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밑 남자
하라 코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예담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현대 사회의 직장인들의 비애들을 여러가지 측면에서 조명한 소설이다. 맨처음 등장한 <마루밑 남자>는 단독주택을 부르짖는 아내의 성황에 밀려 빚을 내서 집을 사게 된 회사원의 이야기다. 맘에 드는 집을 샀다고 좋아하던 아내는 어느날 집에 누군가가 있는 것 같다는 말로 그를 불안하게 한다. 육아 스트레스에 이사 스트레스까지 겹쳐져서 헛것이 보이는 것이겠지 생각한 나는 퉁명스럽게 친정에 다녀오라고 말한다. 그 말에 삐진 아내, 그런 아내를 달랠 시간조차 없는 나는 두시간 여에 걸친 출근시간을 대기도 허덕댄다. 회사일이 바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는 하나, 아내에게 퉁명스럽게 한 일이 후회가 된 그는 어느날 일찍 집에 퇴근을 하곤 깜짝 놀란다. 아내가 어떤 남자와 시시덕대는 광경을 목격하고 만 것이다. 놀라운 점은 그 남자가 바로 아내가 말한 집에 누군가가 살고 있다고 했던 바로 그 유령, 자신과 마주쳤음에도 천연덕스럽게 마루밑으로 사라지는 그 남자를 그는 이해할 수가 없다. 아내를 다그치자 적반하장으로 그녀는 오히려 그를 나무라는데.... 과연 회사일에 치여 집에서 쫓겨난 회사원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그외 <튀김사원>은 해킹을 잘하는 아들 덕에 자신의 회사를 부도나게한 회사에 복수를 가하는 중년 가장의 이야기를 < 전쟁 관리 조합>은 버블시대의 붕괴로 일자리를 제일 처음 잃게 된 여직원들의 비애를 그리고 있었으며 < 파견 사장>은 일단 한번 써보시라니까요, 무료로...라는 말에 솔깃해져 파견 사장을 들이게 된 회사가 결국 모든 직원의 파견화를 이룩해 낸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를 < 슈샤인 갱>은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쫓겨난 오십대 가장이 마찬가지로 집에서 가출한 여고생을 만나 슈샤인 갱을 결성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야기가 늘어지지 않고 속도감있게 전개되는 탓에 쉽게 읽힌다는 점이 장점. 직장인들의 말못할 비애를 잘 포착해서 그려내고 있지 않는가한다. 이야기 자체는 모순 없이 그럴 듯하게 잘 꾸며내고 있지 않는가 한다. 진짜 있었던 일처럼 말이다. 다만, 이게 재미 없으면 어떤책이 재밌냐고 역자가 반문하던데, 뭐, 재미 없다고는 못하지만 그렇게 대단히 재미다고 하긴 곤란하지 않았는가 한다. 그저 그럴 듯한 소설이었다고 할 정도? 내진 아슬아슬 했는데, 그래도 마무리를 잘 하네? 정도의 뉘앙스 라고 보면 되겠다. 아직은 작가의 필력이 완성전이라고 본다면, 다음 편을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zizi 2011-04-19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네사님 리뷰 보고 이 작가가 궁금해졌는데 새 책 나온다 그래서 이벤트 신청해 봤어요~
언제 나온 책인가 검색 해보니 <마루 밑 남자>가 1999년작이네요. 새로 나온다는건 98년작..
원래 카피라이터 였다더니만 20대 때에는 기타리스트 였다고-_-;
[튀김사원]이라는 제목이 군침 도네요.. 데뷔작 제목은 돈가스덮밥 협의회 던데. 어째 전부 회사원이 나오는 소설인듯?

이네사 2011-04-19 12:24   좋아요 0 | URL
99년도 작품이여요? 그러고보니 <전쟁관리조합>은 버블붕괴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던데, 시대의 아픔을 그리는 소설을 주로 쓰는가 보군요. 카피라이터였군요. 아, 이해가 되네요. 그래서 속도감이 있었군요. 약간 감각적인 것도 있구요. 그리고 아마도 전부 회사원이 나오는 소설이 아닐까 합니다.
이 책도 여지없이 회사원들--사회에서 톱니바퀴의 역활밖엔 못하는---의 비애를 다루고 있거든요.
그런 면에 주로 관심이 많은 사람인가봐요. 그리고 먹는 것에...튀김이나 돈가스덮밥을 제목으로 쓰는걸 보면 말이죠. 하긴 먹는 것만큼 우리의 관심을 끄는게 어디 있겠나요?
후속작은 나중이 zizi님이 재밌다고 하시면 그때 봐야 겠네요.
이벤트 꼭 꼭 꼭 당첨 되시길...아자```1


