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indman's Bluff (Paperback, Reprint)
Kellerman, Faye / HarperCollins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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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PD 살인사건 전담반 형사인 피터 데커는 새벽 3시에 그를 찾는 전화에 긴장한다. 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아 대형 사고가 터진 것이다. 바로 억만장자인 가이 카페이의 영지에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 집이라기 보다는 공원에 가까운 그의 영지에 서둘러 도착한 데커는 잔혹한 현장에 경악한다. 가이와 그의 아내, 집에서 일하는 네명의 사람이 살해되었고, 가이의 아들인 길만이 간신히 목숨이 붙어있는 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완벽한 보안을 자랑하는, 더군다나 20명이 넘는 보안요원들이 상주하는 곳에서 벌어진 대 학살에 다들 믿을 수 없어 한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보안을 뚫을 수 있었으며, 왜 이런 살인을 저지른 것인지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다. 보통 사람들은 집안으로의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는걸 알아낸 형사들은 내부자의 도움이 아니라면 이런 일이 절대 벌어질 수 없음을 직감한다. 더구나 보안 요원 둘이 행방불명인 채로 드러나자 그들이 모종의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 둘이 가해자인지 아니면 피해자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사건을 파헤치면 파헤칠 수록 의문점만 드러나는 가운데, 다행히 병원에서 목숨을 건진 아들 길은 범인들이 스페인어를 쓰더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증언으로만으로는 범인들의 윤곽을 파악하기엔 역부족, 범인은 잡아야 겠는데, 처리 해야할 일들만 산적하자 데커는 애가 탄다. 

 

한편 데커의 아내 리나는 오랫만에 배심원으로 뽑혀 법원으로 가게 된다. 배심원 석에서 심심해진 배심원들은 법정에서 눈에 뜨이는 한 청년을 주목하게 된다. 화창한 대낮, 그것도 법정에서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그를 사람들은 웃는 탐이라고 (탐 크르즈를 뜻함.) 하면서 지켜본다. 곧 그가 법정 통역사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그가 진짜 배우처럼 멋들어지게 통역을 하는 것에 감탄한다. 쉬는 시간에 법정 복도에 나선 리나는 웃는 탐이 자신에게 다가와 복도에 서 있는 남자들의 인상착의를 묻자 당황한다. 어리둥절한 채로 말을 못하고 있던 그녀에게 웃는 탐은 지나쳐 간다. 리나는 그때서야 그 남자가 장님이라는 것을 알아채지만 왜 그가 그런 질문을 했는가에 대해선 잊어 버린다. 

 

웃는 탐, 즉 브렛 헤리먼은 복도에서 서성이다 등 뒤에서 떠드는 사람들의 말을 엿들게 된다. 며칠 전에 벌어진 살인 사건에 대한 뒷담화를 스페인어로 신나게 떠들던 그들은 자신들의 말을 알아듣는 이가 있을 수도 있다는걸 알지 못한다. 법정 통역 5년차에 빛나는 헤리먼은 그 둘의 대화가 그저 신문을 보고 떠드는 수준이 아님을 직감한다. 살인사건의 단서를 알았으니 당연히 경찰서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리나에게 둘의 인상착의를 물었고, 곧바로 데커에게 달려가 그 사실을 고한다. 데커는 난데없이 나타나 범인들이 법정에서 대화하는 소리를 줏어들었다고 주장하는 이 장님 청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 한다. 과연 이 사람은 진실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관심이 필요해 말도 되지 않는 소문을 유포하는 사람에 불과한 것일까? 그의 말이 진실이라고 해도 목소리 만으로 도대체 범인을 어떻게 잡는단 말인가? 형사들이 자신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자 애가 탄 브렛은 리나를 떠올리고, 형사에게 그녀의 존재를 알려 준다. 데커는 다소 정신이 나간 듯 보이는 이 청년이 자신의 아내까지 끌어들이자 식겁한다. 아내에게 절대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충고하지만, 실제로 복도에서 두 갱단들을 본 아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해야 겠다면서 범인 색출에 나선다. 데커는 잔인하기 짝이 없는 갱단들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 전전긍긍하지만, 그의 아내는 장님도 나서는 마당에 자신이 가만 있는다면 말이 되지 않는거라 주장한다. 더군다나 그녀가 누군가? 35년째 형사 생활을 하고 있는 데커의 아내가 아닌가? 브렛과 아내의 도움으로 갱단들의 실체를 서서히 파악해 나가던 데커는 도무지 왜 갱단이 이런 일에 개입하게 된 것인지 아리송해 한다. 거물이 뒤에서 돈을 대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데커는 과연 그 거물이라는게 누군지 궁금하기만 한데... 

