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갤러리 - 현대미술을 움직이는 작가와 경매, 갤러리의 르포르타주
도널드 톰슨 지음, 김민주.송희령 옮김 / 리더스북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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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책을 다 읽고 나서 제목이 책 내용을 얼마나 잘 반영하고 있나 살펴 보곤 하는데, 이 책만큼은 자신만만해도 되지 싶다. 은밀한 갤러리라. 딱 맞는다. 현대 미술 세계의 뒷면을 보여주는 책이니 말이다. 어떤 뒷면? 돈이 오고가는 뒷면이라고 보심 되려나?

 

우리 같은 서민이 미술계에 그나마 관심을 갖게 되는 기회는 어떤 어떤 작품이 최고 경매가를 갱신했다는 소식이나, 아니면 어떤 회장님 현관에 무슨 무슨 그림이 걸려 있더라는 이야기를 들을때다. 한마디로 뉴스에 소개될만큼 드라마틱한게  아니라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앵커가 읊어주는 뉴스를 밥을 먹으면서 들으면서 아니, 저게 최고가라고? 눈이 삐었나? 아니면 돈이 썩어 나는가 보구만...이라고 한마디씩 하는 게 우리가 하는 유일한 미술 비평이라면, 그런 말 뒤에는 이런 마음 역시 숨어 있을 것이다. 정말 저게 그만한 가치가 있단 말이야? 그런데 왜 내 눈엔 그게 보이지 않는 거지? 만일 당신이 그런 질문을 한번이라도 해봤다면 이 책을 들어봐도 좋다. 이 책의 작가 역시 그런 질문을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우리와 다른 게, 그에겐 정보와 지식과 관심과 호기심을 풀만한 지성과 무엇보다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지 알고 있는 인맥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완 달리 저자는 자신의 질문에 대해 답을 찾아 나가기 시작한다. 왜 저 그림은 그렇게 비싼 것일까? 진짜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대답은? 물론, 그렇다는 것이다. 부자가 될만큼 돈을 번 사람들이--그만큼 돈에 빠삭하다는 뜻.-- 뭐하러 돈도 되지 않은 것에 돈을 쏟아 붓겠는가? 물론 1990년대에 일본 부자들이 미술품들을 묻지마 투자 한 것은 유명한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가치가 없는 것에 돈을 투자했다고 볼 순 없다. 경졔에도 버블이 있든, 그당시 미술계가 다시 없는 버블장세였다고 하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인데, 미술품을 산다는 것이 주식에 투자하는 것과 똑같더라. 아니, 이 세상 모든 상품시장의 메카니즘과 다를바가 없었다. 물론 물품의 숫자가 한정되었다는 점이나, 그 물건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들이 다른 상품들과 차이가 있겠지만서도, 그외 다른 면에서는 다를게 하나도 없었다. 아무리 미술가들이 그들의 작품이 예술품이라고 우겨도, 콜렉터에게 수집되서, 딜러들에게 중개가 되며, 경매장에서 팔려 나가는 미술품은 그냥 물품에 불과할 뿐이었다. 

 

 즉, 다른 말로 하면 고상하다는 예술계 역시 모든 경제 이론들이 그대로 적용된다는 뜻이다. 인간의 욕망이 그 어지러운 장세를 더 어지럽게 한다는 점 까지도... 묻지마 투자가 가능한 이유나, 예술품의 품질과는 상관없이 인기가 가격에 영향을 주며, 그렇기에 사람들의 관심의 촛점을 받는 것이--한마디로 악평이 무평보다 낫다는 그런 말--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는 점도 놀라운 발견이었다. 한마디로 점잖다는 미술품도 실은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천박하다는 (?) 연예인과 다를게 없었다. 