 
스플릿 스커트
아그네스 로시 지음, 김진준 옮김 / 바리데기 / 1996년 6월
평점 :
품절


도서관 서가를 돌다보면 이런 책이 있기 마련이다.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아 언제나 쓸쓸하고 외롭게 서 있는 책...이 책이 바로 그랬다. 오랫동안 지켜 봐도 누구도 빌려 가지 않아 먼지만 잔뜩 쌓여 있었는데, 오늘은 왠지 그 모습이 안 되어 보여 큰 맘 먹고 빌려왔다. 오래된 책이라 다소 유치하고 진부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그렇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줄거리는 이렇다.

 

대부호의 아내 타일러 부인은 상습 절도로 3일간의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3남 1녀의 엄마로, 부잣집 사모님으로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는 그녀였지만 도벽은 고쳐지질 않는다. 한때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었지만 다시 재발한 도벽, 그녀는 필요도 없는 것들을 훔치는 자신이 이해되질 않는다. 손을 써보겠다는 남편을 만류하고 이번만큼은 자신이 한 행동에 책임을 지겠다고 감옥 살이를 자청한 그녀는 같은 방을 리타라는 스물 일곱의 여자와 쓰게 된다. 음주 운전과 마약 소지로 감옥에 들어온 리타는 감옥에 들어왔다는 사실보다 남편과 삐걱대는 관계가 더 걱정스럽다. 감옥이 아니었다면 전혀 만날 가망이 없던 두 사람은 감옥이라는 공간에 갇혔다는 동질감때문이었는지 서로에게 마음을 털어놓기에 이른다. 감옥에 있는 그 3일동안 그 둘은 서로의 문제가 무엇인지 들여다 보게 되는데...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왜냐면 누구도 자신의 거울이 되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만한 눈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없기 때문에 우리에겐 상대가 필요하다. 내 자신의 문제를 들여다 봐 줄만한 친구로써 말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당신의 거울이고, 당신은 나의 거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각자는 대부분 문제들을 한보따리씩 안고 사는 것이 정상이기 때문에 거울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그것이 아마도 인간이 혼자 살아갈 수 없는 한가지 이유라고 본다. 그런면에서, 부잣집 마나님인 타일런 여사와 리타는 뜻밖에도 감옥에서 자신들의 거울을 만나게 된다. 타일러 부인은 본인 조차도 자신이 이해되지 않는 병을, 정신과 의사도 고치지 못했던 병을 리타에게 털어놓음으로써 이해하게 된다. 리타 역시 꽉 쥐고 놔주지 않으려 하는 결혼 생활이 이미 오래전에 파탄났음을 깨닫게 된다. 창피해서, 또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말하지 못했던 것을 허심탄회하게 말함으로써 자신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다.

 

결국 그들의 감옥에서의 3일은 예기치 않게도 깨달음의 나날이 되버린다. 평생을 몽유병 환자처럼 악습과 고통을 껴안은 채 생각없이 살아가던 두 사람이 드디어 자신들의 문제를 파악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하지만 과연 문제를 깨달았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 되기는 하는 것일까? 감옥을 나온 두 사람은 과연 어떻게 될까?

 