 

흡입력이 대단했다. 원서로 책을 읽을 시, 왠만큼 재미있지 않으면 한번에 볼 수 없는데,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다 읽을때까지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우선, 대학 교정보다 넓다는 억만장자의 영지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은 초반부터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형사들이 떼거지로 몰려 들어서 증거들을 수집하지만, 그들만으로는 증거를 파악하는데만으로도 부족한 실정, 형사들이 어떻게 사건을 해결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 가운데, 난데 없이 장님의 등장은 분위기를 한층 더 고조시킨다. 과연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 진짜 선량하기 짝이 없는 일개 시민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다면 그는 왜 이다지도 사건에 집착하면서 매달리는 것일까? 사건 못지 않게 형사들을 귀찮게 하는 장님 브렛의 정체가 점점 궁금증을 더하는 가운데, 브렛은 리나에게까지 매달리면서 범인을 잡자고 애원한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미친 사람 취급하는 가운데, 그를 멀리하라는 데커의 말도 거역한 채 브렛을 집으로 들이는 리나, 과연 리나의 선량함은 보상을 받을 것인가? 목숨을 위험에 이르게 하면서까지 브렛이 갱단들을 잡겠다고 나선 이유는 과연 무엇인 것일까? 선한 사마리아인의 전설을 우리는 현대에서도 믿어도 되는 것일까? 가 궁금해서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본 책이 되겠다. 범인이 누구인지도 궁금해서 멈출 수가 없었지만 말이다.

 

잘 짜여진 추리 소설이다. 무리없이 전개되는 사건 전개도 그렇지만, 사건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 형사들이 얼마나 노력하는지 보여주는 것도 좋았다. 귀동냥으로 길에서 주어들은 이야기를 가지고 경찰서로 달려가는 장님과 우연히 그 옆에 있다가 그를 돕게 되는 형사 아내의 설정도 그만이고. 너무 그럴 듯하게 쓰여져서 그냥 그대로 영화로 만든다고 해도 놀랍지 않을 듯 싶었다. 아직까지 영화사에서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상할 지경이다. 특히나 웃는 탐이라고 불리던 브렛을 진짜 탐 크루즈가 연기해 준다면 참 재밌지 않을까 싶더라. 하여간 영화를 보듯 생생하게 읽히는 소설이고, 인간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하는 것도 좋다. 쉬운 단어들을 골라 쓴 덕분에 쉽게 쉽게 읽히는 것도 장점. 요즘 좋은 추리 소설은 다 읽었는데, 딴거 색다르게 읽을만한거 없나 싶으신 분들에게 좋을 듯... 

 

그나저나, 제목 정말 잘 지었다. 장님의 허세라고? 흠... 책을 다 읽고 나면 왜 제목이 저런지 이해 되실텐데, 참 맘에 든다. 모르는 사람에겐 장님의 허세일 수도 있지만, 실은 그것이 사건을 해결하게 만든 단서였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니 말이다. 그걸 놓치지 않고 제목으로 했다는 점에서 작가가 하려던 말이 짐작이 된다. 따듯한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특히 이 책을 보면서 가장 좋았던 것이 장애인을 피해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쪽에서 등장시키는 것이었는데, 참으로 신선한 발상이지 않는가 한다. 장애인이지만, 자신이 가진 장점을 이용해, 남들이 뭐라고 하건 간에,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건 아니건 간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용감한 사람으로 그려진 것에 대해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아마도 그런 시선의 전환이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덕목이 아닐까 한다. 물론 추리 소설로써도 완벽했지만 말이다.

