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절반은 여성들, 딸들이고 그 딸들의 부모의 반은 아버지이니 이 책은 세상의 모든 딸과 모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아버지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딸들의 서사 속에서 엄마와 딸 관계 못지않은
또 다른 원초적인 인간관계의 축인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재조명하고 싶었다.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파는 것은
어쩌면 발아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깊은 땅 속을 깊이 내려가는 것과 비슷한 일일 것이다. 땅 속 깊은 곳에 무엇이 똬리를 틀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의 딸들과 아버지들의 특별한 관계에 불을 밝히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많은 딸과 아버지들에게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심층심리학적으로 풀어내면서
탁월한 통찰을 주고 있는 머린머독은 어버지의 유형을 몇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이런 아버지 유형은 딸의 인격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p.36~37
머독에 따르면 부재형 아버지의 딸들은 아버지가 자신을 버린 것이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오랫동안 자책하며 다른 사람의 사랑을 얻으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 된다고 한다.
애지중지형 아버지의 딸들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게 되어 아버지 대체물을 끊임없이 찾게 된다.
유혹형 아버지의 딸들은 딸과 건강한 심리적 경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정도를 벗어난 아버지의 행동으로 인해 다른 관계에서도 정신적 고통을 받기도 한다.
수동형 아버지의 딸들은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다고 느끼고 일생 동안 아버지에게 부족했던 책임감과 권위를 지나치게 보상하려 애쓴다.
지배형 아버지의 딸들은 순종하거나 반항하느라 인생을 허비하고 중독형 아버지를 둔 딸들은 주변의 사람과 상황을 끊임없이 구조화하고 통제하려고 애를 쓴다.
p.77
아버지와 어떤 식으로 헤어진 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물리적으로는 주변에 없지만 심리적으로는 계속 딸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유령 아버지, 유령 애인(ghost lover)이 만들어진다. 특히 이미 없어진 아버지가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는 딸들은 “아빠 믿지? 아빠가 널 보러 갈 거야”라고 했던 말을 몇 십 년 동안 잊지 않고 있거나 “언젠가는 아빠가 나를 보러 올 거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마음속에 유령 아버지를 품고 산다. 마치 《소공녀》의 주인공 세라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언젠가는 자기를 만나러 올 것이라는 공상을 오랫동안 깨지 않으려고 했던 것처럼.
p.128~129
‘말이 씨앗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심리학에서는 ‘자기충족적 예언’이라는 것이 있다.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누군가에게 긍정적 혹은 부정적 기대를 받거나 예언을 들었을 때 그 영향을 받아 결국에는 그 기대와 예언을 스스로 성취하는 현상이다.
아버지에게 늘 부정적인 말과 기대를 들은 태희 씨는 아버지의 기대와 말대로 행동하고 자신에 대해 그렇게 믿었기 때문에 부모가 예언한 대로 형편없는 모습이 되어 갔다.
30대 초반이 된 그녀는 그 시절의 자신에 대해 그저 관심받고 싶었을 뿐이고,
그저 인정받고 싶었을 뿐이었다고 항변하고 싶어 한다. “나도 사람이라고, 나도 딸이라고, 나도 할 수 있다고”라고 말이다.
철학자 존 듀이(John Dewy)는 “인간이 가진 본성 중 가장 깊은 자극은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끼고 싶은 욕망이다”라고 했다.
마땅히 받았어야 할 인정과 사랑을 받지 못한 아버지의 딸은 자기에 대한 존중감을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p.155
구원을 받고 싶은 욕망, 상대 남자를 구원해주고 싶은 욕구나 환상을 가진 여성들은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대해 다울링이 한 메시지,
“자유로워지고 싶은 열망과 보호받고 싶은 소망과의 갈등을 극복하고 자신의 존재에 책임을 져라”는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결국 남자든 여자든 누군가에게 구원을 받기보다는 스스로 각자의 존재에 대해 깊이 책임을 져야 한다.
