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단맛 매드 픽션 클럽
파울루스 호흐가터러 지음, 김인순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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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전날, 어린 손녀와 게임을 하고 있던 할아버지는 초인종 소리에 밖으로 나간다. 누군가와 함께 겨울밤 속으로 사라진 할아버지는 돌아오지 않고, 그를 찾아 나선 손녀는 끔찍한 시체가 되어 있는 할아버지를 발견한다. 사건 소식을 듣고 달려온 코바치 경감은 처참한 정경에서 연상되는 것과 달리 할아버지가 돌발 사고로 사망했을 거란 추측을 한다. 누군가 쓰러진 할아버지의 목 위로 차를 돌진했고, 죽은 할아버지의 몸통을 헛간으로 옮겨놓았다는 것이다. 제 정신인 인간이라면 사람의 머리를 고의로 으깨놓는 그런 일을 하진 못했을테니, 누군가 갑작스럽게 전개된 돌발상황에 당황하다 이렇게 됐을 거라고 추정하는 경감. 그가 수십년간 경찰에 근무하면서 경험으로 터득한 직감은 하지만 할아버지의 목이 한번에 날카로운 무언가로 잘린 것이라는 검안의의 말에 무색해져 버린다. 살인이었던 것이다. 할아버지가 원한을 살만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주변의 말에 정신병자의 소행이라고 확신하는 경감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동물학대 사건과의 연관성에 무게를 둔다. 한편 별 다른 흔적을 남기지 않은 채 자행된 살인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 손녀는 두려움으로 커다래진 눈망울을 응시할 뿐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한다. 말을 잃어버린 것이다.

 

마을의 유일한 소아과 정신의인 호른은 크리스마스 휴가철에 근무를 하는 것도 불만이구만 이런 저런 소동을 벌이면서 들이닥치는 환자들로 보려니 억장이 무너진다.  충동성 조절 장애라는 진단을 구실삼아 딸 셋과 아내를 무차별적으로 폭행하는 슈미딩거, 갓 태어난 딸이 악마라고 믿는 젊은 엄마, 무심하고 냉정한 부모 밑에서 성장한 탓에 우울증에 시달리는 젊은 여인,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몰라 도움을 청하지도 못하는 청년등...인간에 대한 연민과 그 앞에 나타난 인간에 대한 경멸이 교차하는 가운데, 그는 자신의 냉소적인 성향이 시간이 가면서 점점 강화된다는 생각에 울적해 한다. 그런  와중에 마을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리면서 들어온 실어증 소녀, 호른은 그녀를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암담하다. 경찰에선 정신병자의 소행이라는 점에 무게를 두는 가운데, 정신병자를 오랫동안 관찰해온 호른 역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무기력한 할아버지를 그렇게 끔찍한 방식으로 죽일만큼 정신 나간 자가 이 마을에 있을까? 그리고 있다면 왜?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주관하던 마을의 신부는 평소 앓던 정신병으로 발작을 하고, 호른앞에 불려 나온 그는 뜻밖의 말을 들려 준다. 정신병자의 눈에 비친 장례식장의 풍경이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호른은 그의 말을 기억해 두는데...과연 호른은 소녀의 입을 열게 할 수 있을까? 호른과 코바치 모두 범인감으로 지적하는 열 여섯살의 싸이코 패스는 정녕 이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일까?

 

