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산다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이 책을 펼치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었다.
이런 말은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 던져보는 질문일 것이다.
한 평생을 살면서 누구나 거치는 과정이 비슷하다. 어렸을 때 부모 그늘아래 성장하고 성인이 되면서 자기 짝을 만나고 사랑하고 결혼한 후
사랑스러운 자녀를 출산하고 커 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진정한 부모가 되어 가는 과정!
그리고 어느새 나이가 들어 일생을 마무리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의 첫 페이지에서 슈베르트의 글이 유독 눈길을 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진정한 친구를 발견한 사람이다.그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자기 아내가 친구임을 발견한 사람이다.‘ p5
이 책은 마치 실화처럼 생생하게 다가오는 소설이다.
저자의 프로필을 보면 멀고도 긴 시간을 돌아서 처음으로 출간하는 소설이라고 말하는 그의 인생과도 비슷하다.
그의 짧은 소개글을 보고나서 이 소설을 읽다보면 묘하게 닮아있는 삶의 부분을 만날 수가 있다.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고 꼼꼼했던 아내가 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고 나자 그녀의 빈자리는 무척이나 크게 느껴진다.
과분할 정도의 아내를 생각하면 평생을 함께 하며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같아
남편은 너무나 괴롭고 마음이 아프다. 살면서 그렇게 많은 시간동안 잘 해준 기억이 거의 없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동안 아내와 행복했던 순간도 물론 기억을 붙잡고 있겠지만 아내에게 잘못했던 행동들과 언행들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딸 자영이와의 관계가 멀어진 상황들까지... 모든 것이 아내를 힘들게 했던 것 같아서
스스로를 자책하고 옥죄이게 만들어간다. 하루하루 남편은 눈물로 세월을 보낸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짐정리를 하다가 발견하게 된 아내의 소중한 편지 파일은 이 책에서 또 다른 반전을 만들어낸다.
아픈 와중에도 오랜 시간 아내는 자신이 떠난 후 혼자 남게 될 남편을 위해 만년필을 꼭꼭 눌러가면서 정성껏 편지글을 써내려갔던 것이다.
아내의 편지글 속에는 대학교에서 CC로 만나 뜨겁게 사랑했던 순간도 연애시절 전국 오일장을 돌아다니며 싸고 맛있는 음식들을 먹었던 장구경 순간도 졸업 후 강촌 구곡폭포에서의 황금거북이로 프로포즈 했던 순간도 그대로 담겨있었다. 가족이 첫 해외여행을 갔던 오사카에 대한 아쉬움도 그대로 실려있다. 아내는 신혼여행지였던 사이판에 가족 모두가 그렇게 가고 싶어했었는데... 남편의 계획대로 오사카를 다녀온 것이 참 많이 미안했을 것 같다.
이 편지글을 읽으면서 글쓰기를 너무나도 싫어하는 남편이 하늘나라에 있는 아내에게 답장을 쓴다.
비록 전해주지는 못하겠지만 파일속의 아내의 편지글 옆에 빈 공간에 바로바로 답장을 작성해서 채워나간다.
비록 손글씨로 쓰지는 않지만 그녀가 살아있을 때 가장 좋아하던 베란다 카페에 앉아 아내를 회상하면서
아내의 편지글을 읽고 또 답장을 작성 하노라면 어느새 천사같았던 아내와 처음 만나던 시절을 찾아가기도 하고
결혼 후 사이판으로 신혼여행을 떠나기도 하며 행복했던 시간과 자영이를 낳고 정신없이 사글세와 전셋집을 옮겨다녔던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아내와 남편의 편지글 내용이 어찌나 생생하던지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치 이들 부부가 눈앞에서 살아서 움직이는 듯 하여
조용히 영화 한 편을 펼쳐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실향민의 외동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외로움을 많이 탔던 남편에게서
오히려 그 외로움을 달래주려다 그대로 옮겨 받게 되었다는 아내의 말이 가슴에 시리도록 와 닿는 이유는 무얼까?
모든 것을 인내하고 참고 현모양처인 모습으로 가정을 붙잡고 살게 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난다.
어려운 시절을 혼자서 속으로 인내하고 참고 견뎌온 아내가 정말 잘 살았던 것일까? 하는 의문도 든다.
조금만 더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자유롭게 살지... 하는 마음도 든다.
편지글 속에 그녀의 인생사를 하나씩 가슴에 담다보면 어느새 나의 삶과도 비슷한 듯
오버랩 되는 부분이 있어 뭉클해지기도 한다. 여자의 일생이란 것이 이런 것인가 싶기도 하다.
아내의 편지글을 읽고 나서야 남편은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어리석었고 또 가정에 무관심 했었는지 깨닫게 되면서
많은 후회를 하게 된다. 그렇게 편지글을 쓰기 싫어하던 남편이었지만 이런 미안한 마음에
일일이 아내의 편지에 답장을 쓰게 된다. 편지 내용을 읽다보면 마치 한편의 슬픈 영화를 보는 것처럼 착각을 하게 된다.
하늘나라에서 보내왔다고 생각하면서 편지를 읽게 되는 남편은 아내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을 해결해 주기로 한다.
그렇게 좋아하던 술도 끊었고 다시는 안 볼 것처럼 돌아섰던 딸과 사위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화해를 하고 용서를 구하였다. 하늘나라에서 아내가 웃을 수 있도록 가족 모두가 다시 한 울타리에 모이게 된 것이다.
이 부분을 읽을 때는 흐믓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아쉬움도 남기도 하였다.
이 자리에 아내가 함께 있었다면 얼마나 보기가 좋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가득 묻어나는 대목이었다.
그래도 아내가 원하던대로 딸과 사위를 인정하고 다시 받아준 남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나 역시 얼마 전에 병원에서 큰 수술을 받았기에 더더욱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아서 많이 공감하며 읽었던 책이다.
결혼 초부터 어렵게 시작하여 어린 아이들을 두고도 맞벌이로 고생을 많이 했었던 나였기에
이 책속 아내의 삶과도 많이 흡사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결국 그 고생들이 쌓이고 쌓여서
수술을 피할 수 없는 상황까지 왔었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그 과정에서 이 책의 아내의 마음처럼
수없이 많은 생각들을 하며 혼자서 눈물도 많이 쏟아냈던 것 같다.
‘아직은 내가 아플 나이가 아닌데... 아직은 우리 아이들이 어린데... 왜 하필이면 내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내가 이렇게 아픈 시간을 보낼 때 남편 역시 말할 수 없이 아픈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나는 느낌으로 알았다.
충격을 받아 한동안 말이 없이 표정이 굳어져 있었던 남편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건강할 때는 몰랐던 부분들이 이렇게 한번 큰 아픔을 겪으면서 다시 더 단단해지는 가족으로 승화하는 것 같다.
세상사는 게 무엇인지... 그 때 정말 크게 와 닿았던 것 같다.
지금은 다행히 회복도 잘하고 있고 어느 정도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왔다지만
이제부터의 삶이 더 소중하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 나서 후회한들 아무 소용이 없으니 함께 있을 때 서로가 서로에게
더 많이 웃어주고 또 더 많이 표현해주고 함께 있어서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으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지금 나의 곁에 있는 소중한 가족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후회 없이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