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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에 반대한다
피터 D. 크레이머 지음, 고정아 옮김 / 플래닛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제목은 <우울증에 반대한다>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우울증을 직시하려는 시도로 쓰여진 책이다. 하버드 대를 나온 정신 분석의인 저자는 우울증 환자를 만나면서 고심하게 된다. 너무도 평범하게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우울증으로 인한 고통으로 삶의 모든 가치를 외면하는 것을 보면서 말이다. 그들에 대한 연민과 동정, 그리고 그들을 제대로 살게 해주고픈 마음에서 쓴 책이 바로 이 책이다. 한마디로 우울증은 고쳐야 하는 "병"임을 설파하고 있는 책이라 보심 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인간에게 뗄래야 뗄 수 없는 소모적인 감정이자 사치스런 감정 싸움이 아니라, 췌장암이나 폐병이나 정신 분열증처럼, 진실로 고통스런 병이라는 것을 알려 주면서...
사람들은 흔히들 말한다. 아니, 살면서 한번 우울하지 않은 사람이 어딨어? 인생이 어디 그렇게 만만한가? 살다보면 우울할 때도 있고, 사는게 만만해 보일때도 있고, 하는 거지, 너무 그렇게 엄살 부리지 말라고, 다들 사는건 어려운 법이야...라고 .
이 책의 작가가 말하려는 것은 사람들이 흔히 겪는 그런 우울과 우울증은 차원이 다른 것이라는 것이다. 가장 일례로 보면 이런 것이다. 우울할 때 우린 죽고 싶다는 " 생각"을 한다. 그건 자연스런 반응이다. 이런 지긋지긋한 삶, 어디 때려 치워 봐? 라는 생각 , 한번쯤 안 해본 사람은 없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우울하다고 해서 자살을 시도를 하는 사람은 없다.우울할 때 죽을 생각을 해보는 것은 어찌보면 그저 보험일 수도 있다. 그들이 마지노선으로 생각하는... 정 안 되면 죽으면 되는 거잖아? 아직은 그 정도는 아니니 괜찮아 라고 하면서 말이다.무엇보다 그들이 죽음을 " 생각만" 하는 이유는, 죽음이 너무 멀리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끝이라는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을 위해 에너지를 쏟을 시간에, 살기 위해 에너지를 쏟아야 할 이유들이 하나 정도는 많기 때문에 죽을 생각은 접어 두는 것이다. 죽을까 라는 생각이 푸념에만 그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죽음은 우울한 사람들에겐 그저 추상명사에 불과할뿐이다.
하지만 "우울증"의 경우는 다르다. 그들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단지 시도를 하지. 아주 별 일이 아니라는 듯이. 이 세상에서 가장 이성적인 행동이 바로 자살이라는 듯이 그들은 자살을 시도한다. 추상명사가 한순간에 현실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 현격하고 엄청난 괴리를 이해 못하는 사람들은 우울과 우울증을 혼동한다. 단지 우울해서 자살했다고? 이런 정신 나간 사람들 봤나? 고작 그것때문에 죽을 거라면 이 세상에 살 만한 사람들이 어디있어? 홀로코스트에서 죽어나간 사람들을 생각해 봐, 암에 걸려서 살고 싶어 아둥바둥하는 사람들은 또 어떻고? 그들 보기 부끄럽지도 않나? 고작 시시하고 사치스런 감정 나부랑이 때문에 죽는다니, 사는게 꽤나 한가했던 모양이구만...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고? 왜냐면 그들은 우울은 해 봤지만, 우울증에는 걸려 본 적은 없기 때문이다. 하니 어떻게 알겠는가? 당신이 감기에는 걸려 봤지만 페암에 걸려본 적이 없다면, 숨이 막힌다는 것이 어떤 심정이라는 것을 어찌 알겠어? 당신이 치매 환자는 봤지만 치매 환자를 간병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간병이 얼마나 힘든지 어떻게 알겠는가? 같은 이치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우울해 봤다는 이유로 우울증에 걸린 한심하고 나약한 작자들을 무시한다. 경멸한다. 그들의 고통을 엄살로 치부한다. 그들이 내뱉은 고통에 절은 한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절절 맨다. 그렇다 보니 그들은 자신들의 병을 숨기게 된다.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상을 살아내려 노력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숨긴다고 해서 숨겨질 병이 애초에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들만 고통스러운 줄 아나? 고통스럽긴 그들의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다. 정신병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울증을 겪는 당사자 만큼이나 혼란스럽고 좌절을 겪게 마련이다. 우울증 때문에 자살한 사람을 가족으로 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바로 이것이라 한다. 어쩜 그리도 몰랐냐고... 그렇게 우린, 가장 큰 피해자일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죄책감마저 들이 붓는다. 우리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잘 모른다는 이유로. 마치 막을 수도 있는 것을 그냥 두었다는 듯이 우리는 말을 내뱉는다. 과연 그게 올바른 질책일까? 그것이 섣부른 질문은 아닐까 혹시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적이 있으신지?
