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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여름 - 류현재 장편소설
류현재 지음 / 마음서재 / 2021년 5월
평점 :
들어가는 말
인류 역사의 흐름에 따라 참 많은 것이 변해갔다. 조선시대에는 생존에 필요한 것들만 풍족해도 사람들은 행복할 수 있었지만, 현대 사회에 이르러서 그저 생물학적인 생존만으로는 사람들은 살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는 그저 심적 표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으로도 정말 살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기술의 발전과 사회의 공동화(여기서 이르는 공동화라는 것은 흔히 말하는 공동체적인 사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간의 정보 벽이 사라짐으로 인해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상태에서 오는, 다른 이의 삶에 대한 복제욕을 말한다.)로 인해 타인과의 소통, 관계가 없이 단절된 삶을 사는 이들이 쉬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모습을 보면, 단순히 이것이 심적 표현이 아닌 정말 삶과 직결된 부분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렇듯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이 생존에 필요한 부분은 변해왔다. 하지만 늘 읊어지는, '만고불변의 진리'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랑'일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은 그저 사랑을 하고 싶어하고, 받고 싶어한다. 동물과 인간의 다른 점을 꼽자면, 다른 것보다도 바로 이 사랑을 최우선으로 두고 싶다. 동물은 그저 본능적인 종족 보존을 위해 짝을 지어 번식행위를 할 뿐이지만, 인간은 (물론, 종족 보존의 욕구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원시에는 분명 그 욕구가 더 컸을 것이다.) 번식을 논외로한 사랑을 나눈다. (도구나 수술적 행위를 통해 원천적으로 번식의 기회를 제거하기도 하니, 반론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종교적으로나 문학적, 윤리학적으로도 사랑의 가치는 매우 높다. 그것은 상당히 파괴적으로 '자기희생'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이 보여준 사랑의 모양새는 참으로 힘들다.
(이후 소설 내용에 대한 상당한 스포일러가 포함된다. 필자는 스포일러를 최대한 아끼는 편인데, 스포일러 없이는 내용을 서술하기가 힘들 정도로 등장인물간의 관계가 빽빽하게 얽혀있어 달리 방도가 없었던 점 양해바란다.)
인연을 실타래라고 하는 이유
우리는 흔히 인연을 실타래라고 표현한다. 그 이유는 그 인연이 대체 어디서부터 이어진 것인지 알 수 없을만큼 길고, 한 번 얽히고 나면 끊어내지 않고는 풀기 힘들 정도로 복잡하며, 얽히고 설켜 극에 달하면 마치 한 점처럼 단단히 굳어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덕자의 아버지인 하용범은 기묘한 추앙심으로 해심의 아버지 고봉주를 위한 '짓'을 하였으나 그것이 정당하지 못한 '짓'이었기에 고봉주에게 비난을 받고, 결국은 복수를 꿈꾸게 된다. 고봉주가 일본인에게 죽임을 당하고 고봉주의 처에게 과심을 드러냈으나 역시 괄시를 당하고, 여기서 복수를 위해 그 딸인 해심에게 계략을 부린다. 그 아버지 고봉주를 죽인 것이 만선의 아버지인 정표세의 짓이라고 거짓된 정보를 흘린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복수를 꿈꾸던 하용범이 간과한 것은, 그 복수의 대상이 재차 복수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결국은 자신의 아들, 만선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복수의 대상에게 살해당해 문어무덤에 묻혀버릴 것이라는 것은 예견할 수 없던 일이었다.
그러나 하용범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해심이 만선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고, 만선 역시도 해심을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해심은 복수를 꿈꾸었고, 결국은 동정호에 불을 지르고 만다. 그 배 위에 자신의 어머니와 만선의 아버지가 함께 있다는 것을 모른 체.
해심은 복수에 눈이 멀어 자신의 어머니와 만선의 아버지를 죽여버렸고, 복수는 했으되 그 사실을 알아버린 하용범에게 복수의 칼날을 쥐어주게 된다. 비밀을 지켜야했기에, 해심은 만선에게 모든 것이 복수를 위한 연기였다며 이별을 통보하고, 복수의 칼을 휘두르는 하용범과 결혼하게 된다.
덕자는 그런 하용범의 딸이나 갓난아이 때부터 하용범의 복수를 위해 해심에게 던져졌고, 해심을 엄마와 같이 흠모하여 결국은 해심과 만선의 사이를 질투하기에 이르렀다. 어렸다는 핑계를 수없이 대 보았지만 덕자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동정호에 불을 지른 것을 알려 해심을 무저갱으로 끌고 간 것도, 죽고 싶어하는 해심의 뒷머리를 잡아채 다시 지옥같은 하용범의 곁으로 데려온 것도 자신이라는 것을.
문희는 신문사에서 근무하던 중 신춘문예에 응모한 만선의 시를 보고는 시의 대상이 바로 자신이기를 바라는 헛된 욕망에, 만선의 시를 심사에서 제외시키고는 만선과 결혼한다. 그러나 만선의 사랑은 이미 해심과 함께 문어무덤에 묻혀버렸다. 그리고 그 말 그대로 문어무덤에는 두 사람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비밀이 되어 묻혀있었다.
해심은 죽음이 다가오자 문어무덤의 비밀을, 자리없이 묻힌 어머니와 아버지를 세상에 내고자 요양원에 있는 만선을 찾아나선다. 그러나 치매에 걸린 만선은 해심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런 만선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해심은 종이배를 접고, 불에 태우고, 욕조에 물을 채워 문어 흉내를 낸다. 그러나, 그런 행위는 결국 타인이 보기에는 만선의 성폭행으로 비춰졌고, 이 사건이 검사인 딸 정해선에게 전해지면서 실타래의 마지막 코가 풀리게 된다.
미로든 실타래든, 가장 큰 슬픔은 그것이 종국에 가서야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3대에 걸친 그 지난한 인연이, 그렇게 풀렸다.
탄탄한 스토리라인, 틈이 없어 숨쉬기 힘들다
최근 읽은 소설 중에서 그 스토리가 가장 탄탄했던 소설이지 않을까 싶다. 그저 이야기를 채우기 위한 억지스러운 끼워맞춤도 생각보다 거의 없었고, 모든 등장인물간의 이야기들이 교묘하게 짜맞춰져 있어 상당히 집중력있게 읽을 수 있었다. 문체 역시 그저 미스터리라고 하기에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미려해서, 읽는 재미가 쏠쏠한 소설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최근의 시류 영향을 받은 탓인지, 성추행이나 성폭행의 문제에 대한 서술과, 주인공 정해심의 인식이 소설 전체의 결과 약간은 어울리지 않게 드러난 것이다. 굳이 이야기 하지 않아도 될 부분에 대해 과민하게 선제적으로 서술한 것이 아닌가 싶은 부분이 있었다. 게다가, 젠더갈등의 면에서 서술한 부분인지, 여성의 입장과 남성의 입장을 병행서술하면서 조금은 방어적 기제를 갖춘 느낌이 어색했다. 물론, 사건의 발단 자체가 아버지의 성폭행 혐의라고는 하지만, 뭐랄까. 영화를 보는데 주인공이 아닌 조연에 갑자기 클로즈업이 들어간 기분이랄까.
하지만 그런 사소한 부분은 잠깐 눈 감아도 좋을정도로 탄탄한 구성을 지닌 소설임에는 틀림이 없다. 탄탄한 스토리라인과 미려한 문체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충분히 읽어봄직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