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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아이
샤를로테 링크 지음, 강명순 옮김 / 밝은세상 / 2016년 7월
평점 :
절판
다른 아이

'폭스 밸리', '죄의 메아리'를 통해 알게 된 독일 작가 샤를로테 링크의 신작 '다른 아이'이 나왔다. 전작을 재밌게 읽었기에 저자의 신작을 기다렸기에 이번 작품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다른 아이는 상처를 가슴 깊이 간직한 인간이 폭발하는 광기를 흥미롭게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다.
그웬 베켓은 아버지와 단 둘이 농장에 살고 있는 서른다섯 살의 여성이다. 전형적인 시골여성의 모습을 생각하면 연상되는 여인으로 내성적인 성격 탓에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대인공포증을 가지고 있다. 자신을 잘 알기에 대인공포증을 극복하기 위한 강좌를 듣고 있는데 비가 오는 날 한 남자가 그녀에게 말을 건다. 남자의 이름은 데이브 탠너... 그는 강좌를 가르치는 교수로 선의로 그웬에게 말을 걸었지만 전혀 매력이 없다고 느끼는 그녀와 결혼까지 생각한다. 그웬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데이브의 잘 생긴 얼굴과 그의 재정 상태를 생각할 때 순수한 의도가 아니라고 여긴다. 그웬의 옆에 살면서 오랜 시간 엄마가 일찍 돌아가신 그웬을 친딸처럼 애틋하게 돌봐준 피오나 반즈란 여성은 그웬을 아끼기에 데이브에게 가장 심한 거부감을 표시한다.
피오나의 손녀딸이며 이혼녀, 의사인 레슬리 크래머는 그웬이 나이가 어린 친구지만 각별하다. 레슬리는 피오나 할머니의 걱정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웬의 약혼식날 피오나 할머니의 직접적인 이야기에 발끈한 데이브는 화를 내며 떠나고 즐거워야 할 약혼식은 엉망이 된다. 헌데 피오나가 사라지면서 베이비시터로 의문의 죽음을 맞은 여대생 에이미 밀즈의 사건과 연관성이 떠오르고 서로 인물들이 연결이 된다. 가장 유력하다고 여겨지는 인물 이외에 그웬과 같은 강좌를 듣던 여자의 남자 친구가 경찰의 촉을 건드리는데....
시골여인 그웬을 둘러싼 사건을 다루는 이야기가 중심에 있지만 전쟁으로 인해 시골로 아이들을 보내려는 작전명 '피리 부는 사나이 작전'이 행해지면서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갖게 된 남녀의 이야기가 사건의 발단으로 작용한다. 믿었던 사람에게 받는 상처는 크다. 마음을 다 잡으려고 해도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는...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데 서투른 사람은 자신에게 불어 닥친 회오리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며 인간이기를 포기하며 가장 가까운 존재마저도...
전쟁을 겪지 못한 세대는 전쟁의 공포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허나 직접 전쟁의 한 가운데 놓여 있었고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은 커다란 트라우마를 가질 수밖에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불리는 노바디... 다른 아이... 아이는 시간이 흐르면 자란다. 제대로 자신을 표현하지 못한 아이지만 자란다는 것은 새로운 문제를 야기한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새로운 두려움을 갖게 된다. 피하고 싶기에 선택한 방법은 엄청난 상처만을 남기는 결과를 가져온다.
독일을 대표하는 여성작가하면 타우누스 시리즈의 넬리 노이하우스를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다른 아이를 읽으며 이제는 샤를로테 링크도 함께 생각날 거 같다. 인간의 복잡 미묘한 심리를 날카롭게 풀어낸 다른 아이는 섬뜩한 두려움보다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감정들을 섬세하게 담고 있어 등장인물 개개인의 내면의 변화하는 감정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인간이 가장 무섭다는 말이 생각나는 이야기에 빠져 즐겁게 읽었다. 책을 잡으면 단숨에 읽게 되는 가속성이 뛰어난 다른 아이... 저자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는 우둔한 게 사악한 것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우둔하고 멍청한 사람들 때문에 이유 없이 고통 받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p49-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쯤 그런 날이 있지 않을까? 수많은 세월이 흐르고,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변하든 그때만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황홀한 기분이 되곤 했다. -p196-
… 경찰을 농락할 수 있을 만큼 두뇌가 뛰어난 사이코패스가 분명했다. -p343-
우리는 무자비하고 무책임하고 양심을 저버린 사람들이었어. 이기적이고 비겁한 사람들이었어. 그래, 우리 두 사람에게 가장 어울리는 호칭은 '비겁자'라는 말일 거야. 우리는 정말이지 비겁자였으니까. -p393-
"………… 인간 심리를 잘 파악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눈에 보이는 모습만 기억하니까." -p5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