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서 살아간다는 것
사쿠라기 시노 지음, 이정민 옮김 / 몽실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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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사유미와 남편 노부요시가 주요인물로 구성된 이야기다.

노부요시의 직업은 영사기사로 가정에 큰 도움이 못돼 집안일은 주로 노부요시에게 맡겨지고 간호사인 사유미가 가장 역할을 한다.

이 부부의 처음 만남의 순간, 홀로 지내는 어머니를 모시는 남편 노부요시이야기, 노부요시가 빠진 사유미와 부모님의 가족여행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집에서 나란히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는 저 중년부부처럼 소설은 정말 

그래서 평범한 우리 부부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소설이라는 장르에 걸맞은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일들이 아닌, 우리 집과 옆집에서도 충분히 있을 법한 부부를 둘러싼 갈등들을 다뤘다.

사회적, 경제적인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서 안하무인 시어머니까지 모시는 사유미가 힘들어할 거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럼에도 사유미는 남편의 모든 것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서로 존중과 배려의 모습이 잠시나마 나를 반성하게 만든다. 부부란 무엇일까? 사랑도 중요하지만 경제적인 것도 중요하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뜨거운 사랑은 가족 간의 애정 어린 사랑으로 바뀐다고 생각한다. 사회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나는 이 부부생활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까? 사유미를 보며 생각해 보게 되었다.

결혼 3년 차인 신혼부부지만 책에서 주는 '확실할 수없이 여전히 불안한 매일 동안, 오늘에 가장 함께하고 싶고 의지할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믿음을 확신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공감이 되었다. 부부를 둘러싼 각종 풍파들이 얼마나 많은지, 결국 노인이 되어 내 옆에 있을 사람은 배우자뿐이란 걸 깊게 공감한다.

저자는 이 책을 단숨에 읽는 것은 엄금하고 하루에 한 편씩 열흘간 읽기를 권한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흐르는 감정을 느끼라고 말이다. 꼭 이 문장 때문에 천천히 읽은 것은 아니지만 권장대로 천천히 읽었는데, 어떤 책이든 천천히 곱씹으면 책에서 주는 메시지를 더 많이 받을 것이다.

- 이 서평은 몽실서평단으로부터 서평단 모집에 선정되어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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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으로 가는 길
데이브 에거스 지음, 앤젤 창 그림 / 상수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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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는 다른 크기. 보통 책의 2.5배에 달하는 크고 얇실한 모양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으로 가는 길

스토리 없이 그림으로만 구성된 어린이 책이다. 그래서 글이 채워지지 않은 아름다운 그림 빈 공간에서 어린이들이 스토리를 만들어 나 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글이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아이가 창의력을 발휘하는 기회가 주어지는 동화책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특히나 눈에 띄게 귀여운 호랑이가 메고 있는 저 노란 의자는 왜 메고 있는 것이며 어디를 그렇게 누비고 다니는 건지 호기심이 생긴다. 호랑이는 혼자 이곳저곳을 다니지만 호랑이 근처엔 항상 작은 친구들이 있고 그 친구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거기에 아름다운 풍경들이 너무나 황홀하다. 짧은 페이지지만 한 장 한 장에 담긴 풍광을 보고 있자면 마치 내가 그곳에 온 듯한 느낌도 든다.

계곡과 평야, 오아시스, 오로라 협곡과 모래언덕 등을 누비며 호랑이가 바라본 대자연은 오만가지 색채로 웅장하며 위엄 있고 엄숙하며 큰 감격과 기쁨으로 오기도 하다. 특히 툰드라에서 본 쨍한 형광색의 오로라는 잘 표현되었다. 노란 의자를 멘 하얀 호랑이가 세상 이곳저곳을 누비며 도착한 곳엔 마음이 왈칵 차오르는 묵직한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엔 그동안 하얀 호랑이가 누빈 장소의 번역과 설명이 들어 있어 완성도가 높다.

경의로운 대자연을 표현한 다양한 색감의 그림과 귀엽고 특별한 하얀 호랑이와 세계를 누벼 도착 끝에 마주한 진정 소중한 것이 가져다주는 뭉클함이 특징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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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합니다
라오양의 부엉이 지음, 하진이 옮김 / 다연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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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마음에 꼭 들어서 서평단을 통해 받은 책이다.

'나는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합니다' 특히나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책에서도 비슷한 맥락으로 언급되었지만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연기자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과 결이 비슷한 현실 이야기다.

외관적인 특징은 360p 두꺼운 편에 속하는 두께와 무게감으로 들고 다니면서 읽기에는 무리가 있고 속지에 예쁘고 아기자기한 그림들이 심심치 않게 첨부되어 있어 눈에 피로도가 감소한다. 많은 글자 속에 예쁜 그림을 만나면 한 결 읽기가 수월했다. 중국인이 쓴 책을 읽은 건 내가 기억하기로 처음이다. 그래서 수많은 사례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중국인 이름이라 이색적이었다. 어차피 한 편의 사례라서 이름을 줄곧 외울 필요가 없어서 좋다.