1996년 나온 책인데, 이 책도, 원서도 절판인 모양이다. 현재는 당연시되는 페미니스트적 견해들이 소설속에 날렵하게 들어있는 걸 보곤 웃었다. 이 책이 나왔을때만 해도 진보적인 발언이라고 여겨졌을텐데, 이젠 어느정도 상식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저자가 보여준 여성의 삶에 대한 분석이 날카롭던데, 그런 통찰력은 지금도 색이 바라지 않고 유효하지 않는가 한다. 페미니스트 여성들이라면 한번 보심도 좋을 듯...여자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솔직 담백한 이야기들이 성찬처럼 풀려져 나가니 말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저자가 선배여자라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녀가 고민하고 바라본 문제들은 여전히 우리들의 문제니 말이다. 절판된 책이긴 하나, 어떤 도서관에서는 누군가 주목해주길 바라면서 쓸쓸하게 서 있을지 모르니, 보시면 데리고 가셔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차가운 달
얀 코스틴 바그너 지음, 유혜자 옮김 / 들녘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아내가 임파선 암에 걸려 스물 다섯살의 나이로 죽자 형사 킴모는 슬픔에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른다. 딸이 죽을 병에 걸렸다는 사실조차 부인하던 장인 장모, 며느리가 죽을 병에 걸린줄도 모르던 어머니, 나을 것이란 희망을 심어주던 친구들, 아내를 잘 모르던 경찰서 동료들... 킴모는 그들에게 아내의 죽음을 알려야 한다는 사실만으로 버겁기만 하다. 장례식을 준비하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살인사건을 수사하던 그는 최근에 일어난 두 건의 사건이 연쇄살인범에 의한 범행임을 직감한다. 자는 사람들을 베개로 눌러 살해한 범인은 범행 현장에 자신에 대한 아무런 단서도 남기지 않았다. 다만 조그만 연결 고리라면 그가 범행 현장에서 무언가를 가지고 갔다는 것, 다른 형사들은 그 유사점에 대해 별다른 주목을 하지 않지만 그는 줄기차게 연관성을 주장한다. 한 달후 카페 종업원인 여자가 침대에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형사들은 드디어 동일한 범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이제 문제는 그 범인이 누구냐는 것, 킴모는 죽은 세 사람을 연결해줄 뭔가를 자신이 봤음에도 눈 앞에서  놓친 듯 찜찜하기만 한데... 과연 그가 놓치고 있던 것은 무엇일까? 과연 그는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것인가?

 

독일작가인데도 특이하게 핀란드를 배경으로 쓴 추리 소설이다. 핀란드 특유의 쓸쓸함과 서정성이 배여 있는 작품으로, 저자의 전작인 <야간 여행>에서도 그랬지만, 이 작품속에서도 살인자의 심리를 꽤나 열심히 파들어 가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다만 전작에서는 파렴치하고 무자비한 사이코패스 살인범에게 촛점에 맞춰져서 읽고 나면 기분이 나빴던 반면, 이 소설에서는 아내를 잃고 죽음에 집착하는 형사를 주인공으로 함으로써 다소 인간적인 온기를 느끼게 한다는 점이 좋았다. 전작보다는 환골탈태, 진일보한 작품이지 않는가 한다. 주인공의 개성도 뚜렷하고, 나레이션도 설득력 있었으며, 차갑고 선뜻한 배경은 적절했던데다, 등장 인물들이 주고받은 이야기도 어색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특히나 살인 사건을 풀어 가면서 자신이 품은 죽음에 대한 의문에 대해 답해가는 형사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초반 저자의 살인범의 심리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관심이 섬뜩하게 느껴졌는데, --작년 < 내 어둠의 근원>이라는 미국 추리소설 작가의 책을 읽고 난 다음부터 이런 작가들이 좀 무섭게 느껴진다. --읽어가다 보니 저번 작품보다는 등장인물들이 인간다워서 읽은 만했다. 저자가 그래도 그동안 인간에 대한 믿음을 되찾은 모양이지 싶다. 좋은 책의 최고덕목은 인간성이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145
윌라 캐더 지음, 윤명옥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플리처상 수상자이자 <나의 안토니오>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윌라 캐더의 책이다. 때는 1950년대, 미국 뉴 멕시코 산타페 성당에 신부가 공석이라는 것을 알게 된 로마 카톨릭 교구는 고민에 빠진다. 그곳에 가서 선교를 할 만한 사람이 마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그들은 새파랗게 젊은 라투르 신부를 파견하기로 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꺼릴 만한 곳이지만 라투르 신부는 겸허하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1년여에 걸린 여정끝에 간신히 산타페에 도착한 그는 아직 임명장이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부를 당한다. 당신이 진짜 그 신부인지 어떻게 알겠느냐는 것이다. 하는 수없이 다시 사막을 터벅터벅 가서 임명장을 가져온 그는 이번에는 문제없이 교구를 이어받게 된다. 전임신부로부터 이런 저런 지시사항을 전해 들은 그는 약간은 두려운 마음과 벅찬 심정으로 선교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어릴적부터 친구였던 신부 바일랑 신부까지 뉴멕시코에 합류하자 그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 기운이 난다. 둘은 우정과 깊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척박한 대지와 이국적인 사막, 인간적인 인디오들과 멕시코 주민들, 그리고 원시적인 멕시코 신부들을 상대해 나간다. 현지 사정에 익숙해짐에 따라 그들의 뉴멕시코에 대한 이해는 깊어만 가는데... 그 둘의 40여년에 걸친 선교활동을 서정적인 필체로 서술해 나간 책이다. 20세기 중반의 미국과 멕시코 국경의 실정과 풍광을 마치 눈 앞에서 보는 듯 그려내 보여주는 것이 압권이다. 저자가 산타페 성당의 초대 대주교였던 라미 신부에게 감명을 받아 쓰게 된 책이라고 하는데, 단지 조사를 통해 이미 고인이 된 사람들의 업적과 행보를 사실적으로 구현해 냈다는 점이 놀라웠다. 전해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잊혀져버린 인물들을 생동감있게 살려 냈으니 말이다. 탁월한 상상력도 놀랍지만, 공을 많이 들인 티가 나는 작품이었다. 다만, 종교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분들에겐 다소 생소한 이야기일 수도... 주인공들의 희생과 헌신이 공감은 커녕 이해도 안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더 앤 차일드 - Mother and Child
영화
평점 :
현재상영


