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숲 블랙 캣(Black Cat) 23
타나 프렌치 지음, 조한나 옮김 / 영림카디널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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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놀고 있던 초등학생 세 명이 사라진다. 남겨져 있는 싸움의 흔적과 핏자국은 누군가 그들을 습격했고, 아마도 아이들이 죽었을 거란 추측을 가능하게 했다. 놀랍게도 그 세 명중 한 명이 살아돌아오지만, 문제는 충격에 그가 당시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그렇게 로브 라이언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의 주인공이 되었고, 그 후 이름을 바꾼 채 다른 곳에서 삶을 시작한다. 죽지 않았으니 어쨌든 살아가는 수밖엔 달리 방법이 없지 않은가. 20년이 지난 후, 강력반 형사가 되어 있는 로브는 여전히 자신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무기력감을 느낀다. 친구들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고 싶다는 소망은 이제 잠재의식 속으로 가라앉았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과거의 기억을 묻고 살아가던 그에게 그 숲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친구들이 사라진 뒤 20년만의 살인사건이다. 소녀가 살해된 사건을 두고 언론은 과거 미제 사건을 떠올리고, 로브는 지금이야말로 과거의 망령과 맞서야 하는 때라고 생각한다. 살인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어릴적 자란 마을로 돌아간 로브는 형사가 된 지금의 시선으로 당시를 되돌아보기 시작한다. 과거와 현재의 사건을 동시에 수사하던 그는 점점 알 수 없는 숲의 기운에 점령 당하는 기분을 느끼게 되는데...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하는데, 기성 작가가 쓴 것이라고 해도 믿을만큼 노련하다. 20년전 어느날 흔적도 없이 사라진 아이들, 유일하게 살아온 아이지만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소년, 그가 친구들을 찾는데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사건을 풀어보고자 하는 열망으로 형사가 되었다는 설정 자체가 흥미롭다. 과거의 그 숲으로 돌아갈 수 밖엔 없었던 살인 사건이나, 그 살인 사건을 풀어가면서 과거와 조우를 하게 되는 형사의 심리적 갈등이 볼만했다. 무언가 비밀을 간직한 듯한, 살인이 벌어진 숲이라는 이미지가 소설 내내 으스스한 분위기를 제대로 연출하고 있지 않았는가 한다. 전편 내내 무게를 잡고 있던 분위기에 비하면 결말이 다소 싱겁다고 느껴질지 모르지만서도, 경치마저도 스릴러의 요소로 잘 활용한 것이나 주인공의 심리적 공황을 공감가게 그린 것들은 점수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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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하지 않아
주스틴 레비 지음, 이희정 옮김 / 꾸리에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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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심각하지 않아> 지만 작가가 처한 상황은 실은 매우 심각하다. 남편이 바람이 났는데, 그 상대가 바로 시아버지의 정부이니 안 그렇겠는가. 여기서 이해를 돕기 위해 정리를 해보자면, 주스틴 레비, 즉 이 책의 작가는 그 유명한 좌파 지식인 앙리 레비의 딸이고, 그녀의 남편은 앙리 레비의 절친인 장 폴 앙토방의 아들 라파엘 앙토방이다. 그 라파엘 앙토방이 아름다운 아내를 두고 바람이 난 상대는 현재 프랑스의 퍼스트 레이디인 카를라 브루니(!) 다. 카를라 부르니, 남성 편력이 대단하단 말을 듣긴 했지만 아버지와 아들을 번갈아 상대하셨다니, 그 거칠것 없는 상상력에 무자비한 대범성 만큼은 인정해 드려야 겠다. 시아버지의 애인으로 처음 브루니를 만난 주스틴은 만나는 모든 남자에게 추파를 던지는 그녀가 썩 내키질 않는다. 하지만 " 사람들이 아무 말이나 막 하네, 더러운 인간들이 내가 네 남편과 잤다고 하잖아. 너희 두 사람은 정말 예쁜 커플이야." 라고 묻지도 않는 말에 대꾸하는 그녀를 주스틴은 과연 의심했어야 했던 것일까? 집안 관리인으로부터 브루니가 밤에는 시아버지와 낮에는 자신의 남편과 몰래 만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스틴은 막장 드라마가 자신의 현실이 되었음에 망연자실한다. 급기야 남편이 자신의 아이를 가진 브루니와 살겠다고 집을 나가자, 홀로 남겨진 주스틴은 곰곰히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본다. 모두들 부러워했을 만큼 완벽해 보였던 그녀의 삶, 과연 무엇이 문제였을까? 이렇게 심각한 상황을 심각하지 않도록 돌리는 방법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 여기 그녀의 고통에 찬, 그러나 해답을 찾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동원한 한 여인의 놀라운 여정이 기록된다. 그녀에게 주어진 무기라곤 가슴이 섬뜩할 정도의 솔직함과 어리석음을 간파해내는 지성뿐이다. 과연 그녀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다시 말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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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딸 루이즈
쥐스틴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이덴슬리벨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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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이야기 하려면 먼저 주스틴 레비의 데뷔작인 <만남>을 먼저 이야기 해야 한다. 그 책에서 그녀는 자신의 엄마에 대해 털어놓는다. 남들이 들으면 부러워할만한 이력을 가지고 태어난 주스틴, 그녀의 아빠는 좌파 지식인의 대명사인 앙리 레비고, 그녀의 엄마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뒤를 돌아볼 정도로 아름다운 슈퍼 모델이다. 프랑스의 68세대를 대표하는 커플이던 그들, 시대를 선도하던 그들을 딸은 과연 어떻게 기억할까? 역사를 좌우하느라(아빠의 경우), 자기 맘 내키는대로 사느라(엄마의 경우) 딸은 뒷전이었던 부모, 훗날 주스틴은 우리에게 그런 부모를 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들려준다. 내 말하건데, 그녀의 이야긴 절대 편하게 들려오지 않을 것이다. 남자를 쫓아 다니느라, 마약을 하느라, 절도등 범죄를 저지르느라, 감옥에 드나 드느라, 육아는 고사하고 거의 대부분 딸의 존재를 잊고서도 마음 편하게 살아가는 엄마를 보는게 그다지 유쾌한 일일리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남자가 떨어지고, 마약이 떨어질때면 딸을 찾는다. 나에겐 너밖엔 없다고 울먹이면서... 그렇게 한참 자라나야할 어린 딸에게 위로와 위안을 구하던 엄마는 딸이 열 아홉이 되어도 자신의 버릇을 고치지 못한다. 만나기로 한 까페에 하루종일 기다려도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면서, 딸은 자문한다. 과연 엄마를 기다리는 것이, 엄마가 엄마 노릇을 언젠가 하기를 기다려 주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일까 라고...그녀는 과연 자신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할까? 올바른 대답을 하기엔 그녀는 너무 어리고, 객관적으로 엄마를 평가할 수 있을만큼 냉정해 보이지도 않는데 말이다.

