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것이라고는 돈밖에 없다고 자조하는 백만장자 필립은 전신마비 환자다. 건강했던 시절, 익스트림 스포츠에 심취했을 정도로 거침없이 살았던 그는 패러글라이딩을 하다 척추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한다. 돈이야 여전히 많지만 이젠 한시도 남의 수발이 없으면 살지 못하는 신세,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삶을 꾸역꾸역 살고 있던 그는 간병인을 모집하는 면접에서 드리스를 만나게 된다. 무슨 일일지도 모른 채 복지수당을 위한 구직 거절서를 얻으려고 면접장에 온 드리스는 핍립을 보자마자 거절서에 싸인을 해 달라고 졸라댄다. 필립이 전신마비 환자라는 사실도 그제서야 알아챈 그는 한눈에도 거칠고 무식하다는 분위기를 온 몸으로 풍겨대며 절대 자신을 채용해서는 안 될 거라는걸 암암리에 광고한다. 일에 대한 이해나 동정심은 넘쳐 나지만 한없이 지루한 다른 구직자들에게 질려있던 필립은 다음날 그를 임시 채용한다. 2주안에 그만둔다에 내기를 걸어서... 이에 오기가 발동한 드리스는 얼씨구나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마침 집에서 쫓겨난 처지였던 그라 숙식제공이 된다는 조건이 나쁘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해보니, 사람들이 왜 2주도 되기 전에 그만 두는지 이해갈만큼 힘든 것 투성이다. 과연 이 천방지축 막 나가는 드리스가 취향이 고급스럽기만 한 백만장자 필립의 간병인이 될 수 있을까? 빈부 상하위 1%의 정반대에 위치를 점하고 있던 둘이다보니, 티격태격 맞지 않을 거라는 것은 당연지사, 그럼에도 묘하게 둘은 제법 어울려 가는데...

전신마비 환자가 주인공이라고 해서 눈물을 질질 짜는 심각한 영화이지 않을까 했는데, 의외로 재치있고 유쾌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던 영화였다. 일단 맨처음 도로에서 과속을 하면서 경찰을 따돌리는 장면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박진감있는 추격씬도 좋았지만, 거기에 허를 찌르는 소소한 반전까지, 초반부터 단박에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관객들로 하여금 다음 장면은 무엇일까 기대하게 만들던 신선함도 좋았는데, 언젠가 말한 적이 있지만 다음이 기대되지 않는 영화 작법은 그다지 좋은게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합격점을 받아도 좋치 싶다. 다음 장면이 계속 기대되었던데다,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객석에서 보는 내내 웃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는데, 그게 억지로 짜낸 웃음이 아니라 저절로 쏟아지는 폭소였으니, 대충 영화의 분위기가 짐작되시리라 본다. 맞다. 사랑하지 않기가 어려운 그런 영화 되시겠다. 유럽에서 꽤나 대박을 터뜨린 영화라고 하던데, 보니 쉽게 이해가 갔다. 심각한 이야기를 전혀 심각하지 않게 풀어내고 있었다는 점도 그렇지만, 보기 드문 개성을 자랑하는 등장인물들에, 그들이 만나 만들어내는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 빈부1%와 흑백이라는 극단을 너무도 맛깔스럽게 조화해낸 것, 둘이 만들어 내는 시너지효과등이 영화를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만들고 있었으니 말이다.
특징을 한마디로 한다면, 글쎄. 간만에 보는 건강한 영화라고나 할까. 무일푼의 백수 주제에도 면접장에서 예쁜 비서에게 추파를 던져대기 바쁜 드리스나 귀가 성감대라고 말하는 필립은 모두 추접해 보이지 않는다. 그보단 건강해 보였다. 왜냐면 그들은 각자 무식해도 당당하고, 전신마비란 불행에 절어 자신을 속이는 짓은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들은 그저 솔직하게 살아가고 있었는데, 그런 그들이 내 눈엔 매력적일만큼 건강해 보였다. 거기에 클래식을 좋아하는 필립과 어쓰 윈 앤 파이어를 좋아하는 드리스의 궁합이라니...내 것만 좋다고 우기는게 아니라 서로가 상대에게 "내가 좋아하는걸 들어봐..."라고 말한다는 점도 참 보기 좋았다. 우리가 친구에게 그 정도의 아량만 내어줘도 우정을 지키기가 한결 쉬울텐데 말이다. 그걸 못하는 편협한 바보가 바로 우리들이 아닐런지...
