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초, 인종 차별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미국 미시시피 주 잭슨을 배경으로 그 도시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갓 졸업해 고향으로 돌아온 농장주의 딸 스키터는 자신의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불안하다. 그녀가 대학원까지 다녀온 동안 친구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안방마님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키가 크고 선머슴처럼 뻣뻣한 그녀의 연애 경력은 고작해봐야 단 한번의 키스가 전부... 불러주는 곳은 없지, 무엇을 시작해야 할지 엄두는 안 나지, 사귀는 사람마저 없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버린 그녀는 주변의 걱정도 짜증스럽기만 하다. 게다가 그간 어릴적 자신을 키워준 흑인 가정부 콘스탄틴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그녀의 슬픔을 가중시킨다. 그녀가 자신에게 말 한마디 없이 그만 두었다는 것이 못내 섭섭한 스키터는 그리운 마음에 계속 콘스탄틴의 소식을 수소문해 보지만, 돌아오는 말은 상관하지 말라는 것. 친구 엘리자베스의 가정부인 아이빌린에게선 아예 묻지도 말라는 말을 듣게 되자 스키터는 모종의 사연이 있음을 짐작한다. 하나, 당사자는 여기 없고 사정을 설명해줄 만한 사람들은 입을 다무는 형편이니 갑갑할 뿐이다.  

 

기자가 되겠다고 결심을 한 스키터는 뉴욕의 유명 편집자로부터 작은 일부터 경력을 쌓으라는 충고를 듣게 된다. 편집자로부터 눈에 띄는 기사를 써오면 봐주겠다는 말에 기삿 거리를 찾던 스키터는 흑인 가정부들의 속마음을 들어보는건 어떨까 생각하게 된다. 당시 백인들은 급해서 주인집 화장실을 썼다는 이유로 흑인들을 폭행하고, 더럽다는 이유로 같은 식탁에 앉지 못하게 하며,--바로 그 손으로 만든 음식을 먹으면서 말이다.-- 다양한 이유로 도둑이라는 누명을 씌워 내쫓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런 일들을 불편하게 바라보면서도 바꾸기 위한 아무런 시도도 하지 못했던 그녀는 이번에야 말로 자신이 무언가 할 수 있을 거란 희망에 부푼다. 하지만 그녀의 계획은 곧 난관에 부딪힌다. 가정부들이 아무도 입을 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를 믿을 수도 없지만, 만약 자신들의 주인에 대해 떠들어댄 것이 알려진다면 어떤 보복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때문이다. 간신히 아이빌린에게 인터뷰 허락을 받아 낸 스키터는 백인 우월주의자 친구인 힐리가 자신의 가정부를 절도죄로 4년형 선고 받게 하자 분노한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그 사건은 스키터에게 유리하게 전개 된다. 분기탱천한 다른 가정부들이 더 이상 참지 않기로 한 것이다. 두렵다고 침묵 할 수만은 없다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앞다투어 달려온 가정부들에게 스키터는 감동한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부지런히 받아적는다. 그들의 각각의 사연을 들으면서 점점 미안해진 스키터는 린치의 두려움에 떨면서도 이야기를 들려준 그들을 위해 반드시 책을 출간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젖는다. 하지만 그토록 바라던 책이 출간되자, 책의 내용을 둘러싸고 마을은 분란에 휩싸이는데...  

 

백인 여주인과 흑인 가정부 간의 우정과 오해와 갈등, 인종 차별에 따른 편견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가 보여주던 소설이다. 작가가 어렸을 적 흑인 가정부 손에 자랐다고 하는데, 그 영향이 크지 싶었다. 자신의 엄마보다 더 엄마처럼 살갑게 자신을 키워준 가정부,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이등 시민으로 뒤로 물러나 있어야 했었고, 아이가 어느정도 크면 아무리 애정을 쏟아 키웠어도 손을 떼야만 했다. 그런 가정부들의 수고가 한번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고 감사 인사를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흑인에게 동정적인 눈길로 글을 쓴게 뚜렷해 보였다.  

 

작가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통해 당시를 설명한다. 백인들에겐 좋은 친구지만 흑인들에겐 최악의 주인인 친구 할리, 자신의 아이조차 건사 못하는 엘리자베스, 친구들에겐 멍청이로 통하지만 흑인 가정부에겐 누구보다 인간적으로 대하는 루앤등 당시 백인들을 상징하는 스키터의 친구들과 평생 별별 사건들을 눈뜨고 다 지켜본 탓에 현자처럼 되어버린 흑인 가정부 아이빌린, 그녀의 친구로 입바른 소리를 참지 못하는 결과 늘 사태를 악화 시키는 미니등 흑인을 대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교차하면서 작가는 묻고 있었다. 과연 타인을 피부색이 아닌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하고. 1960년대 미국 남부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못한 데는 어떤 잘못이 있었던 것일까 라고... 일단 작가의 의도는 좋았다고 본다. 자신의 아이를 제껴두고 백인의 아이를 키워야 했던 흑인 가정부들의 애환을 잘 포착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녀는 묻는다. 도무지 그들은 어떻게 그런 시절을 참고 견디었던 것일까 라고... 우리 같으면 어림없었을텐데, 라는 뉘앙스를 담아서 말이다. 여기서 무언가 불편한게 느껴지시는가?  