다루고 있는 내용은 들이 수록되어 있다. 글의 스타일 대부분은 사례를 통한 결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느 날 누구랑 이야기를 하는데 ~ 이래이래 이랬다. 그래서 이래야 한다. 귀여운 그림과는 달리, 따뜻함보다는 날카로운 듯 현실적인 사례와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시간은 위로라기보다는 현실자각시간이었다.

저자는 모든 일에 태연자약한 선배 이야기와 애완견의 탈출로 인한 배상 문제 사례로 원망이나 분노를 꾹꾹 가슴에 눌러 담아 숨기라 말한다.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 있는 가면을 쓸 줄 알아야 하며 눈이 뒤집힐 정도로 화가 치민다면 아예 눈을 감으라 한다. 내가 줄곧 배웠고 경험했던 답안과 다른 답안이다.

감정을 그저 숨기는 것이 맞는 것일까? 속이 썩어 병이 될 것 만 같은데..? 감정을 참고 조절할 수도 있어야 하지만 각기 다른 노하우로 분출 또한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참으라는 식의 해결책은 사람을 더 외롭고 고독하게 만들고 마음의 병을 만든다.

가끔.. 아니 자주 그런 자각을 한다. 작은 일에 걸핏하면 욱해서 남에게 상처가 될 줄 알면서도 본인도 알아야 된다는 생각으로 악담(니가 모두에게 피해를 주고 있어, 상식적인 말을 해)을 내뱉거나 화를 내고 그냥 넘어갈 걸 후회를 한다. 가시 돋친 고슴도치는 나다.

하지만 아직도 정답을 모르겠다. 서로 좋자고 아무 말도 안 하면서 개인의 발전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 이 서평은 컬처블룸리뷰단으로부터 리뷰단 모집에 선정되어 제공받아 작성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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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단단히 끼였다 - 신입과 꼰대 그 사이 어디쯤
피터(Peter) 지음 / 책밥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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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10년 정도 넘는 회사 생활을 하고 몇 명의 팀원을 관리하는 팀장이다. 나는 낀대라는 말을 여기서 처음 접했는데 그 뜻은 라고 부른다고 한다. 꼰대와 연결되어 연상되는 낀대라는 표현이 참 적절하고 생각하며 무릎을 쳤다. 아마 이 단어는 꼰대 못지않게 자주 쓰이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이 눈에 띈 이유는 희소성이다. 주제가 좋았다. 나도 역시 10년이 넘은 연차로 언제 가는 위치하게 될 팀장이라는 자리에서 어떤 생각과 행동으로 회사 생활을 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나뿐만 아니라 수직적 형태 조직에서 몸담고 있는 누구라도 낀대의 사생활을 궁금할 것 같다. 90년 대생의 젊은 세대와 꼰대 세대의 중간에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차피 사람 따라 다른 케바케지만 생각을 간접적으로 접해 좋은 경험이 되는 책이다.

내용에는 이 담겨있다. 이런 낀대의 사례를 보고 저런 부분은 조심해야지, 나도 저렇게 행동해야지, 팀원들과는 이렇게 소통을 해야 하는구나 등의 많은 팁들을 얻었다.

내가 느껴진 저자는 그래도 꽤 정직하고 노력하는 그런 팀장으로 보였다. 신입사원에게 좋은 선배로서 좋은 영향을 끼치려 하고 선배들에게도 모범적이고 실적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회사에 대한 애정도 느껴졌다. 심지어 책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까지 한 가지 길을 제시하는 내비게이션 같은 역할도 있었다.

저자는 후배들과 선배 사이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하면서 조직 내부에 갈등이 쌓이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하면서 늘 눈치를 본다는 대목과 연차가 쌓일수록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에 실무에서 손을 땔 수 없다는 내용들이 애잔하기도 했다. 팀원들은 속속 떠나버리고 점심 식사를 혼자 하는 팀장님의 모습이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 받아들이는 것이 맞지만 옳은 모습인지 확신이 들지 않아 씁쓸하다.

