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양장본) 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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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때 월간잡지--타임즈와 뉴스위크지--를 꼼꼼하게 정독하던 시절이 있었다. 구실이야 영어를 배운다는 것이었지만 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가 궁금했었고,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재밌었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영어는 뒷전이고, 사람들의 이야기에 취해서 잡지를 읽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시절이 바로 스티브 잡스가 공백기를 가지던 시기다. 빌 게이츠가 승승장구하고, 스티브 잡스는 영원히 업계를 떠나 다시는 컴백할 수 없을 거라 여겨졌던 시기, 그리고 나중에 애플에 금의환양하면서 사람들의 상반된 기대를 받던 시기까지가 딱 내가 잡지를 열독하던 시기였다. 내가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은 스티브 잡스에 대해 관심이 그간 없었다는걸, 내진 아는게 별로 없었다는걸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 이후 애플은 모두의 기대를 뒤업고 승승장구했고, 이에 반해 영원한 제국으로 군림할 것 같았던 마이크로 소프트는 서서히 하락중이다. 사람들의 관심은 스티브 잡스에게로 옮겨져 갔지만, 이제 잡지에 관심을 끊은 나는 그에게 여전히 흥미를 갖지 못했다. 그가 사망했다는 기사가 뜨기 전까지는...


그리고 자서전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비록 늦었지만 세기의 아이콘이라는 그에게 관심이 가던 차였기에, 어디 한번 읽어볼까나 하는 심정으로 책을 들게 됐다. 오호~~ 그간 뜨문뜨문 그에 관해 들었던 말들이 일부분은 사실이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진실이 아니었다는걸 알게 됐다. 그리고 사람들이 왜 그렇게 그에게 열광하는지도...무엇보다 스티브 잡스가 대단하다고 여겨졌던 것은 그가 이 책의 작가에게 자신의 자서전을 맡겼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써도 좋다. 아마 내가 읽지 못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은 객관적으로 쓸 것이고 ,당신이 생각하는 점들의 논점을 흐트리는 일들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당신이 맡아라. 스티브 잡스가 작가에게 바라는 것은 그에 대한 미화나 전설화, 내진 비하가 아니었다. 그저 그가 열심히 살아온 세월에 대해 정당한 이야기를 들려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걸 제대로 해 낼 수 있을만큼 통찰력 있고, 인생과 사회를 아는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작가라고, 그만하 역량이 있는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일단 그럴만한 생각을 해낸다는 자체가 스티브 잡스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통 사람들과 생각하는 격이 다르다는 것을 알수 있게 했다. 무조건 내게 좋게 써달라는게 아니여요. 나는 실수도 많이 한 사람이고, 인간적으로 흠도 많은 사람이여요. 그걸 가려 달라는 것이 절대 아니여요. 다만 내가 이뤄 내기 위해 애썼던 것에 대해서는 정당한 평가를 받고 싶어요. 그리고 그걸 평가해낼만한 사람은 당신밖엔 없어요...라고 말하는 스티브 잡스, 과연 이 책을 읽어보니 왜 그가 작가에게 글을 맡겼는지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 딱 그가 원하던 대로 그렇게 서술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스티브 잡스, 그래, 그는 인간적으로는 흠이 많은 사람이었다. 독선적이고, 심하게 보면 경계성 인격 장애자라고 할만큼 변덕도 심하고 자기 멋대로고, 주변 사람들을 자기 뜻대로 이용하고 버리고 하던 나쁜 남자라고 할만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성격이 애플을 이끌어 갔고, 변혁을 이뤄 내게 했다는 점에 있어서 만큼은 누구도 이의를 달지 못할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든 인상은 그도 그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일을 벌리고 싶지는 않았지 않았을까 했다. 다만 , 그는 다른 방법을 못랐던 것이 아닐까. 그렇게도 까다로운 성격에 입양된 가정에서 자라나--그의 양부모가 나쁜 사람이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을 읽어보니 그들은 성자더라. 그들이 얼마나 스티브를 아끼고 사랑했는지,그렇게 까다로운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쉽지많은 않았을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사랑으로 아들을 이끈 두 분의 인내심에 찬탄할 수밖엔 없었다. 아마도 그런 점들이 이런 천재를 그나마 나쁜 길도 인도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라. 이런 천재가 전쟁광이나 갱단 두목이 되었더라면 세상이 어찌 되었을지...--자신의 성격을 제대로 컨트롤 하고 이해할만한 시간이 없었다 보니 그런 독선적인 성격이 된 것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옳다고 본 게, 그의 아들을 보니 이해가 됐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다고 하는 그의 외아들은 그의 판박이긴 하지만, 선한 버전의 스티브 잡스라고 한다. 제대로 된 부모 밑에서 자라다 보니 거칠고 막을 수 없었던 그의 성격도 유하게 변해진 것이다. 그런걸 보면 좋은 가정에서 아이를 자라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리고 만약 스티브 잡스가 제대로 된 가정에서 자랐다면 보다 인간적인 CEO로 이름이 남겨졌을 거란 생각이 든다. 말하자면 그가 그렇게 독한 사장이 된 데는 그도 어쩔 수 없었을 거란 것이다.


