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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마음에게 속고 있다 - 정신과 전문의 최병건의 마음 탐구 22장면
최병건 지음 / 푸른숲 / 2011년 5월
평점 :
정말로 괜찮은 책을 소개하는 이상적인 방법을 아시는 분이 혹 있으려나 모르겠다. 언뜻 떠오르는 사람이라곤 닉 혼비,폴 콜린스, 빌 브라이슨 정도? 이 중 빌 브라이슨은 서평에 관한 책을 쓴 적이 없지만, 그가 쓰면 모든게 그럴싸하게 들리기 때문에 빼놓긴 그렇다. 안 써서 그렇지 그가 쓰면 분명 재미있을 테니까. 하여 쓴 적이 없는 분야라고 해도 일단 후보에 넣고... 얼추 후보가 생각났으니, 이젠 물어봐도 되겠지? 괜찮은 책을 소개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을 아시느냐고? 물론 하기도, 대답을 듣기도 매우 곤란한 질문이다. 정황상 (대답을 들을 ) 가능성도 없고 말이다. 나도 다 안다. 그럼에도 내가 이런 말을 주절주절 떠드는 것은 이 책을 쓰면서 고민이 많았기 때문이다. 읽은 지 거반 2달이 넘어가는 것 같은데, 그간 리뷰를 쓰지 못했다. 너무 재미가 없어서? 아, 그랬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만은... 혹평이야말로 내가 전혀 남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되는 장기 중 하나니 말이다. 아니다. 이 책은 칭찬을 해줘야 하는 책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바로 나의 고민이 있었다. 오래만에 만난, 한국인이 쓴, 심리 분석 에세이인데, 마음껏 칭찬을 해줘야 할만큼 잘 썼다는 것이다. 이건 잭팟을 터뜨린 것과 마찬가지다. 아니, 내 인생에 어찌 이런 경사가! 라면서 덩실덩실 춤사위가 나올 정도다. 그간 한국인이 쓴 책에 한번도 마음껏 --한번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매우 드물다는 것은 사실이지만서도--칭찬을 해본 적이 없는 나는 그만 흥분해 버렸다. 칭찬을 하고는 싶었지만,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한 내게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난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외쳤다. 이건 정말로 잘 쓸거야... 반드시 그럴거야~~~! 라고....
이제 나를 어느정도 파악하신 이웃분들이라면 내가 어떤 곤경에 처했는지 짐작이 되실 것이다. 그렇다. 난 멍석 깔아주면 못하는 스타일이다. 말이 꼬이고, 혀가 굳으며, 긴장을 하는데다, 머리마저 하애졌는데, 그것도 모자라 읽는 사람까지 의식이 되더라. 글이 써질리 없었다. 잘 쓰면 죽어~! 라면서 머리에 총을 갖다 댔다 해도 이보단 나았을 것이다. 적어도 한 자라도 썼을테니 말이다. 머리속에선 이렇게 써, 저렇게 써야 해...라면서 갖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했지만, 난 결국 한 자도 쓰지 못했다. 그렇다보니, 근 2달 동안 리뷰를 쓰겠다고 난리를 펴댄 결과는 바로 이러하다. 내용이 가물가물해지다보니 의미를 설명해 주겠다고 했던 다짐은 추억일 뿐이고, 남은 것이라곤 이 책이 굉장히 괜찮고, 신선했으며, 통찰력 있고, 잘 쓴 글이었다는 인상뿐이란 것. 도무지 이걸로 독자들을 어떻게 설득하겠다는 것인지, 모 광고 CF처럼 "좋은데, 정말 좋은데...설명할 방법이 없네" 라는 멘트를 유치하게 날릴 수도 없고 말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광고의 멘트까지 차용하는걸 보면 진짜 내가 갈데까지 가긴 한 것 같다. 하여간, 그렇게 좋은 책이었다는 인상에 의존해 리뷰를 쓰는 전대미문의 사태에 직면하고 보니, 궁금해진 것이다. 과연 정말로 괜찮을 책을 소개하는 이상적인 방법은 없는 것일까? 있다면 배워서라고, 그게 안 된다면 훔쳐서라도 쓰고 싶은데 말이다. 물론 지금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면, 다시 책을 정독하고 찬찬히 리뷰를 쓰는 것이지만서도, 한번 읽은 책을 다시 읽는건 예의가 아니다. 하여, 궁색한 변명이지만, 남겨진 인상에 의존해 쓰기로 했다. 안 쓰는 것보단 나으니 말리지 마시길... 다만, 다음에 내가 쓰는 리뷰는 어쩌면 정작 책하고는 별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은 알아주셨음 한다. 나중에 책하고 다르잖아요~~~ 라면서 항의 하셔도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일단 제목을 주목하시라. 제목 자체가 저자가 말하려는 것의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으니 말이다.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는 우리에게 말한다. 우리가 자신이라고 알고 있는 마음이 실은 우리 마음이 아닐때가 많다는 것이다. 아니, 뭐 그런 소리가 있어? 하면서 화들짝 반감을 표해주시는 분들은 좀 더 그의 말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으로 나와 내면을 분리해서 설명하고 있었다. 이상하게 생각되실지 모르지만, 실은 이런 이분법은 이미 여러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설명법이다. 자아와 영혼이라고 해도 좋고, 자아와 마음이라고 해도 좋다. 어떤 용어를 쓰건 간에 핵심은 이것이다. 