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벌루션 No.0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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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래도 시리즈의 마직막이라는데, 대미를 장식하다 정도는 아니라도 이건 심했지 싶다. 전작들의 신선함이나, 발칙함, 내진 기발함이 완전히 실종된, 그저 그런 평범하기 짝이 없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름을 믿고, 무엇보다 레볼루션이라는 좀비 시리즈가 재밌다는 과거의 기억에 의지해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집어든 나로써는 무지 실망스런 결과였다. 어쩌다 이렇게 김이 빠지다 못해서 닝닝한 사이다 같은 책을 내게 된 것인지, 김 빠진 사이다 드셔 보셨는가? 설탕물을 들이키는 것 같아서 못내 찝찝하다. 그게 딱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내가 느낀 기분이었다. 이걸 꼭 봐야 해? ( 이걸 꼭 먹어야 해? 와 동일한 기분...) 먹어봤자, 영양가는 하나도 없고, 살만 찌는 것 같아서 영 기분 별론데 말이지...그런 더러운 기분만 남긴 채 끝이 난 좀비 시리즈...그래도 작가에겐 명성을 가져다 준 시리즈라서 마지막 작품이라면 정성을 기울일  것 같은데, 작가에겐 그럴 생각은 없었는가 보다. 아마도 그저 이 시리즈를 마감하고픈 마음만 컸던 게 아닐런지...어서 어서 이 고딩들에게서 벗어나야해, 빨리 빨리...라면서. 

내용은 재정을 위해 신입생들을 대거 모집한 학교 측은 이제 그 돈을 마음껏 사용하기 위해 학생들을 갖가지 이유로 자르기 시작한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단체 캠프까지 계획한 학교 측은 아이들을 들들 볶으면서 못 견디는 아이들을 퇴출하려 한다. 이에 주인공을 비롯한 친구들은 학교측에 어떻게 해서든 반항을 해보기로 하는데... 

식상하다. 이야기 구조가 너무 허술하고, 이야기 자체도 재미가 없다. 때린다는 설명으로는 부족한 선생님들이나, 그걸 맞고만 있는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 역시 너무 많이 읽다 보니 아무 감각이 없고. 전작들에서 빛나던 등장인물들의 개성들도 몽조리 다 사라졌다는건 정말로 애석한 부분이었다. 그냥 등장인물들이 작품들 속에 동동 떠다닐 뿐, 아무런 존재 가치를 드러내지 못했으니 말이다. 김이 빠져도 너무 빠졌다. 그나마 이 책을 읽으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은...일본 선생님들도 우리나라 선생님들 못지 않게 무식하다는 것 정도? 아직도 아이들을 무작정, 싸이코 패스처럼 패는 선생님들이 있다고 하니 말이다. 왜 그런 사람들은 완전히 도태가 되지 못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서도, 사회가 발전하고 잘 산다고 해서 그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걸 보면 어느정도는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그러니까, 인간성이라는게 약하고 여린 것들을 짓밟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걸 잘 악용하지 않는걸 보는건 쉬운게 아닌가 보다. 적어도 우리나라와 일본을 보면... 

