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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관 - 국내 최초 군대폭력 테마소설집
윤자영 외 지음 / 북오션 / 2021년 12월
평점 :
들어가는 말
당신은 아마, 군대를 다녀왔거나, 군대에 누군갈 보내봤거나 혹은 최소한 군대에 누군갈 보낼 것이다. 일단 남성이라면 거의 대부분 군대라는 조직을 겪었거나 겪을 것이고, 여성이라면 대부분 그런 사람들과 살거나, 혹은 그럴 사람을 낳는다.
그렇게 우리들과 가까운 조직. 하지만 우스갯소리로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이야기가 군대에서 축구하는 이야기라거나,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간첩 한 명 안 잡은 사람이 없다거나, 혹은 각 군부대마다 코끼리만한 멧돼지가 등장했다거나, 짬타이거라는 고양이가 거의 호랑이 크기라는 이야기들만 한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인간은 극도의 스트레스에 대해 되려 풍자로 반응한다. 우리는 은연 중에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군대라는 조직의 어두운 단면을. 그리고, 그 조직이 주는 어두운 병폐를.
하지만 군대라는 조직의 존재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이유가 없다. 헌법에 의해 우리는 국방의 의무를 지도록 되어있다. 심지어 우리나라는 휴전 중인 '전시국가'다. 하지만 우리가 군대라는 조직의 썩은 냄새와 뒤틀린 부조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군대를 해체하기 위함이 아니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진 자들이 군대라는 조직에서 말 그대로 '신성한 의무'만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군대를 다녀오기는 했다. 전방부대도 아니고, 지원부대로 육군본부 예하 부대였다. 심지어 부대 위치는 국방부와 매우 가까웠다. 군대를 다녀오신 분들은 아마 눈치채셨겠지만, 흔히 말하는 땡보직이었다. (하지만, 군대에서는 어디든 자신이 있는 곳이 제일 빡세다. 사회에서도 뭐, 크게 다르진 않지만. 최소한 우리 부대가 없었다면 여러분의 월급과 휴가비는 지급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군대는 군대. 지금 돌아보면 그 작은 부대, 얼마 안 되는 사람들 속에서도 각종 부조리와 구타, 성희롱이 존재했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그때 누구였을까. 자신하건데 총을 맞을 사람은 아니었다.
내가 죽을까, 아니면 누굴 죽일까
책은 네 명의 작가가 쓴 네 편의 중,단편 소설로 되어있다. 큰 틀은 비슷하다. 군대에서의 가혹행위. 그리고 피해자의 극단적 선택. 여러 편의 소설을 묶는 경우 그 색이 비슷하거나 혹은 '0인0색'이라는 식상한 표현으로 홍보되도록 다양한 색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이 책은 전자에 해당한다.
일단 첫 소설 '살인트리거'에서는 유년시절 악연으로 이어진 군대 동기의 이야기다. 유년시절 교활하게 폭력을 이용해 이익을 챙기던 친구가 군대에 동기로 들어오면서, 다시 그 교활함에 이용당하고 복수를 하는 내용이다. '고문관'의 경우에는 조금 특이하게도 오컬트적인 요소를 결합해서 부적과 귀신이라는 방식으로 가해자들에게 복수하는 줄거리다. '불청객이 올 무렵'은 군대를 전역한 후 우연으로 크게 성공한 가해자를, 피해자가 찾아가 복수하는 내용이며, 마지막 '사라진 수첩'은 헌병대 상사가 부대 내 총기사건을 조사하면서 그저 부대 내 단순 가혹행위에 의한 보복사건으로 무마하려던 상급자에 대한 폭로로 군대의 자성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군대 조직의 특성상 상명하복은 절대적이다. 엄밀히 말해서 필자는 상명하복의 군기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쪽이다. 결론적으로 군대라는 것은 나라와 내 가족을 지키기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그 긴 시간을 참고 견디는 것은 우리를 한층 성숙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군대 역시 개개인이 모인 조직이기에 이기적이거나 심성이 바르지 못한 자들이 있다. 물론 애초에 신체적 문제가 있다면 징병검사에서 제외하는 것이 당연하고, 입대 후라도 건강 상의 문제가 있다면 의가사 제대를 시켜줘야 한다. 하지만, 고문관의 유신역처럼 '빽'이 있다거나 살인트리거의 김호남처럼 애초에 악한 자들은 적법한 얼차려를 통해 군기를 바로 세워야만 한다.
