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의 불꽃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23
톰 울프 지음, 이은정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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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포스팅이 길어지는 관계로, 짧막하게만 언급하기로 한다. 월스트리트의 잘 나가는 트레이더 셔면은 아내 몰래 바람을 피다 흑인 아이를 치고 만다. 사고를 낸 것은 정부인 마리아였지만, 그녀 역시 유부녀인 관계로 둘은 뺑소니를 치고 만다. 자수를 하자는 셔먼의 말에 마리아는 아무도 모를 거라면서 고집을 피운다. 그러나 차에 치인 소년은 사망하게 되고, 그의 이야기는 성실하게 살려던 한 흑인 빈민가의 소년의 비극적인 말로도 대서특필된다. 자신이 우주의 지배자라고 믿던 서면은 , 즉 아무도 자신을 건드릴 수 없다고 생각하던 그는 범인을 잡기 위한 수사망이 자신에게 좁혀지자 불안해진다.결국 범인으로 잡힌 그는 마리아에게 사실을 말해 달라고 부탁하나, 그녀는 발뺌하고 마는데...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무서울 것이 없었던 한 사내의 몰락과정을 그린 것이다. 무엇하나 부족한 것이 없고, 자신을 도덕적 가치의 최고봉인양 생각하며 살아가던 그가 세상을 겪으면서 철이 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탄탄하고 설득력 있는 스토리 전개로 박진감 있게 읽힌다는 점이 좋다. 영화로도 만들어 졌다고 하는데 놀라운 일은 아닌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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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게 - 제144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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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버지를 암으로 여윈 뒤 할아버지와 엄마와 살고 있는 신이치는 학교에서 왕따까지 당하자 마음을 둘 곳이 없다. 하지만 자신의 그런 슬픔 마음을 털어놓을 곳마저 여의치 않다. 아버지 대신 돈 벌이를 하느라 바쁜 엄마, 오래전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은 뒤 말이 없어진 할아버지가 아무리 신이치를 사랑한다고 해도 그의 심정을 알아차리기엔 무리니 말이다. 다행히도 반에서 그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어주는 친구가 있었으니 바로 그가 하루야다. 그 역시 신이치와 마찬가지로 전학 온 학생으로 사투리 억양을 고치지 못한 그를 반 아이들은 멀리한다. 한 반의 두 이방인으로 통하는 것이 있었던 둘은 학교를 마치면 바닷가로 나가 자신들이 고안한 블랙홀이란 덫을 살펴본다. 간단하게 페트병으로 만든 함정에 빠진 게나 가재, 작은 물고기나 멸치등을 건져오는 것이다. 처음엔 무엇을 잡았을까 호기심에 시작된 둘의 물고기 잡이는 곧 잡은 소라게를 가지고 불로 지져 소원을 비는 의식으로 발전된다. 둘만의 의식을 치르면서 점차 서로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가까이 지내다보면 알고 싶지 않은 사실도 알게 되는 법, 신이치는 말이 없는 하루야가 부모에게 학대받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다. 굶기는 것도 모자라 종종 때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신이치는 친구를 도와주고 싶어하나, 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속이 상한다. 그저 소라게를 지지면서 소원을 빌어볼 밖에...

 

그런 둘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것은 학교의 퀸 카인 나루미다. 부잣집 딸인 그녀는 신이치의 할아버지와 관계가 있다. 할아버지 쇼조가 모는 배를 탔다가 나루미의 엄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 때문에 자신을 멀리할거라 짐작한 신이치는 오히려 그녀가 친절하게 다가오자 어리둥절해 한다. 우연이 둘이 산책 하게 된 날 이후로 신이치의 책상안에 쪽지가 날라든다. 둘의 관계를 비방하는 유치한 내용이었지만, 그것이 계속되어 가면서 신이치는 점차 기분이 나빠진다. 축제에 다녀온 뒤 춤을 추는 나루미와 마주친 신이치는 하루야와의 비밀 아지트에 그녀를 초대한다. 처음 자신을 배신했다는 듯이 바라보던 하루야는 점차 나루미에게 익숙해진다. 함께 모여 소라게를 지지는 의식을 하게 된 셋은 이제 무엇을 소원으로 빌까 궁리하기에 이른다.