우리는 나와 마음으로 분리되어 있고, 어느 정도 세뇌 되어 진 채 살아간다는 것. 즉, 진짜 내 마음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내 마음이 아닐때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나는 의사가 되기 싫고, 의사가 될 능력도 없는데, 주변 사람들이 의사가 되는걸 영웅시 한다고 해보자. 나는 나도 모르게, 의사가 되는 것이 가장 내가 하고 싶은 일인양 말하게 된다. 실은 마음 저 깊은 곳에선 전혀 관심도 없는 일임에도 말이다. 무엇이 우릴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에서 멀어지게 하는지, 거기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저자가 말하려는건 이것이다. 만약 우리가 자신의 마음을 진짜로 알 지 못한 채 행동하게 된다면, 삶이 고통스러운 것이란 것이다. 최소한 고통스러울 것이고, 심하면 인생을 통채로 잘못 살았다고 후회하게 될 것이며, 보통은 자신의 삶을 살지 못했다는 기분으로 살게 된다. 아니라고? 아니, 진짜 그렇다. 내가 그렇게 살아봐서 잘 안다. 저자의 분석은 틀림이 없었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어쩜 가장 싫어하는 것이 고통보단 후회가 아닐까 한다. 자기 자신을 외면했다는 후회,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는 후회, 잘못 길을 선택했다는 후회,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걸어갔다는 후회...차라리 고통을 겪을 지언정, 후회는 하기 싫은 우리의 거만하고 소심한 자아는 마음에게 묻는다. 뭐가 잘못된 것이지? 기다렸다는 듯, 마음은 우리에게 변명거리를 잔뜩 안겨준다. 우리는 수긍한다. 내 마음이 내게 한 말이니 틀릴리 없다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마음이 옳은 거라면, 왜 이리도 고통은 멈추지 않은 것일까?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신 분이라면 이 책을 들어도 좋다. 특히나 이런 저런 변명 거리를 안겨주는 책들--특히 심리학책--을 전전하면서 인생을 납득하시려는 분들이라면 더 그렇다. 그 책들 속에 말들은 다 옳게 들려온다. 다 그럴싸해 보인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당신의 고통을 줄여주진 못한다. 그것이 시사하는 바를 깨달으셨는지... 무언가 잘못되었으며, 무언가 다른 패러다임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틀린것은 당신 마음이다. 그리고 마음이 당신을 계속 속일 수 있는 것은 당신이 당신을 들여다 보기를 회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들여다 보길 그렇게 두려워 할까?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우리의 여정은 시작될 것이다. 우리가 인생의 미스테리를 풀어 나가는 여정이자 우리 자신을 바로 대면하는 여정 말이다.
난 한국 작가가 쓴 책을 잘 읽지 않는데, 그건 들어줄만한 통찰력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릎을 탁 치면서 그래, 이거야~~~를 외치는 정도를 바란 것도 아니다. 그저 음... 이건 그럴싸한데? 라는 정도 만이라도 좋았다. 하지만 그런 문장을 써내는 작가 조차 쉽게 만날 수 없었다. 그런 세월이 길어지다 보니 아예 한국 작가가 쓴 책이라면 안 보게 되더라. 말하지만, 나 역시도 이런 상황을 좋아해본 적이 없다. 나 역시 한국인이고, 한국을 자랑하고픈 단순한 국민이니 말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 저자는 그렇지 않았다. 자신만의 목소리로 조근조근 이야기를 들려 주는데, 예리함과 통찰력이 곳곳에서 빛났다. 쉽게 내 뱉을 수 없는 메가톤급 문장들을 흥분하는 기색없이 한 문장으로 처리하는데, 그 솜씨가 어찌나 좋던지... 그 영리함과 재치에 감탄하고 말았다. 그는 이 책을 쓰면서 글 쓰는게 이렇게 힘들줄 몰랐다고 하던데, 거짓말은 아니지 싶다. 이렇게 잘 쓰는 것이 쉽지만은 않으니 말이다.
하여간 더해봤자 말만 길어질 뿐이니, 대단한 작가를 만나서 기뻤다는 소감으로 리뷰를 마치련다. 남들이 다 하는, 내진 했던, 혹은 이미 한물간, 더 나아가 시대 착오적인, 더 기가 막히 게는 말도 안 되는 말들을 씨부려도 여전히 문제없이 잘 팔리는 우리나라 출판계에서 이렇게 빛나는 통찰력으로 자신만의 견해를 들려주는 작가를 만나다니...흐믓하고 뿌듯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지성이 아직은 죽은게 아니구나 싶어 안도했고, 이런 말들은 마음 속에 숨기지 않고 떠들어 줬다는 점에 매우 감사했다. 더불어 앞으로도 많이 많이 떠들어 달라고 저자에게 부탁드리고 싶다. 이 책의 작가와 같은 작가들이 늘다보면, 우리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겠나 싶은 마음에 조금은 흥분이 된다.
편집자 분에게--영화 내용을 가지고 분석하는 식으로 전개된 에세이인데요, 영화 제목 맨 앞에 내주셨음 더 좋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읽는 내내 무슨 영화인지 헤매다가 나중에 영화 제목을 아는건 그다지 유쾌하지 않더라구요. 조그만 배려가 책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