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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죄 : 검은 강 ㅣ 심리죄 시리즈
레이미 지음, 이연희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3월
평점 :
절판
들어가는 말
나름 살아오면서 많은 책을 접했지만, 역시나 진시황의 여파가 현재까지 미친 것일까. 중국의 문학 소설을 접한 것은 아마 처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생소한 경험이었다. 대부분 우리가 접하는 대표적인 중국 문학은 아마 무협지이거나 혹은 삼국지로 대표되는 준 역사소설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 국내 독자들에게 중국의 소설, 그것도 범죄스릴러라는 장르는 매우 색다른 분야가 된다. 특히나 사회주의 체제를 아직까지도 고수하고 있는 중국의 공안이 배경이 된다면 더욱. 우리가 익히 들어온 중국의 그 절대적인 공안의 힘. 그것이 소설에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대신 우리가 겪어본 적도 없으면서 무서워하는 그 공안이라는 집단마저 무색하게 만드는 사회비리는 어쩌면 단순히 소설 속의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셜록인가 했지만, 톰 크루즈
소설을 읽는 내내 느낀 것은, 마치 생소한 동남아 음식을 접할 때에 코 끝에 아련히 맴도는 낯선 향기. 중국풍이라 불러도 될만큼 특이한 향기였다. 소설에 군데군데 묻어나는 중국의 느낌은,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반갑지만은 않았다. 확실히 서양의 문물에 더 물들어 있는 미디어에 또한 익숙해져 있는 나같은 일반 독자들은 약간의 반감도 생길 수 있을 것 같다. 아, 중국이구나. 라는 것이 소설을 읽는 내내 단순히 등장인물의 이름에서가 아니라 무언가 의식의 흐름에서 느껴진다. 이것은 참 말로 표현하기 힘든데, 읽어본다면 아마 대부분의 한국 독자들은 느끼지 않을까 싶다. 특히, 중간중간 '형님'이라는 단어의 선택은 '따거'라는 익숙한 호칭에 대비되면서 왠지모를 거부감을 가져온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나 선입견 탓일 수도 있겠다.)
그런 문화적 차이는 어찌되었든 소설의 배경에 따른 것이므로 차지하고, 초반 소설에서 느낀 것은, 약간 중국형 셜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빼어난 추리력의 주인공의 등장이 조금은 과도하다 싶었다는 것. 마치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적의 모든 의도를 꽤뚫고, 심지어 죽어서도 앞 날을 예견하여 적의 전술을 깨부수는 것처럼 약간은 추리의 폭이 너무 넓었다 싶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후반부로 갈수록 밝혀지는 갖가지 음모와 배후들 속에서 결국은 주인공이 혼자서 헤쳐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셜록을 벗어버리고 톰 크루즈가 되어버린 다는 것이다. (셜록을 벗었다기보다도, 갑자기 중반부터는 주인공의 추리력이 매우 현저히 떨어짐과 동시에, 동료애와 정의감이 불타올랐다는 표현이 어울리겠다. 그러나 전작 시리즈를 모두 읽은 것은 아니기에, 이런 주인공의 심리변화가 어떤 연유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작품 내에서 별도의 사건없이 책 서두에 드러났던 주인공의 셜록 뺨치는 추리력이 사라진 것은 조금 당황스럽다.)
물론, 중국의 체제와 (꼭 중국은 아니더라도) 거대한 비리가 맞물려 권력과 손잡은 범죄집단을 일개 경찰이 다 때려잡는 것은 '정도'를 걸어서는 불가한 것이 현실이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가 소설에서 바라는 것은 그것이 현실과 극도로 닮았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불가능해보이는 것들이 실현되어 정의가 바로서고 불의가 처벌받는 그림 아니겠는가. 물론, 톰 크루즈와 비슷한 방식으로 주인공이 정의를 밝혀낸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중국이 그렇게도 매도하는 미국의 흔한 '영웅주의' 스토리와 별반 다르지 않아 약간은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몇가지 일련의 사건들을 큰 하나의 스토리로 이어가는 구도는 조금 과장된 우연이라고는 하지만 꽤나 몰입하는데 큰 도움을 주기는 했다.
정의는 살아있는가
이런 범죄스릴러물, 특히나 주인공이 그 범죄를 해결하는 공권력인 경우에 대부분은 사회 권력 비리에 연관된 경우가 많고, 이런 현상은 현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확실히 중국에서 이 소설이 큰 호응을 얻었다면 분명 이는 중국의 뼈깊은 비리를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에 대한 방증이라 하겠다.
특히나 중국은 역사적으로 특정 인물의 영웅화에 매우 적극적인 면이 없지 않은데, 춘추전국시대의 유비나 관우라던지, 일제시대의 무인 곽원갑이라던지 하는 사람들은 민중의 영웅으로 추대되어 있다. 어느 시대 어느 민족이나 각자의 영웅적 인물이 있기 마련이지만, 중국이 특히 그러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적으로 그들의 역사를 연구해보지 않은 필자의 개인적 소견으로 봤을 때, 이는 상대적으로 다민족 안의 소수인 한족이 중국을 통치하면서, 민중의 시선을 돌려 현재 자신들을 다스리는 일개 사람보다는 추상적 영웅에게 시선을 돌리려 했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하다. 혹은 사회주의 체제에서 특히나 억압당하고 사찰을 당했던 민중들이, 자신들의 본심을 숨기고 살아남으면서도, 현 시대를 개혁해줄 누군가를 원하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팡무는, 사회 권력층의 비리를 민중 대신 해결해주는 중국의 탐 크루즈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 이 서평은 몽실서평단으로부터 서평단 모집에 선정되어 제공받아 작성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