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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이
로미 하우스만 지음, 송경은 옮김 / 밝은세상 / 2021년 6월
평점 :
절판
들어가는 말
몇 해 전, 실화를 바탕으로 한 범죄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범인은 여러 해에 거쳐 많은 여성 피해자들을 감금, 성폭행, 살해하였는데, 그 중 한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여고생 쯤 되는 나이에 범인에게 납치당한 주인공은 범인의 집 뒷 편에 별도로 지어진 컨테이너에서 삶을 이어가고, 범인에게 완벽히 통제된 삶 속에서 임신 후 딸을 출산하게 된다. 그렇게 자포자기하며 살던 주인공은 딸의 병과 점점 짙어지는 범인의 폭력성 그리고 딸에 대한 무애정에 질려 탈출을 시도한다.
딸의 죽음을 위장, 여섯살 정도 되는 딸이 결국 외부에 나가서 엄마를 구해달라고 이야기하여 사건이 밝혀지고, 주인공과 딸이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모습의 일부까지 그려졌었다.
세상에는 무서운 범죄가 많다. 최근 가스라이팅이 대두된 적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여러 범죄들 중에 가장 무서운 범죄는 단순히 죽이거나 재산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 자체를 말소시켜버리는 것 아닐까.
그 어떤 아름다운 건물도 결국엔 시멘트
중반까지 소설을 읽으면서 위에 언급한 영화가 떠올랐을 정도로, 생각보단 범죄 스릴러물에서 자주 채택되는 주제이다. 보통은 범죄자(주로 성범죄자가 많다)에게 납치된 피해자가 우여곡절 끝에 탈출하게 되는, 소설보다는 영상으로 훨씬 많이 접했을 이야기다. 솔직히 영화(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 영상은 다 기억나는데)에서 봤던 컨셉과 매우 비슷하여 중반 이후에는 어느정도 기대를 내놓았다. 그만큼 너무 자주 쓰인 소재이고 스토리 라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중반 이후 되려 독자에게 탄력을 주는 것은 전에 없던 반전을 요소요소에 넣었다는 것이다. 범인에 대한 힌트도 역시 물음표를 지닌 체 보게 되고, 한나의 역할이라던지, 특히 레나의 탈출, 등장 및 야스민의 교체(?)는 책을 읽는 내내 '아?'라는 낮은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모든 범죄물에서 범인은 결국 잡히고(혹은 죽고) 피해자는 살아돌아오며, 정의가 실현되는데다가 주인공은 그 외상후 스트레스마저 이겨내서 다시 행복을 찾는 그런 뻔한 스토리라인인 것은 현실에서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작가의 희망이고, 독자의 바람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상대적으로 너무 익숙한 소재와 스토리라인이었지만, 이 소설은 꽤나 수작에 속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건축물이든 닭장같은 다세대 주택이든, 결국은 시멘트로 지어지니까.
왜? 그가?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약간의 아쉬움을 두자면, 개연성의 문제와 경찰 수사력의 문제다. 솔직히 현 시대의 수사력과 정보력, 과학력 수준이라면 (소설 속 범죄가 14년 전이라고는 하지만. 이춘재는 근 30년만에 잡히지 않았나.) 범인을 못 잡는 부분이 의아할 지경이다. 게다가 범인이 그 어떤 정신적 문제가 이전에 발현된 적도 없었음에도 급작스런 요인에 급변한다는 부분도 조금은 석연찮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구체적 언급은 못하지만, 매우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폐적 성격을 지닌 한나의 내면과, 공포를 이겨내고 탈출한 야스민, 그리고 야스민이 레나에게 끊임없이 내면의 말을 건네는 모습 등의 표현이 매우 사실적이라 그런 석연찮음이 묻힐 정도였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