하여간 일본 사회도 우리 나라 못지 않게 후진 구석이 있더라는 점에 대해서는 다소 만족했음.....그러나 그게 만족해야 할만한 사항인가에 대해선 의문임, 절대 흐믓하게 생각해야 하면 안된다는걸 알면서도, 내가 그러는걸 보면 역시, 일본 사람은 타인이 맞는가 봄, 적어도 내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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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 - The Help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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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대학 졸업후 고향인 미시시피 잭슨으로 돌아온 스키터는 친구들이 다 결혼을 해서 유부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혼보다는 일을 하고 싶었던 그녀는 작가가 되기 위해 경력부터 쌓기로 한다. 다행히 지역 신문사에 살림정보 칼럼을 맡게 되지만 결혼도 하지 않은 그녀가 살림에 대해 뭘 알겠는가, 생각끝에 그녀는 친구의 흑인 가정부인 에블린의 도움을 받기로 한다. 자신 역시 흑인 가정부 콘스탄틴에 의해 길러졌던 스키터는 친구의 아이를 정성들여 키우는 에블린을 보면서 남다른 감회에 젖는다. 동시에 자신의 아이 대신 남의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어떤 심정일까 궁금해진다. 더군다나 그렇게 공들여 키운 아이들이 자라서 엄마 못지 않은 상전이 되는 남부의 시스템에서 말이다. 마침 흑인 가정부들과 한 화장실을 쓸 수 없다는 이유로 갖가지 소동이 벌어지자, 그것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스키터는 가정부들의 애환을 들어보기로 한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그들의 속내를 들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의 제안에 펄쩍 뛰는 에블린, 과연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결국 입을 연 자신들만 상처를 입을 거라고 화를 내던 에블린은 결국 스키터의 열정에 지고 만다.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던 에블린은 더 많은 가정부의 증언이 필요하다는 말에 친구들을 구워 삶아 보지만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에블린의 절친으로 누구보다 그녀의 그런 행동을 못마땅해 하던 미니는 스키터를 만난 뒤 날밤을 새가면서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과연 그들의 화끈하고 비밀스런 반란은 성공할 것인가? 책이 출판될 거라는 말에 자신들의 정체가 탄로날까 공포에 떨던 미니는 스키터에게 모종의 보험을 제안하는데... 

 

원작을 읽었기에 볼까 말까 망서리다 보게 됐는데, 원작보다 훨씬 좋았다. 일단은 원작의 감상적이고 가식적인 부분을 과감히 잘라내서 흔적조차 보이지 않게 한 것이 주효했다. 원작을 보면서 미심쩍은 마음에 고개를 갸웅뚱하게 만들던 장면들이 이 영화속에선 말끔하게 제거 되었으니 말이다. 한 장면 정도는 눈살을 찌프리게 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원작보다 더 설득력이 있던데,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흥미진진하게 영화를 보게된다는 점에서는 나쁠 건 없지 싶다. 아마 영화를 먼저 보고 반해서 원작을 읽으신 분들은 살짝 사기를 당한 기분이 드실지도... 분위기나, 주인공들의 매력이란 점에서도 차이가 많이 날테니 말이다. 매력에 대해 이야기 했으니 배우들 이야기를 안 할 수 없겠다. 우선 주인공 스키터 역의 엠마 톰슨은 올해의 발견이라고 할 정도로 신선하고 귀여웠다. 미래가 기대되는 배우라고 하던데, 보니 이해가 되더라. 예쁜 것은 둘째치고라도, 아직은 세상사에 서툰 사회 신입생의 모습을 어찌나 똑소리나게 연기하던지. 원작의 주인공이 그녀의 절반만큼이라도 매력이 있었다면 책에 훨씬 더 호감이 갔겠지 싶었다. 원작의 주인공은 다소 유우부단하게 세상에 끌려 가는 듯한 모습이라, 그녀의 반란이 다소 설득력이 부족했다면--도무지 그녀가 왜? 라는 의문이 내내 가시질 않았었다.아마도 당시의 시대상에 비추면 원작의 그녀가 더 현실적이긴 했을 것이다.-- 영화속 스키터는 당차고 대찬 모습에 단호하기까지 해서 그녀의 행동에 의문을 품을 수 없었다. 아마도 그것이 이 영화를 무리없이 끌어가는데 중요한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거기에 오랜만에 보는 씨씨 스페이식이나 가정부를 처음 고용한다고 환호성을 지르던 남부의 마를린 몬로, 그리고 흑인 가정부로 나오는 두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다. 각본의 영리함과 배우들의 감칠맛 나는 연기로 두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끌고 가더라는 점에서 영화는 일단 성공했지 싶다. 자칫 잘못하면 교훈만 남발하는 지루하고 지겨운 영화가 될 가능성이 많았는데, 용케 그걸 피해간 느낌이다. 인종 차별이나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걸 웅변조나 설득이 아니라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서 이야기 한다는 점도 좋았고. 나름 장점이 많은 영화긴 하지만 그럼에도 남성분들에게 어필하긴 부족하지 않을까 한다. 여자들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고, 그녀들만의 성장이 있는 영화라 그렇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남자들이 인종차별을 하면 폭력이나 살해로 치닫지만, 여자들은 무시와 격리를 시킨다는걸 깨달았다. 아마도 그것이 우리들의 두려움 표현 방식인 듯... 