 

그렇게 세상의 모든 경제 현상에 대입해서 미술계를 알기 쉽게 이해하게 해준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다. 아이돌이 인기가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볼만한게 있기 때문 아니겠는가. 미술품도 마찬가지다. 인기란 것이 무형의 것이긴 하지만, 다른건 몰라도 모든 사람들의 입에 오를 내릴 정도라면 작품성이 어느정도는 보장된다는걸 이 책을 보고 깨달았다. 모든 사람들의 눈을 속일 수는 없는 것이니, 모든 사람들이 한마디씩 한다는건 무언가 있다는 뜻이라고 사람들은 은영중에 생각하고, 실제로 또 그것이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닐 거라고 저자는 말한다. 동의한다. 그렇게 예술품이 주목을 받고, 관심의 촛점이 되고, 인기가 상승하고, 그러다보면 가격이 올라간다고 하는데, 그렇게 보니 작가가 유명해진다는 것은 그야말로 굉장한 드문 기적이었다. 그의 그림이 작품성도 있어야 하지만, 사람들의 눈에도 띄어야 하니 말이다. 여기서 우린 미술품의 가격을 올리는데, 작가의 재능보다 더 중요한 다른 요소를 만나게 된다. 가격을 올려주는 사람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가 바로 컬럭터고 그의 안목은 곧 브랜드화 된다. 즉, 미술품에도 루이 뷔통이나 샤넬, 티파니같은 브래드가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미술계에서 브랜드란  곧 컬렉터의 이름을 뜻한다. 누가 누가 그 그림을 수집했었다더라...라는 말 한마디로 그 그림은 가격은 치솟고, 작품성을 보장 받으며, 작가는 명성을 보장받게 된다. 브랜드의 가치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묻는 분이 있으시다면 이렇게 생각하시면 된다. 모든 사람들이 미술작품을 보는 눈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말이다. 세상엔 안목이 있는 사람보단 돈 많은 사람들이 더 많고, 또 돈을 벌려다 보면 안목을 기를만한 시간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안목이 없지만 돈이 많은 분들에겐 컬렉터가 수집한 수집품이었다는 사실은 그 작품을 의심없이 사도 좋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즉, 그것을 산다고 해도 나중에 투자 가치를 돌려 받을 수 있을 거란 뜻이다. 안목은 없고, 바쁘고, 돈은 어디다 써야 하고..라는 분들에게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과시를 하기 위한 투자 수단으로 콜럭터의 작품을 구매하는 것만큼 쉬운게 어디 있겠는가? 든든하고 확실한 투자 수단으로 제격이라는 말이다. 이제 확실하게 이해가 되시는지..

 

왜 미술품이 그렇게 비싸고, 관심의 촛점이 되며, 못사서 난리들인지 이해가 안 되시는 분들은 보심 좋을 것이다. 재밌다. 무엇보다 그들이 미술품에 그렇게 관심을 갖는 이유가 단지 미적인 이유에서라기 보다는 투자 목적이나 과시용이라는 설명은 통쾌하기 까지 했다. 가장 단순한 답이 가장 정확한 대답이랬다고...이 대답이야말로 그 예술품이 너무 아름다워서 샀다는 말보다 더 그럴 듯하게 들린다. 물론 인간이 창조한 예술품에 감동을 느끼는 것은 누구나의 자질이겠지만서도 말이다. 그외에 콜렉터가 그림을 구매하는 과정이나 동기도 흥미롭긴 마찬가지였다. DNA에 수집광이란 유전자가 새겨져 있어야 가능할 것 같은 수집광들의 경쟁이 현대 미술사를 새로 쓰고 있는 동력이 된다는 점도...

 

연막에 가리워진, 뭔가 대단한 것이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팍팍 풍겨대면서 일반인들을 무지렁이 취급하는 현대 미술계의 뒷면을 철저하게 파헤쳐 보여준다는 점에서 카타르시를 느끼실 수 있을 것이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한다고 해서 조롱끼다 다분한 그런 책이라고 느껴지실 지 모르겠는데, 그건 오해다. 작가 자신이 점잖고 지적인 사람이라서, 어찌나 말도 점잖게 하시던지...읽는 내내 입가에 엄마 미소를 지을 수 없었다. 흐뭇해서 말이다. 하여간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세계를 확실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만점, 하고 싶은 말을 가리지 않고 한다는 점에서 만점, 그 말을 천박하지 않게 내뱉을 줄 아는 지성이 있다는 점에서 만점이다. 아, 유머 감각도 넣어야 겠군...충분히 지루해질만한 이야기를 유머를 적절하게 섞어가면서 풀어내가는 통에 별로 지루하지 않게 읽었으니 말이다. 여기에 감동만 있었다면 별 다섯개를 주었으련만... 그게 좀 아쉽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르뽀식의 까발리는 책에서 무슨 감동까지 바라겠는가. 그저 현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를 받을만하지 않는가 한다. 

