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덮으면서 든 의문이다. 탄탄한 줄거리에 일사천리로 흘러가는 이야기 전개,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을 이야기속에 적절하게 녹아들게 하던 능수능란함, 다양한 사람들의 관점을 그들의 언어로 캐치해 내던 통찰력, 등장인물들을 마치 실재하는 사람인양 느끼게 만들어주던 각각의 개인사들, 관심있게 공부한 티가 역력하던 심도있는 정보들--한마디로 수박 겉핥기 식의 공부가 아니었다는 뜻--, 역사가 개인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과장되지 않게 보여주던 점등 책을 읽는 내내 감탄했었으니 말이다.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이런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책을 아무데나 펼쳐놓고 대충 살펴보면 그 작가가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쓴 글인지가 짐작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이 책을 분석하면 이렇다. " 주제를 물고 늘어짐에 있어 머리나 집중력이 부족하진 않음, 하고 싶은 말이 차고 넘침, 실은 하고픈 말을 다 못하고 죽을까 그게 걱정임!" 이라고...한마디로 작가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운명을 타고 태어난 사람의 책이었다. 어떤 위치에 있건,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 있건 간에 글을 쓰지 못한다면 당장 무기력해졌을 만한 그런 사람 말이다.
그런 사람들의 입에선 이야기가 그야말로 줄줄 새서 흘러 나온다. 별게 없는 사물에게 의미심장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색다를게 없는 역사에서 눈이 튀어 나올만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전혀 연관이 없다고 생각한 사건들을 모아선 신빙성 넘치는 이야기를 엮어내고, 신선할 것이 하나 없는 등장인물들에선 기발한 이야기를 토해내게도 만든다. 지나가는 사물들을 다르게 보게 만들고, 지나친 사건들을 뒤돌아 보게도 만든다. 그것이 작가가 될 운명을 지닌 사람들의 능력이다. 그들의 상상력이고, 그들의 독창성이며, 막지 못할 필연성이기도 하다. 그것이 소수에게만 부여된 끔찍할 정도로 탁월한 재능임을 알기에 우린 그들을 부러워 한다. 그리고 그들을 추앙하게 된다. 덕분에 이 세상이 보다 풍요로워지고, 선명해지며, 재밌어 지고, 다양해지는데다, 보다 인간적이게 보인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우린 그들에게 빚진게 많다. 그걸 어찌 부인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선택받은 그들에게 어떤 이유로건 돌을 던질 수 없는 이유가 될 것이다.
하여간 천부적인 글쟁이의 글을 읽게 되서 무척 흥분되었었다. 줄거리는 삼대에 걸친 이야기다. 뉴욕주에 사는 패티와 월터는 겉보기엔 이상적인 부부다. 아내를 끔찍히 사랑하다 못해 멍청이처럼 보이는 남편 월터와 전업 주부로 아이들이 최우선인 아내 패티, 대학에서 만난 둘은 부부가 된 이후로 최선을 다해 가정을 꾸려왔다. 어린 시절 평화롭지 못한 가정에서 성장한 탓에 부모에게 원한이 깊은 둘은 최소한 자신들의 아이들에게만은 그런 고통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다짐 한다. 하지만 부모 노릇을 처음 해보는 그들에게, 더군다나 바람직한 롤 모델이 없었던 둘에게 부모 노릇은 쉽지 않다. 장녀 제시카보다 둘째 아들 조이를 편애앴던 패티는 뜻하지 않게 부모로써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아들을 친구처럼 대했던 것이다. 엄마의 그런 실수는 예민한 아들에게 반발을 불러 일으키고 결국 조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여자친구 집으로 가출하게 된다. 아들에 대한 실패가 자신의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패티는 정신과 의사의 조언에 따라 자신을 되돌아 보기 시작한다. 묻혀 두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던 그녀는 문득 자신의 불행한 현재가 과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걸 깨닫는다. 실은 그녀가 사랑한 사람은 월터가 아니었다. 월터의 절친한 친구인 리처드 였지...리처드를 쫓아 다니던 그녀는 예기치 않게도 월터와 결혼을 했는데, 그녀가 그런 결정을 내린 데는 리처드의 성격탓도 있었다. 타고난 바람둥이었던 그는 결혼을 하고 정착할만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과거 리처드와 결혼 하지 못한 것이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서라고 믿었던 그녀는 십여년이 흐른 뒤 그것이 리처드의 월터에 대한 우정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에 불행한 결혼생활에 탈출구가 필요했던 패티는 리처드와 불륜관계에 빠지고, 패티와 월터의 사이는 날이 갈수록 냉랭해진다. 결국 둘의 사이를 알게 된 월터는 그간 참아왔던 분노를 한꺼번에 쏟아내기에 이르른다.
