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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젠가
이수현 지음 / 메이킹북스 / 2021년 10월
평점 :
들어가는 말
최근 출판 업계가 어떠한 추세라든지 하는 이야기는, 필자가 업계에 종사하지 않는 탓에 언급하기 조금 꺼려지는 부분이다. 하지만 요즘 베스트셀러라는 이름으로 뜨는 서적들의 면면을 보자면, 독자로써 한마디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
솔직히 꽤나 책을 많이 읽는 편이었던 필자 역시도, 생업에 종사하기 시작하면서는 거의 손에 책을 대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하물며, 고된 입시와 직업을 구하기 위해 추가로 수많은 공부를 해야하는 사람들이 하얀 바탕에 검은 색으로 칠해진, 이 시대에 태어난 죗값을 굳이 죽어라고 번 돈으로 사서 읽기는 여의치않다.
그럼에도 팔리는 책이 있게 마련이고, 출판사는 책을 팔아야 유지되는 기업이므로 출판되는 책들이 언제부턴가 고정되기 시작한 것 같다.
서점의 베스트셀러란에 가보면 이런 시류를 직접 체감할 수 있는데, 대부분 판매대에 있는 서적들은 투자관련이거나 감성에세이, 혹은 유명 외국 작가의 번역본 뿐이다. 물론, 가끔 '달러구트의 꿈 백화점'같은 신인 작가의 소설이 있기도 하고, 반가운 한국 작가의 소설이 눈에 띄기도 하지만 가뭄에 콩이 나는 듯하다.
이런 시대에 만난 이 책은 꽤나 반가웠다. 게다가 최근 읽은 책 중에서는 가장 '문학적'인 소설이라서 더욱 그렇다.
읽고 난 후 이 책 역시 베스트셀러에 들었다는 이야길 듣긴 했다. 이 역시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왠지 공모 당선작이라서 베스트셀러에 들 수 있었지 않을까라는 걱정 아닌 걱정은 덤으로 따라붙었다. 물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 시대를 사는 사람(특히 젊은층)이 처한 현실에 대한 작가의 심도깊은 사색이 들어간 점이 흥행의 주된 요인이겠지만, 아무래도 공모전이라는 마케팅 요소가 없이 현실의 출판계에서도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그저 기우에 불과하길 바랄 뿐이다.
현실에 닿아 있는 이야기
꽤나 요즘의 베스트셀러 추이와는 그 궤가 다른 책이다. 일단, 기성 유명 작가의 소설이 아니면서 국내작가의 소설이다. 판타지나 장르물도 아니며, SNS를 그대로 가져다가 디자인만 이쁘게 만든 감성에세이도 아니다. 위에 언급하기는 했지만, 공모전에 당선된 것이 물론, 흥행의 한 요소이고 꽤나 큰 효과가 있는 부분은 맞지만 아무리 마케팅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그 실상이 빈약하다면 성공할 수 없다. 그만큼 책의 내용은 튼실했고, 한 줄 한 줄 작가의 삶에 대한 성찰과 고뇌가 엿보였다.
특히, 필자가 거의 감동(?)받다시피 한 것은 작가의 문장력이었다. 필자 역시 어려서부터 글을 쓰고, 학업 내내 문학동아리 활동을 했다. 대학 때 동아리에는 나를 제외한 모두가 국어국문학과였다. 그 때 기분은 조금 과장하자면, 원어민 사이에서 영어로 대화를 나눠야 하는 것 같았다. 나도 잘하고 싶은데, 결국 그들보다 잘 할 수 없을 거라는 자괴감과 시기. 특히 부러움은 겉으로 표현할 정도로 컸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그 때 그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당연히 국어국문 전공이리라 여겼던 작가는 검색해보니 인류학 전공이었다. 아무래도 글을 쓰는 능력은 타고난 듯 하고, 인류학 전공이라서 인간 본질과 내면에 대한 사색이 뛰어났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약간은 끼워 맞추기 식이 되어버렸지만, 인류학 전공이라는 사실이 크게 다가온 것은, 그만큼 소설 내에서 작가가 등장인물의 내면을 표현해 내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기 때문이다.
아무리 뛰어나고 탁월한 어휘력과 문장력이 있다손 치더라도, 사색과 고뇌가 없다면 이렇게 잔잔하지만 적나라하게 표현해낼 수 있었을까. 천상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더라도 음율이 없다면 노래가 될 수 없다. 작가는 인간 내면에 대한 고찰을 빼어난 문장력과 어휘력으로 독자에게 표현해내었다.
특히나 이 소설이 더욱 진솔하게 다가온 것은, 소설이 바로 우리 세대의 이야기기 때문이었다. 나의, 내 친구의, 내 동생의 살아있는 이야기. 현실에 닿아 있는 이야기. 누구나 그런 사람이 한 명 쯤 주변에 있을,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 우리는 소설을 읽으면서 그 사람을 떠올리며, 그 사람의 마음을 한 번 더 생각해보고는 소설에 공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젠가가 무너질 때
사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이 사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네 가지 이야기에서 우리는 우리 세대가 사는 여러 삶을 본다. 현실과 꿈 사이에서 방황하거나, 인생의 반려자와 역경을 이겨나가는 방법을 깨우쳐나간다. 잃은 사랑과 속인 사랑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새로운 세대라는 이유로 새 것만을 쫓지 않고 오래된 것을 이어가는 길을 택하기도 한다.
그 어느 하나 쉬이 살아지는 삶이 없다. 그렇다고 우리 세대의 삶이 힘들다는 뜻은 아니다. 물론 지금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힘들 수도 있다. 늘 그렇다. 그것이 삶이다. 힘들지만 견디고 몸을 되려 앞으로 숙이며 한 발 더 내딛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삶이고, 앞으로 우리가 살아야할 삶이다.
살면서 힘이 드는 순간 순간, 우리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어진다. 하지만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다. 그럴 수 없고, 실상은 그러고 싶지 않으며, 실제 그렇지 않을 거라는 것을. 우리는 늘 그렇듯 다시 힘을 내어 앞으로 한 발 내딛을 것이다. 우리네 삶이 힘들다고 우리가 자리에 주저 앉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이 너무 쉽게 살아지는 순간, 우리는 편하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 것이다.
유리 젠가라고 와장창 부서질 것 같은가. 차곡차곡 쌓아지는 젠가는 쉬이 무너지지 않는다. 하나하나 정성스레 우리의 삶을 채워나가는 과정에서 더욱 단단해지고 견고해진다. 젠가가 무너지는 순간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일궈낸 우리 삶 자체의 어느 부분을 부정하고, 우리 인생에서 지우려고 할 때, 젠가의 한 부분을 억지로 빼내려 할 때, 그 때 무너지는 것이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