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라아빌루] 서평을 올려주세요
-
-
발라아빌루 - 어부 나망이 사막 소녀 랄라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J.M.G. 르 클레지오 지음, 김화영 옮김, 조르주 르무안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평점 :
"옛날이야기"라고 하면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어스름한 저녁, 화롯불을 사이에 두고 옹기종기 모여앉아 할머니가 옛날이야기를 해주시는 그런 풍경 말이다. 내가 할머니에게 옛날이야기를 듣던 시절에는 이미 화롯불은 없었는데도, "옛날이야기"라고 하면 어김없이 그런 풍경이 떠오르고 만다. 왜 어스름한 저녁이어야 하고, 어머니가 아닌 할머니였으며, 화롯불인지..... 따지고들면 끝이 없지만 결국 그런 분위기야말로 아이들이 이야기를 듣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라는 것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옛날이야기를 듣던 그런 풍경이, 바로 여기에도 있다. <<발라아빌루>>, 이 책은 르 클레지오의 <<사막>> 중에서 일부분을 발췌한 그림책이다. 소녀 랄라의 이야기가 <<사막>>이고, 어부 나망이 사막 소녀 랄라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발라아빌루>>이다.
<<발라아빌루>>의 첫부분은 너무나 서정적이어서 처음엔 당황스럽기도 하다. 마을 사람들이 불을 좋아한다는 이야기, 하루 중에 어떤 불들이 있는지(아침을 짓는 불, 모닥불, 저녁놀 속의 화롯불 등등), 어부 나망이 배의 널빤지 틈새를 메울 송진을 끓이는 모습, 랄라가 어부 나망을 위해 바늘잎을 따 모으는 모습 등등... 아무런 이야기가 없는 이런 묘사들은 소녀 랄라가 사는 동네의 모습을, 또는 소녀 랄라 자체에 대하여, 그리고 모닥불이 피어오르고 그 주위로 모여드는 아이들의 모습을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게 한다. "글"이란 게 이렇게나 아름답과 서정적이며 감성적일 수 있구나...하는 느낌이 절로 든다.
<<발라아빌루>> 속에는 작은 이야기가 하나 들어있다. 바로 어부 나망이 모닥불 근처로 모여든 아이들에게 해 주는 옛날이야기 <발라아빌루>이다. 이 이야기는 낮에서 저녁으로 가는 길목에 아이들을 숨죽이게 만들고, 궁금하게도 하고, 무섭게도 하고, 신비롭게, 그리고 비로소 안도하게 한다. 이야기가 끝나면 아이들은 각자의 집을 찾아 돌아간다. 마지막 불까지 사랑하는 소녀 랄라만 빼고......
 |
|
|
|
랄라는 멀리서 쏙독새가 숨죽이며 우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모닥불 속에는 붉은 잉걸불만 마치 잿더미 속에 숨어서 팔딱거리는 이상한 벌레들처럼 불꽃도 연기도 없이 계속 타고 있습니다. 마지막 남은 잉걸불이 한순간 아주 세차게 타오르고 나서 스러지는 별처럼 사그라지자 랄라는 일어나서 자리를 떠납니다. |
|
|
|
 |
랄라의 마지막 모습이 외롭게도 느껴지고, 충만한 하루를 연상하게 하기도 하고, <발라아빌루> 속의 공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공주보다 소녀 랄라가 더 기억에 깊이 각인되는 것은 랄라의 감성이 책 곳곳에서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으로 만들어진 소설이 있구나..하는 감탄을 하게 된다. 이것이 "신성의 언어를 아름답게 흩뿌려 놓는 작가"라는 칭호를 받는 르 클레지오의 저력일 것이다.
--------------아름다운 일러스트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