 

한편 엄마의 밀회 장면을 목격하게 된 신이치는 그 상대가 나루미의 아빠라는 사실에 경악한다. 엄마가 벌써 아버지를 잊었다는 것도 충격이구만, 하필이면 그 상대가 자신의 친구의 아버지...신이치는 사람 좋아보이는 나루미의 아빠가 밉기만 하다. 어느날 감정이 고조된 신이치는 소라게를 향해 나루미의 아빠를 없애 달라고 부탁하는데...

 

아버지를 잃은 후 가뜩이나 마음이 스산한 소년이 엄마의 연애를 목격하면서 생기는 불안한 심리를 그려낸 소설이다. 초등학교 특유의 감정들을 섬세한 필체로 그려낸 것이 특징으로, 데뷔 이래 인간의 사악함을 특이한 시선으로 다루던 작가의 전작들에 비교하면, 그나마 가장 대중적으로 순화된 작품이 아닐까 한다. 그 때문인지 일본 최고의 문학상이라는 나오키 상을 거머쥐었다고 하던데, 어린 아이다운 감수성이 부족해서 그런가 상을 받을만큼 대단한 소설이라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어찌보면 지극히 일본적인 감성이라 한국인인 내가 이해를 못하는지도...일본에서는 2011년 최대 화제작이라고 하니 말이다. 뭐, 그건 다른 나라 이야기니, 나완 상관이 없고... 비위 약한 사람은 안 보는게 좋을 듯한 그로테스크, 엽기, 변태심리를 독특한 시선으로 그려내던 작가가 다소 그 정도를 약화 시켰다는 점은 환영할만하다. 덕분에 완성도 적인 면에서는 다른 작품에 비해 탄탄해 보였다. 줄거리가 자연스럽게 흘러가 억지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 뜻. 하지만 그럼에도, 꼭 이 책을 보십사 , 안 보면 손해다 할만큼 재밌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마도 미치오 슈스케 자신이 아직까진 매니아층에게 먹히는 글을 쓰고 있는게 아닐까 한다. 그래도 작가가 대중적인 벽을 허물은 듯 보이니 , 앞으로의 발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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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왕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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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와 서대문 경찰서는 관할권 다툼에 실적 전쟁까지 불붙어 신경전이 대단하다. 언제나 아웅다웅인 두 경찰서 간의 싸움은 일단 마포의 승리. 그곳엔 황구렁이라고 불리는 천재 모사꾼 황재성( 박중훈 역)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지략 때문에 다 잡은 범인을 눈앞에서 놓쳐대던 서대문 경찰서에 신입 팀장 정의찬(이선균 역)이 들어온다. 나름 경찰 대학 출신이라고는 하나, 어리버리 덜 떨어진 티가 보는 즉시 줄줄 흐르는 그에게 동료들은 그다지 기대를 걸지 않는다. 원래 나쁜 예감은 왠만하면 틀리지 않는 법! 정의찬은 그들의 예상대로 우연히 잡은 날치기 범을 고스란히 마포 경찰서에 강탈당해줌으로써, 자신이 허당 종결자임을 만방에 증명한다. 

 

억울해하며 펄펄 뛰던 그는 그 사건때문에 3천만원이 날라갔다는 서장의 한마디에 눈이 뒤집힌다. 올해의 체포왕이 되면 포상금을 준다는데, 그 상금 액수가 3천이라는 것이다. 마침 속도위반으로 결혼을 해야하는 처지라 꼭 그 3천이 꼭 필요했던 그는 귀가 번쩍 트인다. 분노에 복수심에 절박함까지, 체포왕이 되어야만 하는 3삼자를 골고루 갖춘 정의찬은 이제 본격적으로 체포 전쟁에 나서리라 선언한다. 그리고 자신이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거라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에서 연쇄 살인범(?) 고 박사를 마포에 건네준다.

