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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카인드
잉그리드 뉴커크.진 스톤 지음, 김성한 옮김 / 리리 / 2021년 10월
평점 :
들어가는 말
인류의 역사는 살해와 약탈과 파괴의 역사다. 인류는 다른 동물과 다르게 그 어떤 부분도 '강화'의 방향으로 진화하지 않았다. 오로지 뇌의 영역에서 지능과 지식의 발달만으로 전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의 자리에 서있다. 그 기간은 꽤 오랜 기간이 되었고, 그 오랜 기간 동안 왕좌에 앉아있던 인간은 이제 조금은 무료해진 모양이다.
베지테리언. 동물애호가. 그린피스. 아, 그린피스는 일부 제외.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과거 인류의 역사를 부정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 현 세대의 책임이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독단적인 결정'에 의한 것에 국한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인류가 채집과 사냥의 역사에서 경작과 사육의 역사로 넘어갔던 것은 인류라서가 아니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 중 하나로써 생존을 위한 방편으로 택한 것이다.
과연, 신이라고 해서 이런 인류의 행위에 대해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사자가 가젤을 사냥하는 것을 잔인하다고, 생명을 아끼지 않는 행위라며 욕할 수 있는가.
개인적으로, 동물애호가들의 주장은 너무 오랜 약탈과 학살에 질린 왕의 무료함에서 온 '아이디어'처럼 느껴질 뿐이다.
사상누각
책에서 1부는 동물을 일단 인간과 동등한 관계로 이끌어줄 갖가지 동물에 대한 정보들을 알려준다. 동물도 감정이 있고, 놀이를 개발하거나 길을 찾거나 의사소통을 한다는 사실을. 그러나 그러한 사실이 과연 동물을 존중해야 할 이유가 되는가.
우리 인간은 동물뿐만 아니라 같은 동족인 인간에게도 더한 짓을 많이 저지른다. 폐륜이나 반인륜적인 범죄자들은 차고 넘치며, 갖가지 범죄들에 피해 입는 약자들은 굳이 필자가 열거하지 않아도 매일 뉴스에 등장한다. 그런 피해자들에 대한 존중은 어디에 있는가.
애초 인권 운동이라든지 이런 동물애호 운동들이 대다수 인류의 호응을 받지 못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 기초가 약하기 때문이다. 마치 사상누각과 같다. 인류가 해야 할, 인류의 의무로 만들려는 인권 운동이나 동물애호 운동의 기초에는 어디에도 인간이 보이지 않는다.
최소한 내가 아는 그들은, 인간에 대한 기초 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그들은 마치 그들이 정의인 듯 포장하고 가꾸고 소리 지르느라, 같은 동족이 갖가지 폭력과 부정에 신음하고 죽어가는 것은 외면한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먼저 그런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목적의식이 있는 것이며, 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목적이 있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 어떤 인간이라도 타인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특히나 마치 그것이 죄악이라는 듯이 손가락질하며 가르치려는 태도로 말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현실에 눈을 떠라
작가는 현실에 눈을 뜨길 바란다. 우리의 작은 움직임(비건이 작은 움직임이라는 것엔 동의 못하지만)으로 모든 것이 변할 수 있다고. 하지만 필자는 작가에게도 이야기해 주고 싶다. 현실에 눈을 떠야만 한다고. 그네들의 과도한 주장은 현시대에서 인류에게 받아들여지기는 힘들다고. 그 긴 시간 동안 인류를 먹여살린 방식이 한순간에 바뀌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필자 역시 이런 괴팍한 논지를 펼치면서도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고 있고, 동물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생존이 전제되어 있고, 나의 1차원적인 욕구가 만족되어 있는 상태에서 가능한 것이다. 최소한 이 전의 인류에게 동물은 식용 혹은 경작용, 놀잇감(반려동물 포함) 이상의 의미가 아니었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도 큰 차이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위에 말했듯이, 지구의 지배자로 오랜 시간을 지낸 인류의 일부 무료한 사람들이 새로운 시각으로 피지배층인 동물들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비건 운동이나 동물해방운동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넘어, 이제 모든 동물들을 지구에서 함께 살아갈 동반자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 얼마나 오만한가! 이들이 언젠가는 식물에게 눈을 돌리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들판에 자라는 벼의 바람에 속삭이는 소리와 빨갛게 익은 사과가 반짝이며 건네는 인사를 우리에게 강요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필자는 냉소적이다.
언제나 그렇듯, 각자의 주장이나 생각에 필자는 강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각자의 주장이나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거나 이렇게 책으로 전달할 때는 누구라도 각오해야 한다. 생각보다 강한 반응이, 조금은 극단적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