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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죽은 것 ㅣ 찰리 파커 시리즈 (오픈하우스) 1
존 코널리 지음, 강수정 옮김 / 오픈하우스 / 2011년 7월
평점 :
찰리 파커를 소개한 책이고, 오늘의 존 코널리를 있게한 작품이라고 해서 본 책이다. 솔직히 별 기대는 없었다. 그의 다른 작품인 <잃어버린 것들의 책>이 별로였기 때문이다. 책을 보면서도 내내 중얼거렸고, 책을 덮은 지금도 불평하고 있지만, 도무지 왜 그 책이 먼저 소개가 된 것인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외국에 자신의 작품을 내려고 하면 그래도 제일 나은 작품을 내는게 정상 아닌가? 왜 자신의 가장 졸작에 가까운 책을 한국에 먼저 내서 자신의 이름에 먹칠을 한걸까? 이해되지 않는다. 어쩜 작가가 아니라 에이전시의 문제가 아닐까 싶지만서도, 하여간 만일 이 책을 먼저 읽었더라면 이 작가 , 존 코널리 이름을 결코 잊지 않았을 것이다. 잊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찰리 파커는 왜 아직 안 나오나요 라면서 출판사에게 채근을 하고 있었지도 모른다. 분명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을테니 말이다. 하여간, 작가가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데 있어 실수를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는 책, <모든 죽어 있는 것들> 이 되겠다. 다들 걸작이라고 말한다는 이 책엔 과연 어떤 내용이 숨겨져 있을까?
귀여운 세살배기 딸과 아름다운 아내, 자신의 적성에 맞는 형사직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야 정상인 찰스 파커는 조금씩 삶의 지쳐 가면서 알콜중독자가 된다. 점점 사이가 멀어져가는 아내와 대판 싸운뒤 술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집에 들어간 찰스( 앞으로 버드라고 할 것임) 는 아내와 딸이 참혹하게 살해된 것을 발견한다. 정황상 그가 범인일 수도 있지만, 시체를 훼손하는 정도만으로 그를 범인선상에서 제외할 정도로 끔찍한 사체의 모습, 찰스 파커는 엄청난 충격에 기나긴 방황을 길을 떠나게 된다. 형사직을 그만두고, 정신을 차리고 알콜 중독에서도 벗어난 그는 이제 아내와 딸의 복수를 하려 하지만 범인은 그 후로 오리무중이다. 아무런 단서도 잡지 못한 그에게 뉴올리언즈에서 FBI친구인 올리치가 연락을 해온다. 미시시피 늪 주변에 사는 흑인 영매 할머니가 그 범인을 안다고 했다는 것이다. 꿈속에서 그가 죽인 다른 여자를 봤다고 말하는 흑인 영매는 범인이 떠돌이이며, 다른 범행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들려준다. 믿겨지지 않은 설명임에도, 왠지 그 할머니의 말에 신빙성을 느낀 버드는 떠돌이의 정체를 찾아 탐문을 시작한다.
한편, 형사직을 그만두고 탐정직에 나선 그에게 전직 파트너가 일감을 주선해 준다. 대부호의 과부가 그의 의붓아들의 애인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얼마전 그 집에서 아이가 사라지는 실종 사건이 벌어졌다는걸 알고 있던 버드는 아이의 실종과 모종의 관련이 있지 않을까 했지만, 그들이 바라는 것은 그저 그 여자가 잘 살고 있는 지에 대한 것이다. 그녀의 뒤를 조사하던 버드는 그녀의 언니가 어린 시절 소아성애자에게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30년전에 일어난 소아성애 살인과 과연 대부호의 집에서 일어난 아동 실종 사건이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더군다나 그들이 찾아달라고 하는 애인의 정체는? 파면 팔 수록 왠지 그녀가 살해될거라는 직감이 든 버드는 빨리 그녀를 찾아 안전한 곳으로 데려 오기 위해 애를 쓰는데... 과연 그녀를 구해낼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의 아내와 딸을 죽인 범인은 어디에?
걸작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정말 잘 쓴 추리 소설이긴 했다. 우선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틀에 박힌 인물이 없다는 점이 탁월하다. 찰스 파커라는 탐정도 매력적이지만, 그보다 주변의 인물들이 하나 같이 다 살아있는 통에 어떤 인물을 더 좋아해야 할지 한명만 고르라면 곤란할 지경이다. 갱단 두목에서부터, 좀도둑, 전문 킬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죄자들이 등장하는데도, 그들에게서 묘한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혀를 내둘렀다. 게다가 그들이 구사하는 대화라니...유머 넘친다. 이렇게 끔찍한 스릴러를 읽는데도 미소를 안 지을 수 없게 만드니 말이다. 무섭다가도, 또 다음 장면에선 웃게 만들다니.. 독자를 자유자재로 갖고 노는 폼이 예사롭지 않다.