<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 <나인 라이브즈>를 통해 여자들의 이야기를 통찰력있게 풀어낸 바 있는 로드리고 가르시아 감독의 새 영화다. 이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늘 여자도 아니면서 여성들의 속내를 어쩜 저리도 잘 알까 궁금했었는데, 알고보니 아버지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란다. 아~~하! 그래서 그랬구나... 언젠가 마르께스가 영화 감독인 아들이 자랑스럽다는 말을 하길래 무심코 흘려 들었는데, 그 아드님이 설마 이분일줄이야. 그러고보니, 아버지나 아들이나 뚜렷한 개성에 선명한 통찰력, 그리고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가는 이야기꾼으로써의 자질이 뚜렷한 게 비슷하긴 했다. 하지만 설사 그런 공통점이 있다해도 두 분이 부자지간이라니, 놀라운 일이다. 하여간 2대에 걸쳐 이렇게 걸출한 문학인을 배출해 내다니, 아무리 봐도 마르께스 가문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지 싶다.

 

영화의 대략 줄거리는 이렇다. 14살때 남자친구의 아이를 밴 카렌은 어쩔 수 없어 아이를 입양보내고 만다. 그 후 37년간 카렌은 날마다 보내지도 못하는 편지를 아이에게 쓴다. 아이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뒤벅범이 된 카렌의 삶은 그렇게 지향하는 바 없이 정처없이 흐를 뿐이다. 그런 카렌을 지켜보는 카렌의 엄마는 본인이 딸의 인생을 망쳤다고 후회를 하지만, 이제와서 어쩌겠는가. 그저 회한만 움켜쥔 채 그녀에 대한 미안함을 감춘다.  딸에 대한 모정 때문에 다른 사람을 밀쳐 내기만 하던 카렌은 자신을 바라보는 직장 동료의 시선에 당황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비로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 카렌은 어렵사리 타인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다. 직장 동료와 결혼한 그녀는 너무 늦기 전에 딸을 찾아 보라는 남편의 말에 용기를 내 본다.

 

37년전 14살 생모에게서 버림을 받은 엘리자베스는 그 이후 독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했다. 아무도 믿지 않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는걸 , 그리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독립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는 그녀의 직업은 변호사, 여기 저기 떠돌면서도 엄마의 고향인 LA로 돌아오는 그녀는 새로 옮긴 로펌의 상사 폴과 관계를 맺게 된다. 친절한 이웃 여자를 조롱하듯 그녀의 남편과도 바람을 피고 있던 엘리자베스는 폴의 조심스럽고 신중한 접근이 부담스럽다. 자신이 임신 했다는 걸 알게 된 엘리자베스는 그녀가 당연히 낙태할거라 짐작한 산부인과 의사에게 격렬하게 화를 낸다. 그리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아이를 키우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뱃속 태아의 태동을 느끼면서 엄마를 향한 분노가 사그라듦을 느끼던 엘리자베스는 홀로 아이를 낳기 위해 병원으로 가면서 엄마가 간절하게 그리워진다. 산모가 위험하다는 의사의 말에도 엘리자베스는 자연분만을 고집하는데...

 

결혼 후 4년간 임신을 하기 위해 애를 썼던 루시는 자신이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입양을 신청한 그녀는 요즘은 산모가 입양 부모들을 심사하고 심지어는 퇴짜를 놓는다는 말에 어이없어 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해도 칼자루를 쥔 사람 마음 아니겠는가. 최선을 다해 자신이 좋은 부모가 될 것임을 어필한 루시는 까다로운 여대생의 마음을 움직인다. 20살의 여대생이었던 임산부는 자신은 아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키울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다. 드디어 자신의 아이를 가진다는 생각에 한없이 들뜬 루시, 그녀를 바라보는 루시의 엄마는 걱정스럽다. 아이를 낳아본 적이 있는 그녀는 아이를 포기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엄마의 걱정을 루시는 노파심이라면서 일축해 버리는데...