 

미술계는 어렵다? 우리는 별로 어려워 하지 않는데, 갤러리 관계자들은 어렵다고 한다. 우리 같은 서민들은 가까이 오지 말라는 분위기다. 그런 분위기에 적잖이 서러워 하고 기분 상해하셨을 분들은 꼭 보시길...그들의 실체가 낱낱히 까발려 지니 말이다. 그게 뭐냐고? < 오즈의 마법사>의 허수아비왕 아니고 뭐겠나. 아무것도 없기에 무언가 잔뜩 있다고 허세를 떠는 인간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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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Ever After (Prebound, Turtleback Scho)
Sonnenblick, Jordan / Turtleback Books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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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살에 백혈병에 걸렸던 제프리는 이제 8학년이다. 어렵게 살아나기는 했지만 암이 남긴 휴우증은 여전히 그를 따라다닌다. 투병시절 쏟아부은 화학약품 때문에 두뇌가 손상된 그는 다른 아이들처럼 빠릿빠릿하게 셈을 하지 못하고, 절뚝이며 걷는다. 다만 자전거를 탈때만큼은 다른 아이들과 똑같기 때문에 그는 자전거 타기를 좋아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소아암 생존자인 테드가 그의 가장 친한 친구, 친절하고 상냥한 제프리와 달리 테드는 빙퉁맞은 성격때문에 친구들이 많지 않다. 하지만 테드의 삐딱한 말투 뒤에 숨겨진 따스한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제프리는 친구의 그런 행동에 개의치 않는다. 그가 그런 성격이 된 데는 암을 이겨내는 동안의 비통한 생활들이 한몫 했음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암이 재발하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평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던 그에게도 삶의 변화가 찾아온다. 우선, 병에 걸렸을때 누구보다 그를 잘 보살펴 주던 형이 아프리카로 떠났다. 그는 이젠 자신의 삶을 찾아야 겠다면서 대학도, 여자친구도, 동생도 버리고 떠난 것이다. 형이 늘 자신 옆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제프리는 화가 난다. 하지만 좋은 일도 있었다. 멋진 여자친구 린다가 서부에서 전학을 온 것이다.린다가 전학온 첫날 그녀에게 반한 제프리는 그녀도 자신에게 관심을 갖자 구름에 올라탄듯 하늘을 날라갈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기분도 그의 발목을 잡는 수학때문에 엉망이 된다. 수학테스트에 낙제하면 8학년을 한번 더 다녀야 한다는 말에 기겁을 한 제프리는 친구 테드의 특별 강습까지 받지만 여전히 수학은 어렵기만 하다. 수학 테스트에 합격하면 졸업식장에 걸어들어가겠다는 테드의 약속에 제프리의 어깨는 더 무거워 지고, 엄마에게 숨겼던 낙제 사실마저 들통이 나자 제프리는 곤경에 처하게 되는데... 과연 제프리는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연작이라는데, 그냥 이 편만 읽어도 이해하는데는 별 무리가 없었다. 첫문장부터 나를 웃기고 사로잡더니만, 끝날때까지 소소하게 나를 웃기는데 져버렸다. 다른 연작들도 유명하다고 하는데, 무리는 아닌 듯... 작가가 독자를 설득하고 웃겨 대는 것이 너무 쉬워 보이는게 , 창작품이 아니라 실제 생활을 그려낸 듯 자연스럽기만 하다. 놀라운 솜씨라 아니말 할 수 없겠다. 잘 쓴다는 말이다. 아이들이 읽어도 좋을만큼 내용도 건전하고, 그러면서도 별로 현실에서 벗어난 듯한 느낌이 들지 않게 하는 것이 맘에 든다. 둘 다를 잡는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닌데 말이다.  

