박정희는 공과를 놓고 민주-반민주 진영논쟁의 여지가 있는 한편, 전두환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끝났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희대의 살인권력 전두환 정권에 대한 비판이 빠진 근현대 한국사는 다소 생소하다. 이 책에서 현대의 끝은 아마도 1997년 IMF 경제위기인 듯 한데, 저자는 1995년 삼풍백화점이라는 강남의 호화시설의 붕괴에 빗대어 평가하고 있다. 재해의 규모상 1950년 6.25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재난이었던 삼풍백화점 붕괴는 남한의 기존 사회경제 체제의 붕괴를 상징하며 우리 사회의 체질을 바꾼 IMF의 전조라는 저자의 결론적 평가 행간에는 그럼에도 불평등 체제가 그 위기들 이후 심화되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한국사를 한 권으로 정리해야 하는 저자에게 그렇게까지 세세하게 서술할 지면적 여유는 없어 보인다.

결국, 입시를 위한 암기용이 아닌 '역사'는 세세한 내용보다는 흐름 위주로 읽어야 한다. 
중국의 역사학자 이중톈은 수십년 계획의 '중국통사' 시리즈를 쓰며 이를 위해 추리소설 기법을 접목했다. 즉,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나열하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시기의 특정 사건과 인물을 중심으로 시대적 배경을 아우르며 사건의 인과관계를 추적하는 방식이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한국사도 굳이 '한 권'에 담기 위해서 노력하기 보다 '추리소설'처럼 독자를 안내해 보는 것은 어떨는지.

어떻게 쓰든,
'역사'는 흥미롭지만 말이다.

***

- [세상에서 가장 짧은 한국사], 김재원, <빅피시>,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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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고질라 : 킹 오브 몬스터
마이클 도허티 감독, 밀리 바비 브라운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9년 9월
평점 :
일시품절


'신화'와 '과학'은 하나다
- 영화 [고질라 : 킹 오브 몬스터](2019), 마이클 도허티


"왕이여,
영원하라!"


1.

내가 재성이네 미용실 다락방에서 내려온 1984년경, 나는 종이접기 필살기 한 가지를 장착한 후 하산한 터였다. 물론 기술은 습득했으되 서툴러서 한 마리 접는데 시간이 한참 걸렸고 국민(초등)학교 4학년 고사리손으로 그렇게 만든 결과물 또한 정교하지 못했을 것이기에 친구들 앞에서 아무 때나 발휘할 만은 못했다. 그래도 종이접기 과정은 머릿속에 정확하게 이미지로 각인시켰다. 당시의 내가 구입할 수 없었던 <다이나믹콩콩시리즈>의 그 수많은 로봇과 괴수 대백과사전을 섭렵하고 대괴수 '라돈'의 종이접기 최고난이도까지 정복한 나는 더이상, 별로 정확하지도 않은 내용의 이야기로 으스대며 가끔 내 등과 팔다리를 물어 이빨자국을 내던 재성이의 다락방에 오르지 않아도 되었다.
그 때 하산한 나를 반긴 건, 종이접기와 '공작' 활동에는 나에 미치지 못하지만 어린 나이에 제법 근거를 갖춘 '서사'에 강했던 같은 반 친구 민수였다.

초등학교 졸업반과 중학교 시절 1, 2차 세계대전의 서사에 빠져들기 전, 민수와 나는 일본의 대괴수 '고질라'의 괴수 대전쟁에 잠시 빠졌다. 그 후로도 수년간 그랬듯 나는 '똘똘이 스머프'를 닮은 민수의 이야기 전개에 의지하며 예전에 재성이네 다락방에서 수련한 로봇과 괴수들의 캐릭터를 그림으로 그렸고 라돈을 접었다. 이후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5년 이상 지속된 '글 김민수, 그림 송용원' 서사의 시작이었다.

그 서막을 연 것이 바로,
일본의 대괴수 '고질라' 이야기였다.


'고질라(Godzilla;ゴジラ)' 시리즈는 1950년대 등장한 일본의 괴수 영화 캐릭터라는데, 1980년대 중반 당시 초등학생 우리는 일본 캐릭터들을 해적판으로 베낀 <다이나믹콩콩> 대백과 시리즈들을 통해 만나게 되었다. 처음 재성이네 다락방으로 입산하던 1983년 경에는 몰랐는데 하산하게 된 1년 후에 내게 그 사실을 알려준 게 바로 박학다식 초딩박사 김민수였던 것이다. '고질라'가 일본 괴수라는 것을 알고있던 민수의 정보는 고질라도 외계 생명체라는 식의 재성이식 서사와 달랐다. 어디서 알았는지 근거를 자신있게 대던 민수는 믿을만 했다. 한편으로 그림만은 잘 그리던 나는 동년배 친구들에 비해 너무 어리거나 덜 떨어진 듯 느껴졌다. 아마도 수년 후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머리도 굵어지고 친구들도 많아졌던 내가 알게 모르게 똑똑한 민수를 따돌렸던 건 나의 이 오래된 열등감의 소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고질라'는 '킹 기도라'와 '라돈', '모스라'와 '메카 고질라' 등의 괴수 캐릭터들과 함께 이후 다수의 영화 시리즈에서 등장시켰기에 사실상 하나의 일관된 서사 같은 게 없다. 다만, 티라노사우르스 같은 거대 육식공룡을 닮은 '고질라'와 프테라노돈 같은 익룡을 닮은 '라돈', 대왕나방 '모스라' 등은 인류의 무분별한 핵실험으로 인한 방사능 오염으로 탄생하고 진화한 대형 생물종, 즉 괴수였다는 유래를 가진다. '고질라' 등 착한 괴수들이 대항하는 숙적으로서 나쁜 괴수들인 머리 셋 달린 용 '킹 기도라'와 로봇괴수 '메카 고질라'는 지구 밖 외계에서 왔는데, 이로 인해 이 대괴수들의 전쟁은 광대한 스케일의 '우주 대전쟁'이 된다.
어쨌든 일관된 서사는 없어도 '고질라' 시리즈는 그 캐릭터들의 유래 자체를 통해 인류에 의해 위협받는 지구와 생태, 더 나아가 기후환경에 관한 거대 서사시가 된다. 우주까지 끌어들인 것은 사실 우주의 일부로서 이 지구라는, 아주 작은 점이지만 흔치 않은 생명체 행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인 듯도 하다.

이 지구사랑의 대괴수 서사시는 최근에는 헐리우드의 자본과 기술력에 힘입어 [고질라 : 킹 오브 몬스터](2019)로 회생했다.


2.

