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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루테이프의 편지 - 정본 C. S. 루이스 클래식
C.S.루이스 지음, 김선형 옮김 / 홍성사 / 2018년 11월
평점 :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역지사지’라는 말이 있다. 내 상태 뿐 아니라 상대방이 생각하는 걸 알아야 보자는 뜻. 10여 년 전 교회 청년부에 열심히 참석을 했을 때 아꼈던 동생이 요즘 C.S루이스 책을 열심히 읽고 있다고 했다. 그가 쓴 중에 가장 얇고 쉽게 읽히는 책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인데 모두에게 추천한다는 말을 남겼다. 그 때 나는 시답지 않게 왜 악마라고 하지 ‘스크류바’ 같은 이름을 지었는지 모르겠다는 시답잖은 농담을 던진 것 같다. 이 짧은 추억거리가 한인교회에서 하는 미니 도서관에 펼쳐진 책을 만나면서 되살아났다.
스크류테이프는 자신이 먹잇감을 조종하지 않는다. 편지를 보내는 사람을 통해 유혹한다. 타깃이 된 사람을 ‘환자’라고 지칭한다. 어쩌면 이 편지를 받는 사람이 사회에서 ‘의사’나 ‘치료사’라는 권위를 갖고 있는 자일지도 모른다는 힌트를 제시한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놀라운 건 내 강한 의지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구분하지 않는다면 이 글을 쓰는 사람에게 동조해 버린다는 사실이다. 처음 시작은 편지를 쓰는 사람이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 같다. 환자를 어떻게 끌어야 하는지에 대해 맞는 말이라는 느낌이 든다. 한마디로 내 뇌에 힘을 꽉 쥐고 읽어야만이 겨우 이 글이 사탄이 쓴 글이라는 걸 인식하게 된다.
가장 그 생각이 강했던 부분은 바로 화자가 전쟁이 올바르지 않다고 설파하는 부분이었다. 우리는 모두 전쟁을 싫어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꿈꾼다. 누구도 싸우지 않고 미소로 맞아주는 하하 호호 행복만이 가득한 세상. 스크루테이프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가 자신과 나쁜 생각이 침입하기 딱 좋은 시기라고 말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하고 바로 그 때 진정한 선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보이기 때문에 자신은 전쟁을 증오한다고 말한다.
나는 언제나 ‘선한 싸움’이라는 성경 구절을 보며 의아해 했던 한 명이다. 내게 성경은 잘 넘어가지 않는 히브리 무협지에 지나지 않았다. 유일신이 사용하는 사람은 그리 선하지도 않고 심지어 음란한 사람도 있고 돈에 집착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이방인 또한 섞여 있었다. 이 책에서 원수는 신이다. (원수라는 말이 자주 등장해 하마터면 나도 신이란 존재를 원수처럼 여길 뻔 했다.) 그가 원수를 한심하게 여기는 이유는 환자와 같은 인간들이 가진 스스로가 갖고 있는 마음만으로 행동하길 원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독재자처럼 길을 정해 윽박지르고 화내지 않고 자기주도 학습을 하길 원하는 존재이기에 그를 싫어한다고 말한다. 진짜 오독하면 이 책에 나온 원수를 진짜 원수로 편지를 보내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화자를 선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일까 중간 정도에 스크루테이프가 편지를 쓰다 분노해 괴상한 모습으로 변하는 부분을 넣기도 한다.
이 책을 읽고도 유일신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그는 얼마나 강하고 선한가. 그는 결국 승리하는 사람인가. 설교와 간증을 찾다가 ‘박에녹 집사’님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가 했던 영적 싸움은 보이지 않지만 알 것 같았다. 바로 이 책 덕분에. 얇지만 읽기 쉽지는 않았다.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들 때 전쟁하는 마음으로 읽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