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선미슈퍼
김주희 지음 / 꿈공장 플러스 / 2021년 12월
평점 :
들어가는 말
내가 소설을 왜 쓰는가에서도 언급했지만, 요즘 출판의 트렌드는 둘 중 하나다. 돈 벌거나, 위로하거나. 일단 돈 버는 법에 대한 책이야, 쓸 수 있는 사람이 제한적이다. 증권가나 기업가 혹은 비트코인이라도. 아니면 경제학자라던지. 그런 면에서 일반적인 작가들이 쓸 이야기는 정해졌다. 위로하는 글.
그런 의미에서 요즘 트렌드가 에세이라는 점은 너무 당연하다. 상대적 박탈감. 사회적 외로움. 실패에 따른 좌절. 이런 것들에 대한 잔잔하고 따뜻한 위로의 글이, 독자들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다가서는 것은 두말하면 입이 아프다.
이런 트렌드를 따른 것일까. 소설에서마저도 대놓고 '위로하겠다!'라고 나서다니. 약간 입이 쓰다.
물론, 소설 역시도 시대를 반영한다. 시대의 아픔과 슬픔을 녹여내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한 번 더 생각할 여지를 주는 것. 그리고 미약하나마 사회 구성원들에게 조금 더 나은 방향의 신호등을 켜주는 것. 그것이 소설이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그냥 재미라도. (장르문학 같은.)
그런데 일반적인 현대소설에서 대놓고 '위로'를 전면에 내놓은 글이 나온다는 것이, 상당히 입이 쓴 것은 솔직한 심정이다. 그렇다고 내용이 알차냐. 글쎄.
위로할 테니 달게 받아라
주인공 선미는 남편을 사고로 잃고 자신도 죽고자 외할머니가 운영하던 슈퍼에 왔으나 죽음 직전 두려움에 돌아서고, 분명 잠겄음에도 자꾸 들어오는 사람들과 동물들에 부대끼다가는 삶의 의미를 찾아버린다.
아. 찾아버렸다.
소설 내내 분명 잠겄음에도 열리는 문에 대한 설명은 없다. 중반에서는 차라리 선미는 이미 죽었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영혼이며, 그 영혼들을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한 번뇌를 깨닫고 승천하는 이야기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런 생각마저도 너무 뻔하다는 반대의견에 묻혔다.
소설에서 선미나 유현, 점쟁이나 정수, 왕코 할머니 기타 등등. 모든 등장인물에 대한 어떠한 색도 보이지 않았다. 순수한 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 그 어떤 등장인물도 눈에 선하게 그려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심지어 연탄이도 그저 까만 고양이라는 이미지만 뿌옇게 남아 있다. 거의 주인공 '급'인 (강아지)선미 역시도 그렇다.
특히나 주인공의 정체성은 너무 허약하다. 혹시 죽어보려 한 사람이 이 글을 본다면 이해할 것이다. 남편의 교통사고 후 갑자기 죽기를 다짐한 주인공이 강에 들어갔다가 뭔지 모를 이상한 기분에, 그리고 두려움에 발길을 돌려 슈퍼로 돌아온다. 그 뒤로 원치 않음에도 자꾸 슈퍼를 찾는 다른 등장인물들과 엮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하고 가끔은 해결해주기도 한다. 심지어 말 못 하는 동물들의 애환도 해결해준다.
바로 얼마 전에 죽음을 다짐하고 실행에 옮긴 사람은 저럴 수 없다. 단언한다. 경험자니까.
애초에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과 이런 인정을 가진 사람은 기본적으로 스스로에 대한 애정을 가진 사람이다. 그리고 스스로에 애정을 가진 사람은, 절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지 않는다.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이런 설정을 잡은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게다가 등장인물들 간의 연결고리 역시 너무 허약해서 쉽게 개연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물론 사람에 따라 특정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쉽게 털어놓을 수도 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슈퍼 주인에게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혹여 그렇다손 쳐도 죽음을 다짐했던 사람이 타인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것 자체도 어불성설이다. 즉, 서로 대화할 일 자체가 없는 등장인물들이, 거의 강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애환을 풀어낸 다음, 해방에 다다른다. 이건 뭐, 그냥 대놓고 이 소설로 위로해줄 테니 달게 받아라는 수준 아닌가.
차라리 귀신이었으면 좋겠다
작년에 꽤 혹평을 남겼던 소설이 있다. 그 뒤로 가장 혹평이 될 듯하다. 앞서 말했지만, 차라리 주인공은 이미 죽었고, 그 주변에서 삶에 여러 애환으로 인해 죽거나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등장해서 이 사회의 문제들을 이야기하는 플롯이 더 나았겠다.
대를 이어온 과부 집안에서, 3대째 과부가 된 주인공이, 외할머니가 운영하던 시골 슈퍼에 내려와서 겪게 되는 잔잔한 에피소드와 그리고 인해 스스로를 치유하는 이야기이기를 기대하고 읽었는데 실망이 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캐릭터들, 특히 주인공의 캐릭터마저 확고하지 않으니 더욱 집중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정말 짧은 기간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왕따 문제, 동성애자와 가정폭력, 미신과 사기의 문제를 모두 가지고 있다니. 아무리 소설이라도 현실이 배경이라면 어느 정도의 개연성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차라리 귀신이라면 워낙 삶에 대한 애환이나 고통이 강하게 서려야 이승에 남아 있을 테니까, 그 짧은 기간에라도 이 슈퍼에 (주인이 방금 죽긴 죽었는데 죽은 지를 잘 몰라서 인간처럼 자신들을 대해줄 수 있는 슈퍼에) 사연 맛집인 듯 달려들 수 있는 여지가 있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