 

그렇다. 문제는 이거다. 그녀의 머리속엔 어린 시절부터 간직된 백인과 흑인에 대한 편견이 고스란히 자리잡고 있었다. 하여, 아무리 그녀가 흑인 가정부가 불쌍해, 우리가 너무했어, 반성해야 해...라고 성토를 하고 있다고 해도, 그리고 그 말이 틀린 것은 없다고 해도. 무언가 그녀의 선의 그대로 안 받아 들여지게 하는 면이 있었다. 마치, 우월한 인종인 백인이 선심 쓰는 셈치고 엣다~~~ 그래, 반성한다고 반성해~~~정말 잘못했어. 너희들은 진심이었을텐데 말이야. 우리 백인들이란게 참 못된 인간들이지 뭐야, 너희들이 우리를 그렇게 정성으로 키웠는데 말이지. 고맙다는 말을 고사하고 인간 취급도 안 해주다니, 배은망덕했어.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미안해! 됐지? 라고... 그렇다보니, 이 책속에 등장하는 백인은 무책임하고, 변덕스럽고, 기괴하고, 알콜 중독에, 우울증 환자들인 반면, 흑인 가정부들은 그들보다 훨씬 더 우월한 존재면서도 그들을 불평없이 지켜주는 인간성 넘치는 존재로 그려진다. 흠... 뭔가 이상한 수식 아닌가. 분명 흑인들을 대놓고 칭찬 하는 것인데도 어딘지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런면에서 아마도, 흑인들이 이 책을 좋아하기란 어렵지 않을까 한다. 흑백차별을 타파하려는, 정의와 평등을 외치는 이런 소설에 오프라가 한마디 안 하는 것이 이상하다 했더니, 책 근저에 깔린 작가의 선심주의와 나른한 감상주의가 별로 고맙지 않았겠다 싶다. 오프라의 엄마도 백인의 가정부였다니, 누구보다 그들의 사정은 잘 이해하고 있었을테고 말이다. 과연 흑인 가정부들이 이 책을 고마워 할까? 콧방귀를 뀌지나 않았을지.... 게다가 마지막을 희망으로 장식하려는 걸 뭐라 할 순 없는데, 주인공들이 자신들의 과제를 한꺼번에 해결해 낸다는 발상도 작위적으로 보였다. 스키터가 당시로는 드물게 자립을 위해 뉴욕으로 떠나고, 미니는 폭행을 일삼는 남편으로부터 떠나며, 아이빌리는 자신을 도둑이라 내모는 백인 주인집으로부터 떠난다는 결말이었는데, 도무지 현실감 없어 보였다. 그땐 절대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많으니까. 생각을 해내고, 그것에 맞춰 행동까지 옮기는데는 한 세대는 아니라도 10년은 더 넘게 걸리는 법이다. 그런면에서 이 소설속의 이야기는 지금에서나 가능한, 환타지적인 성격이 농후한 책이었다. 현실속에서는 대체로 벌어진 적이 없는... 그래서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더 아쉬운, 그런 환타지 말이다. 굳이 미국의 환타지를 읽으면서 흑백 편견을 타파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애매작으로 넣는다.  

 

그러게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풀어가야 한다는게 맞지 싶다. 당사자가 아니라면 절대 그 심정을 모른다는 말이다. 아무리 선의라고 해도, 자신이 당해보지 않은 한 결코 그 심정을 알길이 없는 것이니 말이다. 아, 그러고보니 이해가 된다. 왜 작가가 남녀 평등이나 자립에 관한 문제에선 그토록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주면서도, 흑인들의 문제에 관해서는 어설퍼 보였는가 하는 것 말이다. 결국 자신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작가의 포부와는 달리 상상력과 의도 만으로 해결이 안 되는 것이었고. 다음번엔 그녀가 자신의 문제를 풀어낸 책을 내주길 기대해 본다. 착하단 소리는 듣지 못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가식적이라거나 위선적이라는 소린 듣지 않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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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의 노래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8-1 프로파일러 토니 힐 시리즈 1
발 맥더미드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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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의 노래>라... 제목이 멋지다. 어디서 저런 제목을 짓게 된 것인지 궁금했는데, T. S. 엘리엇의 프루프록의 연가에 나오는 싯구를 바탕으로 제목이 지어진 모양이다.  

" 인어들의 노래를 들었네, 서로서로에게 그들이 내게 노래하지는 않으리라." 