하여간 괜찮은 영화다. 거기에 배우들의 연기도 빼먹으면 섭한 장점이었는데, 드리스를 연기하는 오마 사이의 통통 튀는 연기도 매력적이었지만, 얼굴 표정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필립역의 프랑수아 클루제의 연기는 놀라울 정도였다. 어떻게 표정만으로 그렇게 섬세하게 감정을 연기해 내는지 감탄스럽더라.혹시나 영화를 보게 되시거들랑 필립의 표정에 주목해 보시길...특히나 마지막 장면에서, 고마움과 설레임, 수줍음과 가슴 벅참등을 말 한마디 없이 보여주는데 압권이었다. 앞으로 주목해서 봐야할 연기자가 아닐까 한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을 정리해 보자면...

몇 년 전 EBS에서 네델란드의 한 소아과 병동을 취재한 다큐를 본 적이 있다. 미숙아들을 전문적으로 집중 치료하는 병동이었는데,생명을 살리기 위한 의료진들의 숭고한 노력과 인간적인 고뇌가 인상적이었다. 특히 한 의사의 고백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그는 말했다. 비록 생명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들 하나, 자신이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또한 삶의 질이라고... 현대 의학의 도움을 받아 살아나긴 했지만,평생 듣지도 말하지도 걷지도 기지도,즉 인간으로써 할 수 있는건 단 한가지도 하지 못하는 채로 살아야 한다면 자신은 그에게 의학적 도움을 거절할 거라고 하면서. 그것이 미숙아를 계속 치료한 것인가 아니면 중단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기준이라고 하면서, 생명이 붙어있으니 그런 비참한 삶이라도 감사하면서 살아가라고 하는 것은 자신에겐 전혀 인간적으로 생각되지 않는다고 했다. 왜냐면 자신이라면 그런 삶은 원치 않을 테니까. 삶은 단지 살아있다 것이 전부는 아니니 말이다.
맞다. 삶은 살아있다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삶은 행복해야 하고,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것 없이도 물론 살아갈 수는 있겠지만, 그런 것 없이는 살아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속의 필립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그는 모든 것을 가졌지만 단 하나 건강만은 갖지 못했다. 돈이 대부분의 것들을 커버해 주기에 얼핏 사는데 지장은 없다. 그를 동정하는 사람들은 넘쳐 나고, 만약 그가 불행하다고 아우성을 친다해도, 다들 그러려니 할 것이다. 전신마비 환자이니 당연하다고 말이다. 다들 그가 오래 살아야 한다고 걱정을 할뿐, 지루한 삶을 견뎌야 하는 것에 대해선 모른척 한다. 해서 행복까지는 아니라도 보통 사람들처럼 살고 싶은 필립의 일상은 시들어 간다. 움직이지 못하니 일상이 불편한 거야 어쩔 수 없다 쳐도, 사는것 마저 재미가 없어지는 것이다.삶의 질이 확 떨어졌지만 다들 그것은 참아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 살아있으니 된 것이라고 말이다.
그때 나타난 사람이 바로 드리스다. 가진 것이라곤 건강한 몸에 전과 경력, 복잡한 가정사뿐인 그는 무식한 솔직함과 거리에서 익힌 실용성을 바탕으로 필립에게 삶을 찾아준다. 그게 바로 즐거움이다. 아무도 그에게 필요할 거라고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것을 드리스가 찾아준 것이다. 여기서 내가 흥미롭게 보았던 것은 드리스가 그럴 수 있던 것이 동정심이나 희생정신때문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는 그저 필립을 장애인이 아닌 보통 사람으로 바라봐준 것뿐이었다. 그런 선입견 없는 시선의 차이가 얼마나 놀라운 것을 만들어 내던지...1% 우정이라는 두 남자의 우정만큼이나 이 영화에 감동을 실어주는 힘이었다.
그렇게 누구에게나--부자건 장애인이건 가난하건 무식하건 그들의 처지가 어떤든지 간에-- 삶에 재미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이 영화야말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려준게 아닐까 한다. 이 영화는 실화라고 한다. 1%의 우정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진짜로 그들 우정의 %를 따진다면 0.에 소수점을 아무리 찍어도 모자라지 않을까. 전 세계에 유일무이한 확률일테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