감동 받으려 하지 않았는데, 감동받고 만 소설이다. 아이들의 분투는 언제나 어른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면이 있는가보다. 아무래도 그들에게 미래라는 시간을 선사하고 싶은 어른의 마음이 더해져서 그런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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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마음에게 속고 있다 - 정신과 전문의 최병건의 마음 탐구 22장면
최병건 지음 / 푸른숲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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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괜찮은 책을 소개하는 이상적인 방법을 아시는 분이 혹 있으려나 모르겠다. 언뜻 떠오르는 사람이라곤 닉 혼비,폴 콜린스, 빌 브라이슨 정도? 이 중 빌 브라이슨은 서평에 관한 책을 쓴 적이 없지만, 그가 쓰면 모든게 그럴싸하게 들리기 때문에 빼놓긴 그렇다. 안 써서 그렇지 그가 쓰면 분명 재미있을 테니까. 하여 쓴 적이 없는 분야라고 해도 일단 후보에 넣고... 얼추 후보가 생각났으니, 이젠 물어봐도 되겠지? 괜찮은 책을 소개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을 아시느냐고? 물론 하기도, 대답을 듣기도 매우 곤란한 질문이다. 정황상 (대답을 들을 ) 가능성도 없고 말이다. 나도 다 안다. 그럼에도 내가 이런 말을 주절주절 떠드는 것은 이 책을 쓰면서 고민이 많았기 때문이다. 읽은 지 거반 2달이 넘어가는 것 같은데, 그간 리뷰를 쓰지 못했다. 너무 재미가 없어서? 아, 그랬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만은... 혹평이야말로 내가 전혀 남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되는 장기 중 하나니 말이다. 아니다. 이 책은 칭찬을 해줘야 하는 책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바로 나의 고민이 있었다. 오래만에 만난, 한국인이 쓴, 심리 분석 에세이인데, 마음껏 칭찬을 해줘야 할만큼 잘 썼다는 것이다. 이건 잭팟을 터뜨린 것과 마찬가지다. 아니, 내 인생에 어찌 이런 경사가! 라면서 덩실덩실 춤사위가 나올 정도다. 그간 한국인이 쓴 책에 한번도 마음껏 --한번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매우 드물다는 것은 사실이지만서도--칭찬을 해본 적이 없는 나는 그만 흥분해 버렸다. 칭찬을 하고는 싶었지만,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한 내게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난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외쳤다. 이건 정말로 잘 쓸거야... 반드시 그럴거야~~~! 라고....
 