작년말에 직장의 인사이동으로 나는 경기도 오산에서 자취생활을 하게 되었다. 주중 혼자 지내는 저녁시간에도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주간 문사철(文史哲)'이라는 서평작업을 혼자 하고 있음에도 읽은 책이 주당 한 권을 넘어서 미리 서평을 써두게 되었고 그 동안 읽어야지 벼르던 어려운 책들도 자취생활 덕분에 많이도 먹어치웠다. 그렇게 6개월 여를 보내다가 일종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는데 그 때 떠오른 게 38년 간 나의 필살기 '라돈' 접기였다. 나는 마치 묵상을 하듯 자취방에서 홀로 A4 용지를 잘라 '라돈'을 접었고 접어서 넘쳐나는 '라돈'을 동료들에게 주었다. '라돈' 하나만 접기에 지루해진 나는 주말에 집에 가서 둘째딸 은규에게 사준 로버트 랭과 존 몬트롤 등 미국 종이접기 대가들의 책를 펼쳐 역시 최고 난이도 머리 셋 달린 용 '기도라'와 그리스 신화 속 뤼키온의 괴수 '키마이라', 일본의 종이접기 대가 후지모토 무네지의 '오리가미(origami : 종이접기) 로봇' 시리즈를 매주 한 가지씩 연습하고 습득했다. '라돈'과 '기도라'와 '키마이라', '오리로봇'과 'T-렉스' 등 필살기 5종을 열심히 접어댄 이유 중 하나로 대리석에서 예술적 영혼을 일깨워내던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처럼 새하얀 A4 용지를 통해 이 종이접기 기술들을 완벽히 구사하여 나름 유투브에 올려볼까 했던 욕심도 있었다. 필살기 6호로 '고질라'를 종이접기 책에서 찾지를 못하여 어쩔 수 없이 유투브를 검색하여 정사각형 용지 한 장으로 접는 '고질라'를 찾아 열심히 따라 접던 어느날, 스승의 손이 너무 고사리스러워 소리를 높여 들으니 나에게 '고질라' 접기를 가르쳐 주시던 그 손의 주인공이 다름아닌 초등생 유투버였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 나는 이 '한 장으로 쉽게 접는 고질라' 이후 종이도 접고 유투버의 꿈도 접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6행의 '사언절구' 시 한편을 남기게 된다.

젤로형의 정신으로
육호까지 접은후에
유투버를 꿈꾸었네
그중쉬운 고질라여
초딩유툽 고사리손
종이접고 유툽접네

그러나 8월에 들어 여름 휴가를 맞아서도 나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휴가를 떠나서도 나는 베트남 지폐접기 유투버의 '고질라'를 따라 접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정사각형의 용지 한 장으로 접는 기존 필살기 6종과 다른 차원이었다. 지폐와 비율이 같은 직사각형으로 A4 용지를 재단하여 최근 읽는 양이 10분의 1 이상 줄어든 나의 책들 속에 꽂아두었다가 꺼내서 접어댔다. 여름 휴가지의 저녁 숙소에서 처자식이 잠든 밤에 직사각형 종이 다섯장으로 접어서 조립합체하는 '고질라'를 습득했고, 이제 그만 접고 책 좀 읽자 싶다가도 손이 멈추질 않아 하계휴가가 끝난 그 다음주에는 직사각형의 용지 여덟장으로 접어 붙이는 '킹 기도라'까지 익히고 말았다. 한달전 내가 접고도 신기해 마지않던 정사각 한장짜리 '기도라'와 '고질라' 따위는 이미 시시해졌다.


3.

2019년 마이클 도허티 감독의 헐리우드 영화 [고질라 : 킹 오브 몬스터(Godzilla : King of the Monsters)]는 역시 1950년대 일본의 대괴수 '고질라'를 비롯한 대괴수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한다. 하긴 우주적 사건으로 확장시키고 싶은 지구적 기후생태환경 위기의 산물로서의 이 대괴수들은 아주 오래전 선사적 고대로부터 인류의 지구파괴 역사에서 그 부작용으로 계속 진화해오고 있었는데, 이와 무관한 우주 대괴수 '킹 기도라'는 어쩐 일인지 괴수추적 비밀단체 '모스크'에 의해 남극 기지에 동면된 상태였다. 지구의 환경위기와 진화되는 대괴수의 간헐적 출현으로 대재난이 반복되는 가운데 극렬 환경주의자들은 이 고대 지구의 주인 '타이탄'인 대괴수를 모두 살려내어 '인류세' 동안 인간들의 문명에 의해 급격히 파괴된 지구를 그들 타이탄족에게 다시 되돌려주기 위해 '모스크'가 봉인한 대괴수들을 일시에 깨워낸다. 우주에서 온 대괴수 '킹 기도라'는 그 이름처럼 대괴수들의 '왕(King)'이라 동면에서 해제되자마자 전세계 모든 괴수들을 깨워 결집시킨다. 그러나 이 괴수들은 우두머리를 따를 뿐 각자의 의도가 따로 있지는 않다. 

결국 악당 괴수 '기도라'와 자기집인 지구를 지키려는 주인공 '고질라' 간의 건곤일척 대전을 통해 지구의 운명이 결정되는데, 모스크를 필두로 한 인류는 당연히 '신화'적 존재로 밝혀진 '고질라'와 '기도라'의 대전쟁중 '고질라' 편에 서서 인류 '과학'의 힘으로 돕는다. 아주 오래전부터 지구를 지배하려던 '기도라(Ghidora)'와 지구를 지키려던 '고질라(Godzilla)'와의 전쟁에 다시금 인류의 문명이 결합하고 열세에 몰려 죽음까지 이르던 고질라에게 인간은 핵반응이라는 '과학'의 힘까지 동원하여 다시 살려내면서 결국 '고질라'가 승리하고 지구를 지켜낸다는 이야기다. 

결론은 당연히 이 고대의 '신화'(괴수)와 당대의 '과학(인류)'이 융합하여 지구를 지킨다는 것이며 이제 '고질라'와 함께 '기도라'를 물리친 인류는 기후생태환경을 더욱 사랑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것으로 향한다. 

기도라의 세 개 머리 중 마지막 대가리 하나를 먹어치운 고질라가 궁극의 '괴수왕(King of the Monsters)'으로 등극하여 토해내는 핵방사능 포효 속에는 역설적이게도 바로 생태위기를 경계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왕이여,
영원하라!"

'기도라'가 동면에서 깨어났을 때 극렬 환경주의자가 읊던 이 '신화'적 주문은,
'고질라'를 돕게 된 인류의 '과학'자가 또 다시 읊으며 죽음을 맞이하는데,
이 '왕(King)'은 결국 '신화'와 '과학'이 일종의 핵반응처럼 하나로 응축된 '고질라'로 상징된다.

결국,
예나 지금이나,
고대나 현대나,
'신화'와 '과학'은 하나다.

***

- [고질라 : 킹 오브 몬스터(Godzilla : King of the Monsters)], 마이클 도허티,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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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콘서트 - 교양인이 알아야 할 기독교 2천 년의 스캔들과 진실
만프레트 뤼츠 지음, 오공훈 옮김 / 더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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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 자체가 '스캔들'?
- [기독교 콘서트](2018), 만프레트 뤼츠, 오공훈 옮김, <더봄출판사>, 2022.