멋진 싯구다. 다만 이 싯구와 이 책 내용이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인지 그게 아리송하긴 하지만서도. 요즘 추리 소설을 보면 작가들이 자신들도 독서가에 음악 애호가이며, 열렬한 철학에 문학 광임을 독자들이 모를까 우려되었는지, 갖가지 다양한 책들과 재즈 기타 음악들과 철학과 신학까지 집어 넣던데, 뭐 추리 소설 읽으면서 갖가지 다양한 정보들을 한꺼번에 섭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가는 모르겠지만서도, 도무지 그게 무슨 이득이란 건지 모르겠다. 조금은 어처구니없고, 때로는 독서를 방해하며, 가끔은 책 내용과 전혀 어울리지 않아--어제 읽은 <런던 대로>의 경우는 개차반에 가까운 주인공이 별별 책들을 읇조리는데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 그런 책들을 언급하면 멋있어 보일줄 알았나 보던데, 멋있어 보일려면 행동이 멋있어야지, 책 좀 안다는 것 가지고는 멋져 보이긴 부족하다.--어리둥절하기만 하던데 말이다. 하니, 작가님들이여. 제발 부탁컨데, 내용과 상관없는 다른 책 구절 삽입은 좀 자제해주시길... 잘 쓰면 굉장히 도움이 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과불유급이니 말이다. 작가란 모름지기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려줄때가 가장 자신다운거 아니겠는가. 하여간, 책을 다 읽었음에도 내용과 전혀 무슨 연관이 있는지 이해가 안 가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 무슨 시리즈의 1편이란다. 연쇄 살인범의 머리속을 읽는다고 소문이 나서 유명한 프로파일러 토니 힐 시리즈라는데, 무릎이 땅에 닿기도 전에 고민을 알아맞춘다는 무릎팍 도사처럼, 그 역시도 시체의 상태만 보고도 범인의 심리 상태를 꿰뚫어 볼 수 있다고 하더라. 과연 그 소문은 진짜일까? 아니면 무능한 형사들이 만들어 낸 실체없는 소문에 불과한 것일까? 

 줄거리는 이렇다. 브래드필드의 게이들이 자주 드나드는 동네에 잔인하게 살해된 시체 네 구가 발견된다. 8주의 시간 순서대로 차례로 살해되 버려진 시체는 연쇄 살인범이 등장했음을 나타내 주지만, 경찰서 상사들은 그 연관성을 부인한다. 신문 기사를 통해 연쇄 살인범이 활약중이라는 심증을 굳힌 심리학 교수이자 최고의 프로파일러 토니 힐은 경찰서에서 도와달라고 부탁을 해오자 안도한다. 범죄인과의 진정한 유대감을 통해 마치 자신이 범인인 것처럼 상황을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그는 이 살인범이 무척 머리가 좋으며 자기 통제력이 강하다고 추리해낸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형사들은 책상 물림인 그가 알면 얼마나 알겠냐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그를 믿는 것은 그에게 도움을 부탁한 상사와 그가 연락관으로 지명한 여형사 캐롤 조던... 캐롤과 토니는 연관성이라고는 도무지 없어 보이는 네 명의 피해자의 연관점을 찾기 시작한다. 조사를 계속해나감에 따라 처음엔 그들 모두 게이일거라 추측했던 것과는 달리 이성애자일 가능성에 제기 된다. 다섯번째 피해자가 나타나기 전에 범인을 막아야 하는 토니와 캐롤, 하지만 그들은 도무지 살인범이 피해자를 어디서 만난 것인지에 대해서도 오리무중이다. 과연 범인이 그들을 만난 계기는 무엇일까? 겉보기엔 멀쩡한 토니가 캐롤의 은근한 유혹을 무시하는 이유는? 이 모든 것이 연쇄 살인범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그들은 나중에서야 알게 되는데... 