저번에 책을 보면서도 느낀 것인데, 이 영화를 보면서 더 선명하게 깨달은 것이 있다. 과연 낳은 사람과 기른 사람중 누구를 엄마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여기 등장하는 남부 여인네들은 아무도 아이를 키우지 않는다. 가정부에게 맡기곤 그만이지. 그들은 아이를 낳기만 할 뿐, 아이를 재우는 것도, 기저귀를 가는 것도, 말을 가르치고, 자장가를 불러주며, 자긍심을 심어주고, 아이가 낙담할때 위로를 해주는 것등 귀찮고 더럽고 힘든 일은 다 가정부가 한다. 생모가 하는 일이라곤 아이가 죽지 않았는지 가끔 체크하는 것일 뿐이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과연 누구를 진짜 엄마라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 질문에 정답은 아이들이 가장 잘 알고 있겠지만서도, 과연 호모사피엔스라 불리는 인간의 아이를 감히 속일 수 있다고 우린 착각하고 있던 것은 아닐런지...왜냐고? 내가 바로 그런 아이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가정부의 손에 큰 아이,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긴 했지만, 커보니 그게 그렇더라. 엄마라는 존재는 그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더라. 그러니 엄마 노릇이 힘들다고 불평하시는 분들은 생각해 볼 일이다. 수고하지 않고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특히나 엄마라는 자리는 거저일 수가 없다는 것을.

 

<추신--네영카 시사회를 통해 본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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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탈 싸인 - 내 마음이 보내는 50가지 이상신호
제임스 휘트니 힉스 지음, 임옥희 옮김, 김문두 감수 / 밈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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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병, 쉽게 말해 정신병에 대한 개략적인 정보를 망라적으로 얻을 수 있는 책이다. 내 마음이 보내는 50가지 이상 신호라고 표지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여러가지 마음 증상에 대해 조목조목 한꺼번에 알 수 있다는 점이 장점. 

그 증상도 단순한 것에서 부터 난해한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분노나 우울, 불안, 공포, 피로,질투, 슬픔등 비교적 흔하고 간단하다고 생각되는 것에서부터--물론 그것이 잘 통제된다는 한에서--거기에서 더 나아가 정신병이라고 분류되어 질 수 있는 것에 이르기까지, 마음의 병에 관한 최신의 정보를 책 하나로 알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정신병으로 분류되어 질 수 있는 것으로는 조울증이나 해리 장애, 다양한 인격 장애, 중독, 충동성,자해, 강박증,섭식 장애, 공황장애,환각, 분열증, 편집증,우울증 등이 있다. 이  책을 지은 의사의 견해에 의하면 정신병에 걸린 사람들은 대체로 치료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일단 자신이 그런 정신병에 걸렸다는 것을 부인하고, 인정하다고 해도 약을 먹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완치가 어렵다는 것이다. 조금 나아지는 듯하면 약을 안 먹거나 끊기 때문에 결국엔 더 심한 재발에 이르게 된다는 것. 정신병에 걸린 사람도 그렇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미치는 파괴력을 생각하면, 정신병을 완치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은 좀 안타까웠다. 하여간 이 책을 보면서 정신이라는 것만큼 이해하기 어렵고, 다루기 어려운 것이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체 다른 기관에 이상이 생기면 수술을 하면 되겠지만서도, 정신이라는 메카니즘은 어떻게 그런 병이 생겼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좋아질 수 있는지조차 알기 어려우니 말이다. 