 

최근 실종된 여인들의 이력을 줄줄이 외면서 다 내가 죽였다고 선언하는 고박사, 누가 봐도 상태가 정상인지 의심해봐야 하는 상황임에도 실적에 눈이 먼 마포 사람들은 횡재했다고 쾌재를 부른다. 시체를 묻었다던 뒷산을 파헤치다 고 박사의 실체를 알게 된 마포서 형사들은 뜻밖에 자살한 시신을 발견하게 되면서 일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 된다. 자살한 여인이 최근 "마포 발바리"에게 성폭행을 당했으며, 그 사건 이후 몹시 괴로워하다 자살에 이르게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 지면서 전국은 왜 그런 놈을 잡지 않냐고 원성이 자자하게 된다. 경찰 총장으로부터 마포 발바리를 잡으면 실적 점수를 왕창 준다는 말에 솔깃해진 두 경찰서는 내 꺼야를 외치다 결국 합동으로 사건을 해결하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단 문제는 2주안에 해결하라는 것,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고, 한 사건을 두고 아웅다웅 하던 두 서 사람을이 한 곳에 모였으니 이 아니 소란스럽겠는가? 조화롭게 사건을 해결하라는 총장의 다짐은 애초에 물건너 간듯 보이는데...

 

살림을 차리면 뭐하나? 중립 지역에 합동 수사 본부를 차린 두 팀은 사진도 따로 찍을 정도로 여전히 앙숙이다. 합동이란 단어의 뜻에 걸맞게도 (?) 자신들이 알게 된 새로운 정보를 상대방에게 최대 기밀로 보안을 유지하던 두 팀은 여기 저기 주변을 파헤지면서도 딱히 잡히는게 없어 난감해 한다. PC방에 발라리가 떴다는 제보에 눈썹 휘날리게 날아간 그들은 험난한 추격적 끝에 범인을 놓치고 만다. 실적을 만회할 최대의 기회를 아쉽게 날려버린 것이다. 네 탓이야,를 외치면서 치고 받고 싸우던 동안 예정되었던 2주가 지나가고, 결국 합동반은 해체되고 만다. 게다가 문책성 인사로 황구렁이와 정 의찬마저 지구대 발령을 받게 되자 발라리를 잡는다는 계획은 흐지부지 되고 만다. 하지만 두 사람, 황 구렁이와 정의찬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사건에 매달리는데... 과연 발바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체포왕이 되고 싶어하는 정의찬의 소원은 이뤄질 수 있을 것인가?

 

우선 영역 다툼을 벌이는 두 경찰서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에서 점수를 높이 주고 싶다. 그 두 팀의 절박한 실랑이가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과 개연성을 던져 주던데, 익히 듣지 못한 발상라 그런지 신선했다. 도입부만으로 결말이 짐작되는 식상한 형사물과 다르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거기에 심각할만하면 터져주는 자잘자잘한 유머는 또 어떤가? 일품이었다. 적절한 타이밍에 재치있게 한방씩  잽잽 날려주는 웃음이 관객들을 넘어가게 했으니 말이다. 안정빵이라고 해야 하나? 감독이 박중훈이나 이선균이라는 배우만으로 안 먹힐시에 대비해서 연기력 있는 조연들의 맛깔 난 대사를 준비한 듯 했는데, 적중했지 싶다. 두 주연 배우들만의 원맨쇼로 꾸려 갔다면 필시 2시간이라는 상영 시간이 지루해졌을텐데도, 지루하지 않게 본 것을 보면 말이다. 특히나 고박사로 나와주시는 임원희, 대단했다. 예전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영화 상영 10여분만에 하비에르 바르뎀의 모습만으로도 벌벌 떨었는데, 이 영화에선 그의 얼굴이 실루엣으로 비추기만 해도 웃음이 실실 나오더라. 처음 본 배우인데도 말이다. 아마도 원래 코미디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배우이신 듯... 다른 배우들의 타이밍 빵빵 터지는 유머도 흠잡을 데 없었지만, 특히 고박사의 경우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 하다.

