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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바바라 몰리나르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평점 :
제정신으로 살고 있다고 믿다가도, 문득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밤,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의 경계가 흐려지고, 내가 정말 이곳에 존재하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을 때.
이 책은 꼭 그런 밤에 읽혔다. 읽고 있었다기보다는 뭐든 잘 안되는 짜증으로 가득한 밤.
꿈과 현실 사이 어딘가에 잠시 머물렀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들, 설명되지 않는 장면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유난히 불친절하다.
인물들은 이유 없이 기다리고, 걷고, 떨어지고, 사랑하고, 버려진다.
산타로사 공항에서 아무도 오지 않을 재회를 기다리는 여자, 잘린 손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남자, 머리가 생긴 연인을 보고 절망하는 여자,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누군가를 향해 기차를 타는 사람들.
각각의 이야기는 서사를 향해 나아가기보다는 불안한 장면 하나를 남긴 채 사라진다.
읽으면서 자주 멈췄다. 이 장면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디까지가 은유이고 어디서부터가 현실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몽환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은 최소한 나라는 독자는 끌어안기보다는 밀어내는 쪽에 가깝다.
솔직히 말하면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럼에도 남아버리는 감각
그리고 그리 길지 않은 책을 덮고 난 뒤에도 그 모름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남는 감각, 설명되지 않는 불안, 끝없이 기다리는 상태, 이유 없이 지속되는 고통.
이 소설 속 인물들이 겪는 광기는 소설 속의 어떤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안에서 기괴한 감정이 변주된 것처럼 느껴졌다.
바바라 몰리나르의 세계에서 불행은 늘 이유 없이 들이닥친다.
고통의 시간은 끝이 없고, 우연히 마주치는 타인들은 대체로 적대적이며 폭력적이다.
그럼에도 인물들은 멈추지 않는다. 기다리고, 떨어지고, 다시 일어난다.
이 반복은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밤을, 이유를 모른 채 견디며 살아왔는지.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표제작이자 단편의 마지막인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에서 침대에 묶인 남자는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한 채 주사를 맞고 사람들을 맞이한다.
여기서도 질문은 쌓이지만 답은 없다.
우리는 왜 이런 삶을 사는지,
누가 결정하는지,
이 삶은 언제 끝나는지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오늘 하루를 통과한다.
그렇게 밤이 오고 밤이 지나면 아침이 찾아온다.
이 소설의 밤은 시간이라기보다 상태에 가깝다.
설명 받지 못한 채 존재해야 하는 상태.
따지고 보면 우리에게 던져진 삶도 이와 같다.
우리는 늘 그럴듯한 설명을 찾아 삶을 살아가지만, 어쩌면 그럴듯한 설명을 얼핏 듣거나 찾은 것도 같지만
가끔 내가 존재한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또 하나 분명한 사실은 밤은 지나고 아침은 온다.
그래서 희망은 언제나 있다.
잘 모르겠다
이 책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잘 쓴 소설이라고 단정하기에도, 선뜻 추천하기에도 망설여진다.
의미를 붙잡으려 할수록 미끄러지고, 대신 어떤 감정의 덩어리만 남는다.
물론 모든 책이 명확해야 할 필요는 없다.
어떤 책은 이해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우리의 실존을 더 정확히 건드린다.
이 책이 그랬다.
지금 당신이 혼자이고, 지금이 밤이라면.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을 안고 있다면.
한없이 NF스러운 이 기묘한 이야기들 속으로 한 번쯤 걸어 들어가 보기를 권한다.
혹시 아는가. 당신의 존재를 새롭게 알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