다만 이 책을 보면서 안도했던 것은 정신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연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덕분에 과거엔 말도 되지 않은 치료로 환자만 잡았던 것에서 벗어나서, 좀 더 부작용은 적고, 완치에 도움을 주는 약물 개발이 활발하다고 하니 다행이다.더불어서, 병 자체에 대한 이해가 늘어난다는 것도, 그런 정보들을 활발하게 공유하려 한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이런 정보 공유야 말로 정신병에 대한 편견을 타파하는데 일조를 할 것이며, 정신병이 그저 병일 뿐이라는 자각은 종래 정신병에 걸린 사람들이 본인의 병을 인정하는데 도움이 될 터이니 말이다.  

정신 분열증에 걸린 사람들은 추위를 잘 탄다고 한다. 여름에 외투를 세겹이나 껴입고도 춥다고 할 정도로. 편집증에 걸린 사람은 본인이 편집 증상을 보인다는 점은 알지 못하지만 다른 편집증 환자의 증상에 대해선 의사보다 훤하다고.  종교적인 집착 역시 우울증이나 갖가지 다른 정신병의 증상일 수 있으며, 중독에서 갑자기 벗어난 사람들은 심각한 우울증에 걸린 확률이 높다는 것등,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들이 많았다. 정신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한번 보셔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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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로 길러진 아이 - 사랑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희망을 보여 준 아이들
브루스 D. 페리 & 마이아 샬라비츠 지음, 황정하 옮김 / 민음인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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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연 관계가 아닌 할아버지 손에 남겨진 아이가 있다. 어찌된 영문인지 아동 복지국에선 그를 잊어 버렸고, 할아버지는 하는 수 없이 그 아이를 키우기로 한다. 지능이 약간 모자라는 이 할아버지의 직업은 개 사육사, 평생 아이를 가져본 적도 아이를 키워본 적도 없던 이 할아버지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방식으로 아이를 키운다. 바로 다름아닌 개처럼. 그가 딱히 나쁜 마음에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 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할아버지는 그저 몰랐다. 아이를 개처럼 키우면 개처럼 크게 된다는 것을. 하여 개 우리에서 개들와 함께 자라난 만 여섯살의 소년을 본 의료진은 경악하고 만다. 그가 걷거나 말을 하는 대신 네 발로 기면서 으르렁댔기 때문이다. 당시 유아 시절의 트라우마를 전문으로 연구하던 저자는 도무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난감해 한다. 인간다운 점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었으니 안 그렇겠는가. 하지만 그의 과거를 알게 된 저자는 그가 미쳤거나 정신 지체가 아니라 유아시절의 학대가 빚어낸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유를 알았으니 이제 남은 것은 그를 아이답게 고치는 것뿐, 저자는 거기서부터 본격적인 고민을 시작한다. 과연 이 아이를 제대로 인간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지 자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아시절에 습득된 것들을 바꾸어 놓는다는 것이 어렵다는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그는 인내심을 가지고 아이에게 접근을 하는데... 과연 개로 길러진 아이는 인간 사회에 적응할 수 있을까? 아니, 무엇보다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을 알 수나 있는 것을까? 

 