정신과 의사인 호른을 포함한 네 사람의 시선을 통해 살인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작가가 정신과 의사라서 그런지 등장인물 대부분이 정신병자라는 것이 차별점인데, 덕분에 정신과 의사가 그다지 썩 재밌는 직업은 아니라는걸 짐작하게 해준다는 점이 특이했다. 이유는 하루종일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정신이 나간 사람이라는 것이나, 무심히 지나기 쉬운 마을 사람들의 내밀한 속내마저 알고 있다는 것이 그리 유쾌한 일로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고치기 힘든 정신병자들을 대하면서 경멸감과 냉소와 무기력에 절어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들을 도와주기 위해 손을 내밀어야 하는 당위성에 갈등하는 모습을 보려니, 정신과 의사 노릇을 한다는 것도 보통 힘든게 아니겠구나 싶었다. 재밌는 점은 책 곳곳에 호른의 짜증과 불쾌함이 묻어 나는데도, 그것이 기분 나쁘게 전달되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의 불평이 과장이 아니라, 현실에 기반을 둔 것이라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내가 그 사람이라도 그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는 뜻이다. 그렇게, 한번도 정신과 의사를 해 본 적이 없는 독자에게서 어렵지 않게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점이나, 한 마을을 담당하는 정신과 분석의가 되어서 마을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 전혀 뜻밖의 사람들도 정신적인 고통을 숨기며 살아간다는 의외의 사실을 알게 해준다는 것,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는 것등이 장점이다.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개성이나 살아있는 사람을 보는 듯한 생생함도 책의 재미를 더했는데, 이혼으로 쓸쓸한 경감에서부터 세상 모든 사람들을 이해해도 자신의 아들만은 이해하지 못하는 정신과의, 부모와 형에게 받은 학대를 환상으로 이겨내려는 소년과 소박한 노인네로 보이지만 실은 자살 충동에 시달리며 사는 벌치기 할아버지, 종종 정신이 횟가닥 하고 나가는 마을의 신부등 일상적이지 않음에도 이해 하기 어렵지 않는 사람들로 포진시켰다는 점도 맘에 든다. 말하자면 주변에서 있음직한 살아있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고나 할까. 그들 각자의 사정을 들려 주면서 누가 범인인지 끝까지 추측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추리소설로써의 입지를 탄탄하게 하고 있었다. 잘 된 추리 소설을 기대하고 집어 드셔도 실망하시진 않으실 듯...

 

그나저나, 이 책을 보면서 흥미로웠던 점 하나... 이 책을 통해 알았다. 오스트리아에서도 냉정하고 무심한 부모가 있고, 학교 성적에 목숨을 거는 부모가 있으며, 폭력을 구사하고 학대를 하면서도 반성을 안 하는 부모가 있다는 것을. 한마디로 우리나라 부모와 별다르지 않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들이 우리보다 훨씬 더 냉정하다는 것 정도? 냉장고에서 바로 나온 인간들처럼 차갑기 짝이 없더라. 으스스할 정도로 말이다. 게다가 그런 부모들이 아이들을 망친다 점을 주목하면서 작가 역시 경고의 목소리르 내고 있던데, 거리가 아무리 멀다 해도 우리가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어쨌거나 세상에나... 유럽 사람들이 우리랑 똑같단 것은 정말로 충격이다.  우아하고 이성적인 그들은 절대로 무식한 우리랑 다르다고 방송을 통해 그렇게 많은 말을 들었는데 말이다. 그러게 너무 주눅들어서 살 필요는 없다니까.. 인간이 사는 곳이면 어디나, 다들 비슷비슷하다니 말이다. 잊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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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가 - 우리가 아직 몰랐던 사랑의 심리
헬렌 피셔 지음, 정명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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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직 몰랐던 사랑의 심리...라는 표지의 부제에 끌려서 보게된 책이다. 내가 아직도 캐내지 못한 어떤 심리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결론은 그다지 새로운 정보는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만 사랑에 대해 그간 이런 저런 매체를 통해 간간히 들어온 이야기를 한꺼번에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면 장점. 하여 망라적인 정보를 얻으시려 하시는 분들에겐 괜찮을 수도. 하지만 새로운 정보를 얻으려 책을 집어드신 분이라면 실망하실 수도 있겠다. 나처럼 말이다. 쭉.... 실망만 해서인가, 책을 읽고 나서도 별로 기억에 남는게 없다. 다만, 이 구절들은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라서 밑줄 그은 말로 남긴다.

 

"p .186 연인의 영혼

"지금까지 수백 명의 심리학자들이 낭만적ㅇ니 파트너들 사이의 역학관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해 왔고, 우리가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유독 한 사람을 선택하는 이유에 대해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했다. 이제 나는 그중 극히 일부를 살펴 보려 한다.