이 책의 작가에 의하면 바로 그렇다고 한다. 암과 마찬가지로, 우울증이라는 것은 우리가 그냥 두었을 시에 막아설 방도가 없는 질병이다. 이 작가가 이 책을 쓴 이유가 바로 이거다. 우리가 "우울증"이라는 질병을 낭만적이라는 이유로 방치한다는 것이다. 우울해서 자살하는 사람을 멋지게 생각하고, 고흐 같이 우울증 때문에 미쳐 버린 사람들을 존경한다. 그들이 고통속에서 작품을 만들어 냈다는 이유로...프로작이란 우울증 치료제가 나온 이래로 그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바로 이것이었다고 한다.
" 만일 고흐가 살던 시대에 프로작이 있었다면 그런 작품들이 가능했을까요?" 라는...
그건 우울증이 명작을 만들어 내는데 일조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이 미치거나 자살할 정도로 고통에 시달렸다는 것보다 시대를 뛰어 넘는 걸작을 만들어 내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에... 꽤나 낭만적이지 않는가? 고통때문에 이름을 남긴다는 것 말이다. 그리고 그 질문 뒤에는 바로 이런 함의가 포함되어 있다. " 그냥 두는게 낫지 않을까요? 우울증이라는 것을....그것이 인류에 도움이 된다면 말이죠. 어차피 죽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인생, 이름이라도 남기고, 인류에 도움이 된다면 그게 더 낫지 않을까요 라는...약으로 모든 것을 평범하게 만든다면 그건 이 세상을 덜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라는...
이에 작가는 단호히 아니라고 말한다. 그건 당신이 우울과 우울증을 혼동하기에 생긴 오해라고, 우울증은 병이고, 병은 고쳐야 하는 것이라고, 과거엔 그게 고칠 수도 없는 것이었지만 다행히도 현재엔 증상을 완화할 수 있는 약--프로작 같은 것--이 개발 되었으니, 적극적으로 고치려 들면 못 고칠리 없는 것이라고 말이다.우울함은 개성이 될 수도 있지만, 우울증은 개성이 아니라 그저 인간을 못살게 구는 ,들들 볶는, 볶다 못해 자살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병이라고 이 책의 작가는 목청 높여서 주장하고 있었다. 제발, 무식에서 깨어 나라고 말이다. 한마디로 이것이다. 우울증은 절대 낭만적이지 않는 고통일 뿐이라고 말이다.
어떠신가? 그의 말이 머리에 들어 오시는가? 어쩜 이 글을 읽는 와중에서도, 여전히 인간에게 우울이 꼭 없애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반감을 표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라 본다. 그들에겐 어쩜 아무리 우울과 우울증은 다르다고 설명해도 와닿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일이 아니니 그렇다. 자신의 일도 아닌 것에 공감을 할만큼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 못된다면, 우울이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그들은 표면만 보는 것도 벅찬 사람들일테니 말이다. 하니,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제쳐 두고서라도, 우울증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아 두어야 한다. 그건 고쳐야 하는 병이라는 것을. 암이나 관절염이나 정신 질환처럼...
작가가 우울증의 실태를 알려 주려 노력한 점은 높이 사고 싶다. 글을 잘 쓰는 작가도 맞고, 놀라운 통찰력으로 우울증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도 소름끼칠 정도로 존경스러웠다. 다만, 일반인들이 읽어 내려 가기엔 다소 혼란스럽고 복잡하게 서술되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종종 논리에 촛점을 잃는 통에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확실치 않아 보인다는 점도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우울증에 대한 혼란을 부추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우울증의 고통스런 실상을 보여주고, 이를 알지 못해 환상에 절어 사는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400 페이지 넘게 논증을 하고 있던데, 솔직히 길다. 자신의 의도와 생각만 가지런히 서술했더라면 오히려 독자들에게 더 명확하게 와 닿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건 작가가 굉장히 사려 깊은 사람이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행여나 독자들이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할까 걱정이 되서, 이런 저런 말을 붙이다 보니 길어졌다는 것이다. 좋은 작가다. 이런 머리 좋은 사람들이 고통에 절은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애를 쓴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내가 인간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만들게 하는 존재들이지.. 언젠가 미래엔, 이 작가의 노파심에 웃어넘길 수 있는 날들이 오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