"기독교는 서구 세계에서 가장 베일에 싸여 있는 종교다. 이는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너무 많은 정보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정보들은 대개 유별나고 진기한 특색이 있다. 즉 기괴할 만큼 잘못된 정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오늘날의 역사학 관점에서 이른바 교회의 모든 '스캔들'을 비판적으로 규명하고 이를 통해 기독교의 은밀한 역사를 분명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자 여러분은 '굉장히' 흥미진진한 결과물을 기대해도 좋다!"
- [기독교 콘서트], 만프레트 뤼츠, 2018.


1.

어릴적부터 하늘을 보면 저 멀리 구름 사이로 햇빛 한 줄기가 땅으로 내리꽂는 장면을 기대했다. 

취학전 할머니께서 잠시 입원해 계셨던 병원 입원실의 달력에서 아마 처음 보았을 그 이미지는 초등시절 아주 가끔 가본 동네의 작은 교회의 달력에서 기도하는 예수님의 그림 배경으로 다시 만났다. 아버지 하느님이 계신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도하는 예수에게 내리쬐던 그 한 줄기 광선은 신의 계시로 보였다. 신비로운 그 장면은 고등학교 때 잠시 가본 마을의 동안교회 청소년부 회장형의 광기로 인해 다소 반감되었으나 아직까지도 하늘을 올려보게 될 때 나도 모르게 기대하는 광경이다.

남자고등학교를 다니던 내가 여학생 구경이라도 할까 기대하면서 들러본 동안교회 청소년부에는 여학생은 커녕 광신도의 눈빛을 지닌 청소년도 아닌 대학생 회장형이 있었고 한 번 나갔다가 교회를 제낀 내게 그 형은 수차례 전화를 해대더니 심지어 '회개하라!'는 편지를 몇 번인가 보내왔다. 어머니와 누나들은 교회에서 온 편지봉투를 보며 '꼴에 연애는 무슨' 하는 듯한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다. 여학생 구경도 못한 나는 억울했다.

그것이 아직 구름 사이의 한 줄기 광선을 기대하는 나에게 남은 유일한 기독교 '스캔들'이다.


2. 

며칠전 페이스북에서 믿고 읽는 <더봄출판사>의 책광고를 보았다. 

책 제목은 [기독교 콘서트]. 
독일의 정신심리학 의사이자 신학박사 학위를 강조하는 만프레트 뤼츠(Manfred Lutz)가 호기롭게 낸 책으로 원제는 'Der Skandal der Skandale', 즉 내가 번역하기로는 '스캔들'들(복수형:die skandale)이라는 '스캔들'(단수형:der skandal), 해석하면 2천년 기독교 역사 속 모든 '스캔들'이라는 것들 그 자체가 '스캔들'이라는 의미다. '스캔들(scandle)'은 알다시피 '추문' 또는 '좋지 않은 소문'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기독교의 역사와 그 근본 교리 및 이념을 토대로 2천년 기독교에 관한 '스캔들(추문)' 자체가 '추문(스캔들)'이라고 이 책을 통해 주장하고 있다.


"유일신교의 출현... 욕구가 없고 초월적인 '유일신'은 개인적이고, 자유로우며, 윤리적인 판단을 인간에게 요구했다. 신은 내면적인 것을 요구했다. 결국 시대는 이러한 신들의 법정에 서게 됐다. 이후 인간은 오로지 홀로, 단독으로 신 앞에 섰다. 왜냐하면 이제부터는 인간보다 신에게 더 복종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신 자신은 오로지 내면적인 복종만 바라서, 강요된 복종은 전부 의미가 없게 됐다. '자유롭게 신앙을 갖는 유일신교'이기 때문에, 유일신교의 기원은 오늘날 인간의 자유와 자율로 이해할 수 있는 성향을 보인다. 당연히 이 모든 것은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난 게 아니라, 수세기 동안 발전하는 과정을 거친다."
- [기독교 콘서트], <1.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만프레트 뤼츠, 2018.


기독교라는 2천년 간의 '스캔들'이 모두 그 자체가 '추문'에 불과하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입증하고자 하는 이 책은, 우리가 기독교에 관해 아는 거의 모든 것을 정반대로 해석한다. 
이 책에 의하면 로마 시대 국교로 공인된 기원후 4세기 이후 중세를 거치며 행해진 가톨릭의 종교재판과 마녀사냥 등은 사실 기독교의 '스캔들'이 아니다. '유일신교'의 대표 종교인 기독교는 기존 범신론적 '부족종교'에 비하면 '자유로운 개인'의 이념적 기원이라고 한다. 원시 부족종교는 물론 그리스와 로마의 다신교는 공동체의 종교를 믿지 않으면 집단에서 축출되었던 반면, 기독교는 유일신교임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강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종교의 자유'는 집단이 아닌 개인으로서의 '신 앞에 선 단독자'를 가능케 했단다. 중세의 종교재판 또한 그 자체로 보면 종교 탄압 같지만 본래 폭력적이었던 게르만족의 처벌과 형벌에 비하면 그 정도와 횟수가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것인데, 실제로 저자는 교황과 주교들이 신체 절단과 화형 등의 형벌을 반대했고 최소화했다는 사실을 역사적 수치 자료를 통해 증명하고 있다. 이 모든 '역사'적 자료들은 2007년 아르놀트 안게넨트라는 역사학자의 방대한 연구서가 출처라는데 [기독교 콘서트]는 그 연구서의 일종의 대중판과 같다고 저자는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기독교의 교리와 이념은 우리에게 알려진 중세 암흑기의 상황과 달리,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 개인의 출현이며, 기독교를 믿을지 여부는 불완전한 이 개인들의 '자유'에 맡겼기에 근대의 '인권'과 '계몽주의' 조차도 저자에 의하면 기독교의 이념에서 기원한단다. 이 정도의 결론에 이르면 과연 저자의 단언처럼 '굉장히' 흥미진진하지는 않을지라도 '굉장히' 도발적이기는 하다.
중세의 암흑을 걷어내려던 '계몽주의'와 '인권'에 기반한 대혁명 조차도 아이러니하게 기독교에 기반한다는 매우 놀라운 결론이다. 그렇다면, 근대의 혁명이 타파하고자 한 것은 과연 무엇인가. 이 책의 주장은 기독교 교리와는 반대로 나타났던 폭력적인 게르만 문화와 신 앞에 선 인간을 부정하고 성경만을  교조화시킨 루터 등의 종교개혁파를 비롯한 칼뱅이나 츠빙글리 등의 신교파, 하느님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스른채 폭력으로 점철된 온갖 정치혁명 탓이란다. 

이러한 논리로 기독교 2천년의 '스캔들'은 결국 본디 선한 기독교의 이념과 달리 억울하게 퍼진 '추문'에 불과하니 역사 속에 서술된 일체의 기독교 '스캔들' 자체가 '스캔들'임을 역사적으로 입증하겠다는 것이 이 책의 의도인 것이다.

