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 - 아이를 행복하게 하는 좋은 엄마의 필독서
문은희 지음 / 예담Friend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자극적인 제목에-- 하지만 어느정도는 수긍이 가는 --흥미가 생기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저자의 "40" 년 연구 기록이라는 말에 솔깃해서 보게 된 책이다. 누군가가 한 분야를 40년 동안 팠다면, 탁월까진 아니라 해도, 적어도 남들이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아무리 우리나라 연구 풍토가 척박하고, 가부장적이고, 온정적인 과거의 잔재가 곳곳에 남아 있다고 해도 말이다. 결론은? 이 책 단 몇 시간만에 다 읽어 치웠는데, 결코 흥미롭다거나, 몰입해서 들어줄 말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보단, 찬찬히 읽으면서 정독해서 봐야 할만한 내용이 없어서였다. 이렇게도 내용 없는 책이 잘 팔린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가다 못해 신기하다. 도대체 요즘 엄마들은 얼마나 죄책감에 시달리며 사는거야? 그저 엄마가 잘못했다는 말이 쓰여 있기만 하면 눈 뒤집고 일단 봐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내용의 깊이는 생각지도 않고? 라고 중얼거렸다. 도무지 이렇게 통찰력도 없고, 신문 쪼가리에서도 줏어 듣기도 어렵지 않은, 한가한 말만 해대고 있는 책이 잘 팔린다는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도 심리학을 전공하셨다니 뭔가 심오한 내용을 기대했는데, 이건 뭐 총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말만 줄창 해대고 있었으니 말이다.
일단 불만이라면, 아이와 엄마의 관계에 대해 겉만 훑고 있다는 점과 새롭다고 할만한 내용이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아이와 엄마라는 관계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인간 관계중에 쉽지 않은 관계가 어디 있겠는가 만은, 모든 관계의 시초가 된다는 점에서 더 중요하고 복잡한게 당연하다. 그런데 이 책에선 그런 복잡성이나 깊이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어 보였다. 다만, 대학에서 배운 대로 현실에 적용한 것에 대한 보고서 정도? 다만 특이한 점이라면 이 저자, 정말 배운대로 쓰신 듯한 느낌이다. 아...저거 학교에서 이런 것이라고 배웠는데, 정말로 그런 것이 있네. 거기엔 바로 이렇게 적용하라고 했지. 라는 듯한. 착실하고 성실한 학생 답다고나 할까. 본인의 창의성이나 통찰력은 없었다는 뜻이다. 그저 착실하게 배워서 남을 도와준 착한 사람의 이야기같았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실은 심리학 서적이라기 보단 목사 설교집 같았다. 은혜를 베푸시는 듯한 느낌이 워낙 충만하셔서...하여 작가가 겉에 보이는 것 외에 그 안에 있는 복잡하고 난해하며 헝크러진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찾아보기 힘들었다는게 내 총평이다. 뭐,<포함 단위>라는 새로운 한국에 맞는 용어를 정의하셨다고 하는데, 그런거 없어도 우리나라 부모 이해하는건 어렵지 않다. 사족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니, 사족처럼 보인다. 저자는 그게 우리나라 엄마들의 정서를 파악하는데 대단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시는 듯했지만서도, 그건 견해 차일 수도 있으니 넘어가기로 하고...하여간 이런 비교를 해서 죄송하긴 하지만, 통찰력이건 전문성이건, 깊이면에서건, 이 책 보단 오히려 EBS 의 <60분 부모>가 훨씬 낫다. 바보상자라는 TV가 책보다 낫다라는 것은 뭔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 된게 아닐까. 시간을 들여 책을 보는 것은 바보상자보단 심도 있는 정보를 원해서이니 말이다. 그보다 못하다면 책으로써 그게 과연 쓸모가 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책을 보면서 가장 많이 답답했던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구태의연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딘가 젊은 사람들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도...나는 아이들 잘 키워 놨다네, 그런데 너희들 젊은 것들은 도무지 뭘 제대로 하는게 없지? 해서 내가 은혜를 베풀려 한다네...라는 듯한. 요즘은 TV에서 전문적인 심리 상담을 해주는 시대다. 저자가 한번이라도 그들이 상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그들은 이렇게 피상적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철저하게 끝까지 파헤친다. 