 

아이를 키울 수 없던 여자, 아이를 낳을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갑작스럽게 생긴 아이로 인해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된 여자, 아이를 가질 수 없어 고민인 여자 ,이렇게 제각각 다른 사연을 가진 세 여인의 이야기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보여주던 영화였다. 그들이 결국 아이라는 공통점으로 한 지점에서 모여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모정이라는 이유 하나로 그들이 고통받고 ,행복해 하고, 고민하고, 안타까워 하는 모습들이 공감이 갔다. 특히 아이를 입양 보낸 뒤 회환의 삶을 살고 있는 카렌을 연기한 아네트 베닝은 주름살을 감추지 않고 부시시한 모습으로 연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화장끼 없는 수수한 얼굴로 자신의 연약한 내면과 고통을 까탈스런  겉모습으로 무장한 중년 여인 역을 감탄스러울만큼 자연스럽게 해내시더라. 카렌이 그렇게 그리워한 딸로, 엄마가 자신을 버렸다는 생각에 파괴적인 삶을 살고 있는 엘리지베스 역의 나오미 왓츠 역시 버림받은 자식만이 가질 수 있는 자괴감을 잘 그려내고 있었다. 자신을 버린 엄마를 원망하면서 세상 모든 것을 삐딱하게 바라보며 살던 그녀가 임신을 하게 되면서 모성에 눈떠가는 모습이 눈물겨웠었다. 본래 그렇게 힘든 과정을 겪지 않고 알게 된다면 좋았을텐데 싶어서 말이다. 하여간 임신을 한 뒤 자신을 버린 엄마의 심정이 어땠겠구나, 추측을 하면서 비로서 엄마를 찾을 생각을 하던 그녀가 무척이나 안스러워 보였다.

 

이에 비해 이들과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또 한명의 여인 루스는 진심으로 아이를 가지고 싶었지만, 가질 수 없다는 현실에 좌절한 여인이다. 엄마가 되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그녀를 보면서 낳지 않은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 생각해 보게 했다. 왜 아무도 입양이 이렇게 비인적이라고 내게 말해주지 않은 거야? 누군가 나를 말렸어야지 않아?라고 불평하던 루스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 비인간적인 과정을 인간적으로 만드는게 또 사람의 능력 아니겠는가. 결국 자신이 겪는 모든 과정이 생부모들도 겪는 것임을 알게 되면서 루스가 엄마로 성장하는 모습은 공감가는 설정이었다. 자연스럽게 알게 되건 이해를 통해 알게 되건간에 엄마가 된다는 것은 어느정도는 배움의 과정이니 말이다.

 

당신에게 엄마란 어떤 존재인가? 엄마란 어떤 존재여야 할까? 어려운 질문이다. 쉽게 대답이 나올 것 같지만 개개인의 역사에 따라서 전혀 다른 답도 가능하니 말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만약 내가 카렌의 엄마라면 어떻게 했을까 질문을 해봤다. 그녀는 자신의 딸(카렌)이 너무 소중한 나머지 딸의 자식을 버려 버렸다. 그런 결정을 할때 그녀는 어린 딸이 자식을 그리워하면서 남은 평생을 살게 될 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시각을 돌려서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 아니었겠는가. 그 딸에게도 모성은 있을테니 말이다. 과연 내 딸이라고 해서 그녀의 모성애를 빼앗을 자격이 부모에게 있는 것일까? 어려운 문제다.그렇다보니, 딸에게 편지를 쓰면서 애닳아 하던 카렌이 자신이 딸에게 해주지 못한 것들을 읊조리는데 마음이 아팠다.기껏해야 한세상 사는 건데, 아이 곁에 있어 주는 것조차 못한 엄마의 심정이 오죽했겠는가. 그리고 필요할때 곁에 있어주지 않는 엄마에 대한 딸의 원망은 또 어떻고...

 

" 함께 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고 누군가는 말했다. 그렇다. 안타깝게도 전해지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함께 하지 못한 사랑 역시 사랑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유지하기란 참 어려웠다. 그것이 탁월한 이야기꾼인 감독의 낭만에 가득찬 설득력에 굴복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서도, 이 영화속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보다보니 믿고 싶어졌다. 부재한 사랑이라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그리고 그것이 진심이라면 언젠가는 상대에게 닿아 있을 것이라고, 포기하지 않는 한 사랑은 언젠간 이뤄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특히나 모성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