이렇게 기원후 1천년 부터 중세 십자군 성전, 아메리카 인디오 원주민 말살과 아프리카 흑인노예 매매 등을 일관되게 '반대'했던 기독교 이념은 성스럽게 옹호된다. 만프레트 뤼츠가 함께 돌아본 19세기부터 21세기까지 교회의 불완전했던 역사 또한 신성한 기독교 교리체계에 의해 변호된다. 이 책은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비록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을 했고 나치즘을 용인했으며 식민지 선교의 역할을 맡아 제국주의 첨병이 되었던 '스캔들'은 있었지만, 원래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게르만 유럽의 역사가 그런 것이며 여기에 문명을 접합시킨 기독교는 이 폭력의 역사를 저지하거나 순화하는 역할을 했다는 '굉장히' 도발적인 '스캔들'을 시도하고 있다.


"기독교와 교회의 역사를 '스캔들'로 뒤바꾸는 것 자체가 '스캔들'이다."
- [기독교 콘서트], <12. 21세기 교회>, 만프레트 뤼츠, 2018.


그리하여 이 책의 결론은 위의 한 문장이다.
개신교와 게르만 문화, 나치즘과 공산주의 등의 20세기 문명, 나아가 폭넓게 18세기부터 출현한 사회주의와 다양한 혁명 자체도 이 책에 의하면 그 자체가 '스캔들'이지 가톨릭의 2천년 역사 속 기독교 자체는 무죄다. 기독교의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이를 왜곡한 불완전한 인간들의 탓이지 하느님과 그의 대리자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에서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거다.
이 책은 오히려 기독교 자체가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이다"라고까지 주장하는데 과연 '굉장히' 놀랍다.

차라리, '신'이 아닌 '인간'으로서 예수와 기독교의 유물론적 역사를 개괄한 20세기 초 칼 카우츠키의 책이나, 아니면 가톨릭의 세속적 역사를 온갖 음모와 의혹의 극단적 '스캔들'로 간주해 버리는 1980년대 BBC 방송작가 헨리 링컨 등의 [성혈과 성배]와 같은 20세기의 진지한 책을 추천하고 싶은 마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독자라면 만프레트 뤼츠의  이 책이 어쩌면 '굉장히' 흥미로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한편 들기도 한다.

저자 만프레트 뤼츠는 아마도 독일의 문화 속에서 그나마 우리 사회 '민주당'보다도 좌파적일지도 모를 기독교중앙당이나 기독민주당 같은 계열일지도 모르겠다.

처음 <저자의 말>과 <들어가는 말>을 읽고 '굉장히' 자신만만한 저자의 단언에 낚시질당했던 나는, 어쨌거나 책의 결론까지 읽고 나서 오래전 나에게 "회개하고 교회로 돌아오라"던 동안교회 청년반 회장형의 광기를 저자 만프레트 뤼츠와 오버랩시키고 말았다.

나는 기독교를 믿지 않는, 예수를 '혁명가'로 보는 '유물론자'이기 때문이다.


3.

청년기의 나는, 일체의 종교와 지배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는 단호한 '유물론자'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중년의 나는, 솔직히 말해 어느정도 '영성(靈性)'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신화와 종교, 이데올로기를 통해 사회 공동체를 형성하고 유지한 인류 역사 속 '인지 혁명'을 이야기한 역사학자들 덕도 있고, 계급사회에서 이데올로기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한 루이 알튀세르를 한 때 추종하기도 하면서 '철학'의 지위를 높게 보던 시절의 덕도 있다. 
이데올로기가 없는 혁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동 쿠데타는 '체제 수호'가, 급진적 혁명은 '체제 타도'가 각자의 슬로건이었다.

이 모든 이데올로기가 바로 '영성(靈性)'이라고 본다.
나 개인도 스스로가 동물임을 철저히 인식함에도 먹고 자는 것만을 생각하며 살 수 없다. 거창한 목표의식까진 아니더라도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며 그것을 위해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데올로기' 또는 '신념화'를 거치지 않고 살기란 어렵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어찌보면 스스로를 세뇌하고 속이면서 사는 것이 인생이기도 한데, 인류 역사에서 사회 공동체의 역사 또한 바로 이런 '영성'의 역사였다. 

21세기 기독교의 수호자 만프레트 뤼츠의 '굉장히' 용감한 당파성을 비난할 마음은 없다. 누구든 본인의 신념과 물질적 기반을 옹호하고 변론할 자유가 있다. 나 또한 기독교라는 수천 년간의 '스캔들'을 '유물론'적 시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신'이 아닌 '인간'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새삼 강조하고 싶다. 내가 보기에 예수는 견고한 로마 체제와 기회주의적인 유대교 랍비들에 대항하여 급진적 평등세상을 주장한 '혁명가'다. 예가 무너진 세상에 누구든 '인의예지' 덕목을 실천하면 성인군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 현실주의자 공자와 '모든 사람이 곧 부처'라는 지극한 평등사상을 설파한 석가모니, 유일신 사상의 실천으로 이슬람 형제들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광대한 평등의 집을 건설하려던 마호메트 등과 함께 예수가 인류의 위대한 '4대 성인'이 될 수 있었던 공통 덕목이 바로 '평등'이라는 '이데올로기'였고 '영성'이었다.

기독교든, 유학이든, 불교나 이슬람교든,
이 모든 '영성'의 '이데올로기'는,
모두가 함께 어우러진 세상을 살아가는 '평등'이라는 공통의 가치이다.

***

1. [기독교 콘서트(Der Skandal der Skandale)](2018), 만프레트 뤼츠, 오공훈 옮김, <더봄출판사>, 2022.
2. [그리스도교의 기원](1908), 칼 카우츠키 지음, 이승무 옮김, <동연>, 2011.
3. [성혈과 성배](1981), 헨리 링컨, 마이클 베이전트, 리처드 레이 지음, 이정임, 정미나 옮김, <자음과모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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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로보 - 자유자재로 변신하고 합체하는 로봇 종이접기 후지모토 무네지의 종이접기 시리즈
후지모토 무네지 지음, 봄봄스쿨 편집부 옮김 / 봄봄스쿨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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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과학'을 접다
- [오리로보], 후지모토 무네지, 2010.


1. 

취학 한 해 전이었던 1980년에 나는 어른이 되면 '마징가'가 되어 있을 줄 알았다. 마징가 조종사 '쇠돌이(카부토 코지)'가 아니라 마징가 자체가 되고 싶었다.
내년이면 반백년을 살게 되는 지금의 나는 그러나, 세 자녀의 아빠이자 웅녀의 후예같은 여인의 남편인 동시에 지극히 평범한 금융노동자가 되었다.