하여간 그가 성공하고 살아간 과정과 애플의 성장사를 꼼꼼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수많은 미디어의 제각각의 횡설수설 이러저러한 뒷담화에 가려진 스티브 잡스의 진면목을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괜찮은 책이었지 않나 싶다.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이 책을 쓰게 했다고 하는데, 바쁜 탓에 아버지로써 다정하게 아이들과 놀아줄만한 시간은 없었겠지만, 아마도 아버지로써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옳은 일을 하지 않았는가 싶다. 그의 부성애를 다시 한번 진하게 느끼면서, 왜냐면 진실에 가려진 아버지를 사회에 나가 접하게 되길 원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에 대한 잘못된 이야기들이 너무도 넘쳐 났으니 말이다. 자식들에게 내가 너희들과 함께 하지 못한 시간들에 이런 일들을 하고 있었다, 정도의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다는 그가 새삼 뭉클하게 다가왔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그를 비난한다고 해도 끔적하지 않았을테지만, 상관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는 자식들에게만큼은 제대로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가 사실은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가 비난을 감수하면서 까지 그렇게 살아왔던 것을 이해해 주기를...왜냐면 그것이 본인은 대단하다고 여겼고, 실제로 그랬으며, 적어도 그의 인생이 그래서 헛되이 흐른게 아니라는 것을 무엇보다 아이들이 알아주기를 바란게 아니었을지...


해서, 스티브 잡스의 모든 것을 알게 된 점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그의 부성애를 느낄 수 있었다는 점도 좋았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들을 정확하게 짚어낸 작가의 통찰력에 박수를 보낸다. 아마도 저 하늘 어디에선가 스티브 잡스 역시 박수를 보내고 있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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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달린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 케네스 그레이엄의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깊이 읽기 주석 달린 시리즈 (현대문학) 2
케네스 그레이엄 지음, 애니 고거 주석, 안미란 옮김 / 현대문학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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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을 몇 차례 만나봤지만, 한번도 이 책이 왜 걸작이라는건지, 읽어본 수많은 독자들이 각별하게 여기는지 이해가 안 갔었다. 영화를 봐도, 원서를 봐도 도무지 재밌는지 몰랐으니 말이다. 그러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속는셈치고 집어들었던 이 책은 뜻밖에도 올곧이 <버드나무...>의 매력을 내게 알려 주었다. 주석이 달려있어서가 아니라, 원작 전체를 고스란히 읽어본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알고보니 원서는 아가들을(4세이상)위해 만든 축약본이었고, 만화 영화는 책의 알짜배기가 빠진 줄거리만 건져낸 것이었더라. 그렇다 보니 내가 <버드나무>에 매력을 못 느낀 것도 당연했다.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의 진가는 너무도 아름다운 명문장들에 있었으니 말이다. 축약본이나 줄거리 만으로는 이 책의 진가를 알아차린다는건 어불성설이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앙꼬 빠진 붕어빵 같은 거라고나 할까. 하여간 그간 전체를 읽어본적이 없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니, 부끄럽다고 해야 하나 놀랍다고 해야 하나. 완역판을 읽어보니 왜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버드나무 >,<버드나무>...하는지 쉽게 이해가 갔다. 모를래야 모를수 없었다. 눈이 번쩍하고 트이는 명문장들의 향연이었으니까. 시대를 가볍게 뛰어넘는 걸작이라는 표현도 무리는 아니었다. 어쩌다 난 이걸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는 말이냐, 이렇게도 좋은 책을...이라면서 심하게 반성하면서--한편으로 책이 너무 재밌어서 반색하면서--읽게 된 책이 되겠다.