우선, 이야기에 자체에 집중력이 없다. 읽다가 이걸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몇 번이나 고민하다, 결국 어떤 블러거가 굉장히 재밌다고 하길래 속는 셈치고 읽었는데, 뭐...굉장히 재밌다는 말을 나는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다 읽은 것에 대해 후회하진 않는데, 왜냐면 안 읽었을시 나중에까지 내가 성급함에 좋은 책을 놓친게 아닐까 했었을테니 말이다. 더 이상 궁금증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다 읽은 보람이 있겠다. 적어도 남들이 좋다고 할때 "그래요? 정말로요?" 라고 물어보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둘째. 이야기가 지나치게 잔인하다. 살인범은 자신이 배신당했다는 상상때문에 피해자를 잔인하게 고문해서 죽이는데, 그 묘사가 변태 저리가라하게 잔인하다. 도무지 이런 책을 쓰는 작가의 머리속은 어떤 것일까 ? 궁금해질 정도였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도 궁금했는데, 왜 현실의 범인보다 책속에 나오는 범인들이 훨씬 더 잔인한 것일까? 실제로 범죄를 저지른 자의 현장들이 훨씬 더 잔인하게 느껴져야 정상인데도, 이런 책을 읽다보면 오히려 더 기괴하게 느껴지는건 책 속의 묘사들이다. 과연 어떤 것이 더 나쁜 것인지 모르겠다. 현실보다 왜 상상이 더 기괴해야 하는 것인지도. 셋째, 성전환자에 대한 편견을 부추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불편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그런 사람들을 한명도 만나지 못해서 이런 추측이 옳은 것인가는 모르겠지만, 성전환자들은--특히 남성의 몸에 여자의 영혼이 들어있는 사람들 같은 경우-- 자신의 성 정체성을 구축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에너지를 다 쓰는듯 싶었다. 삶 자체만으로도 지치는 그들에게 과연 타인을 계획해서 죽일만큼의 에너지가 남아 있을까? 의문이다. 더군다나 그들은 겉모습만 남자일뿐, 내면은 그야말로 여성이라고 들었는데 말이다. 소심하고, 순종적이며, 여자보다 더 여성스러운...남자다운 건장한 체격을 지녔다고 해서 과연 내면의 여성성을 버린 채 사람을 잔인하게 살해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연쇄 살인범이 이성애자인 남자라는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얼핏 생각에 성전환자인 사람이 남성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해서 그들을 죽인다는 설정이 논리적이여(?) 보일지도 모르지만, 과연 심리학적인 면에서 가능한 설정인가 의심스러웠다. 이 세상에 무엇이 불가능하겠어? 라고 물으신다면 뭐, 할 말은 없겠지만서도, 어딘지, 애써 끼워 맞춘 듯한 스토리라는 의혹을 지울 수 없었다. 네째는 간혹가다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점이 그나마 있는 매력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하여간 완성도 높은 추리 소설이라고 보긴 힘들었다. 뭐, 나완 달리 재밌게 보셨다면 그걸로 만족하셨을테니 할 말 없고. 계속 시리즈로 나올 모양이던데, 다음편은 이보단 나으려나? 별로 기대되니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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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대로
켄 브루언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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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읽은 위대한 탐정들의 탄생기를 작가들이 입을 통해 들려준 <라인 업>에서 인상이 깊었던 작가중 하나가 바로 켄 브루언이다.  그의 책으로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온 것이 이 책이 유일하기에 기대 만발해서 보게 된 책인데, 도무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처참하달 정도로 별로였다. 켄 부르언의 다른 책들은 다 좋은데, 이 책만 나쁜 것인지, 아니면 대충 그의 책들이 이 수준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다른 책들도 이 수준이라면 그의 이름은 기억에서 지워도 좋겠지 싶다. 참 이상도 하지...<라인 업>에서는 그래도 읽을만 했는데 말이다. 20명이 넘는 작가들 중에서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빙퉁맞게 들리는 그의 대사들이 어찌보면 기괴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뭐랄까. 진정성이 느껴졌다고 할까. 그런 점들이 호감을 주기에 충분했었다. 적어도 다른 작가들이 모방하는 사람은 아니다 싶었고, 무언가 자신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다 싶었다. 개성이 있는 작가겠군 햇는데, 물론 이 책에서 개성을 못 찾았다는 말은 아니지만 , 그렇다고 그 개성이 좋은 쪽이었다고는 말은 못하겠다. 있긴 했지만, 끔찍했다 정도? 적당히 유쾌하게 기괴한 거랑, 눈살을 찌프리게 혐오스러운 것이랑은 분명이 차이가 있는 것이니까. 똑같은 말투인 걸로 봐서는 같은 작가가 쓴게 분명한데, 어쩌다 글이 이렇게 막나가게 되었을지 참 안타까웠다. 이보단 잘 써도 상관없었을텐데... 상상력이 딸리셨나, 아니면 술을 너무 드신 나머지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 것도 모르신건가? 

 줄거리는 이렇다. 누명을 쓰고 상해죄로 3년을 복역하고 나온 미첼(미치)는 절대로 다시는 감옥에 들어가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한다. 돈은 벌어야 하는데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은 모두 범죄와 연관된 일들, 우연히 한 여자를 도와준 덕분에 그는 은퇴한 여배우 릴리안의 허드렛일을 하는 자리를 얻게 된다. 보수가 후하다는 사실도 좋지만, 늙은 여배우의 매력에도 한 눈이 팔린 그는 이런 저런 소동을 피하기 위해 아예 그녀의 집으로 들어간다. 너무도 쉽게 그녀의 섹스 상대가 되어 버린 그는 릴리안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집사 조던에게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막가파 갱단이 자꾸 자신을 건드리자 , 그는 가만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에 조던이 그를 도와주는데 그의 치밀한 솜씨에 미치는 허를 내두른다. 조던이 왜 자신을 그렇게 도와주는지에 대해 잘 생각해보지 않은 채 술집에서 여자를 만난 미치는 그녀와 결혼하기로 한다. 조던에게 결혼할 여자가 생겼다고 말을 하자 조던의 얼굴은 싸늘해지는데... 과연 그가 놓친 것은 무엇일까? 조던은 왜 그리도 미치를 도와주었던 것일까? 대가없이 그냥 도와주겠다던 조던은 과연 무엇을 그에게 요구할까? 

