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 친구들은 왜 산으로 갔을까 - 노르웨이 코미디언의 반강제 등산 도전기
아레 칼뵈 지음, 손화수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11월
평점 :
들어가는 말
대체 등산을 왜 하는 것일까. 필자 역시 작가의 생각과 동일한 생각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매우 정적인 것을 좋아하며, 요즘 말로 '집돌이'의 전형이 '바로 나'라고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다. 흔한 등산가의 대사는 '산이 거기에 있기에 오른다.'이고, 반대파의 대사는 '다시 내려올 것을 왜 굳이 오르는가.'이다. 둘다 일견 타당한 말이다.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그 중 한 가지는 분명 정복욕일 것이다. 모험과 도전. 이 두 가지가 없었다면 절대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고,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인디언들에게 사죄) 커피라던지 담배(비흡연자에게 사죄), 술을 만들지도 못했을 것이고, 우리 민족의 소울푸드 김치나 된장, 고추장도 만들지 못했을 테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인간 본연에 잠재된 바로 그 도전정신과 정복욕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딱 이거 아니겠는가. '산이 거기 있으니 오른다.'
반면에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 다른 한 가지는 바로 '효율성'이다. 최소의 투입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둔다. 물론, 자본주의가 그 근간에 가깝다고 여겨지기는 하지만 이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인간이 기술 발전에 온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눈부신 과학의 발전과 함께 생활의 편리함을 가져왔다. 기술의 발전은 생물학적으로는 절대적으로 뒤쳐지는 인류가 다른 포식자들에게서 자신들을 지킬 뿐만 아니라 그들의 위에 서는 것까지 가능하게 했다. 바로 이 효율성의 맥락에서 보는 것이 바로 '다시 내려올 것을 왜 오르나.'다.
등산 '풍자' 에세이라고 했잖아요.
위에도 언급했지만, 필자는 효율성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한 사람으로써, 등산과는 꽤 높고 유서깊은 담을 쌓고 살았다. 하지만 왠지 알록달록하게 단풍처럼 차려입은 그네들 처럼, 마흔이 다가오자 급작스런 등산을 시작하고 등산스틱까지 구매했다. (여기에는 아내의 합리적인 주장 : 지금 가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못 가본다. 이 더 강하게 작용했다.) 물론, 효율성에 치중된 필자의 성향은 여전하다. 그리고 그닥 준비없이 월출산과 한라산을 근 한달 사이에 종주한 아내 역시 이제는 효율성에 눈을 뜬 듯 하다.
그런 필자가 등산에세이를 읽은 것은, 다름이 아니라 '코미디언의 반강제 등산 도전기'라는 문구 때문이다. 굳이 디테일하게 들여다보자면, '코미디언'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필자도 글을 쓰는 입장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이 바로 유쾌하고 위트있으며, 유머러스한 글을 쓰는 사람이다. 보통의 사람이 그렇듯, 나름 필자도 친한 지인들 사이에서는 꽤나 위트있다는 평을 듣지만, 대외적으로나 글을 쓸 때에는 그런 위트가 싹 사라져버린다. 그럼에도 위트를 선망하기에 그런 글이나 작가들을 보면 시샘을 느낀다.
하지만, 여행을 제외하고는 해외에 거주해 본 적이 없고, 근 40년을 한국에서 살아온 필자에게 이 노르웨이 코미디언의 유머코드는 전혀 맞지 않았다. 아마 노르웨이는 110V를 사용하나보다. 나름, 미국식 개그는 빵빵 터졌기에 이 역시 그럴거라 여긴 것이 오판이었다. 물론, 위트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간간이 대화에서 그 위트가 보이기는 했지만 필자가 보기에 그 내용에서 재미가 터지려면 육성으로 들어야 하는, 그런 부류의 유머였다. (소는 누가 키우나. 소는! 이 대사를 코빅을 본 한국인이 글로 읽을 때와, 번역본을 외국인이 볼 때와 같은 느낌이랄까.) 혹은, 정말로 예전에 정치'풍자'처럼, 신랄한 풍자에 가깝다고 할까.
거기다가 등산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과도하게 작가의 불평, 불만이 집중적으로 조명되고 있다. 초반에는 살짝 불쾌할 지경이었는데, 근 1백 페이지가 넘는 초반 서술에서 작가의 과거 삶을 이야기하면서 내내 하는 말은 '등산하는 사람들은 이해불가'라는 말 뿐이다. 물론, 등산을 하게 된 계기를 이야기하는 것은 알겠다만, 일단 '등산 도전기'인데 서두에 독자가 '그래, 등산은 하지 말자.'라고 설득당해버린다면 어쩔 셈인가.
그럼에도 우리는 산으로 간다.
그럼에도 이 책이 유익한 부분은 상당히 많다. 일단, 노르웨이의 문화와 혹 노르웨이에서 등산을 하려는 사람이 있을 경우에 상당히 많은 정보들을 포함하고 있다는것이다. (물론, 갈 수 있을 때의 이야기다. 코로나19... 너는 대체...) 게다가 적절한 사진들까지 포함되어 있고, 루트나 시간 산장정보 등도 있어서 일부는 등산 가이드로 쓰여도 괜찮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그리고 확실히 독자가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얼마나 많은 사색을 하는 지 여실히 느껴지는 에세이였다. 필자도 이제 어디에서 '어리다'는 말은 못 할 나이가 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에세이라는 장르에 손을 못 대는 것은 삶을 지탱해온 세월이 주는 사색이 부족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는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겪었던 일들과 그 일들에 대한 깊은 사색을 '등산'이라는 무대 위에서 거리낌없이 풀어놓았다. 개인적으로 에세이는 다른 사람에게 내 삶을, '나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는 빼어났다. (하지만 역시, 개인적으로, 독자의 어투가 살짝 꼰대처럼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이겠지.)
그런 면에서 필자가 너무 제목에 집중한 나머지 책을 이상하게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된 듯 하다. 그러고보면 어디에도 '등산 코믹 에세이'라는 표현은 없으니까. 혹여 이 책을 읽으려는 독자분들도 이 부분을 먼저 고려하고 본다면 실망하는 일은 없을 듯 하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