어린 시절에 TV에서 방영된 만화는 대부분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 그 중 내가 제일 좋아했던 '마징가'는 1972년부터 나가이 고가 연재한 로봇 만화다. 1950년대 전후세대 데스카 오사무의 '아톰'은 인간의 모습을 한 로봇이었고 그 이후 요코야마 미쓰테루의 '철인28호'는 인간이 리모컨으로 조종하는 로봇이었다. 나가이 고가 처음 고안했던 마징가는 오토바이를 탄 인간이 로봇의 머리와 결합하여 조종하는 최초의 형태였다. 본격적인 마징가 시리즈는 오토바이가 아니라 헬기 또는 전투기 비슷한 기체가 로봇의 머리와 결합하여 자동차를 운전하듯 로봇을 조종하는 시스템이었던 것인데 마징가를 만든 과학자이자 조종사 카부토 코지의 할아버지인 카부토 쥬조 박사가 마징가를 처음 다루게 된 손자에게 오토바이라고 생각하고 조종하라는 말도 했단다.

이쯤 되면, '로봇'이란 과연 인류 과학사의 정점이자 기술발전의 극치라 할 만 하다. 그러나 나가이 고가 염두에 둔 '마징가(Mazinga : 魔神-Ga)'는 '과학'의 정점이 아니었다. 그가 계획했던 궁극의 마징가는 고대 거인족 '티탄(타이탄 : Titan)'의 '마신(魔神)'이자 '신(God)'이었다. 이름은 '갓(God) 마징가'였다. 마징가-Z의 적수인 닥터 헬의 기계수는 고대 그리스 크레타 문명의 청동거인 탈로스가 '프로토 타입'이었고, 그레이트 마징가의 적수로서 마징가-Z를 파괴하고 닥터 헬을 대체한 전투수들은 고대 미케네 문명의 후예를 자처한다. 아마도 '신좌파' 세대로 추정되는 나가이 고는 다소 제멋대로이기는 하지만 '과학'과 '신화'를 '로봇'이라는 용광로에 함께 녹여냈다.


2.

"21세기, 인류는 얇은 두께의 정보기기를 계속해서 개발했다. 22세기에 접어들 무렵에는 텔레비전을 비롯한 휴대폰, 컴퓨터의 두께가 더 이상 얇아질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 '페이퍼 A.I'라는 인공지능 A.I가 탑재된 종이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인류는 '페이퍼 A.I'를 사용해 우수한 로봇을 개발하는 데 온 힘을 다했다. 그것이 '오리로보(ORIROBO) 계획'이다.
2198년, 그러한 인류의 뜻과는 반대로 '페이퍼 A.I'는 독자적인 사고를 하기 시작했다..."
- [오리로보], <ORIROBO STORY>, 후지모토 무네지, 2010.


2022년 여름 한 때, 경기도 오산의 외로운 자취방에서 책 읽고 글 쓰는 일이 다소 지루하여 백만년 만에 어릴적 종이접기를 해보면서 오래전 추억을 회상하게 되었다. '마징가'야 워낙 좋아했으니 간간이 떠올리고 관련 글도 써 보았으나, 나의 38년 종이접기 필살기 '라돈(로단)'을 접으며 1983~1984년의 이문동 재성이네 미용실 다락방까지 다시 올라가볼 줄은 몰랐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279

내처 '라돈'에 이은 종이접기 필살기로 고질라의 숙적인 '킹기도라'와 히드라의 자매인 '키마이라'를 마스터한 내게 나의 둘째딸이 책을 하나 더 내밀었다. [신화동물접기백과](2010)를 지은 미국의 종이접기 천재 존 몬트롤에 결코 뒤지지 않는 일본의 후지모토 무네지의 그 종이접기 책은 얼마전 내가 둘째딸에게 주문해 준 책이었다. 

제목은 [오리로보](2010). 
우리말로 '오리' 로봇이 아니다. '종이접기'를 뜻하는 '오리가미(origami)'와 '로봇(robot)'의 일본식 합성 조어다. 즉, '종이접기 로봇'인 것인데, 일본의 그래픽 디자이너 후지모토 무네지는 유치원 다니는 아들에게 종이접기를 가르치던 2천년대 초반부터 아예 본인이 종이접기를 창작하여 작금에는 종이 한 장으로 로봇까지 만들게 되었단다. 가히 미국의 수학자 로버트 랭이나 존 몬트롤과 어깨를 겨누는 종이접기계의 천재이자 지존급이다. 그의 종이접기 첫 저서 [오리로보]는 스토리까지 있는데, 종이처럼 얇은 '페이퍼 A.I' 기술로 착안된 '오리로보 계획'의 추진 과정에서 '페이퍼 A.I' 스스로가 자가발전하면서 '슈레드'라는 로봇군단을 조직하여 세계를 지배하려 하고 인류는 '오리로보 프로젝트'를 통해 '슈레드 군단'의 야욕을 저지한다는 기본 스토리 아래 각종 로봇 종이접기를 설명해주고 있다. 

이 책의 부제는 '자유자재로 변신하고 합체하는 로봇 종이접기'인데, '오리로보 115'라는 기본형은 이른바 '오징어로봇'이라는 '프로토 타입'으로부터 변신한 기본 모델이다. 이 '원형'인 '프로토 타입'으로부터 여러 가지 '오리로보' 모델들이 변신을 통해 파생된다. 즉, '오징어로봇 프로토 타입' 하나만 접을 줄 알면 기본 대여섯 기종을 자유자재로 접을 수 있게 된다.

이 '원형'은 대부분 종이접기의 기본 패턴이다. 모든 종이접기의 기본인 종이학의 '원형'도 그렇고, 나의 종이접기 필살기 1호 '라돈'도, 2호 '기도라'와 3호 '키마이라'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 '신화'적 동물들의 '원형'을 '알'이라 칭한다. 이 '알'들을 틈날 때마다 접어서 책장 사이에  꽂아두고는 생각날 때마다 한 마리씩 탄생시킨다. 이제 나의 종이접기 필살기 4호가 된 '오리로보'들 또한 '프로토 타입'인 '오징어로봇'을 몇 기 접어두고 또 생각날 때마다 한 기체씩 변신시키고 합체시킬 수 있게 되었다. 

과연 중년에 맞게 된 뜻하지 않은 외로운 자취생활은 내가 종이로 '신화'에서 '과학'까지 접어버릴 수 있게 해주었는데, 하나하나 접다보면 흡사 대리석을 조각하면서 그 돌 속에 잠재된 영혼을 깨어나게 했다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잠시 착각하는 순간도 있다. 그러나 나는 '오리가미' 천재들이 창조한 설계도대로 따라가며 대량양산하는 '기술자'에 불과하다. 로버트 랭이나 존 몬트롤, 후지모토 무네지 같은 '과학자' 또는 '창조주' 같은 창작자들이 간단한 종이 한 장에 숨어있는 '신화'적이고도 '과학'적인 영혼들을 깨워내는 사람들이다. 
'창조주'나 '과학자'가 아니라 종이접기 '기술자'에 불과한 나는 그나마 '기도라'와 '키마이라', '오리로보'의 머리를 내 마음대로 창작하여 접어보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뭐니뭐니 해도 종이접기의 압권이자 백미는 공정의 마지막인 '머리'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그림에서의 '화룡점정'과도 같은 것이 종이접기의 '머리 만들기'다. 하나하나 접을 때마다 마지막 '머리'가 어떤 형태가 될지 기대하는 마음에 끊임없이 접어대는지도모르겠다.