저자가 소아 정신과 전문의라고 하는데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감사하게 된 것은 아이들에 대해 남다른 애정으로 도와주려 한다는 것이었다. 어른들은 이미 아이가 아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어려움을 잊어 버린다. 자신들이 어린 시절 겪었던 고통들은 싸그리 잊어 버리고 , 아이들의 고통과 어려움과 슬픔을 그저 아이들의 변덕이라고 치부하기 일쑤다. 내진 어리니 뭘 알겠어란 식이라거나... 아이들은 단지 표현에 서툴 뿐인데도, 다그치고, 화를 내고, 이해하지 않는다. 이해하지 못한다는게 정확한 말인지도 모르겠지만서도. 하긴 이용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용당하는 줄도 모르는 아이들을 이용해먹는 어른들은 쎄고 셌으니 말이다.  하여간 이런 어른들의 실수에 대해 가장 그래도 용서해줄만한 것은 내가 몰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지를 들이민다고 해서 상처과 고통이 절로 치유되는건 아니질 않는가. 하니, 깨인 어른이라면 난 단지 몰랐다는 말로 용서를 받을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무지는 면죄부가 될 수 없다. 그걸론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우린 아이들을 위해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트라우마때문에 힘겨운 유아시절을 보낸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그들을 이해하고 치료하는 과정을 써내려간 책이다. 말을 못하니 항변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방치되거나 버려지다 시피한  유아들은 나중에 어떻게 될까? 어른들의 안이한 생각처럼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나이에 벌어진 일이니 별 영향이 없는 것일까? 그렇진 않다고 한다. 저자는 인간에게 유아시절이 얼마나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이고, 그때 벌어진 학대가 어떻게 인간성을 훼손하는지를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책을 보면서 감사했던 일은 말을 못하는 아이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저자가 통찰력과 이해심을 발휘하고 있더라는 점이었다. 이런 정신과 의사들 덕분에 아이들의 세계를 조금더 잘 알게 된다는 점은 얼마나 마음 놓이는 일일런지... 재능있는 사람들의 이런 값진 노력이야말로  "노블리스 오블리제" 라고 칭송받아야 하는게 아닐까 한다. 우린 이 세계가 더 나아지길 날마다 바라고 있지만서도, 그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라는 것은 간과하는 듯하다.  고통스런 어린 시절이 없는, 트라우마가 없는 유아기를 보낸 아이들이 어른으로 성장했을때 우리 사회는 훨씬 더 밝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왜 모르는 것일까? 그저 사회가 좋아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아이들에겐 학대와 폭력과 몰이해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쓰레기 취급이나 하는 어른들이 과연 올바른 행동을 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따지고 싶다. 아니, 올바르지 않다. 절대로...  

 

만 세살 이전의 유아를 키울때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꼭 읽어봐야 할만하다. 이 책을 보면서 놀란 점은 서양의 개인주의가 아이들에겐 얼마나 나쁜가 라는 점을 알게 해줬다는 것이다. 아이 시절에는 무조건 많이 안아주고, 얼러주며, 관심을 가져주고, 예뻐해 주는 것이 최고라고 한다. 접촉이나 대화가 없는 유아기가 아이들에게 최악의 양육 조건이라고 하는데, 뭐, 상식적인 말이다. 걷지도 못하는 아기를 홀로 둔다는게 말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서양에선 드문 일이 아니라고 하니, 참 할 말이 없다. 1살난 아이가 무슨 독립을 해야 하는 20살난 성인인가? 홀로 서기를 하라고 혼자 두게? 잘못 되어도 크게 잘못 되었다. 다른건 몰라도 이런 서양식 사고나 행동은 그렇게 인간적으로 비춰지지 않는다. 그들도 늘 옳을 수는 없는가 보다. 이 책의 저자 말로는 우리나라 같이 유아기때 늘 업고 다니는 문화가 아이들 성장엔 바람직하다고 한다. 인간적인 접촉을 유지하면서, 사람들 속에서 말을 배우게 되니 말이다. 더불어 현대에 학대로 길러진 아이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핵가족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폭력만이 학대의 전부는 아니다. 방임이나, 유기, 돌보지 않는 것 역시 학대다. 그렇기에 아이를 키우는데는 대가족이 낫다고 한다. 양육 정보를 대물림 할 수 있는데다, 부모의 학대를 방지하거나 감시하는 역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부모 기능을 못하는 사람이 있을 시 자연스런 바톤터치도 가능하고 말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유아 시절의 트라우마가 아이들에게 끼치는 막강한 영향력을 알게 해준 것이 장점이다. 거기에 이미 트라우마가 생긴 아이들을 어떻게 치료해 나가야 하는가를 보여준 것이나, 정신적인 데미지를 겪은 아이들을 우리가  얼마나 오해하기 쉬운가를 설명해 준 것도 좋았다. 치료 방법중 하나로 저자는 스킨쉽이 가져다 주는 놀라운 치유력에 대해 말하는데, 아이를 둔 부모들이라면 귀담아 들어두면 좋겠다 싶다. 유아 시절 충족되지 못한 스킨쉽은 결국 나이가 들어서라도 충족이 되야 나이에 맞게 성장이 가능하다고 하니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트라우마때문에 성장이 지체된 아이를 통해 아이들의 성장패턴을 알게 된다는 점이었다. 무엇가 잘못된 것을 보면서 빠진 것을 알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들 덕분에 보통의 아이들을 이해하는 길이 열린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 하지 않는가. 그렇게 연결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건 아마도 이 저자에게 공을 돌려야 할 듯....그만의 통찰력과 연민과 인내가 만들어낸 이해였으니 말이다. 태어나자 마자 트라우마를 겪을 수밖엔 없었던 슬픈 운명의 아이들에게 그나마 이런 분들이라도 있다는 것이 다행이지 싶다. 이 분같은 유아 정신과 의사들이 많아진다면 우리의 미래는 훨씬 더 밝아지지 않을까...

