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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크래시 2
닐 스티븐슨 지음, 남명성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힘처음 책장을 펼치면 "X파일"에서 자주 봤음직한 배경(어스름한 저녁 혹은 새벽, 까맣게 그늘진 나무들)을 뒤로 하고 닐 스티븐슨이 양 다리를 벌리고 팔은 뒷짐을 진 채 당당하게 서 있다. 수염과 머리를 덥수룩하게 길러 휘날리고 있다. 이 사진을 보면 정말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SF 공상과학 소설을 쓸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의 이력이 특이하다. 과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물리학과와 지리학과를 모두 전공 이수했다. 그리고선... 소설가가 된다.
이런 특이한 이력 덕분인지 그의 책에선 정말 방대한 양의 정보들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뒷부분 '감사의 말'에서 그는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으며 많은 정보를 얻었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그 자신의 것이 되지 않으면 소화할 수 없을만큼 많은 양의 지식을 밑바탕으로 씌여진 책이다. 역사, 언어학, 인류학, 고고학, 종교, 컴퓨터과학, 정치, 기호학에다 철학까지 더해진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한 편의 영화라 할 만한 스토리가 전개된다.
사실, 내게는 조금 벅차다. 난 종교에 대해서도 컴퓨터 과학에 대해서도, 정치나 기호학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나마 조금 흥미가 있었던(아마 누구나 그러할 테지만) 신화 이야기도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해서가 아닌, 수메르와 힌두 신화..등에 대한 것이어서 내가 아는 것은 더더욱 없다. 그러니 내게는 <스노 크래시>가 한장 한장 이해하고 넘어가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은 역사니 과학이니 컴퓨터 등을 다룬 과학 정보책이 아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너무나 좋아했던 SF 공상과학 소설인 것이다. 그러니 많은 정보와 지식은 그냥 읽고 넘기면 된다. 하나하나 이해하기 보다는 '그런 이야기도 있구나~'하고 넘기면 되는 것이다.
<스노 크래시>는 사실 1992년에 출간되었다.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전이고, 가상공간에 대한 정확한 개념도 없던 때이다. 그럴 때, 닐 스티븐슨이 <스노 크래시>를 들고 나왔다. 이 책을 통해 가상공간 안에 돌아다니는 또 다른 나를 '아바타'라는 단어로 이야기했고, 그 '아바타'라는 단어는 이제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소설 속 '아바타'들이 돌아다니는 공간인 '메타버스'도 이제는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다. 내게는 "심즈"라는 게임을 떠올렸는데, 닐 스티븐슨은 이미 오래전에 그러한 공간과 인물들을 생각해 낸 것이다. 이것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힘이겠지. 읽을수록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배경이나 인물 주변환경에 대한 묘사도 아주 뛰어나서 읽는 내내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스노 크래시>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많은 다국적인 사람들이 많다. 특히 주인공인 히로는 미국인 아버지에 한국에서 일본 탄광으로 끌려가 일하고 있던 한국인 어머니를 가진 사내다. 그래서인지 한국에 대한 묘사가 중간중간 나와서 흥미롭다. <스노 크래시>의 영화판권도 팔려 <데몰리션맨>을 연출했던 마르코 브람빌라 감독의 주도로 시나리오 초고는 완성되었다고 한다. 얼른 영화로 제작되어서 스크린으로도 보고 싶다.
p.s 스노 크래시 (snow crash) : 컴퓨터 시스템의 이상으로 모니터로 보내는 전자빔을 제어하는 부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현상. 이때 전자빔이 아무렇게나 화면을 쏴대면서 화소들이 눈보라를 일으키는 것처럼 소용돌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