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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마와라시
온다 리쿠 지음, 강영혜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1년 7월
평점 :
들어가는 말
세상에는 단순히 물건의 범주를 넘어, 그 물건에 깃든 어떠한 힘으로 인해 여러가지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있다. 물론, 상당부분은 미신이나 종교적인 해석, 토속신앙 등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게다가 필자 역시, 상당부분 그러한 초현실적인 상황들에 대해서는 거의 믿질 않는다. (필자가 쓴 소설인 '장수마을'에서도 그러한 부분에 대한 내용이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소설'의 범주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부분에 대해 꽤나 큰 신뢰를 보내고 있다. 예를들면, 버려진 가구는 주워다 쓰는 것이 아니라거나, 깨진 거울에 모습을 비추는 것은 안 좋다는 이야기같은 것들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갖고 있는 '어떤' 물건들에 대한 '어떤' 기억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 소설의 주인공 '산타'는 선택적 사이코매트리의 능력으로 '어떤' 물건들에 깃든 '어떤' 존재가 전달하고자 하는, '어떤' 과거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스키마와라시 ≠ 자시키와라시
필자가 반복적으로 하는 이야기지만, 서평은 어디까지나 독후감과 다르므로 책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는 최소화 하는 것을 기조로 삼고 있다. 하지만 서평을 위해 부득이 하게 드러내야하는 경우가 있는데, 자시키와라시가 바로 그런 부분이다. 자시키와라시는 우리나라로 치자면 지박령 혹은 성주신에 가장 흡사하다. 그냥 집에 우연히 나타나는 아이의 모습을 한 지신地神 혹은 가신家神인데, 이 자시키와라시가 있는 동안 집안이 흥하고, 그 집을 떠날 수 있으며 떠나고 나면 가세가 기운다는 점에서 지박령보다는 확실히 성주신에 가깝다.
소설 초반, 산타의 형인 다로가 산타의 이야기를 듣고, 산타와 함께 있었다는 여자아이의 존재에 대해 언급하면서 만들어낸 단어다. 말하자면 사람의 기억의 간극 사이에 존재하는 동자신이라는 뜻인데, 결론적으로는 형의 가설은 틀렸다는 사실이 밝혀지긴 하지만, 호칭은 그렇게 정해져버렸다.
소설의 제목인 스키마와라시는 산타가 '그것'이라 지칭하는, 우리가 흔히 사이코매트리라고 불리는 현상에 대해 겪으면서 일어나는 일을 산타가 마치 이야기를 하듯 차분히 서술하고 있다. 가끔은 약간 괴기스럽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스키마와라시는 자시키와라시와는 달리, 심통을 부리거나 요술을 부리는 귀신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기억에, 역사에 존재하며, 과거의 폐허 속에서 미래의 희망을 찾아내어 현재에게 전해주는 전령사 같은 느낌이었다.
예상외로 추리소설
소설 저변에 감춰진, 무너지는 오래된 건물들에 대한 경외와 안타까움. 그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모습의 스키마와라시. 그리고 스키마와라시를 일본의 전성기 시대를 상징하는 것처럼 이해하는 등장인물. 그리고 과거 2차세계대전과의 연관성. 필자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역사적 피해자의 자손이라는 이유로 피해망상에 빠진 것일 수도 있지만, 작가소개에도 드러나있는 것처럼, 만약 이 소설이 '노스탤지어 문학'의 정점이라면 이 소설이 그리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문학은 시대를 반영하고, 시대에 반역한다.
일단 필자는 노스탤지어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해서도 문외한이거니와, 그렇게 특정 작가나 작품을 마치 하나의 장르인 것처럼 표현하는 것도 달갑지는 않다. 그런 면에서 작가소개라던지, 뒷 표지의 '모든 낡아가는 것에 바치는 오싹하고 눈부신 찬사'라는 설명은 매우 흥미를 끌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읽기 시작한 소설은 예상외로 장르물에, 추리물이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 두 개가 모두 존재하는! 500페이지가 넘는 책을 몇 시간만에 읽어낼 수 있을 정도로 재밌는 소설이었다.
또한, 생각보다 기괴하고 불편할 수 있는 여러 장면들을 '산타'의 '느슨'하고 차분한 서술로 읽다보면 독자마저도 담담히 비현실적인 일을 현실의 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면서 '말도 안 되는 일'을 그저 실제 벌어진 일로 받아들이게 되고, 그렇게 스키마와라시가 우리 곁에 와 있게 된다.
긴박하고 아슬아슬한 추리물이 아닌, 잔잔하게 계속되는 의문스러움을 좋아한다면 강력하게 추천. 다만, 모두 읽고나면 분명 이런 질문이 남지 않을까 싶다.
1. 스키마와라시는 이제 사라진 것인가.
2. '산타'의 '그것'은 이제 사라지는 것인가.
3. 왜 '하나'인가. 왜 '산타'인가. ('주인공이 왜 주인공인가'라는 질문은 조금 부족해보이긴 하지만.)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