 

추신--그런데 내가 잘못 읽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서 아빠나 오빠, 엄마라는 말이 데커의 딸인 한나의 입에서 자주 등장한다. 도대체 왜? 인지 감을 못 잡겠다. 미국에서 갑자기 한국어를 사용하는 것이 유행이 된 것일까? 아니면 한나가 제 2 외국어로 한국어를 배운다는 설정일까? 아니면 리나가 혹시 한국인? 그럴 것 같지는 않던데 말이다. 시리즈로 나온 것이라니 ,다른 책을 읽어보면 혹시 단서가 나올지도... 확실해진 다음에 반가워 하건 기분이 나빠하건 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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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ys Are Back (Paperback)
Simon Carr / Vintage Books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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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아이를 키운다? 아무리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일지라도 별로 달갑지 않은 상황일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데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듯, 아이를 키우는데는 손이 많으면 많을 수록 좋기 때문이다. 주변에 친척들이 많다거나, 친구가 있다거나, 무슨 일이 생겼을때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단 안심이 된다. 실제로 맡길만한 일이 없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데 그것까지는 아니라도 함께 아이를 키우고 보살피는 배우자가 없는 상황이라면? 아마 이 세상 누구라도 그런 운명이 된다면 속이 상할 것이다. 분노할지도 모르고, 눈앞이 깜깜할지도 모르며,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난감할지도 모른다. 여기 이 책속의 작가처럼 말이다. 

사이먼 카, 그는 우연히 싱글 파더가 된 사람이다. 첫번째 결혼이 이혼으로 끝난 뒤, 드디어 내 짝을 만났다고 좋아한 그는 두번째 아내를 암으로 잃고 만다. 순식간에 아내를 잃은 것만으로도 모자가 그에겐 다섯살난 알렉산더가 남는다. 완벽한 엄마였던 수지가 왜 더 이상 자신을 돌보지 않는지, 그녀가 어디고 갔는지 묻는 아들에게 대답도 하지 못하는 아빠는 그래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자신에겐 돌봐야 하는 아들이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시작된 아빠와 아들만의 생활, 여자인 내가 흥미롭게 지켜봤던 것은 둘의 조합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이먼 카는 엄마의 빈자리를 메우면서도 아빠로써의 정체성은 잃지 않고 있었다. 하여, 아빠만 있는 집의 아이인 알렉산더는 물론 다른 엄마들이 키운 아이와 다르다. 처음 학교가 끝난 뒤, 제 시간에 나오지 않으면 그냥 가버린다는 사이먼의 설명에 웃고 말았다. 엄마였다면 어떤 이유가 있는가보다 하면서 기다릴텐데, 그는 그냥 가버린다. 재밌는 것은 그렇게 가버린 아빠를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던 아들이다. 그는 자신이 잘못했기 때문에 걸어와야 한다는걸 안다. 걸어오고 싶지 않았다면 시간을 지켜야 했다는걸 이해하기 때문이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타이어 그네를 뒷뜰에 매달아 주곤, 아이들이 아슬아슬하게 타는걸 지켜 보는 건 또 어떤가? 엄마들은 보기만 해도 아찔해 하지만, 그는 무심하다. 자신의 몸은 어릴적부터 자신이 알아서 간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떨어지거나 해서 병원에 실려간적이 없다고 하니, 그의 말이 맞다. 그는 확실하게 자신이 엄마완 차별되는,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을 부각시키는데, 반하고 말았다. 이런 이런, 엄마들이 평생 가도 못하는 규율을 그는 별로 어렵지 않게 잡고 있다. 부러운 자질이다. 아빠라는 이름을 빛나게 하던 자질이고 말이다. 만약, 엄마들이 아빠들의 말을 조금 만 더 귀 기울여 듣고, 아빠들을 육아에 참여하게 한다면 훨씬 긍정적인 육아가 되겠구나 싶던 이야기기도 했다.  

한마디로, 아빠들도 육아에 엄마만큼 자질이 있더라는 것이다. 엄마들이 자신들 차지라면서 독점을 하지 않았더라면 창의적인 육아가 가능할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그들의 전략은 눈부셨다. 왜 이렇게도 독창적이고, 훌륭한 아빠들을 우리는 활용하지 않은 것일까, 우리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물론 이 책의 저자인 사이먼 카도 자신이 그런 처지가 되지 않았다면 결코 육아에 이렇게 열성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을지 모르지만서도, 이런 대단한 자질들을 그냥 버려 버리게 둔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왜 아이들을 엄마가 키우게 하나요? 아빠들도 참여하게 해주셔요~~~ 그들도 알고보면 아이들 키우는데 많은 것을 알고 있더이다. 특히나 남자 아이들 잡는데는 아빠만한 것이 없더라구요.! 라면서 감탄하며 본 책이다. 