심리학자인 알레인 해트필드와 리처드 랩슨은 성인의 여섯가지 연결 스타일 중 하나를 표현한다고 믿는다. '안전하게 연결된 '남자와 여자는 자신이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애인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이들은 친구도 쉽게 사귀고 그 우정을 잘 이끌어 간다. '변덕스러운 ' 사람들은 쉽게 따분해 한다. 그런 사람들은 애인을 얻게 되며 마음이 들뜨게 되고, 애인이 곁을 떠나면 그를 쫓아 나선다. 어떤 이들은 ' 달라붙는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접촉할 수 있는 짝들을 더 좋아한다. '조ㅓ심성이 많은' 유형은 쉽게 압박감을 느끼며 숨 막혀 한다. 그들은 독립을 좋아하면, 친밀감과 깊은 애착으로부터 달아나려 한다. '유연한 ' 유형은 지나치게 많ㅇ느 시간과 에너지를 사랑에 투자하려 들지 않는다. 그들은 데이트를 좋아하지만, 독서나 여행, 일이 낭만적인 파트너에 대한 헌신보다 우선 순위에서 앞선다. 그리고 아주 소수의 남자와 여자는 애정에 관심이 없다. 이들은 애인을 구하거나 지켜 나가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다.

 

써놓고 보니 이 문장이 아니었지 싶다. 그래서 책을 다시 열심이 뒤져 봤는데 찾는데 실패했다. 이보단 독창적이고 통찰력 있는 문장이었는데... 아쉽다. 봤을때 옮겨 놓지 않으면 이런 불상사가 생긴단 말이지. 지금 밑줄 그을 말을 뒤적대면서 찾아보다 든 생각인데, 내 이 생뚱맞은 리뷰보다 책이 훨씬 더 좋다. 읽은지가 오래되다 보니, 이 책의 좋은 점과 장점들을 잊어 버린 모양이다. 하니, 이 리뷰를 잊어 버리시고, 인간인 우리가 왜 사랑에 빠지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읽어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절대 이 리뷰만으로 책을 평가하시진 마시길. 충실한 내용이 빠진 리뷰이니 말이다. 다시 말해 제목에 흥미가 끌리신다면 그냥 읽으보시길...알아서 손해될만한 정보는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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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13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
제프리 디버 지음, 안재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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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자를 보호하는 임무를 주로 하고 있는 코르트는 스승이 희대의 암살 전문범 러빙에게 살해되자 끔찍해 한다. 스승의 비참한 죽음을 가까이서 지켜본 그로써는 죽었다고 생각한 러빙이 살아나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는 소식에 긴장한다. 복수를 하고 싶은 만큼이나 그가 만만찮은 상대임을 알고 있는 그로써는 러빙에 대항에 형사 가족들을 보호하라는 임무가 무겁게 다가온다. 졸지에 암살범의 표적이 되어 버린 라이언 형사 가족들은 그들이 왜 자신을 쫓는지도 알지 못한 채 코르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다들 표적이 될만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가운데, 16살짜리 딸 어맨더를 과거 친했던 형사 빌에게 보낸다. 라이언의 새 아내인 조엔은 어쩔 수 없이 함께 도망하게 된 동생 마리가 골치를 썩이자 미안하기 그지없다. 철딱서니 없이 천방지축, 코르트 일행의 일거수 일투족을 비아냥 대는 마리,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보호하게 된 코르트지만 감정을 억누르기가 쉽지많은 않다. 