본인의 위치와 시대의 흐름과 신입과 꼰대 사이에서 저자는 결국 어떤 결론을 내릴까

내가 읽으면서 가장 공감 갔던 말은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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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문법 -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소준철 지음 / 푸른숲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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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사회학자들이 사회적 문제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새가 하늘을 날고, 물고기가 헤엄치듯 그 본연의 위치에서 본연의 업을 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가 사회학자로써 폐지를 줍는 노인(그 중 특히 여성)을 주제로 삼아 필자의 말처럼, 그 어떤 변화를 도모한다기 보다는 문제를 '가시화' 혹은 '기시화'함을 그 목적으로 삼은 것은 당연지사다. 하지만, 염세주의자인 독자로써 이런 사회적 문제에 대한 학문적 접근 혹은 일견(一見)한 통계적 해석에 대해서는 매우 비관적이자 비난적이다. 사회구조적 문제에 앞서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세상 역시 변하는 거대한 흐름을, 단순히 한 시점(광복 이후부터 현대까지라고 하더라도 인류의 역사에서 보면 한 점에도 미치지 못하는)에서 보고 평가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너무 자만한 행태이지 않을까.

폐지 줍는 노인에게 주어질 '어떤 복지'

필자는 개인의 어떤 잘못보다는 시대의 흐름과 정책적 편협, 그리고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폐지를 줍는 노인들의 빈곤문제가 더욱 부각되며, 그 문제에 대한 해결 역시 사회 단위의 해결책을 제시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일견, 맞는 말이다. 그 세대들은 상대적으로 교육에 빛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며,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기존 노인들이 받던 대우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가정 구조가 무너지면서 대를 이어 이어오던 부양의 고리도 끊겨버렸다. 그럼에도 역부양의 의무에는 지고할 정도로 맹목적인지라 하루 몇 천원의 벌이에도 자식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아니, 도움을 주려)한다.

그런 과정에서 재활용품의 순환 고리에서 구조적으로 공석이 생긴, 그리고 노인의 노동력과 경력으로도 충분히 활동이 가능한 재활용품 수거업을 차지하게 된다. 필자의 주장처럼, 이 역시 정부차원 혹은 경제구조적으로 그 빈틈을 없애버린다면 노인들이 각종 사고와 육체적 질병을 일으키는 재활용품 수거업에 뛰어들지 않아도 될 것이긴 하다. 그러나 그 전에 전제가 되어야할 것은, 그렇게 노인의 소득원을 잘라낼 구조적 변화에 앞서 그 노인들의 생계를 책임질 어떤 복지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런 '어떤 복지'가 과연 노인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옳은가하는 문제이다. 필자가 들여다본 노인의 빈곤이 과연 노인에게 국한되어 있는가의 문제다. 노인들이 자가, 전세 혹은 월세라도 그들의 주거지에서 소득생활을 영위하는 상황에, 어떤 젊은이들은 그 월세마저 구하지 못하고 고시원에서 아르바이트나 혹은 막노동으로 살아간다. 노인의 낢은 생애가 20년이라고 했을 때, 그 노인이 살아온 삶만큼의 길이를 더 살아내야하는 희망없는 젊은이 역시 많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주어져야할 '어떤 복지'는 없는가.

모든 복지는 현세대가 구세대를, 미래세대가 현세대를 짊어지는 것이다.

개인의 잘못만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회의 잘못이 되진 않는다

모두의 책임은 있다. 구조적 문제도 있다. 정책적으로 보완해야할 부분도 있으며, 사회적으로 인식이 바뀌어야될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를 요구하기에 앞서, 우리가 명심해야할 것은 이 역시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본인이 매우 염세적인 부분은 인정하면서) 그들을 보면서 느끼는 점은, 과연 저들을 부양할 의무를 지닌 자들은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가상의 인물 김영자씨의 자녀는 모두 6명이며, 그 자녀들이 매달 5만원씩만 보내준다고하더라도 30만원이다. 이는 김영자씨가 매달 하루도 빠짐없이 폐지를 주었을 때 벌 수 있는 소득이다. 그 자녀들이 김영자씨와 같은 시대적 흐름을 겪은 것도 아니니, 김영자씨가 겪은 사회, 구조적 모순을 적용시키지 않아야함은 부언하지 않겠다. 그렇다면 그 자식들이 그 부양의무를 다 하지 않은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혹은, 젊어서 흥청망청 노름이나 도박에 빠져살다가 기초수급자가되어 역시 본인의 노력없이 살면서 폐지를 줍는 자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필자의 말처럼 모두의 상황은 다르다. 그렇기에 일견한 필자의 예를 통해 그 대상 모두에 대한 복지를 펴는 것은 그 복지를 떠안아야하는 젊은세대에게 큰 죄가 될 것이다.

사회적, 구조적 문제들이 산재해있다. 그러나, 어느 세대이든 그러한 문제들은 있었고, 그런 문제들이 해결되는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심지어 어떤 문제들은 시간이 흐른 뒤에는 애초에 해결책이 필요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변해버리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현재 더 집중적으로 조명되어야할 것은 통계적으로만 100만명에 이르는 실직자다. 그들이 바로 구세대를 짊어질 현세대이고, 미래세대를 키워낼 수 있는 현세대이며 '그 어떠한 복지'라도 만들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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