물론 그에게도 약점은 있다. 바로 위생상태와 음식...그럭저럭 돼지우리만 면할 정도로 사는 그는 집을 구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그다지 재능이 있지 못하다는걸 금세 드러낸다. 하여 그가 아이를 키우면서 처음 좌절의 눈물을 흘린 때도 집을 구하는 문제였고, 그가 특히나 골치를 썩는 문제 역시 집을 구하는 것이었다. 하여간 아이를 키우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다지 쉽지 않은 문제니 말이다. 나 혼자 산다면 별로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문제이나, 아이와 함께 산다면 이것 저것 걸리는게 한두가지가 아니니 말이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남편과 아내, 둘이 아이를 키우게 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의 자질이 모여서 이런 저런 문제들을 해결하라고 그렇게 만드신 것이란 뜻이다. 인간이 오로지 홀로 모든 것을 다 잘해낼 수는 없지만, 특히 일상이란 문제에선 그게 두드러지지 않겠는가. 

아들 둘을 키우면서 생긴 일들을 적어낸 육아일지. 읽을만했다. 무엇보다 아빠 혼자 아이 둘을 키워낸 사연이 대견하다. 그건 아마도 작가 자신도 그렇게 생각할 듯. 이젠 아이들도 어느정도 키웠으니 좋은 배우자 만나셔서, 나머지 인생 멋지게 사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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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를 부탁해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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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는 자신의 소설속 주인공과 많이도 닮아 보인다. 아마도 자신을 견본삼아서 주인공을 만든 모양인데, 어딘지 멍청하고, 그러면서도 실속은 다 차리며, 세상 만사에 대해 별로 심각하지 않은 이 아저씨, 어쨌거나 평범한 개성의 소유자는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너도나도 본받아야 할만큼 대단히 멋진 개성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서도.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그의 독자가 된다는건 어쩌면 그와 비슷한 성향임은 인정하는 의미이지 않을까 싶어서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책을 읽고 나서 별 별이 없더라면서 쫑알대면서도, 그의 책이 나왔다고 하면 다시금 집어 드는 내 뇌의 멍청함을 설명할 길이 없다. 정말로... 늘 이렇게 번번히 속는다는게 가능한 일인가? 불가능하다. 단 한 문단의 눈살찌프림에도 단박에 사형 선고를 받곤 하는 내 까칠함을 생각하면, 도무지 이해 안 되는 상황인 것이다. 이건 분명 모종의 작가 특유의 염력이 책 안에 내재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일거야, 라면서 책을 덮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더랬다. 그만의 아우라는 만방에 펼쳐 대기에, 그의 책 주변을 어슬렁 거리다간 그 마법에 갇히고 마는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도 꾸준이 별 별일 없는 책을 ,그래도 혹시나 하면서 다시 펼쳐드는 바보같은 짓을 되풀이 할 리 없다. 절대로...더군다나 나 같이 앙심을 오래 품는 사람같은 경우엔 더욱 더... 

하여간, 다시금 속았다는 생각을 물씬 들게 했던 , 읽고 나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 그런 책이다. 주로, 편집자의 꼬임에 속아 그가 이러저러한 곳에 끌려 갔다 벌어지는 일들을 서술한 것인데, 그가 끌려간 곳의 장소만 언급한다면 이렇다. 

북경 올림픽, 야구 보러 뉴욕 가기, 락 페스티벌 참가기. 우동 먹으러 순례 나서기, 만국 박람회 참석기, 그리고 롤러코스터 타기...멍하니 있다가 끌려 가서는, 불평을 해대면서 관광을 하고. 이러저러한 음식을 먹고, 다소간 감격도 하다가, 다시금 불평을 해대고, 맛있는 음식에 잠시 뻑 가다가, 나이 들었음을 자각하고는 울적해 하다, 글을 쓸 필요가 없는 편집자를 부러워도 하다가...그렇게 끝이 났다. 별것도 아닌 것을 줄줄이 나열하려니, 그도 뻘줌하겠지만 읽는 나도 만만찮다. 그럼에도 꾸준히 글을 쓰는 그나, 꾸준이 글을 읽어주는 나나. 거기서 거기라는 것이 다만 다른 작가들과 다를까? 