하지만 업계의 최고 답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모아서, 주연들--보호하는 사람들을 일컬음--을 킬러로부터 안전하게 지켜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던 코르트는 별 수 없이 러빙과 조우하게 된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상대 진영의 최고수라고 할만한 사람 둘이 서로를 향해 겨누는 총구에서, 이번엔 과연 누가 승리를 거머쥘 것인가? 그리고 러빙은 과연 누구의 지시를 받아 라이언 가족을 죽이려 하게 된 것일까? 라이언 가족들은 모두들 자신들을 한번씩 의심해 보지만 딱히 죽어줘야 할만한 단서들이 나타나지 않자 애가 타 하는데...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놀라겠지? 내진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경악할 거야...이렇게 쓰지 않으면 사람들이 주목을 하지 않을거야...라는 작가의 독백이 문장마다 들려 오는 듯했던 소설이다. 하도 반전에 반전을 들이미니, 나중에 지겹다 못해 헛웃음이 나오더라. 허탈해서...정교한 스토리로 승부를 거는게 아니다, 단지 장면이 넘어갈때마다 등장하는 충격적인 반전으로 책 전체를 채우시는 듯 보이는 레프리 디버,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를 만들기에, 충분히 자극적이고 염증이 날 정도로 반전을 끊임없이 들이밀고 있기에, 아마도 영화로 만들어지지지 않을까 싶지만서도, 정말로 영화로까지는 보고 싶지 않은 소설이다. 소설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질려 버렸으니 말이다. 그러게 넘 반전을 남용하면 그것도 해악이다. 아마도 이 작가에겐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그리고 생각해 낼 수 있는 최고의 무기가 그것밖엔 없는 듯 보였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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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 - 아이를 행복하게 하는 좋은 엄마의 필독서
문은희 지음 / 예담Friend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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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인 제목에-- 하지만 어느정도는 수긍이 가는 --흥미가 생기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저자의 "40" 년 연구 기록이라는 말에 솔깃해서 보게 된 책이다. 누군가가 한 분야를 40년 동안 팠다면, 탁월까진 아니라 해도, 적어도 남들이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아무리 우리나라 연구 풍토가 척박하고, 가부장적이고, 온정적인 과거의 잔재가 곳곳에 남아 있다고 해도 말이다. 결론은? 이 책 단 몇 시간만에 다 읽어 치웠는데, 결코 흥미롭다거나, 몰입해서 들어줄 말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보단, 찬찬히 읽으면서 정독해서 봐야 할만한 내용이 없어서였다. 이렇게도 내용 없는 책이 잘 팔린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가다 못해 신기하다. 도대체 요즘 엄마들은 얼마나 죄책감에 시달리며 사는거야? 그저 엄마가 잘못했다는 말이 쓰여 있기만 하면 눈 뒤집고 일단 봐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내용의 깊이는 생각지도 않고? 라고 중얼거렸다. 도무지 이렇게 통찰력도 없고, 신문 쪼가리에서도 줏어 듣기도 어렵지 않은, 한가한 말만 해대고 있는 책이 잘 팔린다는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도 심리학을 전공하셨다니 뭔가 심오한 내용을 기대했는데, 이건 뭐 총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말만 줄창 해대고 있었으니 말이다.

