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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딸 루이즈
쥐스틴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이덴슬리벨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이야기 하려면 먼저 주스틴 레비의 데뷔작인 <만남>을 먼저 이야기 해야 한다. 그 책에서 그녀는 자신의 엄마에 대해 털어놓는다. 남들이 들으면 부러워할만한 이력을 가지고 태어난 주스틴, 그녀의 아빠는 좌파 지식인의 대명사인 앙리 레비고, 그녀의 엄마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뒤를 돌아볼 정도로 아름다운 슈퍼 모델이다. 프랑스의 68세대를 대표하는 커플이던 그들, 시대를 선도하던 그들을 딸은 과연 어떻게 기억할까? 역사를 좌우하느라(아빠의 경우), 자기 맘 내키는대로 사느라(엄마의 경우) 딸은 뒷전이었던 부모, 훗날 주스틴은 우리에게 그런 부모를 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들려준다. 내 말하건데, 그녀의 이야긴 절대 편하게 들려오지 않을 것이다. 남자를 쫓아 다니느라, 마약을 하느라, 절도등 범죄를 저지르느라, 감옥에 드나 드느라, 육아는 고사하고 거의 대부분 딸의 존재를 잊고서도 마음 편하게 살아가는 엄마를 보는게 그다지 유쾌한 일일리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남자가 떨어지고, 마약이 떨어질때면 딸을 찾는다. 나에겐 너밖엔 없다고 울먹이면서... 그렇게 한참 자라나야할 어린 딸에게 위로와 위안을 구하던 엄마는 딸이 열 아홉이 되어도 자신의 버릇을 고치지 못한다. 만나기로 한 까페에 하루종일 기다려도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면서, 딸은 자문한다. 과연 엄마를 기다리는 것이, 엄마가 엄마 노릇을 언젠가 하기를 기다려 주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일까 라고...그녀는 과연 자신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할까? 올바른 대답을 하기엔 그녀는 너무 어리고, 객관적으로 엄마를 평가할 수 있을만큼 냉정해 보이지도 않는데 말이다.
그런 그녀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그리고 그 결혼은 남편이 아버지의 애인과 바람이 나면서 종지부를 찍게 된다. 한동안 엄청난 고통과 방황에 시달리던 주스틴은 드디어 괜찮은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의 모든 것을 보고도 달아나지 않는 그런 남자를... 하지만 인생 전반에 걸쳐 상처와 고통이 워낙 컸던 터라, 그녀는 그를 만나고도 믿음을 갖지 못한다. 그러던 중에 자신이 예기치 않게 임신이 된 것을 알게된 주스틴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아이를 원한 적이 없었을 뿐더러, 자신이 엄마와 같은 엄마가 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 노릇을 배우지 못했다고, 그러니 어떻게 엄마 노릇을 하겠느냐고, 아이를 책임질 준비가 되지 못했다고 절규하는 주스틴, 다행히도 그녀의 애인인 파블로가 당황하는 그녀를 다독인다. 내가 아빠 노릇을 할 줄 아니 됐다고 말이다. 그렇게 한 아이를 잉태하고서 자신에게 생긴 감정의 변화를 기록한 책이 바로 < 나쁜 딸 루이즈> 다. 왜 나쁜 딸이냐고? 그녀가 아이를 임신했을때 그녀의 엄마는 암을 앓고 있었다. 한번도 제대로 엄마 노릇을 하지 않았던 엄마지만, 비참하게 영락한 모습에 주스틴은 죄책감을 느낀다. 그리고 아이와 엄마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사실에 갈등을 느낀다. 엄마는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그녀의 관심을 원하던 나르시스트였으니 말이다. 과연 그녀는 누구를 택할 것인가? 아이일까, 엄마일까?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아이를 과연 예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녀가 두려워 하던 대로, 그녀는 자신의 엄마와 같은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일까? 과연 그녀는... 그녀가 간절히 바라던 평온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죄책감이나 두려움이 없는 그런 평온함을...