하여간 그의 작품을 익히 읽어보신 분들은 너무도 한결 같으신 작가를 다시 만날 수 있다. 반가울 수도 있고, 짜증이 날 수도 있고, 사는게 그런 것이려니 체념할 수도 있다. 내 경운? 체념에 가까운 포기 정도? 아마도 이러다 도의 경지에 이르르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면 해탈의 경지에 이르거나...뭐, 그것도 나쁘진 않겠으나, 과연 그것이 그렇게 생산적인 일인가는 미지수. 해탈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이런 책은 다시는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지만서도, 정말로 모른다. 그가 다른 책을 낸다면, 다시금 모든 것을 잊고 다시 그의 책을 들게 될지도...만약 그렇다면 누군가 나를 말려준다면 좋겠다. 이런 데자뷰는 이미 겪을만큼 겪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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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크라운 - Larry Crown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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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보나, 옆으로 보나, 뒷태를 보나, 걷는 걸음걸이만 봐도 " 성실함 " 그 자체라는 포스를 팍팍 풍겨 주시는 래리 크라운은 대학 졸업장이 없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된다. 전처에게 이혼 위자료를 주느라 빚을 지고 있던 래리에게 백수란 곧 집마저 잃을 위기에 처했다는 뜻이다. 당장 돈이 필요한 그는 크라운에 E가 붙는다고 설명하면서 이력서를 여기저기 돌려 대지만, 새 직장을 구하는 것이 이 불경기에 쉬울리 없다. 여지껏 사회생활 잘 해왔구만, 이 모든 것이 그 놈의 대학 졸업장 때문이란 말인가? 낙담한 그에게 이웃은 대학 강좌를 들어볼 것은 권한다. 이에 솔깃해진 그는 난생처음 대학에 발을 들여놓고, 그 특유의 성실함으로 학창생활을 시작한다.

 



 

전문대학 수강신청서를 이웃에게서 받아들기 전까지 대학이란  래리에게 그완 상관없는 미지의 영역이였다.



                                    

 인생을 바꿀만한 강좌라는 학장의 조언에 스피치 강의에 등록한 래리, 진짜 그의 인생은 변화될 수 있는 것일까?

 

자신이 가르치는 것이 학생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겠는지 모르겠다면서 교육에 별 열정이 없는 머시 테이노 교수(줄리아 로버츠 분)는 이번 학기 수강생이 겨우 10명밖엔 되지 않자 기분이 상한다. 더군다나 그 수강생들이라는게 산만하기 이를데 없는 일단의 오합지졸 무리들, 그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길에 한심함이 묻어난다.  학기 첫 날부터 기운 빠지는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간 그녀는 포르노 삼매경에 빠져 있는 남편과 말다툼을 벌인다. 어디서고 웃을 일이 없는 고단한 일상, 그녀는 칵테일 한 잔으로 불행을 이겨보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암담한 현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한편 테이노 교수의 스피치 수업과 경제학을 수강하게 된 래리는 신이 난다. 돈 먹는 하마인 승용차 대신 스쿠터를 몰기로 한 래리는 탈리아라는 여학생을 알게 된다. 스쿠터를 몬다는 이유로 래리를 같은 무리에 넣어준 틸리아는 점차 그를 변화시켜 나간다. 틸리아 덕분에 갑갑한 자신의 일상을 조금씩 변화시켜 가던 래리는 남편과 싸운 뒤 버스 정류장에 떨어져 있는 테이노 교수를 보게 된다. 까칠하게 래리를 밀어내던 테이노는 하는 수 없이 래리의 스쿠터 뒤에 타게 된다. 과연 둘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아~~~~ 아이 엄마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멋진 몸매의 그녀, 너무 완벽해서 어쩐지 현실감 없어주신 줄리아 로버츠 되시겠다.

 

아, 톰 행크스가 그새 많이 늙으셨구나 싶어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었다. 그럼에도 전직 포레스트 검프 답게 온 몸으로 성실함과 신사다움을 구현해 주시는 톰, 한물 갔다고 하기엔 아직은 이르다. 물론 앞으로 이런 로맨틱 코미디 물에 주연을 할 수 있을까는 의문이지만서도, 그럼에도 그만의 포스가 어디 가겠는가? 쉽게 간과해버릴 수 있는 개성은 아니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마냥 좋다는 뜻은 아니었다. 배우의 매력만으로는 메울 수 없는 것들이 분명 존재하니 말이다.

