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불명 야샤르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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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한 입담으로 풀어낸 삶의 부조리

'욜'이란 영화를 본 기억이 난다. 10여년전이었다.  우리사회에 밀어닥친 개방의 물결을 따라 처음 상륙한 외국영화중 하나였다. '욜'이 터키를 대상으로 한 정치색이 강한 영화였다면, 이 책은 구수한 입담으로 천일야화를 연상케하는 현대판 부조리극을 보는듯하다.

생사불명 야사르라는 야릇한 재목은 바로 이야기꾼인 '야사르'의 야릇한 존재감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조치이기도 하다. 그는 공식적으로는 '살아있지 않은 존재'이다. 그러나 그는 현실세계에서는 버젓이 살아있다. 단지 서류상으로 살아있지 않다.

그래서 오는 부조리함은 그는 살아있는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모든 불이익은 받으면서, 죽은 사람이기에 받을수 없는 모든 혜택은 받지 못한다. 그는 심지어 부친의 유산을 물려받지도 못한다. 죽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은 존재인 그는 감옥에 버젓이 갖혀 있는 살아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한 상징적 존재의 입을 통해 터키의 모든 사회상이 풍자되고 난자질 당하고, 다시 웃음으로 제자리로 돌라간다. 그의 감방동료들은 훌륭한 추임새꾼이다. 야사르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이야기 난장을 트는데 좋은 배경이 된다. 그들은 청중이면서 동시에 화자이기도 한 우리나라 식의 이야기 구조에 동참한다.

야사르가 말하는 세상의 부조리함은 단지 터키에 한정되는 것만이 아니다. 그 존재와 사회의 불일치라는 부조리함은 인류가 공통으로 마주치는 아픔이다. 그 아픔을 야사르란 존재를 통해 아픔이 아니라 해학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작가의 재능이다. 천일야화를 듣는 재미로 왕비를 죽이지 못하는 왕처럼, 다음 이야기를 읽는 재미로 이 책이 두터운 것을 모르고 읽을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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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집을 찾아서 한젬마의 한반도 미술 창고 뒤지기 2
한젬마 지음 / 샘터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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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젬마 화가를 설명하다.

한때 그림을 상당히 좋아했었다. 미술관의 친구를 따라다니며 귀찮도록 물어보았었다. 늘 과묵하기만 하던 친구는 마지못해 한마디씩을 던져주곤 했었다. "그림은 마음으로 보는거야. 그냥 보이는 대로 보고, 느껴지는 대로 느껴..." 지금은 그 친구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 시절엔 그 친구의 말이 너무 야속하게 들렸었다.

당시 도서관에서 미술이론에 관한 책들을 찾아서 읽으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손만 똑똑하지 도무지 입이 똑똑하지를 않아... 그래서 미술에 관한 이론도 미술가가 쓰는 것이 아니라 철학자나 문학자, 혹은 미술평론가라는 직업을 가진 미술가 아닌 미술가가 쓰는게야..." 이렇게 투덜거리고 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입속에 담아놓고 투덜거리는 그 중얼거림이 한젬마에게까지 들렸던 것인지, 아니면 그런 불만을 품고 있던 미술응호자들이 나만이 아니어서인지, 한젬마라는 '그림을 읽어주는 친절한 여자'가 나타났다. 미술이 대중화되기 위해서 그런 작업은 꼭 필요한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시대적인 요청에 부응하는 공급자의 출현이라고 볼수도 있겠다.

이 책은 지역별로 유명작가들의 집을 찾아가는 여행을 담은 책이다. 작가의 집을 찾아간다는 것은 작가의 삶을 추적해가는 의미일수도 있다. 자가가 태어나서 자란 곳, 작가가 작업을 하던 흔적이 남아 있는 곳. 그런 곳에는 이야기가 있다. 작가의 마음을 이해하고, 작가의 그림을 이해할 수가 있다.

뛰어난 이야기꾼인 한젬마는 소소한 것들에서 재미있는 이야기거리를 찾아낸다. 그 이야기에서 우리는 어딘가 그림에서 보았음직한 나즈막한 산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고, 그림에 등장하는 아낙네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렇게 그림은 우리들의 마음으로 살며시 다가오는 것이다. 이 책을 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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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코드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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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코드를 알아야 하는 이유

왕성한 필력을 자랑하는 강준만교수가 이번에는 한국인 코드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은 한국인의 기질적 특성을 잘 분석하고 있다. 사실 이 책에 실린 내용들이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강준만 교수 특유의 날카로움이 여전하긴 하지만, 신선도 면에서는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왜 지금 이 시점에 한국인의 코드를 알아야 하느냐라는 점이다. 그것은 우리가 눈부시도록 빠른 속도로 세계화되어가는 이 순간에도 한국이라는 나라에 몸을 담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화의 수혜자들, 세계화의 거친 물결을 잘 타고 순항하는 사람들에겐 사실 한국인의 코드가 필요없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는 세계 표준인 미국인의 코드를 잘 체득하고 습득하는 것이 더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일반사람들은 세계화의 거친 물결이 출렁이는 오늘날에도 한국이라는 국가적 테두리에 몸을 담고 살아야 한다. 국가가 경제주권의 상당수를 잃어버린 오늘날, 국가란 존재는 어떻게 생각하면 다국적 기업들에게 노동력과 생산현장을 제공하는 지역공동체에 불과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한국을 떠나지 못하고 한국이란 땅에 붙박혀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겐 한국이라는 나라가 자신을 가장 잘 마케팅하는 것에 목을 맬수 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개인적인 능력이 출중하여 한국이라는 테두리에 의존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에겐 한국인 코드가 다른 의미로 사용될수 있다. 그들이 사업을 하고 이익을 올릴 시장을 분석하는 수단으로 한국인코드가 사용될수도 있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 정반대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겐, 우리들의 모습을 다시금 확인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범위내에서 우리들의 모습과 장단점을 파악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우리가 더욱 강화되기를 애타게 염원하는 소위 국가경쟁력이란 것은, 자시 스스로의 힘으로 홀로 설수 없어 공동체에 몸을 담고 있는 보통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국가라는 이름의 공동체의 몸값이 커지면서, 내가 덩달아 얼마나 더 가치있게 되는가를 결정하는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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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나의 여행
임영신 지음 / 소나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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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에게서 삭제된 기억을 찾아서