이제 나를 어느정도 파악하신 이웃분들이라면 내가 어떤 곤경에 처했는지 짐작이 되실 것이다. 그렇다. 난 멍석 깔아주면 못하는 스타일이다. 말이 꼬이고, 혀가 굳으며, 긴장을 하는데다, 머리마저 하애졌는데, 그것도 모자라 읽는 사람까지 의식이 되더라. 글이 써질리 없었다. 잘 쓰면 죽어~! 라면서 머리에 총을 갖다 댔다 해도 이보단 나았을 것이다. 적어도 한 자라도 썼을테니 말이다. 머리속에선 이렇게 써, 저렇게 써야 해...라면서 갖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했지만, 난 결국 한 자도 쓰지 못했다. 그렇다보니, 근 2달 동안 리뷰를 쓰겠다고 난리를 펴댄 결과는 바로 이러하다. 내용이 가물가물해지다보니 의미를 설명해 주겠다고 했던 다짐은 추억일 뿐이고, 남은 것이라곤 이 책이 굉장히 괜찮고, 신선했으며, 통찰력 있고, 잘 쓴 글이었다는 인상뿐이란 것.  도무지 이걸로 독자들을 어떻게 설득하겠다는 것인지, 모 광고 CF처럼 "좋은데, 정말 좋은데...설명할 방법이 없네" 라는 멘트를 유치하게 날릴 수도 없고 말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광고의 멘트까지 차용하는걸 보면 진짜 내가 갈데까지 가긴 한 것 같다. 하여간, 그렇게 좋은 책이었다는 인상에 의존해 리뷰를 쓰는 전대미문의 사태에 직면하고 보니, 궁금해진 것이다. 과연 정말로 괜찮을 책을 소개하는 이상적인 방법은 없는 것일까? 있다면 배워서라고, 그게 안 된다면 훔쳐서라도 쓰고 싶은데 말이다. 물론 지금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면, 다시 책을 정독하고 찬찬히 리뷰를 쓰는 것이지만서도, 한번 읽은 책을 다시 읽는건 예의가 아니다. 하여, 궁색한 변명이지만, 남겨진 인상에 의존해 쓰기로 했다. 안 쓰는 것보단 나으니 말리지 마시길... 다만, 다음에 내가 쓰는 리뷰는 어쩌면 정작 책하고는 별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은 알아주셨음 한다. 나중에 책하고 다르잖아요~~~ 라면서 항의 하셔도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일단 제목을 주목하시라. 제목 자체가 저자가 말하려는 것의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으니 말이다.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는 우리에게 말한다. 우리가 자신이라고 알고 있는 마음이 실은 우리 마음이 아닐때가 많다는 것이다. 아니, 뭐 그런 소리가 있어? 하면서 화들짝 반감을 표해주시는 분들은 좀 더 그의 말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으로 나와 내면을 분리해서 설명하고 있었다. 이상하게 생각되실지 모르지만, 실은 이런 이분법은 이미 여러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설명법이다. 자아와 영혼이라고 해도 좋고, 자아와 마음이라고 해도 좋다. 어떤 용어를 쓰건 간에 핵심은 이것이다. 우리는 나와 마음으로 분리되어 있고, 어느 정도 세뇌 되어 진 채 살아간다는 것. 즉, 진짜 내 마음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내 마음이 아닐때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나는 의사가 되기 싫고, 의사가 될 능력도 없는데, 주변 사람들이 의사가 되는걸 영웅시 한다고 해보자. 나는 나도 모르게, 의사가 되는 것이 가장 내가 하고 싶은 일인양 말하게 된다. 실은 마음 저 깊은 곳에선 전혀 관심도 없는 일임에도 말이다. 무엇이 우릴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에서 멀어지게 하는지, 거기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저자가 말하려는건 이것이다. 만약 우리가 자신의 마음을 진짜로 알 지 못한 채 행동하게 된다면, 삶이 고통스러운 것이란 것이다. 최소한 고통스러울 것이고, 심하면 인생을 통채로 잘못 살았다고 후회하게 될 것이며, 보통은 자신의 삶을 살지 못했다는 기분으로 살게 된다. 아니라고? 아니, 진짜 그렇다. 내가 그렇게 살아봐서 잘 안다. 저자의 분석은 틀림이 없었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어쩜 가장 싫어하는 것이 고통보단 후회가 아닐까 한다. 자기 자신을 외면했다는 후회,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는 후회, 잘못 길을 선택했다는 후회,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걸어갔다는 후회...차라리 고통을 겪을 지언정, 후회는 하기 싫은 우리의 거만하고 소심한 자아는 마음에게 묻는다. 뭐가 잘못된 것이지? 기다렸다는 듯, 마음은 우리에게 변명거리를 잔뜩 안겨준다. 우리는 수긍한다. 내 마음이 내게 한 말이니 틀릴리 없다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마음이 옳은 거라면, 왜 이리도 고통은 멈추지 않은 것일까?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신 분이라면 이 책을 들어도 좋다. 특히나 이런 저런 변명 거리를 안겨주는 책들--특히 심리학책--을 전전하면서 인생을 납득하시려는 분들이라면 더 그렇다. 그 책들 속에 말들은 다 옳게 들려온다. 다 그럴싸해 보인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당신의 고통을 줄여주진 못한다. 그것이 시사하는 바를 깨달으셨는지... 무언가 잘못되었으며, 무언가 다른 패러다임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틀린것은 당신 마음이다. 그리고 마음이 당신을 계속 속일 수 있는 것은 당신이 당신을 들여다 보기를 회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들여다 보길 그렇게 두려워 할까?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우리의 여정은 시작될 것이다. 우리가 인생의 미스테리를 풀어 나가는 여정이자 우리 자신을 바로 대면하는 여정 말이다.