이야기는 두더지가 봄 맞이 대 청소를 하다 집을 나서는 것으로 시작한다. 여지껏 자신의 집을 살뜰하게 가꾸면서 별 불만없이 살아왔던 그는 이상한 기운에 이끌려 평생 처음 밖으로 나선다. 거기서 만난 것이 바로 물쥐, 강가에 살고 있었던 그는 처음 만난 두더쥐를 친절하게 맞아들인다. 그리고 자신의 집과 소풍에 초대 하고, 친구들을 소개시킨다. 그간 홀로 살아왔던 두더쥐는 난생처음 친구란게 생기고, 호젓한 강가에서의 호사에 하루하루가 즐겁기만 하다.  그렇게 물쥐와 평화로운 나날들을 즐기고 있던 두더쥐는 호기심에 두꺼비와 오소리를 만나러 간다. 마을의 최고 부자이지만 조울증과 ADHD, 즉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의 전형적인 증상을 고루고루 보여주시는 두꺼비는 이번에 자동차에 필이 꽂힘으로써 자신을 위험에 몰아넣는다. 난폭한 곡예운전으로 자신을 물론이고 행인들의 안전마저 위험에 처하게 만들자, 그간 이를 위태롭게 바라보던 동물 친구들은 개입에 나서기로 한다. 하지만 아전인수격에 자화자찬의 대가이자, 인내심은 박약하고, 변덕이 심한 두꺼비를 과연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개과천선할 생각이 전혀 없던 그는 인간의 자동차까지 훔침으로써 결국 20년형을 언도받고 감옥에 갇히고 마는데...


이 책이 동화책이라고? 물론 그렇다. 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려면 적어도 어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동물들이 주인공이고, 내용 자체도 아이들이 이해하기에 어렵지 않지만서도, 그들이 문장 하나하나에 박힌 아름다움까지 이해하긴 어렵지 않을까 싶었다. 쉰이 넘은 케네스 그레이엄의 살아온 경험들이 고스란히 배어든 문장들이니 안 그렇겠는가. 적어도 30대는 넘겨야지나,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이 아름다운 나레이션을 이해하거나 음미하는게 가능할 것이다. 아이들에겐 그저 의미없는 주절댐일 수 있지만,알고보면 한 문장도 의미없이 쓰여진 것이 없었으니 말이다.어떻게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렇게 엄청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하다는 듯이 내뱉는 것일까? 놀라웠다. 그런 그레이엄을 보면서 왜 그가 작가가 될 수밖엔 없었고, 당대는 물론이거니와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름을 날리고 있는지 이해가 됐다. 시처럼 아름다운 명문장들이 줄줄이 이어지리니, 거기다 그 문장 하나하나가 다 신선하고--지금까지도 말이다.--전개 자체도 독창적이었다, 참나, 도대체 그동안 동화작가들은 뭐를 한 것일까? 그간 수많은 동화책을 읽어봤지만서도, 이 책에 대적할만한 독특하고 신선한 책은 만나본 적이 없는 듯하다. 그런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일단 읽게 되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아, 어쩌다 나는 이런 책을 이제서야 읽게 되었던고, 그리고 그레이엄은 도대체 얼마나 명문장가기이게, 이런 책을 뚝딱뚝딱 지어냈단 말이냐?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