 

일단 불만이라면, 아이와 엄마의 관계에 대해 겉만 훑고 있다는 점과 새롭다고 할만한 내용이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아이와 엄마라는 관계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인간 관계중에 쉽지 않은 관계가 어디 있겠는가 만은, 모든 관계의 시초가 된다는 점에서 더 중요하고 복잡한게 당연하다. 그런데 이 책에선 그런 복잡성이나 깊이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어 보였다. 다만, 대학에서 배운 대로 현실에 적용한 것에 대한 보고서 정도? 다만 특이한 점이라면 이 저자, 정말 배운대로 쓰신 듯한 느낌이다. 아...저거 학교에서 이런 것이라고 배웠는데, 정말로 그런 것이 있네. 거기엔 바로 이렇게 적용하라고 했지. 라는 듯한. 착실하고 성실한 학생 답다고나 할까. 본인의 창의성이나 통찰력은 없었다는 뜻이다. 그저 착실하게 배워서 남을 도와준 착한 사람의 이야기같았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실은 심리학 서적이라기 보단 목사 설교집 같았다. 은혜를 베푸시는 듯한 느낌이 워낙 충만하셔서...하여 작가가 겉에 보이는 것 외에 그 안에 있는 복잡하고 난해하며 헝크러진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찾아보기 힘들었다는게 내 총평이다. 뭐,<포함 단위>라는 새로운 한국에 맞는 용어를 정의하셨다고 하는데, 그런거 없어도 우리나라 부모 이해하는건 어렵지 않다. 사족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니, 사족처럼 보인다. 저자는 그게 우리나라 엄마들의 정서를 파악하는데  대단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시는 듯했지만서도, 그건 견해 차일 수도 있으니 넘어가기로 하고...하여간 이런 비교를 해서 죄송하긴 하지만, 통찰력이건 전문성이건, 깊이면에서건, 이 책 보단 오히려 EBS 의 <60분 부모>가 훨씬 낫다. 바보상자라는 TV가 책보다 낫다라는 것은 뭔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 된게 아닐까. 시간을 들여 책을 보는 것은 바보상자보단 심도 있는 정보를 원해서이니 말이다. 그보다 못하다면 책으로써 그게 과연 쓸모가 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책을 보면서 가장 많이 답답했던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구태의연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딘가 젊은 사람들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도...나는 아이들 잘 키워 놨다네, 그런데 너희들 젊은 것들은 도무지 뭘 제대로 하는게 없지? 해서 내가 은혜를 베풀려 한다네...라는 듯한. 요즘은 TV에서 전문적인 심리 상담을 해주는 시대다. 저자가 한번이라도 그들이 상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그들은 이렇게 피상적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철저하게 끝까지 파헤친다. 두리뭉실하게 넘어가지도 않고, 정확한 진단은 필수다. 요즘 쉴새 없이 나오는 심리학 책을 봐도 그렇다. 이보다 얇은 책도 내용면에 있어서는 만만찮다. 통찰력 넘치는 문장들이 줄줄이 이어져 나오니까. 이 책에서 가장 쓸만한 말은 <엄마가 " 때로는 " 아이를 아프게 한다>는 말이었는데, 그건 바로 이 책의 제목 아니던가? 제목만 읽어도 된다는 뜻이다. 어쩌다 요즘같은 아이폰 시대에 이런 구시대적인, 다이알 찌그럭대며 돌려야 하는 검정색 전화기가 연상되는 책이 나오게 된 것인지 궁금했다. 이 분은 요즘 나오는 양육 서적을 한권도 안 읽어 보셨나? 그런 책들을 읽고도 이 책을 내려는 생각이 드셨다면, 용감해도 너무 용감하신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도 한다. 어제 뉴스에도 전국 1등을 하라는 엄마의 닥달에 그녀를 죽여버린 고3 의 이야기가 나왔다. 내 반응은 그 여자는 죽어도 싸네 라는 것이었다. 왜 아이에게 불가능한 것을 주문하나? 전교 1등도 부담이 될텐데, 전국 1등이라니...기가 찼다. 분명 그녀는 정상적인 여자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단지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는 수준이 아니라, "정신병"으로 간주해서 치료를 받아야 했을 케이스였을거란 거다. 공부가 전부라는 한심한 생각때문에 사랑하는 아이를 닥달하는, 그저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하는 수준이 아니라...한참 예민한 청소년 시기에 그 아이가 받았을 상처와 혼란을 생각하면, 그가 모친 살해범으로 성년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부당해 보인다. 하지만 그걸 누가 생각이나 해주겠는가. 그저 그가 엄마를 죽였다는 사실만이 부각될 뿐이지...살인을 정당화 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그럴만한 상황이란게 존재한다는 의미다. 인간은 그렇게 대단히 강한 존재가 아니니 말이다. 특히나 아직 성숙하지 못한 뇌를 가진 아이들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는거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책은 그런 메카니즘을 파악하기엔 너무 착하고 순진해서, 그저 겉만 핥으면서 만족하고 있었다. 결코 표피를 넘어서지 못한 채...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만 한다고? 아이를 미치게도 한다. 아이를 죽이기도 하고. 괴물로 만들기도 한다. 그 엄마를 지적하면서 당신이 사실은 몰라서 그랬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럴때 사랑을 들먹이는 것은 얼마나 가소로운가. 그 엄마들 중에는 심한 우울증에 걸린 사람도 있을 것이고, 살해된 그 엄마처럼 정신병 수준으로 미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하는 것들중엔 어른 역시 어느정도는 병이 들어 있기 때문이니 말이다. 그저 과거만 반추하기만 하면 되는 수준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알콜 중독에, 강박증에, 폭력에, 불륜에,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잘못할만한 요소들은 무궁무진하다. 오히려 잘 크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로. 내가 하려는 말은,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아이를 사랑하니 고치라고? 사랑한다면 다 된다고? 헛웃음이 나온다.