 

그런 그녀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그리고 그 결혼은 남편이 아버지의 애인과 바람이 나면서 종지부를 찍게 된다. 한동안 엄청난 고통과 방황에 시달리던 주스틴은 드디어 괜찮은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의 모든 것을 보고도 달아나지 않는 그런 남자를... 하지만 인생 전반에 걸쳐 상처와 고통이 워낙 컸던 터라, 그녀는 그를 만나고도 믿음을 갖지 못한다. 그러던 중에 자신이 예기치 않게 임신이 된 것을 알게된 주스틴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아이를 원한 적이 없었을 뿐더러, 자신이 엄마와 같은 엄마가 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 노릇을 배우지 못했다고, 그러니 어떻게 엄마 노릇을 하겠느냐고, 아이를 책임질 준비가 되지 못했다고 절규하는 주스틴, 다행히도 그녀의 애인인 파블로가 당황하는 그녀를 다독인다. 내가 아빠 노릇을 할 줄 아니 됐다고 말이다. 그렇게 한 아이를 잉태하고서 자신에게 생긴 감정의 변화를 기록한 책이 바로 < 나쁜 딸 루이즈> 다. 왜 나쁜 딸이냐고? 그녀가 아이를 임신했을때 그녀의 엄마는 암을 앓고 있었다. 한번도 제대로 엄마 노릇을 하지 않았던 엄마지만, 비참하게 영락한 모습에 주스틴은 죄책감을 느낀다. 그리고 아이와 엄마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사실에 갈등을 느낀다. 엄마는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그녀의 관심을 원하던 나르시스트였으니 말이다. 과연 그녀는 누구를 택할 것인가? 아이일까, 엄마일까?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아이를 과연 예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녀가 두려워 하던 대로, 그녀는 자신의 엄마와 같은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일까? 과연 그녀는... 그녀가 간절히 바라던 평온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죄책감이나 두려움이 없는 그런 평온함을...