물음표로 마무리를 했지만 절대 절대 절대 호기심을 갖지 말아주십사 부탁한다. 별로 호기심 갖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니 말이다 . 유명한 연극 <선셋대로>를 패러디해서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선셋대로>를 안 봐서 그런가 도무지 그렇게 유명한 연극이 이렇게 후진 추리 소설과 무엇이 닮았다는 것인지가 의아하다. 만약  주인공들의 직업 외에 하나라도 닮은 점이 있다면 <선셋대로>는 안 봐도 될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밖엔 없다. 그것뿐인가? 이 책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것도 안 봐도 되겠다는 견적이 나온다. 물론 조증환자나 ADHD 같은 콜린 파렐이 이 책의 주인공 미치와 비슷하긴 했다. 배우 자신이 이 역활을 하는데 별로 어려움이 없겠다 싶을 정도로. 하지만 배우가 좋다고 해서 대본의 허술함과 극악스러움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니까. 하여간 사람 목숨이 개 목숨처럼 다뤄지고,개는 파리 목숨처럼 다뤄지며, 도덕성이라고는 눈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보기 힘들며, 후딱하면 이런 저런 책이랑 음악이랑 떠들어 대면서도 인간 말종임이 분명한 주인공 미치는 매력적이라기 보단 혐오스러웠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더티 해리> 필이 나도록 분위기를 엄청 잡고 있지만서도 말이다. 하여간 지나치게 잔인하다. 쓸데없이 잔인하다. 말도 안 되게 잔인하다. 불필요하게 잔인하다. 그래서? 아름다운 표지가 아까운 책이었다. 이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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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1-07-15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이네사 님.
저도 라인업을 보고 '켄 브루언'의 '런던 대로'를 읽을려고 트랙백해 왔거든요.
님께 땡스투를 할 수 없어 좀 그렇지만, 감사하다는 말씀은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인어의 노래도 그렇고, 스틸라이프도 그렇고...헬프도 그렇고 참 멋진 리뷰예요.
저랑 취향도 비슷하시니 (즐찾은 예전에 해놓았었고^^) 야금야금 들려야겠어요~^^