탁월한 명문장이라는 것에도 감격했지만, 그보다 더 감동스러웠던 점은 이 책이 작가가 자신의 외아들을 위해 지은 베드타임 스토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20살을 넘기지 못하고 자살을 했다니, 이런 끔찍한 결말이 있는가 싶다. 이런 이야기를 배드타임 스토리로 읽어주는 아버지가 얼마나 된다고, 왜 그는 삶을 시작하기도 전에 버려버린 것일까? 그것도 목이 잘리고 온 몸이 부서지는 열차 자살 사고로 말이다. 그 사건이 그레이엄에게 얼마나 강력한 충격을 주었을지, 아들이 죽은 뒤로 그 긴 세월을 어떻게 감당하고 살았을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감옥에 갇힌 기분이었겠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 받아서 말이다. 부자 사이에 무슨 갈등이 있었길래 결국 그런 비극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는지, 지금에서야 알길이 없지만서도,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이야기를 듣고 자란 아이가 나중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은 왠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이제 그 이야기를 만들어 낸 아버지와 아들은 모두 자신들의 사연을 뒤로 한 채 과거의 사람들이 되었다. 우리들에게 궁금증과 무한한 감사를 남긴 채... 그들의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했던지 간에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남겨 주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인생은 가치가 있는게 아니었을런지. 그레이엄 부자의 명복을 조용히 빌어본다.


참, 제목에서 드러나듯 주석이 달렸다. 주석자가 이 책만을 한평생 연구했다고 하는데, 그 결과를 이 한 권에 구겨 넣은 모양이었다. 원문 사이드에 주렁주렁 달린 주석은 종종 책을 이해하는데는 도움이 된다. 가끔은 귀찮은 사족이 되기도 하고, 읽어도 안 읽어도 그만인 구절들도 있다. 그렇다고 보니 원본만 골라 읽는다고 해도 <버드나무...>의 아름다움을 알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다만, 저자의 주석이 책을 깊이있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건 사실이다. 보다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관점들을 제시해 주니 말이다. 책과 저자와의 관계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보니,< 버드나무..>가 만들어진 시대와 그레이엄의 사생활에 대한 정보는 책에 대한 이해를 한층 높이고 있었다. 그렇긴 하지만 작을 글씨를 읽는 것이 짜증나고 부담스러우신 분들이라면, 굳이 주석을 읽지 않아도 상관은 없을 것이다. 원본 자체만으로도 그 아름다움을 몰라볼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런 유일하고 독특한 아름다움은 굳이 해석이라는 필터가 없어도, 인간이라는 감성만 가지고 있다면 느끼는데 어려움은 없을테니까. 하니, 시간이 없는 분들이라면 적어도 원본은 읽어 보십사 추천한다. 놓치면 아까운 그런 아름다움이니 말이다. 참 ,이 책의 별 점은 해서 <버드나무...>자체의 별 점이라고 여겨 주심 되겠다. 주석까지 포함한다면 점수가 내려가야 하는데, 주석때문에 원작의 별점을 까먹기는 그래서 그냥 원작의 별점으로 매기기로 했다. 어쩌겠는가. 아마 주석자도 그건 이해할 것이다. 본인이 쓴 글이 이런 걸작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테니 말이다. 하긴 그걸 모른다면 어떻게 평생의 연구 과제로 <버드나무...>의 해석에 매달렸겠는가? 아마 주석자도 그건 이해할 거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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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변호사 - 붉은 집 살인사건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 1
도진기 지음 / 들녘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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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변호사 시리즈의 1편인 <붉은 집 살인사건>이다.판사직을 그만두고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는 도진. 하지만 판사를 내던진 뒤로 법정에서 그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가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다투는 변호사가 아니라, 법정에 나서길 꺼리는 사람들을 위해 법률적 조언을 해주는데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 <어둠의 변호사>, 그런 그에게 새로운 의뢰가 들어온다. 육순을 넘긴 의뢰인인 남광자는 우연히 곧 암으로 죽게 될 오빠의 유언을 들었다면서 과연 자신에게 유산이 돌아오게 될지 그에게 자문을 구한다.더불어 그런 유언을 남긴 오빠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여서...그녀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집에는 남씨와 서씨 일가가 함께 사는데 함께 모여 살게 된 사연이 예사롭지 않았다. 60년대에 재혼한 부부의 전혼 자식들이었던 그들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잔인하게 살인하고 자살함으로써 하루아침 가족이 붕괴되는 아픔을 겪게 된다. 남편인 서씨가 남긴 재산이 아내의 자식인 남씨들에게 남겨짐에따라, 하루아침에 갈 곳이 없어진 서씨와 함께 살게 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 자신의 엄마를 죽인 남자의 자식들과 그동안 동거를 해왔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길 없었던 도진은 그 가족에게 그 외에 다른 살인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낀다. 바로 몇 해전에 서씨의 아내가 강도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것, 아무리 우연이라고 해도 한 집안에 대를 이어 살인 사건이 벌어질 수는 없다고 생각한 도진은 그 집안에 감돌고 있는 비극적인 기운을 감지하게 된다. 거기에 남씨의 유산 일순위 상속인인 남씨의 딸을 본 도진은 앞으로 무슨 일이 터지고 말겠다는 예감을 갖는다. 그녀가 인간이라고 하기엔 너무 아름다운데다, 무엇보다 장님에 가까운 시력장애인이었다는 것. 살인 사건이 횡횡하는 집안 내력에, 집안의 유산을 받게 될 연약하기 짝이 없는 젊은 여인. 도진은 여인을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알아보지만 결국 몇 달 후 그녀가 실족사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 그녀를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그는 사건의 전말이라도 알아내려 애를 쓰는데...