 

이 책을 보면서 가장 거슬렸던 점은 이 저자가 눈물이 흔하고 가슴이 울컥했다는 장면이 많다는 것이었다. 저자가 착한 분이라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문제는 독자들이 이런 책을 보면서 저자의 착한 심성을 보게 되길 기대하는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심리학 책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동정이 아니란 뜻이다. 그보단 냉정하고 가혹하며 진실된 진단과 모두가 수긍하는 분석, 어둠속에 있는 사람에게 한줄기 빛처럼 보여지는 통찰력, 정신이 확 깨는 듯한 직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게 하는 지성, 그런 것을 바란다. 이렇게 소풍 나와 한가하기 짝이 없는 듯한 공감 말고. 어쨌든 40년 내공을 기대한 나로써는 어쩐지 40년 야매에게 보철로 이를 한 듯한 기분이었다. 찜찜하다. 언젠가는 전문가를 찾아가 새로 이를 해 박아 넣어야 할 것 같은 그런 기분. 한번에 해도 되는 것을 두번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차라리 <60분 부모>를 보시라. 이 책보단 훨씬 더 현실성 있고 배울 점이 많다. 이해도 빠르고 말이다. 그걸로도 성이 안 차시는 분들은 다른 좋은 책들 많으니 찾아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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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s 2011-12-02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전거로 얼음위를 건너는 법. 책에대해 쓰신 리뷰를 보고, 여기까지 오게 됬네요. 다른책에대해선 어떤 얘기를 하셨을까 궁금했거든요. 솔직함이 느껴지는 글이라서 참 좋았습니다. 글을 재밌게 잘 풀어내시는것 같네요^^

이네사 2011-12-02 13:20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소울푸드 - 삶의 허기를 채우는 영혼의 레시피 소울 시리즈 Soul Series 1
성석제 외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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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케가 홍콩 출장을 다녀 오면서 선물로 쿠키를 사왔다. 어떤 맛인가 싶어서 한 입 베어 문 나는 뜬금없이 과거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있잖니? 예전에 롯데 월드에 쿠키 전문점이 있었어. 요즘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쿠키만 파는덴 드물었거든? 그런데도 거긴 꿋꿋하게 쿠키만 팔았지. 기분이 아주 안 좋은 날이면 거길 들러서 쿠키를 사곤 했어. 그걸 담아들고 버스를 타고 오다보면 기분이 절로 나아지곤 했는데... 커피랑 함께 먹을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흐믓해졌거든. 말하자면 기분 나쁜 날에 대한 보상이랄까, 위로였지. 자주 안 사 먹어서 그랬을까? 그쪽을 지나 칠 때마다 쿠키만 파는데도 어떻게 망하지 않을까 궁금해 했어.  팔려 가지 못해 쌓여있는 쿠키 더미를 볼 때마다 조만간 가게가 없어지는게 아닐까 걱정도 됐고. 그렇게 되면 나는 어디서 그런 위로 거릴 찾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그만 슬퍼졌거든, 그렇다고 내가 더 자주 사먹은 것도 아니면서 말이지."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지 어리둥절해 하는 표정이 역력하던 올케가 한마디 한다.

 

" 그래서요? 거긴 어떻게 됐는데요?" 

 

" 응? 아, 거긴 망했어.결국..." 그리곤 내가 왜 이 말을 꺼내게 된 것인지 더이상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아니, 무슨 허무 스토리도 아니고, 결국 망했다는 말을 하려고 그 이야기를 꺼낸 거였어? 골자가 뭔대? 내가 나에게 물었다. 하지만 무언가 근사한 이야기를 하려고 말을 꺼냈던 것 같긴 한데, 도무지 왜 그 이야기가 튀어 나온 것인지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둘 사이를 흐른 뒤, 더이상 보탤 말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우리는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조금은 무안해지고 계면쩍어진 내가 나에게 했던 질문을 남긴 채...

