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부. 야철신
요괴는 함박 웃음을 보이며 즐기듯 말했다. 치밀어 오르는 욕지기와 얼굴을 뭉개버리고 싶은 욕구에 힘껏 내리 누르자 살고자 발버둥치며 내 손을 물어뜯었다. 몇 분간의 사투 후, 결국 그 요괴를 놓치고 자리에 주저 앉았다. 우리가 죽는다는 게 맞는 건지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도망치자고 한들 누가 내 말을 믿을 것인가. 요괴들이 말했다고 할 수 도 없고, 사기만 떨어뜨릴 뿐이다.
무섭다, 두렵고 떨린다. 죽을 각오를 하는 것과 진짜 죽는 것은 다르다. 인간인 이상, 태어난 이상 살고 싶다. 나는 아직 20살도 못 되었고 대장장이도 아니다. 아무것도 해놓은 게 없다. 새지에게 살아 돌아오겠다고 했는데...눈물이 흐른다.
[정진아, 일어나라]
울다가 그대로 풀숲에서 잠이 들었는지, 눈을 떠보니 무기 직공의 큰 몸집이 검은 천에 쌓인 듯 해를 등지고 보였다. 개구리 뒷다리가 떨어져 있는 풀 위에서 잠을 잔 덕에 옷에는 진득거리는 것이 묻어 구역질 나는 냄새가 풍긴다. 멍한 나와는 상관없이 주변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느라 부산하다. 바람에 음식 냄새도 실려온다. 이 와중에 배가 고픈지 꼬르륵 하는 소리가 난다. 먹고 자는 건 마음과는 상관 없는 문제인 걸 또 한번 느낀다. 무서워도, 두려워도, 괴로워도 잠은 자고 밥은 먹게 된다. 무기 직공의 재촉에 밥을 받아 한쪽 구석에 앉아, 멍하니 밥을 입에 넣는데 또 눈물이 흘러내렸다.
[무서우냐?]
[네. 돌아가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처음 전쟁터에 온 것은 너보다 한 살 어릴 때였다. 그 때 나도 매일 울었다]
[이제는 안 두려우세요?]
[아니, 지금도 겁이 난다.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 날일까봐 다리가 후들거리지]
그는 머리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고개 숙인 내 눈에 그의 손이 들어왔다. 거칠고 마디마디가 깊게 갈라져 고통과 근심의 세월이 담긴 증거들..
[어느 날 한 병사가 그러더구나. 여기서 열심히 싸우다 죽으면 대신 내 가족이 살 수 있지 않을까. 내 여동생이 적국에 노예가 되거나 죽임을 당하지 않을테니 한 놈이라도 더 죽여야 한다고. 그 병사도 내 또래였어. 칼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지금도 기억이난다]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나요?]
[죽었지...정진아, 나는 많은 죽음을 보았다. 내 목숨과 맞바꾼 이의 죽음도 보았고, 세 명을 죽이고 자랑스러워하며 죽는 병사도 보았다. 죽는 과정이나 이유는 달라도 죽는 것은 똑같은 일이다. 그 때 내가 깨달은 것은 행복하게 죽는 것과 불행하게 사는 것이 같은 맥락의 일이라는 사실이다]
[어째서 그것이 같나요?]
[말이란 일종의 주술이다. 행복과 불행이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는 순간, 또는 글로 쓰는 순간, 그것은 생명을 가지고 존재하게 되지. 너의 이름도 니가 존재하기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불러주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살아있는 것이다. 너는 죽어도, 이름이 불려지는 동안에는 너와는 별도로 그 이름은 죽은 것이 아니다]
[아... ]
[존재한다는 것은 꼭 실체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실체가 없어도 우리는 있다는 것을 안다]
[요괴나 귀신처럼요?]
[그래. 그런 것처럼 행복과 불행도 마찮가지다. 이렇게 우리가 말하고 쓰는 것들은 존재가 되어서 다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행복에 영향을 받으며 죽는 사람이나 불행에 의지하여 사는 사람이나 결국 같은 모습이지. 너도 나도 죽는 것이 두렵지만, 무섭다거나 두렵다고 말하지 말자. 그것에 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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