작가의 이력이 우선 주목을 끌었다. 현재 판사를 하면서 짬 나는 시간에 글을 쓰셨다고 하니 말이다. 일단 판사를 하면서 다양한 인간들을 봤으니, 아무래도 다른 소설과는 격이 다른 내용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보게 됐다. 만약 형사법정 판사를 하셨다면 모르긴 몰라도 범죄자들을 많이 보였을테고 말이다. 처음 몇 장을 읽어 가는데, 꼼꼼한 문장에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이야기 전개, 무엇보다 군더더기없는 묘사가 맘에 들었다. 우리나라 작가들의 고질이 바로 시도때도 없이 등장하는 길고 긴 설명이라서, 적어도 거기서 벗어났다는 점이 신선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신선함은 중반을 넘어가면서, 그럼 그렇지로 변하고 말았다.


아이고, 누가 직업이 판사가 아니시랄까봐, 이건 알리바이알리바이알리바이알라바이...즉 작가가 올곧이 알리바이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맨처음엔 완벽한 추리를 위해, 그 정도는 필요하지 하다가 결국 이건 정도가 지나치다 했다. 알리바이의, 알리바이를 위한, 알리바이에 의한, 즉 주인공이 알리바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닌 책이었던 것이다. 하여간 알리바이만 세다가 날 새는 책이라고 보심 되는데, 아니 아무리 추리 소설이라고 하지만 과연 누가 알리바이만 보려고 책을 사겠나. 응? 인물들의 관계를 보려고 사지 않겠어? 그런데 초반에 잘 나가던 이야기가 결국엔 알리바이에 의한 누가 범인인가로 몰아가는데 식상으로 가기도 전에 질려 버리고 말았다. 수학책도 아니고 말이야, 무슨 증명을 그리도 해대던지...나중에 그놈의 알리바이 소리만 나오면 책을 집어 던지고 싶었다. 그러니까, 과연 우리가 알리바이가 얼마나 완벽한가 그런게 궁금해서 추리 소설을 읽는가 그런 의문이 들었다. 난다 긴다, 걸작이다 명작이다 라는 이름이 붙는 추리 소설에 과연 알리바이가 딱딱 완벽하게 들어맞는 소설이 얼마나 될까? 과연 그런게 있기는 할까? 그리고 어쨌거나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가 완벽하기 짝이 없는 그런 알리바이를 원하는 걸까? 그냥 대충 맞기만 하면 감수하고 읽지 않나? 중요한 것은 이야기지, 알리바이가 아니니 말이다. 하긴 법정도 아닌데, 완벽한 증거나 증명이 필요하겠는가.  추리 소설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이건 허구라는걸 인지하고 읽는 것인데 말이다.