 

참, 이 책을 보면서 깨달았다. 우리가 남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서 그들이 그렇게 변화한다는 것 말이다. 우리가 상대를 개로 취급하면 그는 개로 성장한다. 우리가 상대를 인간으로 키우면 그는 인간으로 성장할 것이다. 우리가 상대를 노예로 취급하면 그는 노예로 성장할 것이고, 우리가 그를 쓰레기로 취급하면 그는 쓰레기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상대하는 사람을 자신이 어떻게 대하는가 한번쯤은 숙고해봐야 하지 않을까.  과연 우리는 그들을 제대로 대접하고 있는가? 그게 왜 중요하냐고? 인간사회란, 그리고 관계란 거울 같은 것이다. 우리가 그를 개 취급하면 그 역시 자라서 우리를 개 취급 할 것이다. 관계란 언제나 일방적일 수는 없는 것이니 말이다. 내가 남을 대한 것 그대로 그 역시 나를 그렇게 취급하게 되지 않겠는가. 쉽게 말해 관계란 결산을 해보면 쌍방향이더라는 것이다. 오늘 투표를 하는 날인데, 우린 과연 어떤 대접을 정치가들에게 받고 있고, 과연 우리가 그런 대접을 받을만한 사람들인지 잘 생각해볼 일이다. 그들이 우리를 대접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면 그대로 있어도 좋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를 대접하는 방식이 맘에 안 든다면, 알아야 한다. 우리가 변하지 않는 한 그들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막아서지 않는다면, 그게 맘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절대 모를테니 말이다. 왜 변하고 바뀌겠는가? 언제나 그게 먹히는데...그러니 개로 길러 지고 싶지 않다면 , 개 취급을 하지 말라고 우리가 나서서 짖어야 할 것이다. 그들이 무지해서건 ,멍청해서건 , 우리가 주장하는 바대로 심성이 나빠서건, 그들이 우리를 개 취급 하는데는 아는 것이 그것밖에 없어서 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 개 사육사 할아버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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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메 식당 디 아더스 The Others 7
무레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푸른숲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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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궁금해서 집어 드셨을 것이고 ,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이라면 또 궁금해서 집어드셨으려나? 하여간 일본어로 <갈매기 식당>이라는 영화의 원작이다. 영화에선 볼 수 없었던 등장인물들의 과거사를 볼 수 있다는 점이 장점. 영화에 비해 단점이라고 한다면 맛 있어 보이는 음식을 눈으로 볼 수 없다는 점 정도? 그왼 영화와 똑같다. 하여 영화를 보면서 든 감상들이 그대로 이 책에도 적용된다는 것이 별로. 영화가 지나치게 한적하고 욕심없고 모든 것이 별 어려움 없이 펼쳐가는 통에 심드렁해졌으니 말이다. 도대체 저게 말이 돼? 라면서...아무리 핀란드 사람들이 알고 보면 선량하다고는 하지만 , 이렇게 멍청한 전문 도둑들이 나오는 책은 신빙성이 없단 말이다. 더군다나 그들이 20년간 전문 절도범이었다는 설정인데다 말이다. 뭐, 그냥 아무 생각없이 인상 쓰지 않아도 되는 그런 책을 원하신다면 좋을 듯...하지만 이 곳에서는 모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다는.. 실제로 모든 일이 잘 풀리기만 하는 그런 이야기, 재미없다. 재미없기에 앞어서 한심하다. 실제로 인간들이 사는 세상은 그렇지 않은게 정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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