이네사 2011-07-15 17:59   좋아요 0 | URL
안녕하셔요? 양철나무꾼님.. 반갑습니다.^^
양철댁님 블러그 가서 보니 알라딘에선 유명하시더군요. 그런 분이 제 리뷰 칭찬해 주시다니...
덕분에 조금 으쓱하는 기분이었어요.
잘 아시겠지만, 땡스투보다 이런 덧글이 더 감사하죠.
미사여구 덧붙이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하실 거라 봅니다.
종종 들려 주셔요. 의견 있으시면 이렇게 덧글 달아 주셔도 좋구요.
실은 여기 보다 신경쓰는 블러그는 네이버에 있답니다.
추천작 목록 일목요연하게 보시려면 그게 더 좋을 거여요.
inessa9@naver.com
으로 오시면 되요. 거기서도 닉은 이네사랍니다.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 - 내 안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공감과 위로의 심리학
일레인 N. 아론 지음, 노혜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전 한 교실에서의 추억. 고2 때, 국어 선생님이 농담을 했다. 선생님의 말을 머릿속에서 영상으로 만들어 본 나는 너무 웃겨서 소리내서 하하하 웃고 말았다. 바늘 하나가 떨어져도 들릴 듯한 조용한 교실에 내 웃음소리가 메아리쳤다. 그렇다. 나 혼자 웃은 것이다. 63명중 단 한명 나 혼자....재밌는 것은 내가 웃은 것은 진짜로 재밌어서 웃은 것이었고, 웃지 않은 다른 친구들은 정말로 웃기지 않아서 안 웃었다는 것이다. 친구들은 내가 선생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가식적으로 웃은 거라 생각하는 눈치였지만, 아니었다. " 아니. 이게 하나도 안 웃기다고? 왜?..." 라는 심정으로 선생님을 바라봤는데, 선생님 역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내가 웃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자신의 머리속에 있는 영상을 그대로 내가 출력해서 웃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심전심이라고 해야 하나. 별로 친하지도 않은 선생님과 마음이 통하는 순간이었는데, 그 뻘쭘함이란...그는 내가 웃어준 것에 대해 --다시 말해 공감한 것에 대해--고마워 하면서도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뚜렷하게 보였다.  "젠 다른 애들과 정말 다르군. "이란... 난 그것이 고등학교 3년 내 생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한다. 난 늘 다른 친구들과 조금 달랐다. 때론 그것이 그럭저럭 넘어갈만했지만, 못 견딜만큼 괴로울때가 더 많았다. 친구가 있긴 했지만, 외로웠고, 나를 어떻게 다루고 이해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난감했었다. 난 나를 이방인으로 여겼고, 고립자이며,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고, 적응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늘 생각했었다. 3년 내내 그렇다보니, 고등학교 졸업식때 내가 얼마만한 해방감을 느꼈을지 짐작이 되실 것이다. 난 춤을 추면서 정문을 나왔다. 그리고 그 뒤론 그쪽으로 발길을 돌린 적이 없다. 정문을 뒤로하고 집으로 오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한 기억이 난다. " 이젠 내 동지를 찾아 가야지. 어딘가에 분명히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을 거야."라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책을 보면서 그때 고2 교실에서의 외로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특성들. 나에겐 너무 자연스러운데, 남들에겐 이해되지 않은 특성들이 오랫동안 나를 혼란스럽게 했었으니 말이다.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들이라면서,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들에 대한 특성을 열거하는데, 이거 내 이야기잖아. 했다. 그들 역시 나처럼 나는 왜 다른 사람과 다를까 고민했다고 한다. 고립감과 외로움, 두려움, 고통...역시 익히 내가 아는 감정들이다. 그리고 그걸 설명할 길이 없어 난감한 심정들까지...아니, 이런, 내 평생 찾아다닌 동지들이 여기 다 있었네 싶었다. 결국 별게 아니었던 것이다. 다만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민감할 뿐... 하지만,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은 청소년 시절엔 정말로 굴욕적일만큼 치욕적인 것이다. 민감함이 때론 장점이 될 수도 있다고 하지만, 글쎄...그건 그 고통이 자신을 죽이고 싶을 정도가 아니었을때 할 수 있는 말이고.  하여간, 나와 비슷한 특성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반가웠다. 내가 갖는 특성들을 설명할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고--실은 난 내가 외계인이 흘리고 간 외계인의 자손이 아닐까란 상상을 줄곧 해 왔었다.-- 그것을 장점으로 활용하라는 저자의 말도 마음에 들었다. 실제로 그걸 응용할 수 있는가는 별개로 치고 말이다. 

민감함. 단순히 남들보다 더 잘 알아차린다는데 그치지 않고, 남들보다 자극에 강하게 반응하게 되기에 때론 당사자를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민감함.  내가 남들보다 양심적인 것이나, 남들에게 공감하는 것이 숨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 공포 영화를 못 보는 것, 도박등 중독에 빠지지 않는 것--중독이 되려해도 재미가 없어서 그만 두게 된다. 자연적으로---가만 냅두면 혼자 잘 노는 것, 혼자 있을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것, 쉽게 피로해지는 것, 어떤 공간이건 들어서는 즉시 순간적으로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 직관이 발달한 것등 많은 것들이 이해되서 좋았다. 특히 내가 왜 늘 피로하다고 하는지, 왜 혼자 있으려 그렇게 애를 쓰는지 이해 못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호들갑을 떠는 것이 아니라는걸 말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물론 그들에게 말해봤자 이해할리 없지만서도, 적어도 내 자신이 나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그렇다. 민감한 사람이 살기 힘든 것은 그다지 민감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종종 나는 그들에게 나를 설명할 길이 없어 억울했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에서 유추해본 바로는 민감하지 않은 사람에게 민감함을 이해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뭐, 평생을 함께 살아온 내 엄마조차 나를 이해하지 못하니 말 다했다. 차라리 괴짜라는 타이틀을 달면 조금 더 나으려나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나를 개조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을테니까. 적어도 내가 하는 말이 진심이라고 여길테니까. 적어도 내가 하는 말에 토를 달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하여간 다르다는 것은 고통이다. 그 다름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적응하는 수밖엔 없고. 그렇다면 일단 그 다름을 이해하는 부분에서 시작을 해야 하는 것이겠지. 그런면에서 이 책은 민감함 때문에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유용하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민감함이 유전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요즘 조카를 보면서 유심히 살핀다. 혹시나 녀석도 그렇지 않은가 하고...만약 그렇다면, 적어도 조카는 나처럼 어둠속에서 고통받지는 않게 하리라 다짐한다. 자신이 가진 다름을 유용한 장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시행착오를 휘향찬란하게 거친 고모가 옆에 있으니 적어도 나보다는 덜 고통스럽지 않을까 한다. 성장하는데 있어 본인이 겪어야 할 몫은 물론 본인이 해결해야 겠지만서도...