해서, 작가님에게 한마디 드리고 싶다면, 다음에 책을 쓰신다면 인물에 더 임팩트를 주시고 알리바이는 대충 넘겨 주십사 라고 말하고 싶었다. 우리가 추리 소설을 읽는 것은 재미있어서라는걸 잊지 마셔야 한다고. 완벽한 알리바이에 의한 흠잡을데없는 추리가 아니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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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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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설을 잘 안 읽는데, 아니 읽기는 해도 리뷰를 안 쓰던거던가? 하여간 이 책은 한국 추리 소설 치고는 걸작이라는 다른 리뷰어의 말에 반색을 하고 보게 된 책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우리나라 작가들 중에서도 이렇게 추리 소설을 잘 쓰는 사람이 나왔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고, 이제 우리나라도 추리 소설의 변방이 아니다...등등의 호평을 해온 것이었다. 엉? 그랬어? 나는 모르고 있었는데...라면서 부랴부랴 찾아서 읽게 된 책, 아~~~~~ 나도 그처럼 입에 거품을 물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만은, 중반쯤 가다가 그럼 그렇지...라고 하는 나를 발견하면서 김이 빠지고 말았다. 그렇다. 내겐 별로였다. 한권의 추리 소설로 만들어 냈다는 것이 비록 대단하긴 했지만, 이런 긴장감으로 끝까지 글을 써낸다는 것이 쉽지많은 않았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난 도저히 이 책에 걸작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없었다. 자부심은 어림도 없고 말이다. 하여간 내가 그렇게 느끼게 된 점들을 대충 적어 보기로 한다면...


대충의 내용은 이렇다. 7년전 아내와 마을 사람들을 몽땅 몰살시키 죄로 감옥에 갖혀 있는 아버지를 둔 서원은 그간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숨어 살고 있었다. 어린 그를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살 수 있도록 해준 것은 바로 다름아닌 그 사건당시 한 집에 살고 있던 승환이란 소설가. 승환을 죽지 않았으나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아버지 대신으로 하며 살고 있던 서원은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인해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가 사회의 표면으로 나서자마자 그에게 날라온 소포, 그가 가는 곳이면 어디나 그의 정체를 일러주면서 그가 그곳에서 도무지 정착할 수 없게 만들던 것이었다. 바로 서원이 살인자의 아들이며, 살인자의 자식이니 그 역시 믿으면 안 된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이에 서원은 누가 자신을 그렇게 끝까지 추적을 하며, 아버지가 자신의 죄를 받은 마당에 왜 자신까지 끌고 들어가는지, 그리고 그가 죽으면 죽었지 잊고 싶었던 그 의문을 떠올리게 한다. 진짜 아버지는 살인자였을까? 평소에 어머니에게 까일 정도로 소심한 사람이었던 그가 그날 그렇게 광분해서 사람을 죽여댄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가 사람들을 죽여댄 것에는 자신이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는게 아닐까... 궁금해 하던 중에 승환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그의 이름으로 온 소포엔 7년전 밤의 일들이 적혀 있었다. 이젠 더 밀릴 곳이 없는 서원은 살기 위해 과거를 되짚어 나가게 되는데, 과연 7년전 그 밤엔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기에, 평범한 가정이던 그의 가족이 그렇게 풍비박산이 나버린 것일까? 그는 승환이 보내온 글을 읽으면서 과거를 짜맞춰 가게 되는데...