 

난 한국 작가가 쓴 책을 잘 읽지 않는데, 그건 들어줄만한 통찰력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릎을 탁 치면서 그래, 이거야~~~를 외치는 정도를 바란 것도 아니다. 그저 음... 이건 그럴싸한데? 라는 정도 만이라도 좋았다. 하지만 그런 문장을 써내는 작가 조차 쉽게 만날 수 없었다. 그런 세월이 길어지다 보니 아예 한국 작가가 쓴 책이라면 안 보게 되더라. 말하지만, 나 역시도 이런 상황을 좋아해본 적이 없다. 나 역시 한국인이고, 한국을 자랑하고픈 단순한 국민이니 말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 저자는 그렇지 않았다. 자신만의 목소리로 조근조근 이야기를 들려 주는데, 예리함과 통찰력이 곳곳에서 빛났다. 쉽게 내 뱉을 수 없는 메가톤급 문장들을 흥분하는 기색없이 한 문장으로 처리하는데, 그 솜씨가 어찌나 좋던지... 그 영리함과 재치에 감탄하고 말았다. 그는 이 책을 쓰면서 글 쓰는게 이렇게 힘들줄 몰랐다고 하던데, 거짓말은 아니지 싶다. 이렇게 잘 쓰는 것이 쉽지만은 않으니 말이다. 

 

하여간 더해봤자 말만 길어질 뿐이니, 대단한 작가를 만나서 기뻤다는 소감으로 리뷰를 마치련다. 남들이 다 하는, 내진 했던, 혹은 이미 한물간, 더 나아가 시대 착오적인, 더 기가 막히 게는 말도 안 되는 말들을 씨부려도 여전히 문제없이 잘 팔리는 우리나라 출판계에서 이렇게 빛나는 통찰력으로 자신만의 견해를 들려주는 작가를 만나다니...흐믓하고 뿌듯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지성이 아직은 죽은게 아니구나 싶어 안도했고, 이런 말들은 마음 속에 숨기지 않고 떠들어 줬다는 점에 매우 감사했다. 더불어 앞으로도 많이 많이 떠들어 달라고 저자에게 부탁드리고 싶다. 이 책의 작가와 같은 작가들이 늘다보면, 우리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겠나 싶은 마음에 조금은 흥분이 된다.

 

편집자 분에게--영화 내용을 가지고 분석하는 식으로 전개된 에세이인데요, 영화 제목 맨 앞에 내주셨음 더 좋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읽는 내내 무슨 영화인지 헤매다가 나중에 영화 제목을 아는건 그다지 유쾌하지 않더라구요. 조그만 배려가 책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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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의 엄지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0
미치오 슈스케 지음, 유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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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업자들에게 쫓겨 숨어 살고 있는 다케자와는 어설프게 사기를 치고 있는 데쓰와 보곤 호통을 친다. 벌벌 떨면서 먹고 살기 위해선 이거라도 해야 한다는 그를 다케자와는 동정한다. 그의 동정에 기대 아예 그의 집에 신세를 지고 살게 된 데쓰는 자신 역시 사채 업자 때문에 아내와 딸을 잃었다면서 흑흑댄다. 함께 소소한 사기를 치면서 살아가던 둘은 소캐치기 소녀 마히로를 만나게 된다. 그녀가 자신때문에 자살한 채무자의 딸이라는걸 알게 된 다케자와는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도와주고 싶다. 마침 살 곳이 마땅치 않다는 말에 마히로를 집에 들인 다케자와는 곧 마히로의 언니와 그 남자친구까지 들이닥치자 난감해 한다. 집이 좁다면서 나가라고 해도 별로 감동을 받지 않은 마히로네 식구들, 하는 수 없이 좁은 집에서 다섯 식구들의 동거가 시작된다. 티격태격하던 날들이 지나고, 어느정도 서로에게 정이 든 순간 다케자와를 쫓던 사채업자가 등장한다. 도망갈 것인가? 아니면 이번에야말로 진짜 본때를 보여줄 것인가 갈등하던 다케자와는 힘을 합해 뭔가 해보자는 말에 귀가 솔깃한데...과연 그들의 복수극은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너무도 착착 들어맞는 설정에 다케자와는 신이 나는데... 