 나처럼 민감함이 고민이신 분들에게 추천한다.유난히 민감한 사람하고 같이 살아야 하는 분들에게도. 그들을 이해하는 하나의 단서가 될지도 모르니까. 특히 자신은 민감하지 않는데 자식이 민감한것 같다시는 분들에겐 필독을 권한다. 괜히 자식 잡지 말고 말이다. 무지는 사랑이 아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우겨도 결론은 사랑이 아닌 걸로 난다. 하니 사랑을 위해서라도 책을 읽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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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좋다 2011-07-16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사랑을 한다는 건 많은 일을 해야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렵습니다. 그래도 애들을 더 잘 키우기(?)위해 와이프와 더 풍성한 생활을 위해서 많은 것들을 해야지요. 바빠요.

이네사 2011-07-20 09:42   좋아요 0 | URL
그래도 그렇게 사랑때문에 바쁜게 좋은것 아닐까요.
어른들 말씀을 들어보면, 인생에서 그렇게 바쁘게 살았을때가 제일 좋았다고 다들 말씀하시더군요.
늙으면 재밌을만한게 없다면서요. 아마도 가장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아이들 키우고 할때라서 그런가봐요. 그러니 넘 억울해 마시길...^^
 
스틸 라이프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박웅희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추수 감사절 전날, 지도에서도 찾기 힘든 퀘벡주의 한적한 마을 스리 파인즈에 노부인의 시체가 발견된다. 흉악한 범죄라고 해봐야 이웃 밭에서의 채소 서리가 고작인 마을에 살인사건이라니... 경찰 조차 상주하지 않을 정도로 평화로운 마을에 그것도 평생을 베풀고 배려하면서 살던 전직 교사의 죽음은 마을의 일상을 뒤흔들어 놓는다. 분명 사슴 사냥을 나온 외지인의 소행이라고 단정한 사람들은 빨리 범인을 잡아줄 것을 요구한다. 이에 경찰청에서는 빛나는 경력의 소유자인 경감 아르망 가마슈를 급파한다. 오십줄을 넘긴 가마슈는 날카로운 직관과 관찰력으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곳까지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지닌 수사관이다. 사건을 해결하는데에만 몰두한 덕분에 비록 동료들보다 승진은 늦었지만 그런 그를 무시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나 그와 함께 수사를 당담한 부하 보브아르는 그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낸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처음 수사를 같이 하게 된 신참내기 여형사 니콜은 그에게 배울 생각은 않고 어떻게 하면 그의 눈에 들까 그것만이 관심사다. 그녀의 살가움에 반색을 했던 가마슈는 점차 그녀가 수사를 방해하자 짜증을 낸다. 거만하고, 예의 없고, 무례하고, 건방지고,충고를 비난으로, 비판을 재난으로 받아 들이는 니콜의 행동에 상사 보브아르는 눈살을 찌프리지만, 가마슈는 조금 더 기다려 보자고 한다. 어린 싹을 자르는데 성급해서 좋을 것이 없다는 이유다. 

한편 사건으로 돌아와, 은퇴 교사 제인 닐의 살인 사건을 수사하던 가마슈는 그녀가 화살에 의해 살해되었다는걸 알게 된다.사슴 사냥 시절이라 외지인에 의한 총기 우발 사고일거라고 추측했던 수사관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살인사건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진행한다. 화살로 심장을 관통해 즉사시키려면, 가까운 거리에서 의도적으로 집중해서 화살을 쏴야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의 의견이었다. 다시 말해 실수로는 심장 관통사가 일어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범인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가 살해 의도를 가지고 쏜 것이며, 그것도 명사수에 의한 것이라는 검시결과를 전해들은 가마슈는 범인이 마을 사람들중 한명일거라 직감한다. 더군다나 시체에 남겨진 놀란듯한 표정은 가마슈로 하여금 범인이 그녀와 잘 아는 사람이었을 거라고 짐작케 한다. 제인 닐의 주변을 탐문하기 시작한 가마슈는 제인처럼 온화한 할머니를 살해할만한 동기를 가진 사람이 누구일까 촉각을 곧두세운다. 하지만  이렇게 평화로운 마을에 곪아 있는 단 한 사람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25년의 수사 경력상, 남들이 이해하기 힘든 동기로도 충분히 살해가 가능하다는걸 알고 있는 그는 죽기전 제인에게 일어난 특이한 사항은 없었는지 묻고 다닌다. 