 

우선, 이 영화는 미스 캐스팅이 아닐까 싶었다. 주연 배우가 줄리아가 아니라면, 은행 직원이 톰 행크스의 실제 아내가 아니라면, 톰의 이웃이 세드릭 더 엔터테이너가 아니라면, 한층 더 재밌는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었던 것이다. 줄리아는 불행한 알콜중독 여교수를 하기엔 너무 완벽해 보인다. 도무지 저런 여자가 어떻게 저렇게 한심한 작자와 결혼 생활을 하는지도 이해가 안 가고, 부부라는 둘이 나누는 대화도 어색했다. 진짜 부부가 아니라 연기하는 가공의 부부라는 티가 팍팍 나더라. 그것도 아주 열심히 연기를 하는 티가. 애처로울 정도로 말이다. 게다가 아직까진 줄리아 로버츠의 미소가 매력적이라고는 하나, 이 역에는 어딘지 맞지 않아 보였다. 줄리아가 연기하는 교수가 그녀처럼 완벽한 몸매의 쭉쭉 빵빵이 아니라, 현실감이 느껴지는 친근한 배우를 썼더라면 더 그럴 듯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둘의 로맨스가 가공이 아니라 진짜처럼 느껴졌을 거다. 악착같이 서로를 원하는 진정성이 이보단 잘 느껴졌을테니까. 톰과 줄리아는 너무 잘 아는 사람들끼리 영화를 찍어서 그런가, 긴장감도 없는게, 그저 하던대로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촬영에 임한 것은 아닐까 싶다. 적어도 배역에 대해 고민할 필요는 없었을테니 말이다. 갑작스럽게 사랑이 샘솟았다고 주장하는 두 사람은 아무리 봐도 연인보단 친구 같았기에 , 중년의 로맨스라고는 하지만 짜릿한 맛이 없었다. 그렇다고 코미디에 치중한 영화도 아니니,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영화가 되버린게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아무리 감독이 톰 행크스라지만, 그의 아내가 반드시 출연했어야 했나? 치장에 돈이 꽤 들었을듯한 완벽한 매무새로 리타 윌슨이 나와 은행 직원을 연기하는데, 민망했다. 차라리 진짜 은행 직원처럼 조금은 흐트러진 모습으로 나왔더라면 훨씬 더 현실감 있어 보였을텐데... 아마도 남편이 하는 일이니 도움이 되고자 했던 모양인데, 그게 그렇게 도움이 된 것 같진 않다. 그러게 어떤 때는 모른척 하는게 최선일때도 있다니까. 줄거리는 초반엔 한없이 답답하던데, 중반을 넘어가면서는 그래도 그럭저럭 볼 만했다. 간간히 웃음이 터지기도 했지만서도, 절대 폭소 수준은 아니고. 어찌된게 줄리아가 강의하는 교실이 주가 되어야 하는데, 그보단 경제학 강의실이 더 편하게 느껴졌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봐서인가는 모르겠지만서도... 줄리아와 학생들 간에 갑작스럽게 화학 반응이 생긴다는 것 역시 조금 난데없긴 했지만,그럼에도 기말고사때 톰이 하는 스피치는 감동적이었다. 톰 행크스만이 할 수 있는 연설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부족한 것은? 처절한 현실감이 아니었을까? 요즘은 드라마 조차도 이렇게 느슨하게 찍지는 않는데 말이다. 시대 착오라고나 할까. 톰 행크스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연기를 하고 익숙한 이야기를 감독한 듯 한데, 어딘지 과거의 냄새가 난다. 한물 간 트릭을 보는 듯 했다고나 할까. 착한 영화라고 해서 마냥 좋은건 아니니 말이다. 그럼에도, 톰 행크스를 오랫만에 맘껏 볼 수 있어 기분 좋았던 영화였다. 아마도 그를 이렇게 맘껏 볼 수 있는 영화는 이젠 더 이상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 한다. 한 시대를 풍미한 톰 행크스라는 배우의 시대가 이렇게 가고 있다. 뭐, 그다지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아마 그건 그도 마찬가지 아닐런지...

 

   http://cafe.naver.com/movie02  < 네영카 이벤트 시사회를 통해 본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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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비틀 Mariabeetle - 킬러들의 광시곡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선 이야기 하지 않기로 한 금기를 깨고 오랜만에 다 읽지도 않아 놓고 떠들기로 결심했다. 우선 미안하다. 칭찬을 하건 욕을 하건 다 읽은 다음에 해야 맞는 것인데...변명을 하자면 정말로 다 읽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음을 알아주셨음 한다. 그것도 근 한달 동안 ( 기억에서 )잊혀질만하면 다시 집어들고, 잊혀질만하면 다시 집어들고 하면서 노력에 노력을 경주했건만, 못하겠다. 도저히 완독이 불가능하다. 어쩌겠는가. 인정할건 인정해야지. 하여 인정한 기념으로 리뷰를 쓰기로 했다. 이렇게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면서도 끝내 읽지 못한 책도 드물기 때문에(?) 그렇다는걸 남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다. 하여간 기록에 남을만한 책이었다고 생각해 준다면 그래도 기분이 덜 상하지 않으려나? 그러길 바라면서. 