게다가 등장인물들이 진짜 수사에 나서고, 진압 현장에 나서는 것처럼 현장감이 생생하다는 점도 점수를 높이 줄 수밖엔 없었다. 그만큼 자연스럽게 모든 장면들을 썼다는 것인데, 잠복 수사를 하거나 이동수단을 타고 출장을 가는 장면들까지 하나도 버릴게 없더라. 다른 책에서는 대개 이런 장면들은 그냥 뛰어넘어가는 장면이나 버리는 장면인데, 어떻게 어떤 장면 하나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던지,그 꼼꼼함과 재치가 단연 돋보인다.
참, 주인공의 개성과 매력도 빼먹으면 안 된다. 그의 과거와 가족 이야기, 그가 알콜중독에 빠진 이야기나, 거기서 벗어나려 고민하는 이야기--어떤 장면에선 술의 유혹에 지고 싶은 그의 충동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다.--좋아하는 재즈 음악이 배경으로 흐르는 것이랑, 그가 친구들과 나누는 격의 없는 농담들, 그리고 인간에 대해 끊임없이 이해하고 도와주려 하는 심성들과 막돼먹지 않은 성격이 그를 무척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찰리 파커가 왜 탐정의 브랜드 명이 되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만큼 인물 창조에 성공적이었다는 뜻이다.
그외, 이야기 전개 자체가 자연스럽다. 어디로 흘러 갈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꾸준이 이야기가 가지를 치고 넘어가는데, 그게 너무 그럴 듯하다는 것이다. 특히나 버드가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장면들은 식상한 장면들이 하나도 없는 점들이 작가의 상상력의 출중함을 미뤄 짐작하게 했다. 그런 장면들이 사건으로 이어지고, 또 그렇게 특이한 장면들을 서두에 놓으니, 다음 장면들도 호기심이 생길 수 밖엔 없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긴장의 끈을 놓치 않고, 재밌게 끝까지 볼 수 있던 책이었다. 두꺼운 한권의 책으로 되어 있는데, 어떻게 보면 책 두권을 읽는 것이라고 봐도 된다. 1부와 2부에는 소아성애 살해범을 잡는 이야기가, 3부와4부에는 자신의 가족을 처참하게 죽인 범인을 잡아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니 말이다. 책 한권을 사시면 두 권을 읽는 셈이 된다는 말씀. 이런 점은 출판사에게 감사드린다. 대체로 이런 경우 두 권으로 낼까하는 유혹을 했었을텐데 말이다. 그런 유혹을 과감히 벗어 던지고, 한권으로 내주셔서 고마울 뿐이다. 앞 표지를 보니 찰리 파커 시리즈가 몇 개 더 있는 모양인데, 그 중에서 괜찮은 걸로 빨리 내 주시면 한층 더 고맙겠다. 적어도 그럴 작정이다.
아. 단점을 안 썼네. 지나치게 잔혹하다. 읽는 것이 부담이 될 정도로. 게다가 버드가 가는 곳마다 어찌나 많은 시체가 양산이 되던지...시체 숫자를 세다 중간부터 포기했다. 추리 소설을 많이 봤다고는 못하지만서도, 탐정이 가는 곳마다 이렇게 시체가 양산되는 책도 드물지 않는가 한다. 이건 거의 학살 수준이니 말이다. 다른건 몰라도 그런 면에서는 타의 추종이 불허할 듯... 그러니까, 다른건 몰라도 그건 좀 현실성이 좀 떨어진다는 것이지. 현대 사회에서 이렇게 시체를 양산해주는 사람이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 법적인 것도 그렇지만, 그 수많은 총알 세례를 받으면서도 그만이 살아남는다는건, 아무래도 웃긴다. 총알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데 말이다. 하여간 첫 권부터 이미 시체를 --그것도 잔혹한 시체를--너무 많이 본 결과, 앞으로 정신적 외상에 시달릴게 분명한 탐정 찰리 파커, 그의 다음 행보를 기대해 본다. 분명 우리같은 사람과는 차원이 다르게 불행할 것이기 때문에, 다른건 몰라도 나보다 행복한 사람을 만나 비교 우울에 빠지는 일은 없지 않을까 한다. 다만, 파커의 세계 자체가 너무 우울하기 때문에 감정 이입을 잘 하시는 분들은 자체적으로 염세적인 감정을 잠깐 느끼실 수도...
아, 잊어먹을 뻔했다. 존 코널리 작가님~~ 제발 동화는 잊어 주셔요!!! 찰리 파커, 좋잖아요? 그걸로 그냥 밀고 나갑시다. 평생 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