우리나라에도 그런가는 모르겠으나, 일본에는 사채업자들의 극성이 대단한가보다. 이런 이야기가 드라마나 만화에 이어 책까지 등장하는걸 보면 말이다. 사채업자에게 당한 평범한 시민이 그들에게 복수를 한다는 설정, 일본 드라마를 좀 본 사람들은 별로 신기할 게 없다할만한 소재다. 전쟁도 데모도 별로 없는 조용한 나라에 살다보니 이런 사채업자들의 극성만이 그들을 가장 두렵가 하는게 아닌가 싶긴 한데, 진짜 이렇게 드라마를 찍는 듯 복수를 하는 것들이 현실에서도 가능할까? 좀 궁금해지긴 한다. 이런 류의 책이나 드라마를 볼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진짜 사기꾼을 만나지 않고 사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축복받은 인생인지... 평범한 삶이 지루하시다는 분들에겐 자신의 행운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 되기도 하겠다.  속도감 있는 전개로 술술 읽힌다는 점이 장점. 다만, 좀 허술해 뵌다. 이야기도 어디선가 본 듯 하고--일본 드라마에선 이런 정도의 반전이 그다지 색다른게 아니니 말이다.--실은 꼬지 않는 반전을 만든다면 그게 더 오히려 이상한 것일 듯. 

잘된 추리 소설이라고 하기엔 허술하지만, 그래도 완전히 나쁘진 않았다는 뜻에서 애매작. 사기꾼들을 조심하라는 경각심을 높여준다는 점까지 헤아렸다. 하지만 굉장히 썩, 미치도록 재밌는 책이라고는 말 못함. 그저 그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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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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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셔 정육점집 아들 마커스 메스너는 대학에 들어간 뒤 부쩍 안달하는 아버지 때문에 걱정이다. 그저 공부밖에는 모르는 그를 아버지는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이 틀림없다면서 닥달을 해대는 것이다. 아무리 괜찮다고 말을 해도 자신의 말을 곧이 듣지 않은 아버지를 피해 마커스는 멀디 먼 오하이오 대학으로 편입을 한다. 드디어 공부만 할 수 있겠구나, 드디어 정육점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겠어 라면서 좋아하던 그는 대학 생활이 자신의 기대와 다르다는 것에 실망한다. 우선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는 친구들은 전혀 배려라는걸 모르고, 간신히 사귄 여자친구는 첫날 데이트에 그와 섹스를 시도한다. 그녀의 도발적인 행동에 기겁을 한 마커스는 그녀가 알콜 중독에 자살을 기도한 전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젠 식겁한다. 그녀를 옹호해줘야 할지, 아니면 멀리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가운데.맹장염에 걸려 병원에 입원 한 마커스, 자식의 안부가 궁금해진 엄마는 머니먼 길을 찾아와 주지만, 그를 기다리는건 아버지가 이상해졌다는  것과 이혼하고 싶다는 엄마의 폭탄같은 선언이다. 어떻게 된게 산넘어 산인 자신의 청춘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마커스, 과연 그는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 나갈 것인가? 

말 많은 아저씨 필립 로스가 다시 돌아와 유감없이 자신의 입담을 과시하고 있던 책이다. 그게 좋은 쪽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작가로써 입이 쉬지 않는다는건 적어도 다행스런 일이지 않을까 한다.  다만 필립 로스의 입은 쉬고 있다고 해도 딱히 아쉬울게 없는게, 읽어가다보면 그다지 더 듣고 싶단 생각이 안 든는 것이다. 아마도 그건 작가로서 그다지 썩 좋은 자질은 아닐 듯 싶다.

