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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까칠한 백수 할머니 - 마흔 백수 손자의 97살 할머니 관찰 보고서
이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7월
평점 :
저자는 두 여자와 함께 살고 있다. 할머니인 피 여사와 엄마인 박 여사.다.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되었는데, 첫 장에서는 피 여사와 손자인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고, 두 번째 장에서는 오롯이 피 여사의 과거 그리고 현재를 관찰한 이야기, 마지막 장에는 피 여사와 박 여사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가족들의 이야기까지 담겼다.
나는 책을 선택할 때 공감보다는 내가 해보지 못한 경험을 공유해보는 것을 가치있게 생각한다. 나도 할머니가 있었지만 내가 너무 어릴 때 돌아가신 바람에 '할머니와 같이 산다는 것'에 막연한 미련이 있었다. 나와 할머니의 추억은 단 몇 장의 장면으로 남았지만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그 장면에서 느껴지는 온정은 너무도 굳건했기에 부러운 시선을 가지고 이 책을 읽었다.
할머니를 할머니라 부르지 않고 피 여사로 부르는 저자가 마음에 들었다.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할머니가 아닌 피 여사의 생애를 들여다보는데 집중할 수 있었다. 나도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아내보다는 나의 이름으로 불리며 살고 싶다.
피 여사는 그린 키위보다는 골드 키위를 좋아하고, 생선 중엔 임연수와 연어를 좋아한다. 피 여사는 갈망을 드러내는 데는 어색해했으나, 불만을 표출하는 데는 능수능란하다. 한국전쟁 시절 환경의 반영으로 불안한 성격과 물질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생소한 단어. 부분을 읽을 땐 피 여사가 하나의 역사처럼 보여 경이로웠다.
지금도 어딘가에 살고 있을 한 할머니의 취향과 가치관을 내가 안다는 게 웃기기도 했고, 정작 나는 나의 가족에 대해서는 내가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하는 모순에 당황스러웠다. 책을 읽는 몇 시간 동안 피 여사에 대해 알아가다 보니 중간 넘어서는 피 여사에게 애착이 생겨
저자의 글은 "박 여사는 남다르게 비범하다고 믿었던 자식이 알고 보니 남들과 달리 이상하다는 걸 인정하지 못해 속이 타들어 갔고"라는 부분에 웃었다. 피 여사 이야기는 어쩌면 평범하고, 너무 옛이야기라 생소한데다가 늙은 노인 하루 일과가 뭐 읽을 게 있을까 생각하기 십상인데 저자가 지루하지 않게 글을 잘 썼기 때문에 재미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참 어려운 일임을 나는 안다. 대개 잘 모르는 단어들이라 찾아보고 알아가는 재미도 있었다.
'할머니 관찰 보고서'라는 피 여사에게도 박여사에게도 그리고 저자에게도 큰 의미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피 여사는 언젠가 죽겠지만 책 속에는 영원히 남을 것이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내준다는 것은 큰 행운 아닌가. 저자도 책에서 언급했듯이 피 여사를 보면서, 나도 노후에 쓸쓸한 나날을 보낼 모습이 그려져 씁쓸했다. 유난히 공감 갔던 부분이었고, 피 여사는 박여사도 있고 자신을 관찰해 주는 손주도 있으니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피 여사를 관찰하면서 저자 자신의 지난날을 떠올리는 것처럼, 피 여사를 보면서 나의 지난날을 떠올리고 저자의 느낌을 읽으며 공감했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