 

무책임하고 이기적이며 자신만 알던 사람이었지만 치명적인 매력으로 딸을 홀리던 엄마, 자신에게 주어진 엄마가 그녀 하나뿐이었기에 그런 그녀가 잘못되었다는 사실도 자각하지 못한 채 , 그런 엄마라도 언젠가는 자신을 돌아봐 줄 것이라고 믿으면서 기다리던 한 소녀가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들을 볼 수 있게 하던 자전적 소설들이다. 버려지고 방치된 딸에서부터,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우울증을 앓던 20대 시절, 남들이 부러워 하는 결혼을 한 뒤 그것이 사실 겉포장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막장 드라마로 만천하에 알린 뒤, 그 후에 처절하게 자신을 찾아 나가던 과정들이 세 권의 책을 통해 그려지고 있었다. 앙리 레비의 딸 답게 지성적이고, 솔직하며, 통찰력 있고, 매서울 정도로 날카롭다는 점이 특징. 그녀의 아버지가 세상과의 싸움에서 한치도 밀리지 않았듯이, 그녀 역시 자신의 내면과의 전쟁에서 한치도 밀리지 않은 채 묻고 있었다. 과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내가 고통스러운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텐데...라고.

 

그녀는 포기하지 않은 채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돌파구를 찾을때까지... 독자 입장에선, 그리고 같은 여성 입장에선 그녀가 결국 자신을 찾아가는 모습에 박수를 보낼 수밖엔 없었다. 자신의 엄마와 같은 사람이 될까봐, 아이에게 상처를 줄까 두려워 하던 전전긍긍하던 그녀가 " 나는 엄마와 같은 사람이 아니" 라고 선언하는 모습엔 어찌나 대견하던지. 자신이 낳은 아이를 보면서, 이렇게 예쁜데, 어떻게 내 엄마는 자기 자식을 완전히 잊어버릴 수 있었을까...라는데 생각이 미치는 주스틴을 보면서는 환호성을 질렀다. 그래, 드디어 네가 문제를 파악했구나 싶어서... 그렇다. 문제는 그녀가 아니라, 엄마였다. 그걸 머리로는 헤아리면서도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녀를 보려니 어찌나 답답하던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알려진 유럽 사람도 자신의 엄마에 관해선 주춤한다는 사실은 의외였고, 너무도 명백한 학대를 털어놓으면서도 그것이 그렇게 심하건 아니었다고,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었을 거라고 변명하는 모습엔 안스럽기만 했다. 학대 당한 아이들의 심리는 세계 어디나 어쩜 그리도 똑같던지...민족의 구분이 필요없더라. 하여 비슷한 고통을 안고 사는 이 땅의 많은 딸들에게 추천한다. 버려진 딸에서 버림 받은 아내로 극단을 오고가는 삶을 살았지만, 그 모든 것을 넘어서서 한 아이의 평범한 엄마로 정착하기까지 무수히 고통스런 시행착오를 거친 여인의 고백록이니 말이다. 만만찮은 무게감이다. 다들 고통스러워 외면하는 진실을 벌벌 떨면서도 직시하려 눈을 부릅뜬 인간의 처절함이 배여있는 책이니 그렇다. 그런데 그녀는 왜 그랬을까? 제 정신으로, 제대로 살고 싶다는 간절함 때문 아니었을까. 흔치 않은 정신력이다. 박수를 받아도 좋을 만한... 만약 그녀의 인생 역정을 보면서 단 한 순간이라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공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도 걱정하실 필요가 없다. 가슴에서 울려 나오는 그녀의 음성을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일 수 있을 테니까. 이렇게 발칙할 정도로 솔직한 고백서는 원래 흔한것이 아니다. 거기에 책을 통해 저자가 성장하는 과정을 보게된다는 점 역시 무시못할 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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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 킹 3D - The Lion King 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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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 킹이  3D로 재상영이 된다는 말에 곧바로 조카가 떠올랐어요. 녀석이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영화이다보니, 영화관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거든요. 더군다나 3D로 만들었다는 소식에 저마저도 마음이 설랬어요. 예전에 봤던 기억에 의하면 재밌는데다 감동적이기까지한 영화였는데, 거기에 새로운 신기술을 접목해서 보여준다니 어떤 효과가 나올런지 기대가 됐거든요. 하여 낮의 유치원 생활(?)로 다소 지친 조카를 데리고 지난 수요일 시사회 장을 찾아 갔답니다. 네, 맞아요. 꼬맹이를 끌고 온게 저여요. 연신 "언제 시작해?" 를 묻던 꼬마가 바로 제 조카랍니다. 시작하기 전부터 지루하다고, 왜 안 시작하냐고, 이것저것 불평불만을 털어놓던 그 건방진 꼬마 말여요. 영화가 시작되서도 그렇게 계속 중얼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시사회가 열리는 영화관에서는 객석마다 헤드폰을 설치해 주셨더군요. 옆 사람이 무엇을 하건 상관없이 감상을 하라고 말이죠.  저에게는 구세주나 다름없는 장치였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는 싶지 않았으니 말여요. 실제로 헤드폰을 착용해 보니 생각보다 위력이 괜찮더군요. 옆 사람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거든요. 핸드폰 소리에 잡담에 먹는 소리에 보통 영화를 보다 보면 옆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감상이 달라지기도 하는데, 앞으론 그럴 일이 없겠다 싶었어요. 다만 불륨을 줄일 수 있는 장치가 있었음 했어요. 소리가 너무 컸거든요. 아마도 깜깜해서 제가 못 찾은 것인지도 모르지만서도요.