이 책 <울분> , 단점을 꼽으라면, 주인공의 캐릭터가 동화는 아니라도 응원 정도는 해줄 수 있어야 하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어디다 확 버려 버리고 싶은 성격이었다는 점이 특징일 것이다. 물론 젊은 시절의 혼란이나 방황? 있을 수 있다.  다만 그걸 해결해 나가는 주인공의 자세,  지나치게 흥분 잘하고 예민한데다 중심 못잡는 이런 스타일,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한다. 읽는 것만으로도 주인공의 삶을 산 듯 지쳐버린다. 그렇다보니 필립 로스가 책 속 주인공을 죽여줄때마다  이젠 반가운 마음 마저 든다.  자신의 책 속 주인공들을 이렇게 꾸준히도 죽여 버리는 작가도 드물지 싶은데, 읽다 보면 왜 작가가 그럴 수 밖엔 없었을지 이해가 된다. 작가도 죽여 버리는게 차라리 마음이 편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매력적인 캐릭터의 주인공이라면 그가 죽었을시 친지가 죽었을때보다 더 섭섭해 하는게 정상이건만, 필립 로스의 주인공엔 그런 일들이 별로 없다는 것이, 아니 더 나아가 감사하게조차 된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야 되는 것일까? 적어도 현실을 반영했다고 칭찬을 해줘야 할까? 하지만, 그래도 죽어서 다행이었어요라는 안도감까지 들게 하는건 너무하지 않는가 싶다. 하도 발광 하는 삶을 살아주시는 주인공들을 지켜보다보니, 차라리 죽어서 잠잠하게 있는 그들이 마치 성공이나 한 듯 다행이다 싶으니 말이다. 너무 잘쓴 소설이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인지는 몰라도, 인간의 생명에 대해 존중심을 별로 갖지 않게 해준다는 점에선 마음에 든다. 생명은 너무 소중한 것이니까요, 라면서 호들갑을 떠는 작가를 보면, 저 사람은 아무래도 머리가 나쁘지 싶기도 하니 말이다.

어쩜 1950년대 미국 뉴워크는 진짜 이랬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살고, 이런 분위기 였으며, 이런 등장인물들이 삶을 살면서 고민을 했겠지. 필립 로스가 잘 하는 시대의 이야기를 한 것이니 그랬을 거라고 본다. 하지만 그 외에도 그저 평범하게 삶을 살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어떤 것이 그 시대를 더 반영한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다만, 이 책이 필립 로스식의 소란함으로 첨철된 책이라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의 눈에는 왜 언제나 이런 루저만 눈에 뜨이는지 모르겠으나,  그 자신이 이런 사람이라 그런 것은 아닐까 짐작이 되긴 하지만서도, 이런 루저들의 행보는 그다지 정이 안 간다는 것이지. 그런 점에서 참 일관성있게 싸가지 없는 등장인물을 양산해 주시는 필립 로스, 적어도 개성 넘치십니다요, 라고 말하고 싶다. 너무 현실적이여서 오히려 기괴하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하여간 그의 주인공처럼 사는 건 정말로 피곤할 것 같다. 정신 사납고...오죽하면 일찍 죽는게 더 나아보이겠는가? 말 다했다니까.

그럼에도, 한가지는 탁월했던 점은 짚고 넘어가야 겠다. 아들이 독립을 할 나이가 되자 미쳐 버린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때문에 진짜 미칠 지경이 되버린 아들의 갈등 말이다. 아마도 그건 아직도 어디에서나 보기 어렵지 않은 설정 같아 보여서다. 그 갈등을 잘 풀어 헤처 나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드물다는 것을 알기에, 그로 인해 모든 것이 꼬여버린 부자의 모습을 잘 포착해 낸데 작가의 통찰력이 돋보였다는 생각이다. 그러고보면 건강한 부모 --자식 관계가 가져야 하는 기준 선을 알고 지키는 것도 굉장한 행운이다. 부모--자식 모두에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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