 

결론적으로, 신선한 발상, 자잘자잘 쉴새없이 터져대는 유머, 정말 몸 사리지 않고 열심히 찍었구나 싶게 만드는 추격씬들에, 성실한 중훈씨와--이때의 성실은 연기를 뜻함--떠오르는 다크 호스 이선균님의 밀리지 않는 연기, 그리고 마치 주연인양 연기하던 조연들의 향연까지...골고루 들어있는 선물상자를 풀어본 듯 기분이 흐믓한 영화였다. 물론 발바리를 잡아가는 과정들을 그렇게도 힘을 줘서 찍었어야 했는가 의문이 득긴 했지만서도, 액션을 표방하는 형사물을 찍는데 그 정도의 과잉은 어쩔 수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영역싸움이라는 신선한 배경 설정에 탁월한 유머 감각을 감안하면 그런 액션씬 없이 경찰서내에서 벌어지는 소동들만을 그렸더라도 좋았지 않았나 싶었지만서도...우리나라 사람들은 원래 잔잔한거 안 좋아한다. 빵빵 터져주는 액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니 뭐, 어쩌겠는가? 좋아하는 장르에 맞춰 찍는 것도 나쁘진 않다.

 

그나저나 <투 캅스>에서 원리 원칙 고수, 뻣뻣한 신참 형사를 연기하던 박중훈님이 이제 느물대는 베테랑 형사를 연기하는걸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세월이 흔적을 남기지 않은 채 지나가진 않는구나 싶었고, 느물대는 능청 연기가 몸에 딱 붙는걸 보니 연륜이 느껴져서 말이다. 중년엔 그렇게 어느정도 세상살이에 적당히 맞장구 쳐주는게 어울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이 영화, 시간과 돈이 아깝지는 않을 것이다. 대박을 점쳐도 좋지 않을까 싶지만서도, 뭐, 내 감이 맞은 적이 별로 없는 지라 희망사항으로 적어 본다. 대박 나시길...그리고 박중훈 아저씨~~~영화 맘에 들면 마구마구 떠들어 달라고 했죠? 이만하면 됐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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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온 심판자 밀리언셀러 클럽 59
조지 펠레카노스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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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풋볼팀의 일원이 깡패에게 살해당한다. 총으로 난사된 소년의 충격적인 모습에 모든 사람들은 살인범 잡기에 총력전을 펼친다. 경찰 출신의 사립탐정이자 풋볼 팀 감독이던 데릭 스트레인지는 자신이 가르치던 소년이 그렇게 살해된 것에 분노한다. 범인을 잡기 위해 수사를 하던 중 갱단 두목이 그를 찾아온다. 놀랍게도 그는 죽은 아이가 자신의 아들이며, 꼭 살인범을 잡아주되, 경찰에 넘기기 전에 자신에게 알려 줄 것을 당부한다. 살인범들을 그들의 손에 넘겼다간 어떻게 될지는 뻔한 일, 데릭은 복수와 원칙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한편 데릭의 파트너인 퀸은 열 다섯살 창녀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게 된다. 청소년 보호법에 의해 가출한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다 주는 일을 하고 있던 팀으로부터 요청을 받은 것이다. 탐의 일원이 수와 함께 소녀를 찾던 퀸은 그녀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수와의 로맨스가 무르익을 무렵, 퀸은 소녀가 한 포주에게 잡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녀를 구하고 포주를 처단하기 위해 그는 포주의 집으로 향하는데...