한편, 보란듯이 성공해서 부모에게 보여줄 생각이던 조이는 그 성공이라는 것이 영혼을 팔아야 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돈이 좋긴 하지만 사기꾼이 될 생각은 없었던 그는 평생 처음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리고 그간 필요해서 곁에 두긴 했지만 늘 버릴 생각이던 여자친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잘해봐야 개차반이 될 줄 알았던 아들의 회심에 아버지 월터는 미소를 짓는다. 락스타가 되긴 했지만 정착할 곳 없이 떠돌던 리차드는 월터의 가정을 부러워했었다. 하지만 그 가정이 실은 허울만 좋은 개살구라는 것을 알게된 그는 모두에게 실체를 보여주려 노력한다. 모든 거짓이 드러나고, 속임수가 바닥나자, 결국 사람들은 진실을 찾아 나서게 되는데... 과연 그들은 모두 자신의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월터와 패티 버글런드라는 부부를 중심축으로 해서 삼대에 걸친 이야기를 하고 있던 책이다. 월터와 패티와 그들의 부모 세대,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우선, 이 책 한권을 통해 미국의 중산층이 자식을 어떻게 길러왔고, 그간의 시행착오를 통해 지금은 어떻게 키우려 하는지가 훤히 보였을만큼 가족간의 관계에 치중해 썼다는 점이 눈에 뜨인다. 자신들이 고통스럽게 큰 만큼 자신들의 자식만큼은 그렇게 키우지 않으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나, 자식에게 잘 해주려 했지만 어떻게 해야 좋은지 알지 못했던 부모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적혀 있던데,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흥미로웠다. 미국의 경우지만 오히려 이 책을 보면서 아이를 키우는데 있어 시행착오는 어쩜 지극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희생적이건 이기적이건 간에, 부모 노릇을 처음 해보는 사람들에겐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당시론 짐작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결국 대부분의 부모들이 결과적으로 무책임한 사람이 되고야 마는 것이 실제로 그들이 무책임해서 아니라는걸 알게 된 것이 이 책에서 건진 최대의 수확이다. 아마도 그건 그만큼 자식을 키운다는 것이 복잡한 일이라는 뜻이며, 또 그만큼 일상을 나누는 인간관계를 맺는 다는 것이 힘들다는 뜻이겠지. 하여간 총체적인 부모--자식간 난맥상을 일목요연하게 보는 묘미가 있긴 했다.
그외 부부간--친구간의 문제들도 질릴 정도로 세세하게 들여다보게 해줬다.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해도, 이 책 하나면 훔쳐 보기의 달인이라는 느낌이 들도록 말이다. 독자로써는 이렇게나 자세하게 알고 싶지는 않은데, 라는 생각이 간간히 들긴 했지만 작가인 그는 그들이 왜 그렇게 불행하다고 느끼는지에 대해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설명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덕분에 불행한 결혼 생활이 어떨지 정신이 번쩍 들도록 보여준다는 점이 특징이다. 아마도 여기서 우린, 이 작가가 우아하고, 논리적이며, 집요한데다, 현실감각이 떨어지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에 감사를 해야 할 것이다. 다른 작가라면 눈살을 찌프리면서 읽기 힘들게 서술되었을만한 장면도 그의 손에서는 지극히 일상적인 터치로 탈바꿈하니 말이다. 쉽게 말해 역겨운 것도 그다지 역겹지 않도록 느껴지게 만든다는 것인데, 이거 정말로 대단한 재능이다. 재능없는 작가들이 가장 많이 걸려 넘어지는 부분이 바로 여기니 말이다. 정말로 난 왜 어떤 작가들은 그걸 그렇게도 자연스럽게 해내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지 이해를 못하겠다. 단순히 재능의 문제같진 않은데 말이다. 하여간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지 앞으로 연구해볼만한 사항이다.
거기에 미국 역사와 그에 관한 다양한 견해들, 그리고 세대간의 이해 관계에 따른 갈등들이 각자의 사연들속에 녹아있었다. 뭐, 거시적으로 본다면 얼마든지 의미를 찾을 수 있을 터이니 그건 각자의 몫으로 남겨 두기로 하고... 이렇게 다양한 찬사에도 불구하고, 제목이 저렇게 된 이유를 이제 말해 본다면? 그러니까, 감탄할 정도로 완벽한 책이었는데도, 다 읽고 나니 무언가 살짝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이 정도로 완벽하면 수작이라고 거품을 물어야 정상인데,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무엇이 부족한 것일까? 물론 감동이 없긴 했다. 주인공들이 이해못할만큼 괴짜는 아니라서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사랑스러울 정도의 등장인물도 없었고. 균형잡힌 넓은 시야에 호감이 생기긴 했지만 작가의 견해에 충분히 공감이 가지도 않았다. 실은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도 충분히 확신이 안 선다. 이건 내 탓이 아니다. 작가의 탓이지...이렇게 분석을 해보니, 무엇이 부족하다는 것인지 이해가 간다. 간단히 말해 비록 그가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태어난 작가이긴 하지만서도, 시대를 뛰어넘는 천재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게 보니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프루스트, 스탕달, 포크너,플로베르,발자크,제인 오스틴이 떠오른다. 그들은 도무지 얼마나 천재였던 것일까? 갑자기 소름이 돋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