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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들의 세계 ㅣ 트리플 15
이유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1월
평점 :
작은 책이라 쉽게 손에 잡혀 다른 책들에 비해 먼저 읽었다. 기괴하면서도 핑크색의 하트 모양 표지를 보면서 소설이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내용이 영 개운하지 않았다. 어렵다고 해야 하나, 자신의 세상에 빠져있다고 해야 하나. 다행히 책 뒤쪽에 해설이 있어서 대충이라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유리 작가의 책은 처음 읽었다. 202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고 단편집 <브로콜리 펀치> 낸 이후 <모든 것들의 세계>가 두 번째이니 처음 보는 읽는 게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모든 것들의 세계>는 3개의 단편이 실려있다.
(모든 것들의 세계) 줄거리는 죽고 난 이후 이승에서 떠도는 귀신의 입장에서 서술된다. 가족이 아닌 타인의 기억에서 잊어지면 소멸하는데, 그 기간 동안은 이승에 머문다. 귀신들은 버스도 탈 수 있고 냄새도 맞고, 저승의 공무원에게 걸리면 감옥에 가기도 한다. 귀신 고양미는 이승 떠난 지 3년 차로 옆집에 불난지도 모르고 게임하다가 죽었다. 어느 날 양미 귀신에게 찾아온 저승차사는 이승에 있는 부모님이 영혼결혼식을 진행했고 천주안이라는 남자와 저승 명부에 부부가 되었음을 알려준다. 처음 본 남자 천주안은 알고 보니 게이였고, 주안이 사랑했던 남자를 보러 함께 다닌다.
귀신을 다룬 내용이라 으스스하지 않을까 하는 편견이 무색하게도 귀신이 왜 이렇게 인간적인지. 이제 더 이상 귀신이 무섭다는 말은 통하지 않을 것 같다. 상상으로 만든 저승세계는 우리가 익히 봐왔던 공간과 비슷하게 그려졌지만 영혼결혼식이라던가, 저승차사를 공무원에 비유한 것, 어처구니없게 죽은 사연, 남자가 게이였다는 사실 등이 트렌디하고 현실감 있게 다가온 소설이다.
(마음소라) 줄거리는 귀에 갖다 대면 그 주인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는 소라인 '마음소라'가 등장한다. 마음소라는 한 사람에게 선물하면 평생 다른 사람에게는 줄 수 없어서 부부 사이에서도 잘 주지 않는 물건인데, 주인공 양고미는 고등학교 시절 자신에게 마음소라를 주면서 고백한 남자 도일과 연애한다. 7년의 연애 끝에 둘은 헤어지고 10년간 각자의 가정을 꾸리면서 살고 있던 와중 도일의 와이프에게서 연락이 온다.
마음소라 역시 언젠가 상상해 봄직한 내용을 구체화시킨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할 때 자신의 마음이 들리는 마음소라를 전달하는 상상. 전달된 이후에 일어날 좋지 않은 면모들을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도일이 마음소라를 고미에게 주는 순간 읽으면서 '아차' 싶었다. 주인공이 고등학생이라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이었고 앞으로 펼쳐질 불편한 상황들이 저절로 떠올랐던 소설이다.
(페어리 코인) 줄거리는 영생하는 요정을 집안 대대로 이어받아 집에서 기르는 부부가 등장한다. 요정은 말은 못 하고 음식을 먹지 않는데 날아다니면서 잔심부름이 가능하고 나름의 다정한 감정을 표현하면서 집안사람들을 보살핀다. 남편 우진은 친구 현철이 요정을 번식 시켜 분양을 하겠다는 거짓 사업을 계획해 돈을 벌자고 제안하고 전세사기로 돈이 궁핍했던 부부는 사기를 계획하는 내용이다.
세 편 소설 모두 끝이 개운하지 않게 끝난다. 뭔가 메시지가 있을 것 같은데 독자가 알아차리기를 바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모든 것들의 세계와 마음소라는 그럭저럭 이해했는데 페어리 코인의 결말에서 집주인의 딸이 전세자금을 갚아주고 웃는 부분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 힘들던 와중 해설이 등장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웃음소리의 과장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되돌릴 수 있는 시간이 남았을 때 어떻게 선택하겠냐는 질문이 무척 인상 깊게 다가왔다. 어차피 독자가 이해하는 만큼 받아들여지는 게 창작물이라고 생각해서 놓친 부분들이 아쉽지는 않았지만 역시 해설 없는 소설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보게 된다. 해설을 빌려 <모든 것들의 세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사랑할 것, 선한 마음을 놓지 말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