3.

후지모토 무네지는 1967년생으로 아마도 한국의 초등학생인 내가 필살기 '라돈'을 외우던 동시대에, 일본에서 같이 종이접기를 하던 중고등학생이었을 수도 있겠다.

내가 그림과 만들기를 좋아하는 둘째에게 로버트 랭의 종이접기 책을 처음 주문해 주기 십여년 전 무네지는 아들에게 종이접기를 알려주다가 스스로 창작까지 했다. 

당최 '기술자'는 '과학자'에 미칠 수는 없겠으나 나는 대신 대량생산 기술을 사용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신화적 존재(mythological creature)'와 '과학적 로봇(scientific robot)'을 나눠주려고 한다.

그렇게 나는 종이 속에 숨은 '신화'와 '과학'의 영혼들을 접어서 나름대로 깨우고자 한다. ^^*

***

1. [ORIROBO - 자유자재로 변신하고 합체하는 로봇 종이접기](2010), 후지모토 무네지, <봄봄스쿨>, 2016.
2. [신화동물접기백과(Mythological Creatures and Chinese Zodiac Origami)](2010), John Montroll, 신승미 옮김, <봄봄스쿨>,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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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이야기 - 라틴어 원전 번역, 개정판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오비디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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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의 시간 : 1993년 ~
- [변신이야기], 오비디우스, 기원후 1세기


"'여보시오.' 하고 페르세우스가 그에게 말을 건넸다. '그대에게
혹시 고귀한 가문의 영광이 어떤 의미를 갖는다면, 윱피테르께서
내 아버지시오. 혹시 업적에 감탄하신다면 그대는 내 업적에
감탄하실거요. 내가 바라는 것은 접대와 휴식이오.' 아틀라스는
이 순간 파르나수스의  테미스가 일러준 해묵은 신탁이 생각났다.
'아틀라스여, 그대의 나무가 황금을 약탈당할 때가 올 것인즉
그 약탈의 명성은 윱피테르의 아들이 차지할 것이오.'
그 뒤 이 신탁이 두려워진 아틀라스는...
... 페르세우스에게도 '멀리 꺼지시오. 여기서는 그대가 거짓말한
업적의 영광도, 윱피테르도 그대에게 도움이 안 될 테니까.'라고 했다.
그가 위협에 이어 폭력을 쓰며 페르세우스를 두 손으로 밀어내려 하자
페르세우스는 주춤거리며 부드러운 말에 거센 말을 섞었다.
힘에서 밀리자...
페르세우스는 '그대가 내 우정을 이토록 대수롭지 않게 여기시니,
선물이나 하나 받으시오!'라고 말한 다음 그 자신은 돌아선 채
왼손으로 메두사의 징그러운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자 아틀라스는 큰 덩치 그대로 산이 되었으니,
수염과 머리털은 나무로 변하고, 어깨와 팔은 산등성이가 되었으며,
전에 머리였던 것은 산꼭대기가 되고, 뼈는 돌이 되었다.
그러고 나서 아틀라스가 모든 부분에서 엄청난
크기로 자라니...
하늘 전체가 수많은 별과 함께 그의 어깨 위에서 쉬었다."
- [변신이야기], <제4권 639~662행>, 오비디우스, 기원후 1세기.


1.

스무살 봄의 강의실로 햇살이 스며든다. 
봄햇살이라 따사로웠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십대 초반의 우리들은 따뜻했고 그만큼 들떴다. 영문학과 1학년 전공필수 '그리스로마신화' 시간의 강의실에 산발적으로 쏟아지던 그 빛줄기들은 흡사 다나에가 갇힌 방에 황금 빛줄기로 '변신'하여 스며든 제우스와도 같았을까. 

황금 소나기 제우스와 교합한 아르고스 왕의 무남독녀 외동딸 다나에는 그리스신화 최초의 반신반인 영웅 페르세우스를 낳았고 페르세우스는 그리스 아테네 문명 이전의 미케네 문명을 건설한 창업자가 된다. 
물론 '유럽(Europe)'이라는 이름의 어원인 '에우로파'에게 황소로 '변신'하여 다가간 제우스가 역시 바람을 피운 결과 나온 반신반인 미노스 왕은 미케네 문명 이전의 크레타 문명을 열었다지만, '그리스로마신화' 강의의 교재였던 에디스 해밀턴(Edith Hamilton)의 [미쏠로지(Mythology:신화학)]에서 서술한 바에 의하면 페르세우스가 최초의 반신반인 영웅이다. 다음이 아테네 문명의 테세우스, 그 다음이 전체 그리스 문명을 만든 헤라클레스로 이어지는 흐름이 <영웅>장의 이야기다. 
1940년대에 발표된 에디스 해밀턴의 [미쏠로지]는 주로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와 오비디우스의 서사시를 토대로 엮었는데, 영문과 신입생 우리는 해밀턴의 [미쏠로지]와 판본은 기억나지 않는 [성서]를 원서로 보았다기 보다는 교재로 삼았고 호메로스의 장편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아]를 교수님의 지시에 따라 원고지에 필사했다.

그리스로마신화 담당교수 이재호 선생님은 강조하셨다. 아무리 지루하고 어려운 책이라도 이해가 되든 안되든 끝까지 읽으라고. 그런 의미에서 스무살 초입의 우리들에게 극강의 지루함을 주는 고대의 서사시를 필사하라고 숙제를 내주셨던 듯 하다.
1학년 1학기 전공필수 교양과목을 나중에 다시 수강하지 않으려면 별 수 없이 우리는 재미없는 서사시를 깍두기 원고지에 베껴야 했고 제대로 읽었을리 없는 우리들은 앞부분과 뒷부분은 제대로 베껴 썼으나 중간에는 애국가 가사나 고등학교 때 외운 청산별곡이나 관동별곡 또는 정읍사나 향가 같은 걸 적어서 냈을 수도 있다. 
60명 정도 되던 우리들의 원고지를 다 읽어볼리 만무했을 이재호 교수님은 그러거나 말거나 사람좋게 웃으시며 그리스신화 이야기를 해 나가셨는데, 놀 생각 밖에 없던 스무살 당시의 나는 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 같았을 그 강의를 따분하다고 생각했다.

봄날의 햇살 이미지는 이십년 이상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내게 문득 각인된 장면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영문과를 다니며 내게 남은 두 가지는 해밀턴의 [미쏠로지]와 스무살 그 해 봄날 황금 햇살이다.


2.

그리스신화하면 19세기의 토머스 불핀치와 20세기의 에디스 해밀턴, 우리나라의 작가 이윤기와 21세기 스티븐 프라이 등의 책들로 볼 수 있겠다. 고등학교 시절까지도 그런 게 있는지 관심도 없던 나는 대학 영문과에 가서도 오랫동안 그런 신화 따위는 모른척 했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오래전 신입생 교재였던 해밀턴의 [미쏠로지]를 원서로 읽었다. 그렇지만 다소 뜬금없게도 취직해서는 인사이동으로 옮기는 사무실마다 그 책을 가지고 다니며 책상 위에 두었는데 이유는 딱히 모르겠고 왠지 그러고 싶었다. 그러면서 틈틈이 읽었던 거다.