자신의 삶에 대해 자신이 지지 않는 책임을 상대가 대신 질 수는 없다.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 백마를 마련하고 그 위에 올라탈 수 있어야 한다.
p.186
돈과 권력을 갖고 있는 아버지뻘의 슈거 대디를 찾는 여성들은 여성주의(feminist)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역량강화 (empowerment)가 필요한 사람이다.
이들은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현재 상황이나 관계에 적응하기보다는 변화를 지향해야 한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도 사회의 권력 구조와 마찬가지로 권력 구조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어떤 아버지의 딸들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권력관계에서 약자 위치로 스스로를 몰아넣기도 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뭔가를 성취하기보다는 힘 있고 돈 있는 남성에게 의존하는 여성은 개인적,
관계적 영역에서 어떻게 하면 스스로 힘을 가질 수 있는지 모색해야 하지만 이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는 안타까운 아버지의 딸도 많다.
p.226~227
아버지가 일부러 딸에게 큰 배신감을 안겨줄 필요는 없지만 정신분석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적절한 좌절(optimal frustrati on)은 필요하다.
언젠가는 아버지가 만들어준 안락한 집을 떠나 세상이라는 거친 바다를 항해해야 하는 딸에게는 아버지의 눈먼 사랑이 힘이 되기도 하지만 독이 될 수도 있다.
좌절을 주되 적절하여야 한다는 것이 이 말의 핵심이다.
어느 날 사랑을 듬뿍 주던 아버지가 갑자기 딸의 인생에서 사라진다든지, 그렇게 자상하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했다고 술로 지새면서 갑자기 난폭해지는 그런 좌절이 아니라 유태인 아버지처럼 딸이 씩씩하게 앞날을 개척해나갈 수 있을 정도의 힘은 남겨주어야 한다.
p.280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한 희망은 있다. 그 희망은 저절로 오지는 않는다.
애도 과정을 지금이라도 충분히 겪어야 한다.
애도 과정을 겪으며 서서히 애정 대상에 대한 상실감에서 벗어나 가슴 깊숙이 숭숭 났던,
그래서 한겨울 매서운 추위처럼 늘 시리게 만들었던 그 구멍을 메울 수 있다.
애도란 다름 아닌 충분히 슬퍼하는 일이다.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나왔어도 슬픔은 오래된 눈물로 가슴속에 고여 있다.
오래전에 읽은 펄벅 여사의 글이 생각이 난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슬픔이 있다. 달랠 수 있는 슬픔과 달래지지 않는 슬픔이다.
달랠 수 있는 슬픔은 살면서 마음속에 묻은 슬픔이지만 달랠 수 없는 슬픔은 삶을 바꾸어놓으며 그 자체가 삶이 되기도 한다."
아버지의 느닷없는 죽음이나 상실은 평생 달랠 수 없는 슬픔이 되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삶이 되기도 한다.
어쨌든 삶은 그렇게 슬픔을 머금은 채 살아지기도 하니까 말이다.
p.298~299
아버지가 과거에 자신에게 해주지 못한 것, 잘못한 일로 인해 여전히 고통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과거의 고통이 현재의 삶과 행복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스스로를 용서하는 것도 필요하다.
‘아버지 때문에 고통받는 내가 왜 나를 용서해야 하는 걸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충분히 좋은 양육을 받지 못한 사람은 몇 가지 이유로 자신을 비난하고 자책하기도 한다.
그 이유에는 우선 아버지가 자신을 대하던 방식으로 자신을 대하는 것이 포함된다.
학대를 받거나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한 딸은 스스로에게도 좋은 대접을 해주지 못하고 스스로를 무가치하게 여긴다
. 아버지를 싫어하고 심지어 경멸하였던 성향이 자기에게도 나타나는 것이다.
예컨대, 아버지에게서 폭력을 경험한 딸은 아이를 양육하면서 아이들을 학대하기도 한다.
심지어 자기학대를 일삼으면서 자신을 함부로 대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버지 용서와 자기 용서가 같이 일어나야 진정으로 치유의 길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