이에 제인의 가장 가까운 친구인 클라라와 그의 남편 피터는 제인이 막 평생동안 그려온 그림을 전시하려 한 사실을 알려준다. 지나친 수줍음에 자신이 그림 그리는 모습을 들키는 것조차 꺼리던 제인이 용기를 내서 자신의 그림을 공개하려 했다는 것이다. 평생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마을과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그려오던 제인은 사람들에게 그림을 공개할 생각에 들떠 있었다. 클라라는 비록 그림을 공개하는 것이 제인에게는 중요하고 이례적인 일이었을지 모르나, 그것이 제인의 살해에 연관되진 않았을거라고 말한다. 대신 마을의 게이 커플에게 욕설과 함께 오물을 던진 14살짜리 아이들 셋에게 의혹을 던진다. 죽기 전 제인이 그들을 훈계했었다는 이유다. 그외 제인 주변 사람들의 근황을 살펴보면, 한달전 엄마의 죽음으로 백만장자가 된 벤은 엄마의 친구인 제인마저 죽자 슬픔을 가누지 못한다. 제인의 죽음으로 대부분의 재산을 상속받은 조카 욜랑드는 기쁜 표정을 가눌 길이 없다. 탐욕과 가식의 대명사로 불릴만한 그녀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제인과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이기도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렇다할 동기를 찾지 못한 경찰은 결국 화살을 따라 단서를 찾아 보기로 한다. 나무로 만은 화살촉에 그녀가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가마슈는 화살에 대해 문의하러 갔다가 수상하게 행동하는 크로프트 내외를 만나게 된다. 그들을 추궁한 가마슈는 그들의 아들인 필립이 제인이 죽던 날 아침 피가 묻은 화살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과연 제인 닐을 죽인 자는 누구일까? 겨우 14살에 불과한 필립일까? 아니면 필립이 주장하는 대로 그의 아버지인 매튜일까? 매튜의 자백에도 불구하고, 가마슈는 진범이 따로 있다고 확신하게 되는데... 

일단 초반 도입부부터 독자들을 끌어 들이는 필력이 만만찮다는걸 알려 드리고 싶다. 캐나다의 위대한 풍광을 배경으로 그 속에서 한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면면이 마치 그림처럼 펼쳐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저자가 그려놓은 스리 파인스의 경치와 정경과 마을 사람들의 정취에 취해 한눈을 파는 사이, 연약하기 그지없는 노인네 하나가 살해된 채 발견된다. 능력도 출중하지만 인간미 넘치는 탐정 경감 가마슈는 제인의 시체를 보고 살인범을 잡겠다고 다짐을 한다. 그리고 그녀의 뒷 배경을 조사하던 그는 정말로 그녀가 살해될 이유가 없다는 것만 알게 된다. 그렇다고 주변 인물들 중에 그녀를 살해할만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결국 모두를 의심할 수도, 모두를 의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는 제인의 일상을 바꾸어 놓은 것이 그녀의 그림과 관련이 있을 거란 심증을 굳힌다. 과연 그녀의 그림에 무엇이 있길래 그녀는 살해되었어야 했던 것일까? 심증은 가지만 윤곽은 여전히 잡히지 않는 상황에서 범인이 누구일지 독자들의 흥미는 더해만 간다. 그리고 잡히는 범인은, 뜻밖에도 우리의 허를 찌르고 마는데... 

별로 기대하지 않고 본 추리 소설인데, 미스 마플 여사가 재림한 듯 정겹고 완벽하기 짝이 없는 코지 미스테리였다. 이렇게 매력적인데다 새롭게 들리는 이야기를 아직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신선했다. 천국과 다름없는 한적한 시골 마을, 그 안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그 사건을 해결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탐정, 20대의 치기로 삐딱하게 모든 사물을 받아들이는 골치덩이 신참 니콜, 자신의 천재성을 몰랐던 아마추어 화가 제인 닐, 그녀의 단짝들, 그리고 그녀의 과거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고있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인간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이 이 책을 단순한 코지 미스테리물에서 구원해주고 있었다. 배경 마을을 탄탄하게 구성해 낸 것이나, 등장인물들의 묘사에 모순이 없는 것, 자연스럽다 못해 살아있는 사람을 보는 듯했던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들, 한시도 한 눈을 팔지 못하게 흥미진진하게 흘러가는 이야기, 은퇴한 사람들의 마을 답게 다들 한가닥들 하시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이에 질세라 무게 중심 팍팍 날려 주시는 우리의 탐정 가마슈는 데뷔작이라는 말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기 그지 없었다. 어떻게 이런 책을 데뷔작으로 쓴단 말이냐, 감탄스러울 뿐이다. 하여 책을 덮은 다음 난 그녀의 다른 작품 검색에 들어갈 수밖엔 없었다 . 하여간 흔치 않는 스토리텔러다. 제2의 애거사 크리스티는 아니라도 캐나다의 애거사 크리스티 소리는 들을만한 중량감있는 작가가 아닐까 한다. 아니면, 10년이 지난 뒤엔 아가사보다 더 유명해졌을지도...하여간 재밌다. 인간에 대해 배우게 된다. 추리 소설이란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은 영리한 플롯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마음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다. 그야말로 읽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추리소설이다. 출판사에 바라건대. 제발 빨리 되도록이면 신속하게 2권,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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