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1(斷想1)

저자 : 박용철

가끔가끔(새삼스리)
살기가 싱거워집니다.
그렇다고
앨써 죽기야 또 어찌합니까?
그러기에
한 다리를 끌고 절름발이 걸음을 걷습니다.

잊고 살다가도
들쳐보면 싱거웁지요.
열세 살 값도 없지요마는
그렇다고
앨써 죽기는 또 힘들지요
우리 웃음은 속이 비이고
기쁘단 말은 字典에서도 지워지오

나는 아주 비판하기로 결심을 했소.
- P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에 젖은 마음

저자 : 박용철

불도 없는 방안에 쓰러지며
내쉬는 한숨 따라 「아 어머니!」 섞이는 말
모진 듯 참아오던 그의 모든 서러움이
공교로운고임새의 무너져나림같이
이 한 말을 따라 한번에 쏟아진다.

많은 구박 가운데로 허위어다니다가
헌솜같이 지친 몸은 일어날 기운 잃고
그의 맘은 어두움에 가득 차서 있다.
쉬일 줄 모르고 찬비 자꾸 나리던 밤
사람 기척도 없는 싸늘한 방에서

뜻 없이 소리내인 이 한 말에 마음 끌려
짓궂은 마을애들에게 부대끼우다
엄마 옷자락에 매달려 우는 애같이
그는 달래어주시는 손 이마 위에 느껴가며
모든 괴롬 울어 잊으련 못 마음놓아 울고 있다 - P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악마(小惡魔)

저자 : 박용철

내 심장은 이제 몹쓸 냄새를 뿜으며
가마 속에서 끓어오르는 콜타르 모양입니다.

가죽히 들리는 시냇물 소리도 귀찮고
개구리 울음은 견딜 수 없이 내 부아를 건드립니다.
내가 고개 숙이고 들어가지 아니치 못할
저 숨막히는 초가지붕을 생각고
나는 열 번이나 들쳐서 나무칼을 휘둘러서는
애먼 풀잎사귀를 수없이 문지릅니다.

비웃어주는 별들도 숨어버리고
반 넘은 달이 구름에 싸여 희미합니다.
힘없는 조으름이 온 나라를 다스리고
배고픔이 날랜 손톱으로 관장을 긁을 뿐입니다.

지리한 장마 속에 귀한 감정은 랑이가 피고
요행히 어리석음에 동말을 타고 돌아다녀서
난장이가 재주란답시뒤궁구르면
당나귀의 무리는 입을 헤벌리고 웃습니다.

이러한 공격을 내가 더 어떻게 계속하겠습니까?
이제 내 감정은 짓부비어 팽개친
종이 부스러기 꼴이 되어 버려져 있습니다. - P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디로

저자 : 박용철


내 마음은 어디로 가야 옳으리까
쉬임없이 궂은비는 나려오고
지나간 날 괴로움의 쓰린 기억
내게 어둔 구름 되어 덮이는데.

바라지 않으리라던 새론 희망
생각지 않으리라던 그대 생각
번개같이 어둠을 깨친다마는
그대는 닿을 길 없이 높은 데 계시오니

아-내 마음은 어디로 가야 옳으리까.
- P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대로 가랴마는

저자 : 박용철


설만들 이대로 가랴마는
이대로 간단들 못 간다 하랴마는

바람도 없이 고이 떨어지는 꽃잎 같이
파란 하늘에 사라져버리는 구름쪽 같이

조금만 열로 지금 수떠리는 피가 멈추고
가는 숨길이 여기서 끝맺는다면-
아-얇은 빛 들어오는 영창 아래서
차마 흐르지 못하는 눈물이 온 가슴에 젖어나리네.
- P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