 

지극히 인간적인 사립탐정을 통해 한 마을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던 추리소설이다. 풋볼 팀과 사창가와 갱들과 마약상들, 경찰과 사립탐정들의 이야기가 진짜같은 필치로 그려진 것이 특징, 완벽하고 영웅적인 인간들이 아니라, 그저 주변에서 볼 수 있을 듯한 인물들의 이야기라--물론 미국에 한정된 이야기 겠지만서도---설렁설렁 읽을만 했던 것 같다. 다만, 비속어가 넘 남발하고, 창녀들과 사창가가 등장함에 따라 남세스러운 단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하는 것이 별로였다. 소설의 리얼리티를 위해서는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서도, 어쨌거나 듣기 거북살스런 말들을 읽는것도 그다지 좋진않으니 말이다. 비속어에 별 감수성이 없다면 재밌게 읽으실지도...따스한 심성을 지닌 사립탐정의 세상 살아가고 바라보는 이야기가 제법 솔깃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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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카피하다 - Certified Copy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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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 기막힌 복제품 : 원본은 잊고 질좋은 짝퉁을 사라>의 저자인 제임스 밀러의 강연회에 범상치 않은 모자가 등장한다. 열심히 제임스의 말을 경청하던 엄마는(줄리엣 비노쉬 역) 배가 고프다는 아들 성화에 밀려 강연 도중 밖으로 나오고 만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 제임스를 가게에 초대한 줄리엣은 진짜로 그가 나타나자 기뻐한다. 줄리엣은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는 싱글 마더로 특별히 복제품 애호가는 아니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제임스는 복사품도 진품 못지 않게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자신의 책에 열광하는 줄리엣이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기분 전환을 하고 싶다는 제임스의 말에 줄리엣은 차 키를 들고 나온다. 그렇게 해서 지적이고 핸섬한 작가와 그의 열성팬 줄리엣은 예정에 없던 드라이브를 하게 된다.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된 둘은 서서히 상대방에 대해 알아간다. 제임스는 자신의 의견이라고는 없어 보이던 그녀가 실은 깐깐하다는 것을 알고는 흥미와 동시에 피로를 느낀다. 


 시골 박물관에 도착한 그녀는 그에게 이탈리아의 모나리자라고 불리는 그림을 소개한다. 그 그림은 18세기에 그려진 복제품임에도 최근까지 르네상스 시대 그림인줄 알려져 있었다. 복제품도 원본만큼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당신의 논리에 적합한 그림이 아니냐는 줄리엣의 말에 제임스는 시큰둥해 한다. 그런 예를 워낙 널려 있어 새로울게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살짝 삐진 줄리엣은 제임스가 전화로 아들과 실랑이를 하는 그녀를 예민하다고 충고까지 하자 얼굴이 굳어진다. 분위기를 바꿔 보려 까페에 들어간 둘은 책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제임스는 비로서 왜 그녀가 자신의 책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알게 된다. 둘이 대화하는걸 지켜본 까페 주인은 그녀에게 남편을 잘 골랐다면서 칭찬 한다. 이에 기분이 좋아진 그녀는 한술 더 떠 제임스가 그다지 좋은 남편이 아니라고 일러 바친다. 이에 나쁜 남편이라도 없는 것보단 낫다고 단언하는 까페 주인, 그녀는 공감의 표시로 고개를 끄떡인다. 까페 주인장의 오해를 바로잡을 생각을 하지 않던 줄리엣은 제임스를 진짜 남편처럼 대한다. 갑작스럽게 급진전된 역활 놀이에 어리둥절해 하던 제임스는 곧 사태를 깨닫고는 그녀의 행동에 맞장구를 치게 된다. 장난으로 시작된 둘의 역활 놀이는 점점 점입가경으로 엉뚱해져 가더니, 줄리엣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오늘이 둘의 결혼 기념일이며 15년 산 행복한 커플이라고 말하기에 이른다. 줄리엣의 오지랖에 한층 피곤해진 제임스는 태클을 걸게 되고, 결과는 둘이 진짜 부부처럼 다투게 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신이 난 줄리엣의 신경을 거스르지도 않으면서 사태를 바로 잡으려 애쓰던 제임스는 어느덧 자신이 아내의 바가지에 골머리를 앓는 중년 남편처럼 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간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며 살아왔던 제임스에게 아직도 자신을 사랑하냐고 투정을 부리는 줄리엣, 제임스는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부부가 그런 것처럼 삐진 아내의 마음을 돌린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데... 