이 책의 저자, 한때 내가 좋아한 작가다. 그런데 어째 한물 간 눈치다. 어쩌다 이렇게 되셨나 안타까울 뿐이다. 요즘 내놓는 책들이 하도 어이가 없길래, 그리고 자신의 개성을 잃어가길래 실망을 하면서도 그래도 썩어도 준치라고, 언젠가는 본인의 페이스를 찾을 거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보고 깨달았다. 어쩜 그런 기대를 이제 접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고. 아마도 이 작가에게선 더 이상 기대할 것이 남아있지 않은 모양이라고. 실망스러운 결론이었다. 그래도 일본 작가들 중에서 개성있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던 작가였는데 말이다. 어쩌다가 자신의 목소리마저 잃게 된 것인지 ...참 나...매너리즘에 빠져서 그렇다고 하기엔 처참할 정도로 한심했다.  너무 성공한 탓일까? 아니면, 상상력이 고갈되셨나? 그럼 안 쓰면 되잖아? 묻고 싶어진다. 여지껏의 성공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만한 텐데 말이다. 그의 사정이 어찌된 것인지 알길이 없지만서도, 설마 이런 책을 성공작이라면서 내놓은 것은 아닐거라 믿고 싶다.  어쩌다가 낸 책일 거다. 자신도 별로라는걸 충분히 알고 있고, 다만 더 이상의 역작이 나오지 못한다는 것에 작가 본인도 무척 괴로워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믿고 싶다. 또 아나? 어쩌면 세월이 지나고 나면 이런 책은 다 찾아서 불태워 버릴거야 라면서 부끄러워 할지도 모른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적어도 작가의 역량에 대해 내가 오해한 것은 아닐테니 말이다. 하여간 이 작가의 책들중에서 " 심하게 졸작 " 이라고 딱지를 확 갖다 붙이고픈 책이었다. 어쨌거나 다 읽지 못한 이유는 내 탓이 아니다. 작가가 자신의 헛점 투성이 스타일을 초입부터 한꺼번에 드러내주는 통에 도무지 속는셈치고 더 읽을 수가 없었다는 것일뿐. 그러니까 속는 맛에라도 읽혀져야 하는데, 속아지지도 않을만큼 문제가 심각했다는 뜻이다. 

문제가 무엇이었냐고? 우선, 요즘 들어 이 작가 ,독자들에게 설교를 하는데 아주 죽겠다. 마치 자신의 책을 읽는 독자들은 다른 책이나 신문등은 하나도 읽지 않은 무식쟁이일거라 전제를 하는 듯 한데, 이런 저런 과학적 지식이나 정치 사회 상황에 대해 거창한 설명을 하는데 참 듣는 사람 표정 관리 안 된다. 그게 자신이 만들어낸 이야기도 아니고, 그저  어디서 주워 들은 이야기를 편집해서 늘어놓을뿐인데다, 들어보면 한물간 이야기임에도 어찌나 심각하게 이야기 해주시던지...도무지 소설에 이런 이야기가 왜 필요한지, 아니 소설 말아먹겠다고 작정을 한게 아니라면 이렇게 쓰면 곤란하지 싶은데도, 늘 그렇듯 꾸준히 늘어놓으신다. 자신만의 개똥 철학을...이거 심하게 지루하다. 본인은 대단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티가 하도 역력해서 그냥 처음 듣는 듯 얌전히 있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서도, 문제는 이게 점점 심해진다는 거다. 자신이 무슨 대단히 지적인 내진 신적인 지성인 작가라고 착각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제발, 착각에서 벗어나시길. 당신은 그저 보통보다는 나은 대중작가라는걸 잊지 말아주셨음 한다.