 

하여간 시작 전부터 느낌이 좀 안 좋더라구요.  왠지 조카가 계속 불평을 해댈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갑자기 자신감이 확 사라지면서, 불안해졌어요. 해서 예전에 영화를 보면서 감동을 받았던 장면들을 떠올려 봤지요. 분명히 먹힐 거야. 산전수전 다 겪은 내가 울먹이면서 본 영환데, 아무것도 모르는 천둥벌개인 녀석에겐 분명 새로운 감동이지 않겠어? 뭐, 폭풍까지는 아니래도 조금이라도 감동은 먹을 거야...라면서 애써 불안한 마음을 달랬어요. 그런데도 이상하게 불안이 가라앉질 않더라구요. 영화가 끝나고 나면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나 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제가 보이는 것 같았어요. 결론은? 제 짐작이 맞았다는 거여요. 영화가 끝나고 나니, 조카가 저를 향해 딱 이 표정으로 바라봤거든요. " 아니, 고작 이걸 보게 하려고 피곤한 나를 끌고온 거여요? 이렇게 추운 날에? 진심이셔요?" 참으로 할 말이 없게 만드는 표정이었어요. 그런데 딱히 부인할 수가 없었어요. 제가 보기에도 별로였거든요. 한땐 그래도 대단한 영화였는데, 벌써 먹히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놀랍더군요. 전 당연히 여전히 유효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그게 오산이더라구요.

 

짐작하셨을지 모르겠는데, 영화와 상관없는 잡소리를 이렇게 장황하게 하는 이유도 딱히 영화에 대해 할 말이 없어서여요. 내용이야 익히 다 아실 터이고, 재개봉의 이유이기도 했던 3D의 위력은 그야말로 미미했어요. 3D라는 의미가 별로 없더군요. 거기다 더 큰 문제는 화질이 그렇게 좋아보이질 않았다는 거였어요. 영화를 보면서 그간 만화영화를 만드는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가 새삼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예전에 봤을때 그렇게도 멋지게만 보이던 영상들이이 이젠 식상하고 어색하고 선명하지 않고 부자연스러워 보이더라구요. 세월이 그렇게 흘렀던가? 얼마나 오래전 영환데? 라고 헤아려 보니, 17년전 영화라네요. 명작은 영원할 줄 알았는데, 세월을 거스를 수 없는 것이 인간만은 아닌가봐요. 오래된 티가 팍팍 났거든요. 색상이 흐릿하다는 점이 특히나 그걸 강조해주고 있었죠. 3D로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이라면 선명한 색상으로 보정 정도는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거랑은 다른 문제인가봐요. 선명함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요즘 나오는 만화영화들은 다른건 몰라도 화질만큼은 뚜렷하거든요. 어린이용 TV 만화라도 말이죠. 동작도 빠르고, 유머도 크고 화려해요. 아가들이 본다해도 이해하고 웃을 수 있을 정도로요. 그것들과 비교해 보니, 후진 티가 났어요. 유머조차도 말이죠.

