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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아내를 위한 레시피
카르마 브라운 지음, 김현수 옮김 / 미디어창비 / 2021년 9월
평점 :
들어가는 말
서평을 남기기에 앞서, 요즘 사회적 갈등으로 뜨거운 페미니즘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필자는 어떤 면에서 보자면 페미니스트의 주장에 찬성하는 반면, 일부 찬동할 수 없음도 밝히겠다. 이는 단순히 어떤 논란거리를 만듦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순수한 필자의 생각이다. 정치적 언급을 기피하는 편인데, 그 역시 스스로 '중도'라고 생각하며, 타인의 시선에서는 '회색분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기본적으로 필자는 우리 사회에서, 특히 구시대적 사회상의 그늘을 물려받은 현재까지도 여성의 일부 인권 및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암묵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부분은 인정한다. 하지만, 또한 일부 맥락에서 여성이기에 얻었던 이익에 대해 반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음영만을 두드러지게 주장하며 기득권에 대해 포기하지 않는 일부 극 페미니스트에는 혐오를 드러내길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사족이 길었지만, 결론은 필자가 '82년생 김지영'을 꽤나 감명깊게 보았으며, 그것은 개인적 비약을 첨가해서 '나의 어머니와 누나'의 삶을 투영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책이 나름의 '서스펜스'임에도 사족이 저리 긴 이유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핍박받는 삶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어떤 범위가 매우 좁은 모습이 자유주의와 계몽사상으로 점철된 서양의 역사에서마저도 저리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사실이, 일견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고, 그 배경으로 우리 사회에서(현재라기 보단 나의 어머니가 살아오신 그 시간의 사회) 여성의 삶이 보였기 때문이다. (다만, 소설이니만큼 확실히 현실보다는 더 극적이었음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가 재밌다고 이야기꾼을 좋아할 순 없다
서두에도 언급했지만, 혹시나 독자가 페미니즘 혐오자거나,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반발감을 가지고 있다면, 이 소설 역시도 같은 맥락에서 불편할 수도 있다. 물론, 미국의 이야기이므로 전혀 그런 느낌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소설은 두 이야기, 앨리스와 넬리(엘리너)의 이야기가 병행구조로 진행된다. 일견 비슷한 상황인 듯, 다른 상황인 듯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70여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함께 종국으로 치닫는다.
분명, 객관적인 시각에서 주인공은 앨리스이지만, 필자의 관점에서 앨리스는 그저 넬리의 삶을 전하는 매개체의 역할, 그 이상도 이하도 되지 않았다. 엄밀히 따져 서두에 말했던, 필자가 찬동해줄 수 없는, 여성의 모습을 드러낸다. 사회적 약자로써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성공을 위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다가, 너무나 가벼운 실수로 직장에서 쫓겨난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남편인 네이트에게 숨기기위해 한적한 도시 외곽으로 이사를 가게되고, 추후의 계획이라고 핑계를 댔던 소설 집필은 단 한 줄도 하지 못한 체 네이트가 간절히 원하는 임신은 피하고자 몰래 피임수술을 한다. 하지만 병증이 생기면서 네이트에게 발각되고, 네이트는 용서하지만 되려 네이트의 바람을 의심한다. 네이트는 둘의 삶과 본인의 성공을 위해 이사를 하려하지만 오래묵은 넬리의 편지에서 넬리의 삶을 본 앨리스는 이사를 강력히 거부하며, 자신의 임신을 무기삼아 네이트를 다시 눌러앉히고만다.
넬리는 20살, 디너파티에서 만난 껌 회사 사장인 리처드의 적극적 구애에 결혼을 한다. 하지만 리처드는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남자였고, 특히 대를 잇기위한 '번식'에 가장 큰 의미를 둔다. 그런 과정에서 리처드의 파괴적 행동으로 유산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리처드가 바람을 피우는 사실을 안 넬리는 임신을 가장한 뒤 유산으로 꾸며 리처드에게 복수를 한다. 하지만 결국 담당의사를 우연히 만난 리처드가 모든 사실을 알게되고 직접적인 폭력이 시작된다. 넬리는 결국 어머니가 물려준 레시피 중 극단적 효용을 보이는 '비법'을 활용해서 '생존자'가 된다. 하지만 생존자가 되기 위해 넬리가 해야만 했던 일은 충격적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충격적인 선택이라고 하기보다는 그만큼 '절박한' 선택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해보인다.
이 두 이야기의 병렬을 보자면, 개인적으로 앨리스의 이야기는 의미가 없다. 아니, 의미가 없다기보다는 되려 넬리의 삶을, 50년 대 여성의 혹한의 삶을 드러내는데 방해가 될 뿐이다. 개인적으로 앨리스의 이야기는 약간은 불쾌한 기분이 들 정도로 억지스럽고 이기적인 모습만 느껴졌다. 그래서 책장을 넘기면서, 어서 넬리의 이야기가 나오기를, 그 아픔을, 슬픔을, 절박함을 내가 읽고 알아줄 수 있기를 바랐다.
82년생 김지영 VS 32년생 엘리너 스완
우린 서구문물과 사회를 '선진국'이라는 단어로 치장하여 어느정도 선망하기도 하고, 받아들여야할 것으로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넬리의 삶을 들여다보자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어디까지나 소설이므로 '가상'의 이야기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소설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현실'의 이야기를 각색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그 시절 여성의 지위와 역할에 대해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꾸 비교를 하게 되는데, 만약, 앨리스의 이야기를 제외하고 넬리의 이야기만으로 소설을 완성했다면 더욱 강력한 메시지를 주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82년생 김지영' 역시, 일부 극 페미니스트들의 악용에 따라 일부 사람들은 극도의 비난을 퍼붓기도했다. 이 소설에서는 바로 앨리스의 이야기가, 그런 비난의 대상이 될 소지가 있다.
넬리의 삶만 보자면, 되려 82년생 김지영의 삶은 그렇게 극단적이지 않다. 다른 의미에서 힘겨운 삶임에는 분명하나 그 결이 다르다. 김지영이 힘겨운 것은 사회의 고정관념과 결혼으로 발생한 새로운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에 기인한다. 하지만 넬리의 고난은 단순히 사회의 고정관념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었어야할 가정 내 남편이라는 존재에게서 더욱 강하게 온다. 그들은 배우자를 소유하고 관리하며 도구로써 2세 생산에 의무를 가진 존재로 대한다. 넬리의 어머니 역시 그러한 삶을 살았다. 넬리는 그러한 어머니가 '내 심장이 뛰는 유일한 이유는 그 소리를 네가 들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어려서부터 들으면서, 여자의 생존에 임신과 출산이 필수불가결한 의무라는 생각이 낙인처럼 박힌다. 그러나 넬리는 그보다 훨씬 강인한 여성이었고, 정원에 멋드러지게 가꿔진 꽃들보다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결국 어머니가 남겨준 '비법 레시피'로 자신의 삶을 찾아낸다. 너무 큰 희생이 뒤따랐지만.
개인적으로 병행구조의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라, 꽤나 재밌게 읽었다. 책의 두께에 비해서 소요된 시간이 얼마 안될 정도로 잘 읽히기도 했다. '82년생 김지영'을 재밌게 읽은 독자라면, 과거의 사회적 편협과 구조적 문제 등에 순수하게 분노할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볼만한 소설이다. 소설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넬리의 챕터마다 무언가 요리 레시피가 등장하는데 요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번 쯤 시도해 보는 것도...?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