 

 

장난처럼 시작된 역활 놀이가 결국 진짜로 이들이 부부인가 헷갈릴 정도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던 영화였다. 멋진 두 배우의 앙상블만으로 100여분을 지루하지 않게 끌어간 내공이 돋보이던데, 단지 두 배우의 대화 만으로 이야기를 끌어 가는데도 집중력 흐트러짐 없이 몰두해서 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잘 된 책과 마찬가지로, 잘된 영화는 그 자체로 보게 만드는 힘이 있음을 알게 해준 영화가 되겠다.  

다음 장면을 궁금하게 만드는 시나리오에, 서 있는 그 자체로 화보인 중후한 매력의 배우들, 연기란 생각이 들지 않던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연기가 관점 포인트다. 게다가 분명히 하루만에 찍은 영화가 아닐텐데데, 이음새가 보이지 않던 매끄러운 연결은 진짜 하루동안 둘을 쫓아다니면서 즉흥적으로 찍은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연출도 없이 배우들의 임기응변만으로 말이다.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한다는 점에서 감독의 설득력이 대단하지 싶다. 얄미울 만큼 깔끔한 연출이나 로맨스 소설을 보는 듯 깜직한 대본, 그리고 제 몸에 맞는 배역을 맡은 듯 쉽게 연기하는 배우들의 힘이 영화를 한층 더 빛내고 있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면 감독이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원본과 복사품을 어떻게 구분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아니었을까? 우린 진품을 중요시하고 복사품을 천시하지만, 과연 이 둘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별해낼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싶다. 과연 원본이란 증명이 있으면 그것이 가치 있는 것이 되고, 부부라는 증명서가 있어야 실체 있는 관계가 되는 것일까? 삶이 그렇게 간단하다면야 편하긴 하겠지만서도, 진실이나 실체란 그렇게 손에 확 잡히는 것은 아니질 않는가.

이 영화속에서도 제임스와 그녀는 원본이 아니다. 쉽게 말해 진짜 부부가 아니다. 그러나 까페 주인장의 오해로 촉발된 둘 사이는 순식간에 진짜 15년을 산 부부처럼 발전하고 만다. 투닥투닥 다투고, 서운해 하고, 이해시키려 애를 쓰고, 과거의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고, 토라지고, 다가가고....그런 둘을 보면서 주변 사람들은 그들을 진짜 부부처럼 대하게 된다. 신혼 부부는 경외의 눈초리로 그들을 바라보고, 지나가던 한 남편은 제임스에게 말보다 애정어린 행동을 보여줄 것을 조언한다. 둘의 치고 받음이 어찌나 리얼한지 모든 과정을 쭉 지켜 보고 있던 관객들조차 헷갈릴 정도다. 이것 봐라? 둘이 원래 부부였던가? 아니었던가? 그런 물음 뒤엔 어쩜 그런 것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게 했다. 원본이 아니면 어떻겠는가. 지금 그들의 대화 속에선 자신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며, 무리한 곤조도 부리고, 상대의 사랑을 확인해 보면서, 일상에서 사랑을 지켜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보자면 결국 중요한 것은 관계 내에서의 실체가 아닐까 한다. 원본이라는 증명서 한 장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사회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아내는 내용이란 뜻이다. 비유를 해보면, 현재 이지아와 서태지의 결혼이 논란 거리인데, 과연 둘이 결혼했다는 증명서 한 장으로 둘의 관계를 정의내릴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어느 순간 둘의 관계가 빈 강정이 되어 부부의 실체라고 할만한 것들이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고 했을 시, 과연 둘의 관계를 원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건 당사자만이 알 수 있고 판정 내릴 수 있는 성격의 문제일 것이다. 하여간 중요한 것은, 부부라는 겉모양새가 아니라, 그 안에 채워 넣어야 할 실체라는 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친구라면 친구답게, 아내라면 아내답게, 남편이라면 남편 답게, 부모라면 부모 답게... 그 역활에 충실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복제품보다 못한 원본 신세가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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