미국의 교육자이자 저명한 신화학(Mythology) 저술가 에디스 해밀턴은 책의 각 장 머리말에 이야기의 출처를 명시하면서 서술을 시작하는데 가장 많이 발췌된 책이 오비디우스(Ovid)의 [변신이야기(Metamorphoses)]일 것이다. 오비디우스의 선배격인 베르길리우스도 인용되기는 하지만 불핀치와 해밀턴 이전의 사람들은 아마도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를 통해 그리스신화를 읽었을 것이다. 오비디우스의 이  장편 서사시는 장황하기는 해도 그나마 체계적이기는 하다.

'그리스신화'는 그리스를 식민화한 로마가 그리스 문명을 계승하면서 '그리스로마신화'로 확장되었다. 신들의 이름도 그리스식의 '제우스'가 로마식의 '윱피테르'가 된다. 영어식으로 '주피터(Jupiter)'의 유래다. '포세이돈'은 '넵투누스'에서 '넵튠(Neptune)'이 되었고, '하데스'는 '플루토(Pluto)'가 되었지만,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서 '플루토'로는 불리지 않고 줄창 '디스'로 불린다.

오비디우스는 로마 아우구스투스 시대인 기원 전후시기의 시인이다. 아마도 먼저 유명해진 시인 베르길리우스는 먼발치에서 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는데, 역시 유명했던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와 베르길리우스가 사라진 후 [사랑의 기술]이라는 통속시로 로마 제일 시인으로서 유명세를 타던 오비디우스가 기원후가 되자 마자 섬으로 유배된 이유를 후세들이 알 수는 없다. 아마도 최고 권력자 아우구스투스의 심기를 건드렸을 것으로 추정되며 오비디우스는 간절히 염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유배지에서 풀려나지 못했다고 한다. 바로 이 유배의 수난시기였던 기원후 2~8년 사이에 집필된 작품이 그리스로마신화의 교본과도 같은 [변신이야기(Metamorphoses)]다. 약 1세기전 동양의 사마천이 당대 절대권력자였던 한무제의 역린을 건드려 사형을 받았다가 궁형을 자청하면서까지 살아남아 [사기]를 완성했듯, 오비디우스도 고난의 시기에 홀로 대작을 이룬 셈이다.
오비디우스는 [변신이야기] 집필 후 약 10년 정도 지난 기원후 17~18년 즈음 세상을 등졌지만, 그는 바랬던 바대로 "영원히 살아남았다".


"이제 내 작품은 완성되었다...
하지만... 내 이름은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
로마의 힘에 정복된 나라가 펼쳐져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나는 백성들의 입으로 읽힐 것이며...
내 명성은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다."
- [변신이야기], <맺음말>, 오비디우스, 기원후 1세기.


그런데 왜 '변신' 이야기일까.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올림푸스의 신들은 황금시대를 지배하던 거인 '티탄족'을 물리치고 은시대를 열었는데 청동시대와 철시대를 거치며 탐욕스런 인간계를 벌하기 위해 대홍수를 일으켰단다. 이 내용은 길가메시나 구약성서의 내용과 겹치기도 하는데 주목할 것은 것은 제우스(윱피테르)를 위시한 그리스 신들은 이전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의 신들과는 달리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온갖 사물로 '변신'하면서 인간들과 교류하고 인간들 또한 신들 또는 그와 관련한 계기를 통해 서로를 '변신'시키거나 스스로 '변신'하기도 한다. 
결국 인간의 형상을 한 신들도 원래의 모습이 어떤지 알 수 없는, 끊임없이 '변신'하는 형상일지도 모르겠다.

'인간' 또한 '만물' 중 하나로서 서로 교차하고 접속하며, 그리스신화의 다양한 주역들은 이종교배를 통해 페르세우스 같은 반신반인이든 켄타우로스 같은 반인반수든 키마이라 같은 괴수든 다양한 모습으로 끊임없이 '변신'한다.

신은 인간으로 '변신'하고, 인간은 신 또는 괴수나 자연만물로 끝없이 '변신'하는 이야기. 철시대와 대홍수를 거치면서도 탐욕스런 인간은 전쟁과 정복을 통해 기존에 있던 남의 문명을 파괴하며 자기만의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는데, 제우스의 아들로 알려진 미케네의 페르세우스 뿐만 아니라 아테네 민주주의 도시문명을 건설한 테세우스도 포세이돈(넵투누스)의 아들을 참칭했고 아예 헤라클레스라는 희대의 괴력난신은 제우스의 또다른 아들로서 온 그리스를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문명들을 파괴하고 자기의 씨를 뿌리고 다닌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같은 갖은 그리스 전 문명의 시작이 바로 제우스의 힘센 아들 헤라클레스의 정자에서 나왔다는 얘기다. 그리스신화는 이야기의 선후가 뒤섞여 앞뒤가 안 맞는 구전설화의 특징이 있는데 아마도 산발적으로 전해지던 구전들을 오비디우스가 [변신이야기]를 통해 집대성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유배지에서 탄생시킨 장편 서사시 [변신이야기(Metamorphoses)]를 통해 시인 오비디우스는 그리스로마신화와 함께 "영원히 살아남았고" 또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그리스로마신화의 위대함은 바로 황당하지만 정념이 넘쳐나는 이런 육체적 관계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유물론'적 현실성에 있다. 태초에 천지의 창조도 밤과 낮이 동침하여 이루어졌고, 신들의 창조 또한 하늘의 거신 우라노스와 땅의 거신 가이아와의 건곤일척 섹스를 통해 가능했다.


"가장 위대한 테세우스여, 크레테의 황소를 피 흘리며
죽게 한 그대를 마라톤은 찬탄합니다.
... 에피다우루스 땅은
몽둥이를 들고 다니는 불카누스(헤파이스토스)의 아들이 그대의 손에 
쓰러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케피소스 강의 둑은 무자비한
프로크루스테스가 죽는 것을 보았고,...
갖고있던 큰 힘을 나쁜 용도로 쓰던 저 악명 높은 시니스도
죽었습니다...
... 우리가 그대의 업적과
그대의 나이를 계산하려 한다면, 업적이 나이를 압도할 것입니다."
- [변신이야기], <제7권 433~450행>, 오비디우스, 기원후 1세기.


