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콜카타의 세 사람
메가 마줌다르 지음, 이수영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9월
평점 :
들어가는 말
간디와 붓다의 나라. 세계적으로 아직까지 계급제가 유지되고 있는 몇 안되는 나라. 그런 계급제를 유지하면서도 IT강국이면서, 인구 13억이 넘는 거대국가. 이런 인도는 우리의 뇌리에 부정적으로 박혀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가 인도와 관련하여 듣는 뉴스 대부분이 도저히 이해불가할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솔직히) 인도에 대한 필자의 이미지 역시 매우 좋지 않다. 여행을 인생의 모토로 삼고 있는 필자가 제외시키는 몇 안되는 여행국가 중 하나가 인도니까. 그럼에도 이 소설이 의미하는 바는 불쾌감보다는 연민, 혹은 동질감이었다.
그것은 아마 우리네 사회가 이미 밟아온 진흙탕길을 그네들이 따라 걷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그 길을 걸은 발걸음은 온갖 폭력에 따른 고통과 끊임없는 자기희생, 올곧은 마음 때문에 되려 주위에서 배척당하는 슬픔이 뒤섞여 발자국이 온통 뒤틀려있다. 뒤틀린 발걸음을 따라 걸으려는 그들이 모습은 괴이할 정도로 온 몸을 뒤틀고 있었다. 그 고통을 알기에, 필자는 소설을 읽는 내내 그들의 사회구조에 대한 이질감과 동시에 강한 연민을 느꼈다. (필자가 그 시대를 겪어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글로 배운 것만 해도 충분히 고통스러웠음을 알린다.)
격동의 콜카타
소설의 투표를 앞둔 콜카타에서 벌어진 기차 방화 테러를 시작으로 주인공인 세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지반은 극빈층에서 장학금으로 기초 학교를 겨우 마치고 이제 막 판매원 일을 시작한다. 그러나 기차역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기차 테러를 목격하게되고, 꿈에 그리던 휴대폰을 사서 페이스북을 하던 도중 기차테러에 대한 게시글과 메신저를 잠깐 나눴다가 테러 동조자로 지목되어 체포된다.
러블리는 트랜스젠더로, 배우를 꿈꾸지만 역시 빈곤층인 관계로 꿈을 이루기 불가능해보인다. 구걸을 하며 살던 그녀(그)는 지반에게 연기를 위해 영어를 배우던 인연으로 지반의 재판에서 증언을 한다. 이 증언이 매스컴을 타면서 일약 스타덤에 오르고, 그녀의 연기 연습 영상이 인터넷에 떠돌면서 꿈에 그리던 배우가 된다.
체육선생은 지반이 학교를 다닐 당시 은사였다. 운동신경은 좋으나 가난해 끼니를 거르던 모습을 본 그는 지반에게 먹을 것을 주는 등 도움을 주지만, 갑자기 학교를 그만 둔 지반에게 은근한 배신감을 느낀다. 인정받지 못하는 학교에서 마이크를 고치던 그는, 우연히 야당의 선거유세 현장을 구경갔다가 마이크를 고쳐주는 인연으로 급작스레 정계에 발을 담그게 된다.
이러한 세 명의 이야기는 결국, 지반의 사건으로 귀착된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온갖 사회부조리와 극빈층의 삶, 종교적 탄압과 정치적 음모들이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다. 절대 이해되지 않을 인도의 사회상과 구조. 타국의 향신료로 범벅된 음식같은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런 익숙함때문이었으리라.
해피엔딩은 없다
필자는 마지막까지 반전을 기대했다. 솔직히 그냥 대부분의 선량한 독자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50페이지도 안 되는 얇은 잔여분을 손끝으로 느끼면서도, 마지막 반전을 기대하리라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가 부마항쟁이나 5.18 민주화운동이나 제주 4.3 항쟁같은 역사적 사실들을 들을 때 느끼는 간절함과 일맥상통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의 삶은 그 결과 행복해졌다. 하지만 소설에서 그들은 어느 한 부분도 행복해지지 못했다.
지반은 열사가 되었다.(될 것이다. 되야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아다시피 열사는 행복할 수 없다. 최소한 '그'는 행복할 수 없다.
러블리는 배우가 되었다. 하지만 친구를 버려야만 했다. 구걸을 하되, 그것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자신하던 그녀는 이제 없다. 대신 빈껍데기의 스타가 남았다.
체육교사는 인정받지 못하던 체육교사를 그만두고 정치인이 되었다. 정부 요직에 앉은 그는 양문형 냉장고를 사고, 전기화덕을 산다. 여러 정책을 결정하고 선물도 받는다.
필자가 가장 눈여겨 본 것은 체육교사다. 그는 전혀 어떤 사회적 불만이 없으나, 야당의 정치 유세에서 마이크를 고치고 돌아오는 기차에서 단순히 이마에 야당의 표식이 있다는 이유로 공짜 간식을 받는다. 그 뒤로도 참가한 유세에서 특별 도시락을 받는다. 이런 대접을 받은 그는, 야당을 위한 위증을 하고 시골 학교들을 다니면서 선거유세를 돕는다. 결국 선거에서 승리하여 정부의 요직을 차지한 그는, 종국에 가서 이제 막 걸음을 뗀 신정부의 확립을 위해 위증을 넘어 재판 청구를 기각하는 짓까지 서슴지않는다.
소설에서 유일하게 이름이 없는 사람. (필자가 책을 제대로 안읽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1인칭으로 서술되는 소설에서 체육교사의 이름을 본 기억은 없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오히려 지반이 아닌, 이 체육교사였지 않을까. 그 어떤 개혁의지없이 단순히 본인의 영달만을 신경쓰는 사람. 러블리가 본인의 성공을 위해 친구를 배신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체육교사는 마치 본인이 교육계나 사회의 어떤 혁명적 과업을 지닌 것처럼 생각하며 선거 유세를 하지만 결국 말미에는 정계에서 성공한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인다. 러블리가 개인의 이기심을 드러낸다면, 체육교사는 사회(정치)의 이기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작가는 그런 인도의 현실을 꼬집고 싶어했던 것이 아닐까.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