무책임하고 이기적이며 자신만 알던 사람이었지만 치명적인 매력으로 딸을 홀리던 엄마, 자신에게 주어진 엄마가 그녀 하나뿐이었기에 그런 그녀가 잘못되었다는 사실도 자각하지 못한 채 , 그런 엄마라도 언젠가는 자신을 돌아봐 줄 것이라고 믿으면서 기다리던 한 소녀가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들을 볼 수 있게 하던 자전적 소설들이다. 버려지고 방치된 딸에서부터,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우울증을 앓던 20대 시절, 남들이 부러워 하는 결혼을 한 뒤 그것이 사실 겉포장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막장 드라마로 만천하에 알린 뒤, 그 후에 처절하게 자신을 찾아 나가던 과정들이 세 권의 책을 통해 그려지고 있었다. 앙리 레비의 딸 답게 지성적이고, 솔직하며, 통찰력 있고, 매서울 정도로 날카롭다는 점이 특징. 그녀의 아버지가 세상과의 싸움에서 한치도 밀리지 않았듯이, 그녀 역시 자신의 내면과의 전쟁에서 한치도 밀리지 않은 채 묻고 있었다. 과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내가 고통스러운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텐데...라고.
그녀는 포기하지 않은 채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돌파구를 찾을때까지... 독자 입장에선, 그리고 같은 여성 입장에선 그녀가 결국 자신을 찾아가는 모습에 박수를 보낼 수밖엔 없었다. 자신의 엄마와 같은 사람이 될까봐, 아이에게 상처를 줄까 두려워 하던 전전긍긍하던 그녀가 " 나는 엄마와 같은 사람이 아니" 라고 선언하는 모습엔 어찌나 대견하던지. 자신이 낳은 아이를 보면서, 이렇게 예쁜데, 어떻게 내 엄마는 자기 자식을 완전히 잊어버릴 수 있었을까...라는데 생각이 미치는 주스틴을 보면서는 환호성을 질렀다. 그래, 드디어 네가 문제를 파악했구나 싶어서... 그렇다. 문제는 그녀가 아니라, 엄마였다. 그걸 머리로는 헤아리면서도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녀를 보려니 어찌나 답답하던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알려진 유럽 사람도 자신의 엄마에 관해선 주춤한다는 사실은 의외였고, 너무도 명백한 학대를 털어놓으면서도 그것이 그렇게 심하건 아니었다고,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었을 거라고 변명하는 모습엔 안스럽기만 했다. 학대 당한 아이들의 심리는 세계 어디나 어쩜 그리도 똑같던지...민족의 구분이 필요없더라. 하여 비슷한 고통을 안고 사는 이 땅의 많은 딸들에게 추천한다. 버려진 딸에서 버림 받은 아내로 극단을 오고가는 삶을 살았지만, 그 모든 것을 넘어서서 한 아이의 평범한 엄마로 정착하기까지 무수히 고통스런 시행착오를 거친 여인의 고백록이니 말이다. 만만찮은 무게감이다. 다들 고통스러워 외면하는 진실을 벌벌 떨면서도 직시하려 눈을 부릅뜬 인간의 처절함이 배여있는 책이니 그렇다. 그런데 그녀는 왜 그랬을까? 제 정신으로, 제대로 살고 싶다는 간절함 때문 아니었을까. 흔치 않은 정신력이다. 박수를 받아도 좋을 만한... 만약 그녀의 인생 역정을 보면서 단 한 순간이라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공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도 걱정하실 필요가 없다. 가슴에서 울려 나오는 그녀의 음성을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일 수 있을 테니까. 이렇게 발칙할 정도로 솔직한 고백서는 원래 흔한것이 아니다. 거기에 책을 통해 저자가 성장하는 과정을 보게된다는 점 역시 무시못할 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