 

다만 그래도 여전히 유효했던 것은 영화 전편에 흐르는 감성이었어요. 자신을 구하려다 죽은 아버지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애를 쓰는 심바를 보면서 여전히 마음이 울컥했고, <Remember!>라는 제임스 얼 존스의 목소리를 심바만이 아니라 제 영혼까지 흔들어 놓은 기분이었거든요. 그 외엔 스토리 자체도 다소 어색하고 전개도 급작스럽단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이 영화를 지금 만든다면 아마 각색을 달리 해야 할 거여요. 시대가 달라졌다는 소리겠죠. 한때는 무리없이 받아들여졌던 것이,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게 재밌네요. 그게 아마도 유행이라는 거겠죠. 하여간 과거의 향수를 기대하고 가신다면 만족하시겠지만, 새로운 감동을 기대하고 가신다면...글쎄요. 그건 충족시키기 어렵지 않을까 하네요. 물론 그건 조카와 저의 의견이지만서도 말여요.

 

<네영카 시사회 초대로 본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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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 I W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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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예정


  

 

  초등학교 6학년인 코이치에겐 이해가 안 되는게 너무나 많다. ( 활화산이라) 화산재가 눈처럼 소복히 쌓이는 산 아래 도시를 이루고 사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가고, 산 등성이에 학교를 만들어 아침마다 헥헥대게 만드는 것도 이해가 안 가며, 무엇보다 형제를 갈라 놓으면서까지 별거를 선택한 엄마 아빠가 이해 되질 않는다. 날마다 쌈박질을 할때 알아보긴 했지만, 그래도 진짜로 갈라설 줄은 몰랐다. 엄마는 코이치를 데리고 외가댁인 남쪽으로, 아빠는 동생 류와 함게 북쪽으로, 졸지에 이산가족이 되어 버린 그들. 처음엔 그러다 말겠지 했던 코이치는 6개월이란 시간이 흘러가자 점점 불안해진다. 엄마는 직장을 알아 본다고 하지, 외할아버지 역시 은퇴한 일을 다시 해보려고 궁리중이다. 아빠는 별거의 원인이었던 밴드 생활에 빠진 듯한 눈치고, 무엇보다 동생 류! 어떻게 하면 다시 가족들을 모여 살게 만들까 고개를 늘어뜨리고 고민중인 자신과 달리 동생은 매일 매일 신이 난 눈치다. 텃밭에 야채를 심었다고 자랑하는 동생의 목소리에선 도무지 떨어져 산다는 것에 대한 아픔이 느껴지질 않는다. 이러다가 결국 우린 이렇게 헤어져 지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다시 함께 뭉쳐 살게 되는 날이 오지 않게 되면 어쩌지? 그는 홀로 전전긍긍한다.

 

그렇게 오매불망 가족들이 함께 살게 될 날이 오게되길 고대하던 코이치에게 솔깃한 소식이 전해진다. 신칸센 상하행선 열차가 교차해서 지날갈 때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 진다는 것이었다. 심각하게 정보를 분석한 코이치는 자신만큼이나 간절한 소원이 있는 친구 두 명과 함께 소원빌기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자신만 전전긍긍하는 것에 불만이던 코이치는 동생 류의 동참을 권유한다. 중간 지점에서 동생을 만난 코이치는 그가 여자 친구 세명을 주렁주렁 달고 온 것에 기분이 상한다. 낯선 마을에 떨어진 일곱 명의 아이들, 과연 그들의 소원 빌기 프로젝트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일행에서 떨어진 한 명이 순경과 마주치는 돌발상황이 발생하면서 그들의 여행은 막다른 골목에 처한 듯 보이는데...

