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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여 오라 - 제9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
이성아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11월
평점 :
들어가는 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이, 과거의 과오를 잊으면 결국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역사의 서술이 거짓되어서는 미래가 없다는 것인지 필자는 잘 모르겠다. 이 말의 화자인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역사학자이면서 독립운동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제강점기를 겪은 것이 지난날의 과오를 잊어서인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진실된 '역사의 서술'의 필요성을 말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역사는 제대로 써지고 있는가.
5.18 민주화운동, 부마항쟁 등에 대한 진실은 거의 드러났다. 일부 안타까운 부분도 있지만 역사의 악적들에 대한 처벌도 일부 이뤄지고, 잘못된 역사가 다시 써진다. 하지만, 오래된 일일수록 세월에 더 깊이 파묻혀 진실로 드러나기 오래 걸리는 것일까. 제주 4.3 학살은 꽤 오래 묻혀있었고, 백석은 아직 그대로 누워있는 것 같다.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상당히 놀라고 뭔지 모를 죄책감이 든 부분은 백석의 존재였다. 언젠가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기억이 났다. 아직, 제대로 역사의 평가를 받지 못한 희생자들의 이름을, 미처 밝혀지지 못한 이름 없는 죽음들을 모두 알아내기 전까지 세워지지 못할 비석.
필자는 미련하게도, 그리고 무심하게도 몇몇 재심 결과들을 뉴스 단신으로 접하면서 백석이 이미 세워졌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필자는 역사를 잊었다. 당신은 어떤가.
사상청소
주인공 변이숙은 제주 4.3 학살을 겪은 당사자인 아버지와 그 멍에로 먼나무에 목을 메 죽은 오빠를 둔 사람이다. 물질을 하는 어머니는 그녀가 공부에 매진하길 바랬고, 이렇다 할 욕망은 없으되 학살의 트라우마를 술로 곪아 터지게 하고 있는 아버지의 폭력과 우울을 벗어나고자 독일 유학길에 오른다.
유학 중 학교 선배였던 기표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북한의 삶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는 사실로 간첩으로 몰려 실형을 살게 된다. 그러나 잊고 싶던 사건에 대한 재심청구를 하자는 연락이 기표의 아내이자 친구인 연주에게서 오자, 멎었던 눈의 실핏줄이 터지면서 도망칠 곳을 찾게 된다. 번역가로서 마르코와의 만남을 계기로 발칸반도로의 여행을 떠나고, 그곳에서 홀로코스트와 비견되는 인종청소의 흔적들을 문학사의 그림자와 함께 목도한다.
그들이 '인종청소'라는 명목 하에 저질렀던 악행을 체감하며, 동시에 본인이 겪은, 그리고 우리가 겪었던 사건에 대해 돌아보고, 그저 잊고 싶고 묻고 싶던 사건의 재심을 청구하게 된다.
분명, 우리 모두가 피해자다
마치, 소설이 아닌 당사자가 적은 에세이를 본 기분이었다. 몇 번, 작가를 검색해보고는 경남 밀양 출신이라는 사실에 다시금 놀랬다. 약간은 의심까지 했다. 그만큼 작가가 작품에 쏟은 진심이 닿았다고 생각한다.
제주 4.3 사건에 대한 재심 판결이 나면서, 종국에는 5.18 민주화운동이나 부마항쟁처럼 역사적으로 명백히 밝혀질 날이 올 것이다. 너무 늦어버렸지만, 모든 진실이 그러하듯 결국에는 드러나는 것이며, 오랜 시간이 걸릴수록 더 값지게, 더 눈부시게 우리의 미래를 비출 것이다.
과거 신채호 선생께서 그런 말을 하던 시대와 지금은 너무 다르다. 역사라는 것이 단순히 역사가의 손에 의해서만 써지질 않는다. 인터넷의 발달과 수많은 매체의 존재는 위키트리처럼, 역사를 모든 사람이 쓰는 것으로 바뀌어버린 듯하다.
마르코는 여자 친구 나쟈와의 대화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기 전에 섣부르게 감정적으로 사과나 용서를 하는 것은 그저 제스처일 뿐이며, 가해자는 침묵하고 있는 상황에서 피해자들끼리 화해하는 것에 대해 강한 불쾌감을 드러낸다.
우리는 어떤가. 얼마 전, 우리는 역사적 학살범이 그 어떤 사과 없이 편안하게 생을 마치는 것을 보았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물론, 사람마다 평가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절대적 기준은 존재해야 하지 않겠는가.
일제강점기 이후, 제주 4.3 학살과 부마항쟁, 5.18 민주화운동 등과 소설 속 발칸반도의 내전에서 벌어진 잔혹한 사건을 보면서 우리에게 일어난 것은 홀로코스트나 인종청소와 같은 '사상청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보수와 진보라는 사상의 경계로 서로 끊임없이 비난하고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 과정에 얼마나 많은 역사 왜곡이 일어나는지도 목도하고 있다. 보수든 진보든 결국에는 자기 진영의 이득을 위해서 역사를 마음껏 이용해 먹고 있다. 그리고 몇몇 국민들은 그들에게 또 '이용'당하고 있다.
필자 역시 범인이므로, 그런 사람들을 보면 분노하고 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르코의 말처럼, 결국 우리 모두가 피해자가 아닐까. 우리가 서로 용서하고 화해할 이유조차도 없는 것이 아닐까. 결국엔 가해자들이 전면에 나서서 죄를 빌고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지도부를 움직이는 것.
결국에는 스스로의 아픔을 묻어두고 재심을 선택하는 조한나처럼, 우리 역시 우리의 고통을 조금은 감내하더라도 그만큼 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는 선택을 하기를 바라본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