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를 합시다 새소설 6
배상민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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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잡담

나는 어찌보면 참 화가 많은 사람이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나는 참 적이 많은 사람이다. 적이 많다는 것이 내가 남에게 위해를 가해서 생긴 적이라기보다도, 나의 기준에 깐깐하고 스스로 관대하지 못함에서 오는 타인에 대한 잣대를 곧이곧대로 적용해서 오는 미움이 많은 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참 복수가 필요하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복수라는 것이 결국은, 내게 오는 위해에 대해 반대 급부로 줘야하는 것인데, 내게 오는 위해가 없음에도 난 복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참, 삐뚤어진 놈이다.

탄탄한 문장력, 하지만 너무 빠른 말 속도

전반적으로 작가의 문장력은 뛰어나다. 웬만큼 긴 문장을 쭉 나열함에 있어서도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어휘선택이나 단어선택이 탁월하다. 중간중간 상황에 따른 비유나 묘사 역시 늘 적당하고 모자람이 없이 뛰어나다. 하지만 뭐랄까. 작가의 이야기는 마치 들어주는 상대방이 이미 찻잔의 커피를 다 마시고 일어나려하는 것처럼 바쁘다. 문장이 거의 숨없이 넘어가는 통에, 조금만 읽다보면 페이지를 넘겨야했다. 후반부로 들어서면서야 등장인물간의 대화가 중간중간 삽입되면서 숨이 트인다. 인터넷이나 유투브 등에서 단문장에만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아마 집중하지 않으면 문장 전체의 맥락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만남과 만남의 연결고리에서 누가 누구의 암나사이고 수나사인가.

작가는 복수를 그 전면에 내세우긴 했지만, 결국은 우리 사는 세상 서로의 연결고리에서 누구하나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이야기한 것이 아닌가 싶다. 첫 등장부터 의아함을 자아냈던 '앙칼'. 읽는 내내 뭔가 전체적인 흐름이 야릇하게 눈에 보일 듯이 느껴진 것은, 어찌보면 반전이 없었다는 점에서 아쉽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의 삶이 그럴 수 밖에 없음을 방증하기도 했다.

가볍다면 가볍고, 무겁다면 무겁고.

단순히 소설로만 본다면, 솔직히 라이트노벨이라고 해도 무방할만큼 가벼운 소설이다. 주인공, 사건, 발단, 긴장, 절정, 해소. 흥미로운 요소인 SNS, 판춘문예, 왕따. 그리고 복수까지. 게다가 전반적으로 등장인물들의 등장과 관계, 소설의 흐름도 적당히 긴장감 넘치면서도 지루하지 않을만큼 잘 짜여져있다.

하지만 내가 괜시리 무겁게 받아들인 것인지 모르지만, 그 내면의 인간관계와 인과관계를 내 삶의 안에서 들여다보자니 소설 자체가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았다. 상당히 가볍게 읽을만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도중에는 전혀 못 느꼈던 무거움이 다 읽고나서 찾아온다.

다 보여? 보여도 이정도면.

위에도 이야기 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흐름의 속도, 문장력, 묘사력, 소재 등 모든 부분에서 모자람은 없는 꽤 괜찮은 소설이다. 반전이 없는데다가, 배경설명이 없는 이유로 뭔가 맥락이 없어 보이는 등장인물들의 등장과 능력이 아쉽지만, 그래도 이정도의 소설이라면 비 그친 날 잠깐 짬 내어 나간 동네 공원 벤치에서 시간을 들일만 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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