 

왜 그 이야기가 튀어 나오게 된 것인지 깨달은 것은 올케가 가고 나서 한참 뒤였다. 선물받아 기분 좋은 아이가 종종 그러하듯, 혼자 은밀하게 쿠키를 꺼내 들고는 호기롭게  딱 한 입 베무는데, 기억이 한꺼번에 밀려 들었다. 아~~~그 집 쿠키! 그래, 맞아, 그 집 오트밀 쿠키 맛이었구나. 내가 그 집에서 가장 좋아했던, 그러나 그 집이 망한 뒤로 다시는 맛 보지 못했던 바로 그 맛~~올케가 가져다 준 쿠키가 추억의 맛을 재현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혀는 기억하고 있었다. 뇌가 미처 그걸 알아차리기도 전에...마르셀 프루스트가 마들렌을 먹다가 불현듯,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된다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맛에 관련된 모든 추억들이 그렇게 한순간에 되살아 나다니... 역시 프루스트 천재였구나. 이런 순간들을 그렇게 정교하게 잡아내다니 말이야. 그리곤 놀랐다. 같은 맛이라는 이유로 오래된 추억은 물론이고, 그때의 감정마저 되살아 났다는 것이. 요리에 관련한 나는 내게 그런 감상이 숨겨져 있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그렇다. 나는 음식에 관한한 별다른 감흥이 없다. 추억마저 별로 없다. 어렸을 적부터 내가 조리한 음식만 먹어서 그런가, 배가 고프니 먹었다가 전부다. 그런 나와는 달리 이 책에 나오는 작가들분 22명은 음식에 관한한 할 말들이 많은 분들이었다. 그들이 다양한 요리에 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이 바로 이건데, 흥미롭던 점은 그들의 이야기가 별스럽지 않게 공감이 되더라는 것이었다. 분명 내 것이 아닌데, 다른 이의 추억이라고 해도, 그렇게 생경한 느낌이 없이 듣게 된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 아닌가. 왜 그런 것일까? 먹는다는 행위가 기본적으로 우리에게 공감이 가게 하는 공통점이 있어서일까? 하여간, 여기에 글을 써주신 작가들이 말하는 그들의 "영혼의 허기를 채워주는 음식들" 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간단하게 예만 들어본다면 비싸고 화려한 레스토랑의 음식보다 배고프고 힘들때 먹었던 주먹밥이 맛있다는 백영옥님, 친구가 만드는 과자이라서 더 정감이 어린다는 이브콘의 주인공 조진국님, 연애 시절 남친을 카레라이스 애호가로 만들었던 추억을 회상하는 안 은영님, 삶이 심드렁해질때 딱이라는 빨개떡 칭송자 박 상님, 피요드르 절경 앞에서 깨닫게 된 진리, 라면은 완전식품이다를 설파하던  김 어준 님, 힘겨운 인생을 싱그러운 커피 내음 한 잔으로 이겨내던 엄마를 추억하던 이 지민님, 언젠가는 맘에 맞는 누군가와 맛있는 술을 마시고 싶어 하는 차유진 님, 그리고 와인의 맛과 더불어 인생의 멋을 알게 해준 제주도 박사님을 추억하는 남 무성님등...타인의 추억이고 맛임에도 정겹게 읽기 어렵지 않았다. 어쩜 다들 이리고 쉽게 쉽게 자신들의 추억들을 술술 털어 놓으시던지,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지 않는 수필을 읽는 맛이 참으로 좋더라. 요즘은 다들 이렇게 쉽게 쉽게 잘 쓰시는구나 싶어 다행이다 싶었다.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 당신에겐 음식에 관한 어떤 추억이 있으신가? 아마 분명 생각나는 어떤 것이 있으실 것이다. 나처럼 무미 건조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는걸 보면 말이다. 생각이 나지 않으신다고?  그렇다면 이 책을 읽어 보시길. 이 책에 나오는 작가분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어느새 나의 머리속에 봉인된 추억들이 모락모락 피어날지도 모르니까. 영혼의 허기를 채우지는 못한다 해도 적어도 음식에 대한 묘한 감상과 추억에는 흠뻑 빠져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따스한 정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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