둘째, 등장인물들이 한심하다. 개성있는게 아니라 그냥 한심하다. 어디선 본듯한 것은 그래도 참을 만하다. 하지만, 설득력없는 기괴함만 강조한 등장인물들? 아무리 좋게 봐줘도 산뜻한 맛이 없다. 한때는 이 작가도 이렇지 않았다. 음반 매장에서 씨디를 들으면서 자신이 일하러만 나오면 비가 온다고 투덜대는 사신을 깜찍할 정도로 설득력있게 그려내던 작가가 아니던가. 그런데 이젠 죽은 사신도 아니고, 살아있는 사람들을 그려내는데 도무지 개연성이 없다. 튀어 보이려 뻥튀기한 느낌만 --그것도 거칠게--가득하다. 개연성도 설득력도 없는 주인공들이 기괴함만 무장해서는 이런 저런 소동들을 벌인다. 전혀 있을 것 같지 않은 사건들이 전혀 있을 것 같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마무리 된다. 그것이 아마도 이 책의 줄거리가 될 터인데, 중반이 되기도 전에 그만 읽고 싶은 마음이 없어져 버렸다. 고문을 한다고 해도 못 읽는다. 이런 개같은 줄거리 갖고는 말이다. 

거기다 일본 사람들 특유의 정서인 듯한데, 왜 왜 왜...10대 괴물 소년이 꼭 등장해야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어린 아이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사이코 패스 악마로 만드는게 뭐가 그리 좋다고, 꼭 등장해주신다. 어른 빰치는 어린 싸이코 패스가. 작가에게 넌 네 자식도 그렇게 만들고 싶은거니? 라고 묻고 싶어진다. 정말로 이해가 안 간다. 존중까지는 아니라도, 그래도 자신들의 자식이고 조카일 아이들을 이렇게 악마로 만든다는 것 말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아이들을 무서워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다가가기엔 사랑이 부족하여, 그들의 후세들을 다 괴물로 만들고 있는 것일까? 다 그렇다는건 아니지만, 아이들이 악마가 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어른들 책임인데 말이다. 그저 괴물인 아이들을 보여주면서, 요즘 아이들은 인간이 아니야,라고 혀를 끌끌 차는 것으로 자신들은 썩 좋은 인간이라도 되는냥 기분 좋은가는 모르겠으나, 이건 아니지 싶다.  

하여간, 나이가 들었음에도 예전보다 한층 더 미성숙하고, 사려심이나 배려심이 부족해 보이는 작가는 만난다는건 그렇게 썩 기분 좋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나,  이 책 더 이상은 읽지 못하겠더라. 다시 말하거니와, 내 탓 아니다. 노파심에 한마디 더 적자면, 이 리뷰를 읽고는 아마도 당신 탓일거라고 우기면서 다 읽어보시면 생각이 달라지실 거라고 내게 충고하진 마셨음 한다. 정말로 나 노력했다니까!!! 내 노력을 가볍게 여기진 말아주셨음 한다. 하여간 고타로 상, 앞으로 신간 내실 생각이면 조금 더 생각해 주시길 바래요. 물론 앞으로 당신 책을 더 읽게 될른지는 모르겠지만서도 말여요. 그래도 굉장히 좋아졌다는 소문이 들리면 다시 한번 들어는 볼께요. 제발 초심을 되찾으셔서, 예전의 자신만의 고타로 상을 되찾기를 바라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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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쌍 2011-08-17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을 읽으면서 무섭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비판은 좋지만 비난은 좀 무서워요. 너무 살벌해요. 마리아비틀의 왕자를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당신은 '이 작가나, 이책을 보고 재밌다고 하는 사람보다 내가 우위에 서있다' 고 말하고 싶은듯 보이네요. 아니면 '어리석은 놈들아 내가 책을써도 이보단 낫겠다' 정도의 느낌도 들고요. 그렇다고 믿고싶네요.
책을 재미있게 읽은 저로선 당신의 비난이 억측에 불과한, 가벼운책만 고집하는 사람의 말로 느껴져요. 그러니 비난은 자제 해주셧으면 한다는..

이네사 2011-08-17 17:25   좋아요 0 | URL
아예...그렇다고 믿고 싶으시다는 분에게 무슨 말을 더 하겠어요? 그죠?
그렇게 믿고 싶으시다면 그냥 그렇게 쭉~~ 믿으시길...

원쌍 2011-08-18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다고 믿고싶다는 문장은 당신의 글에서 인용했어요. 역지사지라는 말이 있잖아요. 아마 당신은 저의 글을 보고 기분이 좋지는 않으셨을꺼에요. 비난은 사람의 감정을 나쁘게 만든다고 알려 주고 싶었어요.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본론은 비난은 자제하자는 거니까, 너무 기분 나빠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