추리 소설로써 줄거리 자체는 괜찮았다. 다만 그것을 풀어내는 작법이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다고나 할까. 이야기의 아귀가 맞아야 한다는 강박때문인지 설명이 너무 많고, 그 설명이 또 진부하기 짝이 없는 투라서 긴장감이 없다는 점도 읽는데 지루함을 주고 있었다. 내용이 신선해야만 좋은 책이 되는 건 아니다. 문장 역시 눈에 번쩍 트일 정도로 신선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문장을 기대하게 되고, 읽는 재미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이 책엔 진부하고 지루한 나열이 있을 뿐, 독특하고 재치있는 그런 문장을 보기가 힘들었다. 그렇다 보니 인내력이 바닥나는 중반 정도가 되면 이걸 읽어야 하는지 갈등하게 되더라. 전체 길이에서 한 1/3 정도를 들어냈다면 아마도 더 좋은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추리 소설에서 지루함이란 치명적인 독이니 말이다. 너무 완벽하게 쓰려다 보니 이것 저것 빼놓을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만약 좋은 편집자가 있었더라면 길이를 줄이는게 좋지 않겠냐고 조언을 해주지 않았으려나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니까 중반부터 이어진 지루함이 결국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도 궁금하지 않게 하더라. 인물들은 지나치게 극악적이고, 천편 일률 적이며, 완벽한 피해자이거나, 완벽한 가해자이거나, 중간에 끼인 서원의 아버지는 그야말로 이도 저도 아닌 인물...등장하는 인물들에 매력이 없다는 점 역시 추리 소설로써는 매력 반감이다. 무엇보다 추리 소설로 성공하고 싶다면 매력적인 등장인물 하나 정도 선정을 해놓고 시작하는게 필요할 것이다. 우리가 추리 소설을 읽는 것은 인간이 얼마나 추악하고 비루하며 비겁하고 별 볼일 없는 존재들의 집합체인가를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 그런 사람들이 있음에도 그래도 뭔가 긍정할만한게 있다는거, 그런 사람들을 때려 잡는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거, 그런 사람들이 때론 치명적일 정도로 매력적이라는데 있는 것이니 말이다. 하여간 아직도 우리나라 추리 소설이 갈 길이 멀구나 라는걸 느끼게 했던 책이었다. 다음번엔 보다 멋진 책으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해주길 작가들에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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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수장룡의 날
이누이 로쿠로 지음, 김윤수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일본 <이 미스테리가 대단하다>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는 말에 솔깃해서 보게 된 책이다. 다 보고난 느낌을 말하라면 도무지 왜 이 책이 대상을 탄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 ? 그것도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준 상이라던데, 솔직히 당호아스러울 정도로 이해가 안 간다. 어떻게 이 책이 상을 탈 수 있었는지 말이다. 그 해에 상을 줄만한 작품들이 나오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내 취향과 일본인들이 취향이 달라서인지 모르겠지만서도, 하여간 대상을 줄만한 작품은 아니었다. 그 어떤 장르의 부분에서도,즉  미스테리가 대단하다건 이 신인이 대단하다건 이 아마추어가 대단하다건 말이다. 아니다. 분위기 만땅에 용두사미 상이 있다면 뭐, 대상을 줄만도 하다.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바로 그렇게 때문이다.


내용은 이렇다. 아쓰미는 비교적 성공한 중년의 만화가다. 그녀에게 가족이라곤 자살에 실패한 뒤 식물인간으로 살고 있는 동생 고이치가 전부, 그가 왜 자살을 시도한건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은 아쓰미는 식물인간과 뇌파를 통해 대화 할 수 있다고 하는 SC인터페이스는 통해 동생의 심정을 듣고 싶어한다. 아무리 말을 건네도 대꾸를 하지 않는 동생과 직접 대면할 수 있다는 것도 그렇지만,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한 동생의 마음을 알고 싶었던 것. 왜 자살을 한 것일까? 내가 모르는 그만의 고통이 있었던 것일까? 자기 자책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아쓰미는 인터페이스에 기대를 걸고, 반갑게도 그런 과정을 통해 동생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문젠 그 이후로 그녀의 일상이 조금씩 엇나가기 시작했다는 것... 단지 동생을 만나고 싶고, 동생을 되돌리고 싶고, 동생이 자살한 이유를 묻고 싶었던 그녀는 인터페이스에서 깨어날때마다 조금씩 달라져있는 현실에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과연 이 모든 일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 이유를 알고 싶은 그녀는 끝까지 캐보기로 하는데...


자살한 동생을 둔 외톨이 만화가라...설정부터 심상치 않다. 관심을 확 끌기에 부족함이 없는 설정이다. 거기에 식물인간이 되어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다니...만약 그렇다면 이 얼마나 대단한 과학의 발전이란 말인가? 만약 그런 기계가 발명된다면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까 궁금해서 끝까지 보기는 했는데, 아마도 작가의 필력으론 그걸 맛깔나게 풀어내기가 부족하지 않았는가 싶다. 종래 횡설수설 하더니만, 마지막에 대단한 반전이라고 들고 나오긴 했는데, 어찌나 식상하던지, 끝까지 읽은 보람이 없더라. 고작 그런 식상한 반전을 들이밀려고 그렇게 분위기를 내내 띄운 것이란 말이냐, 속은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도 이렇게 얄팍한 설정으로 책 한 권을 만들었다는 자첵를 대단하다고 해줘야 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서도, 하여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이 것...이 미스테리가 대단하다는 상엔 의미를 두지 말아야 하겠다는 것이었다. 상을 받았다고 해서 대단한 작품일 거라는 보장이 전혀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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