두리뭉실하게 넘어가지도 않고, 정확한 진단은 필수다. 요즘 쉴새 없이 나오는 심리학 책을 봐도 그렇다. 이보다 얇은 책도 내용면에 있어서는 만만찮다. 통찰력 넘치는 문장들이 줄줄이 이어져 나오니까. 이 책에서 가장 쓸만한 말은 <엄마가 " 때로는 " 아이를 아프게 한다>는 말이었는데, 그건 바로 이 책의 제목 아니던가? 제목만 읽어도 된다는 뜻이다. 어쩌다 요즘같은 아이폰 시대에 이런 구시대적인, 다이알 찌그럭대며 돌려야 하는 검정색 전화기가 연상되는 책이 나오게 된 것인지 궁금했다. 이 분은 요즘 나오는 양육 서적을 한권도 안 읽어 보셨나? 그런 책들을 읽고도 이 책을 내려는 생각이 드셨다면, 용감해도 너무 용감하신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도 한다. 어제 뉴스에도 전국 1등을 하라는 엄마의 닥달에 그녀를 죽여버린 고3 의 이야기가 나왔다. 내 반응은 그 여자는 죽어도 싸네 라는 것이었다. 왜 아이에게 불가능한 것을 주문하나? 전교 1등도 부담이 될텐데, 전국 1등이라니...기가 찼다. 분명 그녀는 정상적인 여자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단지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는 수준이 아니라, "정신병"으로 간주해서 치료를 받아야 했을 케이스였을거란 거다. 공부가 전부라는 한심한 생각때문에 사랑하는 아이를 닥달하는, 그저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하는 수준이 아니라...한참 예민한 청소년 시기에 그 아이가 받았을 상처와 혼란을 생각하면, 그가 모친 살해범으로 성년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부당해 보인다. 하지만 그걸 누가 생각이나 해주겠는가. 그저 그가 엄마를 죽였다는 사실만이 부각될 뿐이지...살인을 정당화 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그럴만한 상황이란게 존재한다는 의미다. 인간은 그렇게 대단히 강한 존재가 아니니 말이다. 특히나 아직 성숙하지 못한 뇌를 가진 아이들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는거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책은 그런 메카니즘을 파악하기엔 너무 착하고 순진해서, 그저 겉만 핥으면서 만족하고 있었다. 결코 표피를 넘어서지 못한 채...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만 한다고? 아이를 미치게도 한다. 아이를 죽이기도 하고. 괴물로 만들기도 한다. 그 엄마를 지적하면서 당신이 사실은 몰라서 그랬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럴때 사랑을 들먹이는 것은 얼마나 가소로운가. 그 엄마들 중에는 심한 우울증에 걸린 사람도 있을 것이고, 살해된 그 엄마처럼 정신병 수준으로 미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하는 것들중엔 어른 역시 어느정도는 병이 들어 있기 때문이니 말이다. 그저 과거만 반추하기만 하면 되는 수준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알콜 중독에, 강박증에, 폭력에, 불륜에,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잘못할만한 요소들은 무궁무진하다. 오히려 잘 크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로. 내가 하려는 말은,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아이를 사랑하니 고치라고? 사랑한다면 다 된다고? 헛웃음이 나온다.
이 책을 보면서 가장 거슬렸던 점은 이 저자가 눈물이 흔하고 가슴이 울컥했다는 장면이 많다는 것이었다. 저자가 착한 분이라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문제는 독자들이 이런 책을 보면서 저자의 착한 심성을 보게 되길 기대하는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심리학 책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동정이 아니란 뜻이다. 그보단 냉정하고 가혹하며 진실된 진단과 모두가 수긍하는 분석, 어둠속에 있는 사람에게 한줄기 빛처럼 보여지는 통찰력, 정신이 확 깨는 듯한 직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게 하는 지성, 그런 것을 바란다. 이렇게 소풍 나와 한가하기 짝이 없는 듯한 공감 말고. 어쨌든 40년 내공을 기대한 나로써는 어쩐지 40년 야매에게 보철로 이를 한 듯한 기분이었다. 찜찜하다. 언젠가는 전문가를 찾아가 새로 이를 해 박아 넣어야 할 것 같은 그런 기분. 한번에 해도 되는 것을 두번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차라리 <60분 부모>를 보시라. 이 책보단 훨씬 더 현실성 있고 배울 점이 많다. 이해도 빠르고 말이다. 그걸로도 성이 안 차시는 분들은 다른 좋은 책들 많으니 찾아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