제우스의 아들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목을 벤 후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바다뱀의 제물이 될 뻔 했던 카시오페아의 딸 안드로메다를 구출하여 자손만대 번성하며 미케네 문명을 건설한 반신반인 영웅의 대표주자다. 
포세이돈의 아들이라 알려진 테세우스는 세속의 아버지인 아테네 왕 아이게우스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명성을 얻기 위해 일부러 고된 육로를 거치며 민중들을 괴롭히던 각종의 악당들을 처치한다. 그들이 나그네를 다루던 방식대로 그들을 처치하는 대목에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같은 함무라비 법전이나 한고조 유방의 약법삼장 같은 초기 법률의 양상도 보이며, 민중들의 명성을 중시하는 민주주의자의 모습도 보이는 가히 대중적 영웅의 본보기다. 크레타의 식민지가 된 아테네를 해방시키기 위해 반인반우 미노타우로스의 제물을 용감하게 자처하고 그 호랑이굴 래버린스에 침투하여 괴수 미노타우로스를 맨손으로 때려잡는 장면에서는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다. 독립해방투쟁의 표본이자 인간 자유정신의 표상인 동시에 민주주의적 평등의 전도사로서 테세우스는 신화 속에서나마 칭송받아 마땅하다.


"이 여신(산고의 여신 일리튀이아)은 유노(헤라)의 간섭으로 나에게는 매우 가혹했지.
그러니까 노고를 참고 견딘 헤르쿨레스가 태어날 때가 되고
태양이 하늘의 제10궁을 지났을 때, 무거운 짐이
내 자궁을 늘어뜨리고 내 뱃속에 든 것이 어찌나 묵직하던지
아이의 아버지가 윱피테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지..."
- [변신이야기], <제9권 284~288행>, 오비디우스, 기원후 1세기.


헤라클레스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이 없다.
그는 오비디우스 뿐만 아니라 수많은 문헌에서 괴력과 명성, 고단한 삶의 노고와 광기에 대한 참회 등을 찬미받았기에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서는 그의 출산시 어머니 알크메네가 느낀 감상을 발췌하는 것으로 족하다.
제우스가 알크메네의 남편으로 '변신'하여 갖게한 헤라클레스는 제우스 부인이자 결혼과 출산의 여신 헤라의 방해로 출산이 방해받는다. 결국 알크메네는 산고의 여신을 속여 쌍둥이 아들을 낳았는데 그 중 하나가 헤라클레스로 그는 태어나자마자 헤라가 보낸 뱀을 목졸라 죽이는 기염을 토한다. 그 후 헤라의 간계로 광기에 사로잡혀 형제를 죽이고는 그에 대한 깊은 빡침과 후회로 죽음의 12가지 노역을 수행하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 중 하나로 하늘을 지고 있던 아틀라스 대신 하늘을 잠시 받치고 있다가 다시 그 노역을 되돌려주는 장면이 있는데, 아틀라스는 애초 페르세우스에게 황금사과를 주지 않고 폭력을 휘두르다가 메두사 머리를 보고 산으로 '변신'하여 굳어진 자다. 헤라클레스는 아틀라스의 노역을 대신해 보기도 했고, 지옥에 가서 케르베로스를 사슬에 묶어 길들이기도 했으며, 망각의 의자에 앉은 사촌 테세우스를 힘으로 데리고 오기도 했다.
아무튼, 오비디우스는 헤라클레스의 어머니 알크메네가 출산 당시 이미 반신반인 헤라클레스의 존재감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며느리에게 회상하는 장면을 통해 괴력의 반신반인을 소개하고 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metamorphoses)'은 원래부터 정해진 모양이 없이 다양한 양태로 존재하는 신과 인간, 자연만물과 세상만사 일체에 대한 '변증법'적이고 '유물론'적 정의다. 그렇다고 '변증법적 유물론'은 아니기는 하나 어쨌든, 신과 인간이, 천상과 지상이 현실에서 육체적이고 물질적으로 접속하면서 서로 상호 대립과 투쟁, 교합하는 과정 일체가 바로 '변신'으로 상징되고 있다.


3.

"새로운 몸으로 '변신'한 형상들을 노래하라고 내 마음 나를 재촉하니,
신들이시여, 그런 '변신'들이 그대들에게서 비롯된 만큼
저의 이 계획에 영감을 불어넣어주시고, 우주의 태초로부터
우리 시대까지 이 노래 막힘없이 이어질 수 있도록 인도해주소서."
- [변신이야기], <서시>, 오비디우스, 기원후 1세기.


오비디우스의 그리스로마신화 장편 서사시가 [변신이야기]가 될 것은 그의 '서문'인 <서시>에 이미 나와있다. 

스무살의 영문과 신입생 우리는 어른으로의 '변신'을 앞두고 있었다.
막 이십대에 진입한 터라 당장 놀고먹고 술마시고 토하는 그런 생활만 쫓아다녔지만, 그 동안 살아온 시간을 탈피하면서 새롭게 '변신'해야할 시간이었다. 그리스 신들처럼 자기 의도대로 '변신'할 수 없는 우리 인간들은 본인들이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변신'할지 당최 알 수 없었다. 그 당시는 무엇으로 '변신'하고 싶은지 본인 의도 자체도 알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십대로 '변신'했던 그 시절의 나로 말하자면, 신문기자가 되어보고자 영자신문사에 들어갔다가 군사정권식의 잔존문화에 짜증나서 한 번 나가고 만 후 다 집어치웠고, 노동계급의 아들이니 자랑찬 이 땅의 노동자가 되고 싶기도 했고, 내 깜냥에 운동에 투신할 자신도 없어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가로 '변신'을 꿈꾸기도 했다. 결국 지금은 푸르던 이십대 청년에서 이도 저도 아닌 그냥 금융노동자로 '변신'하여 살아온지 20년이 훌쩍 넘었고 남편과 아빠로 '변신'한지도 역시 20년 가까이 되어가고 있다. 
아마도 수업은 제대로 듣지 않았지만, '어떤 책이든 한 번 펼치면 끝까지 읽으라'고 말씀하시던 내 스무살 시절 그리스로마신화 과목 이재호 교수님의 조언을 에디스 해밀턴의 [미쏠로지(Mythology)]에 담아서 지금껏 주구장창 들고 다녔는지도 모르겠다. 한가지 확실한 건 해밀턴의 [미쏠로지]에 삽입된 스틸 새비지(Steele Savage)의 삽화들은 지금까지도 무척 인상적이라는 점이다.


그러던 해밀턴의 [미쏠로지]를 어디에 두었는지 최근 도통 보이질 않는다. 집에서 아들딸 방에도, 내 오래된 책장들에도, 오산의 외로운 내 자취방에도 없다. 그렇다고 새 것을 사고 싶지는 않다. 
죽을 때까지 꾸준히 찾아볼 요량인데, 혹시 이제 다시금 다른 것으로 '변신'할 때가 되었다는 제우스 신의 계시가 아닐는지 모르겠다.

***

1. [변신이야기(Metamorphoses)](기원후 1세기), 오비디우스,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2005.
2. [Mythology](1940), Edith Hamilton, <New American Library>, 1969. - Illustrated by Steele Savage
3. [해밀턴의 그리스로마신화](1942), 에디스 해밀턴, 서미석 옮김, <현대지성>, 2022.
4. [그리스 신화], 스티븐 프라이, 이영아 옮김, <현암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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