그것은 마치 곪고 썩는 상처부위에 쓰리고 아프더라도 빨간약(!)을 바르는 것과 같다. 전시가 오지 않는다면 애초에 군대가 있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군대가 있다는 것은 언제든 전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이고, 언제든 전시가 될 수 있다면 군대는 언제든 전쟁에 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한다. 전우애 없이 불신하거나 이용해먹으려고만 해서는 절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고, 사랑하는 이들을 지켜낼 수도 없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그들이 '상명하복' 혹은 '군기'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행위는 나라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거나 혹은 자신의 패배감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편으로 삼은 것일 뿐이다. 문제는, 피해자들이 '선택받은 자'라면, 가해자들은 '선택받았던 자'이거나, 선택한 자에게 저항할 수 없는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결국 군대 가혹행위의 쟁점은, 내가 죽을 것인가, 아니면 내가 죽일 것인가의 양자택일로 귀결되고 만다.
그리고 책에서 지속적으로 언급하는 문제점은, 이제 갓 스물이 넘은 그 청년들이 나라를 지키러 와서 겪는, 이런 비인간적인 문제에 대해서 군대가 제도적으로, 합리적으로 관여하여 조정하고, 살피는 일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로지, 관리가 '편하다'는 이유로.
길다고 좋은 건 아니지만, 우물이 깊어야 물이 많이 나오긴 한다.
위에 언급했듯, 네 편의 소설이 모두 군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 뿐만 아니라 소설의 구성 역시 매우 흡사하다. 물론,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구성의 소설을 연달아 네 편 보다보면 기시감에 피로가 몰려온다.
게다가 한 권에 네 편의 이야기를 모두 담았는데, 그 이야기는 각각의 이야기가 모든 서사를 담기 매우 짧다는 것이다. 물론 어찌보면 굳이 길게 서술할 필요가 없는 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구체적인 서술이 꽤나 생략되면서 마치 간주점프하면서 노래를 부른 느낌이다.
분명 군대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라고 소개를 봤었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 미스터리물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지 않았나 싶다. 물론, 살인 트리거에서 뉴스 기사를 중간중간 삽입한 것에서 어느 정도 반전이 오기도 했고, 고문관에서 부적의 정체에 대해 드러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보는 만화에서조차 반전이 있는 '대반전시대'에 독자의 혼을 흔들어 놓기엔 너무 미약한 반전이지 않았나 싶다. 불청객이 올 무렵에서는 과도한 설정이 살짝 불편했고, 사라진 수첩은 반전을 위한 복선을 너무 드러내놓고 시작해버려서 기대감을 매우 낮추는 역효과가 있었다.
반면에, 군대 내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가혹행위들에 대해서 꽤나 디테일하게 묘사가 되어 있었다. (제발 작가분들이 직접 겪거나 했던 일은 아니길.) 총기나 수류탄 같은 무기들이라던지 사건의 흐름에 따른 서술 등은 역시 여러 책을 써본 작가님들이라서 그런지 부드럽게 읽혔다. 하지만 역시나 너무 과도한 설정에서 문득 문듣 집중력이 떨어지곤 했다.
하지만 확실히 네 편의 비슷한 이야기가 연속되므로 인해서 생각보다는 꽤 집중력있게 읽을 수 있었고, 약간 교과서적인 느낌이기는 했지만 반전의 요소도 있어서 심심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군대의 가혹행위에 대해 궁금하다면 한번 쯤 읽어볼만 하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