책의 표지는 참 평화롭다. 예쁜 글씨가 영롱한 물방울처럼  평화로운 여행 자랑하며 반짝이고 있다. 저자도 활짝 웃음을 웃고 있다. 참 예쁘다. 그래, 그렇게 웃는 것이다. 이 세상에 평화를 위해서, 아니 이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서...

이 세상이 평화롭다고? 아니다. 천만의 말씀이다. 이 세상의 일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아늑한 부분을 제외한 세상의 많은 부분은 평화롭지 않다. 폭탄이 비오듯 떨어져 멀쩡한 사람을 죽음으로 데려가거나 팔과 다리를 뜻어가는 나라가 지금 이 시간에도 많다. 수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무작정 거리를 헤메는 나라들이 얼마나 될까. 아마 우리의 머리에 떠오르는 숫자보다는 더 많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죽어가는 나라는? 아마도 우리의 추측보다 더 많을 것이다.

신문은 말한다. 오늘도 아무일도 없었습니다. 북한의 핵이 세상을 귀찮게 하고, 베네수엘라의 정신나간 대통령이 약간 상태가 좋지 않을 뿐입니다. 그 외에엔 에브리씽 오케이입니다. 주가는 오늘도 올라가고 다행히 유가는 떨어지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 드립니다. 오늘은 아무일도 없습니다... 신문도 TV도 그렇게 말하는 바로 이 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울고, 슬픔에 떨고 있다.

그들은 삭제되었다. 그들의 존재와 그들의 아픔과, 이 조그만 지구촌에 같은 인류라른 이름으로 살아갈 그들의 권리는 '원칙적으로만' 존재한다. 수년 수십년간에 걸친 그들의 단식투쟁에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들이 죽어가는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환상적인 관광지의 사진들이 잡지를 호화찬란하게 장식하고 있을 뿐이다. 에브리씽 오케이인이 세상에서 굳이 문제가 있는 지역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이다. 그가 전하는 세상의 참상은 끔찍하다. 그 끔찍함이 책을 읽는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리고 그 끔찍함에 용감하게 뛰어드는 용기가 그 끔찍함을 참아낼만한 것으로 만든다. '아픔을 이길수 있는 것은 용기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평화로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평화를 느끼는 것이다.' 끔찍한 고통속에서 그런 말들이 튀어나온다.

그 아픔속에서 느껴지는 절절함이 나를 자기 위안의 안락함에서 이끌어낸다. 언제 직장을 잃을까. 나의 수입이 언제까지나 안정적일까. 나의 중년은 왜 이리도 허무한 것일까... 에브리씽 오케이인 세상에서 그런 삶의 무의미와 마주하고 있을때, 이 책을 마주친다면 정신이 번쩍들게 될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이, 아직도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그런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감사하게 느껴지는 것인지...

그래서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다르게 만들어주는 책. 바로 이 책은 그토록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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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 - 정운영의 마지막 칼럼집
정운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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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계를 찾아서

오늘날의 세계는 신자유주의가 내지르는 현기증 나는 질주에 어쩔줄을 모르고 있다. 인간으 진보에 대한 믿음은 희미해지고 한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신자유주의에 투항하고 있다. 누구도 거스를수 없는 도도하게 흐르는 대세인 것 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의 물결이란게...

반면에 신자유주의에 대해 강한 반대를 외치는 그룹이 있다. "더 나은 세계는 가능하다." 혹은 "신자유주의는 저지가 가능하다."라는 구호를 크게 걸치고는 결사반대 투쟁을 벌이는 대안없는 반대론자들의 모습이다. 반대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다는 그들의 노력이 왠지 낡고 헛되게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중도를 위한 중도를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다.  의미있는 대안을 원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라는 이 시대가 가지는 엄청난 변화의 패러다임은 올바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정말 어렵게 한다.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하듯이, 희미한 속에서라도 암중모색은 계속 되어야 한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명심하라는 이 책에는 그런 모색을 한 흔적들이 역력하게 들어있다. 그 역시 아직 뾰족한 대안을 찾지는 못한 듯하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은 양비론 비슷한 모습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글과 글이 이어지지 못하고, 각편의 글이 논리적인 연결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급하다고 해서 급조된 반대논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니지 않겠는가. 이 책의 곳곳에는 그러한 현실인식에 대한 저자의 안타까움이 잘 스며있다. 나는 그것이 좋다. 그는 때로는 신자유주의의 비인간성에 한숨을 쉬고, 때로는 인간의 얼굴을 잃어버리는 진보주의자의 폭력성에 고개를 젖는다.

나는 그의 이런 글들에서 번민하는 지식인의 괴뇌를 읽을수가 있다. 그리고 그가 이 세상을 걸으며 곱씹었던 번민의 편린들을 함께 나누며 동류의식을 느끼는 것으로 위안을 받을수가 있다. 이 세상에는 그와 마찬가지로 따뜻한 심장을 가지되, 명확한 해결책을 가지지 못하기에 가슴 아파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에게 좋은 위안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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