<기적을 위해 모인 일곱명의 아이들, 간절한 소원 하나씩을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한 그들은 과연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까?>

 

< 틀에 박히지 않은 삶을 원하는 아이같은 아빠와 그런 아빠를 아내보다 알뜰하게 건사하며 마냥 행복한  둘째 류>


 

<" 아니, 내 가족을 생각하는 사람은 나뿐인거야? 이해가 안 돼! " 생각도 걱정도 많은 천상 장남 코이치. 그는 생각없는 듯 살고 있는 동생을 닥달해 어떻게 하면 함께 살 수 있을지를 궁리한다. 그렇다. 그의 삶은 벌써부터 고단하기 짝이 없다. >

 

누군가에게 간절하게 일어나길 바라는 기적이 있다. 여기까지는 좋다. 실제로 일어나건 안 일어나건 기적을 믿는다고 별로 해될건 없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 기적이란게 허무맹랑하게도 "화산폭발"이라는 것이다. 평소에도 분진을 마구 내뿜으면서 조만간 폭발해 주련다라는 분위기를 팍팍 풍기고는 있지만, 그래도 현재까진 성가신 분진이 전부였는데 말이다. 그걸  화끈하게 꽝~! 하니 폭발하게 해달라고 한 소년이 빌고 있다. 그렇게 되면 흩어진 가족이 함께 모여살 수 있게 될거라 믿어서다. 시간이 지나가면 재결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그 시간동안 떨어져 사는 생활에 적응이 되버리고 말았다. 그런 상황이 소년은 이해가 되질 않고, 불안하다. 자나깨나 가족만 생각하는 그를 보고 " 너도 이제 다른 것을 생각해 봐, 음악이나 세계 같은 것을..."라는 아빠의 말에 발끈하는 소년을 보면 아빠보다 어른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그는 딱 그 나이만큼 어린아이다. 하여 기적을 이루기 위해 직접 길로 나선 쾨이치와 일행들, 과연 맹랑하기 짝이 없는 그들의 소원은 이뤄질 수 있을까. 그 여정속에서 그들이 배운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일본 영화답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이야기 전개가 인상적인 영화였다. 부조리한 일상, 이해가 되질 않는 어른들의 세계, 마음에 들지 않는 현실등을 기적을 통해서라도 바꾸어 보려 여행을 나선 일곱명의 아이들이 그 여정을 통해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지 보여주고 있었는데, 두말할 필요없는 수작이다. 우선, 아이들이 가진 단순하고 순수한 시각으로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나, 과장 없이도 웃음을 이끌어 내던 유머감각, 흐름을 끊지 않고 무리없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대단했다. 거기에 잠시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은 채 꾸준히 유지되던 긴장감과, 다음 장면을 궁금하게 만드는 구성,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내용 전개등은 감독이 단 한 장면도 고민없이 영화를 찍지 않았다는 걸 느끼게 해줬다. 매너리즘이나 유치함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런 것에 빠진다는 것이 얼마나 쉬운 유혹인가를 생각해 보면 감독의 내공이 대단하지 싶다. 감독의 힘을 느끼게 해주는 연출력이었다. 특히 매사에 "이해가 안 돼~~"를 달고 살던 코이치가 결국 이해가 되지 않은 현실을 이해하게 되는 심리 변화가 압권이었는데, 그런 그의 마음을 극적으로 보여주던 소원을 비는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아~~~ 아무리 되바라진 듯 허세를 부려도 그들은 얼마나 아이들이던지...여행동안 꽁꽁 숨겨 놓은 그들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순간, 아마도 관객들 모두 그들의 소원이 이뤄 지기를 함께 기원하지 않았을까 싶다. 

 

거기에 반가운 얼굴들이 대거 출연하고 있다는 점도 맘에 들었는데, 어떤 배우보다 츄리닝 입은 선생님 역이 어울리는 아베 히로시나 철없는 아빠 역을 멋지게 해내던 오다기리 조는 등장만으로도 마음이 설레었다. 멋쟁이 외할머니와 이해심 많은 외할아버지, 현실에 좌절하면서도 아이들에 대한 사랑만은 변함없던 엄마, 아이들이 반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미모의 사서 선생님등, 나오는 등장인물들 모두 미운 사람이 없다는 점도 좋았지만 , 무엇보다 이 영화에 공을 찾자면, 영화에 현실감을 팍팍 불러 넣어주던 형제 아역 배우들에게 돌려야 하지 않을까 한다. 좋은 영화는 많지만,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영화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특별했다고 말하고 싶다.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이 있었으니 말이다.

 

                                                              <네영카 시사회 초대를 통해 본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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