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심리학 - 아들을 기르는 부모, 남자아이를 가르치는 교사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교육 지침서
댄 킨들론.마이클 톰슨 지음, 문용린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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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Be nice to them!" 

그렇다. 아들이라고 해서 어디 딸과 다를게 있겠는가. 똑같이 잘해주자. 친절하게 대해주고, 많이 많이 이해해주고, 이해가 안 될 시는 이런 책을 보면서 연구를 하고, 연구를 해도 안 될 시는 또 연구를 하고...그렇다면 이 세상의 모든 아들들은 멋진 남자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엄마가 부모가 얼마나 큰 일을 하는 존재들인지 다들 알고 있으셨음 좋겠다. 보면 처음 하는 일이라고 덤벙대고 뛰어들고, 성질 나는대로 행동하며, 아이와 어른이 똑같다는 생각으로 아이를 대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들은 나중에서야 그러면 안 됐는데 후회를 하겠지만서도, 후회를 한다해도 이미 늦은거 아니겠는가. 

늦은 다음에 후회하는거 별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러니 후회하기 전에 조금 공부를 하는게 낫지 않겠는가. 부모 공부, 어쩌면 학교 공부보다 더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세상에 데려온 아이의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는 것이니 말이다. 

내용은 책을 읽으시고,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긴 하지만 딸인 내 입장에서 보기에 딸을 대입해서 읽어도 별 무리는 없어 보였다. 기본적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이야기니 말이다. 하여간 아이들에게 잘 해주자. 그들의 얼굴에서 행복한 미소가 떠나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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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파 리의 특별한 로맨스
레베카 밀러 지음, 최선희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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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편집장의 아내인 피파 리는 팔순의 남편이 실버타운으로 이사오길 원하자 따라 들어온다. 완벽한 주부로써 명성이 자자한 그녀, 내조도, 요리도 집안 일도, 아이들 키우는 것도 만점인 그녀를 소설가 친구는 "미스테리이자 암호" 라고 칭한다. 그만큼 속을 알기 힘들다는 표현인지, 못하는게 없다는 칭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아리송한 과찬에 피파 리는 웃어 넘긴다. 당신들은 절대 나를 알 수 없어,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외동딸이었던 피파 리는 어린 시절 엄마의 약물중독으로 고통을 겪다, 십대 시절 동네 선생님과 추문에 휩싸인 뒤 가출을 한다. 고모 집으로 피신 온 그녀는 고모의 애인과 엮이게 되고 결국 고모집에서도 떠나게 된다. 이곳 저곳 떠돌면서 이 사람 저사람과 자던 피파리는 리 라는 오십살의 편집장을 알게 되고, 유부남인것을 알면서도 사랑에 빠진다. 엄청난 부자 아내와 살고 있던 리는 마침 아내에게 염증을 느끼고 있었고, 둘의 불륜이 알려지자 절망한 리의 아내는 권총 자살을 하고만다. 그런 사건 후에 둘은 결혼해, 조용히 성공적인 가정을 꾸려 왔었다.

 

그렇게 비교적 잘 살아왔다고 생각하던 피파리는 이사 온집 안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지 당황한다. 알고보니 그것은 자신이 몽유병 상태에서 벌인 일이었다. 놀란 그녀는 치료를 하러 다니지만 , 우연찮게도 자꾸 옆 집 이웃의 아들과 부딪히게 된다. 그와의 부딪힘이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 애써 부인하던 피파리는 남편이 자신의 친구와 바람을 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경악하는데... 

 

아서 밀러의 딸인 레베카 밀러의 책이다. 문학적인 성과면에서 아버지와 비교할 정도는 못 되지만서도, 그래도 꾸준이 책을 내는 것을 보면 용감하지 싶다. 위대한 아버지와 비교될 것이라는 것이 뻔한데도 말이다. 주저함이 없는 걸 보면 자신감이 대단한 모양이다. 뭣 하나 부족함이 없는 생활이니 그냥 놀고 먹고 살아도 지장이 없을텐데, 놀지 않고꾸준히  책을 써내는걸 보면 존경스럽다. 그리고 , 딱 거기까지가 내가 그녀에게 찬사를 보내는 선이다.

 

작가가 비록 극작가인 아서 밀러의 딸이긴 하지만서도, 문학적인 재능만은 그다지 많이 물려받지 못한 듯하다. 책을 만들어 내긴 하지만, 이야기가 어거지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서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등장인물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놓고, 그들이 사랑하고 살아가며 이야기하도록 놔두는 법은 배우지 못한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창조해 낸 주인공들은 늘 어딘가 좀 어색하다. 줄거리가  억지스러워 지는 것은 물론이고, 엄청나게 엽기적이거나 파괴적인  돌발적 사건이 아니라면 이야기를 풀려나가지도 못한다. 게다가  단골처럼 등장하는 근친상간에 대한 암시는, 도무지 왜 그녀가 그 주제에 집착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보통 사람들에게 근친상간이라는 것이, 내진 그에 가까운 경험이 그다지 흔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다보니, 그녀가 간간히 보여주는 인간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이 빛을 바래기 일쑤였다. 그런 문장들이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사이, 횡설수설하는 줄거리 사이로 정신없이 몽유병에 시달리고 있는 피파 리만 존재하니 말이다. 정말로 그녀처럼 정신사납게 사는 것도 쉽지 않을텐데 , 그런 여자의 일대기를 그릴 생각을 왜 한 것일까 ? 자신의 경험을 쓴 것 같진 않고, 아는 사람을 모델로 썼다고 하기엔  일관성이 없어 보이고 말이다. 솔직히 20대의 피파 리와 중년의 피파 리는 전혀 닮아 보이지 않았다. 얼굴이 달라진다면야 이해가 되지지만서도, 어떻게 내면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일까.  꼭 다른 영혼을 지닌 사람을 보는 것 같던데, 그건 말이 안 된다.

 

책 표지엔 중년 여인의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말하던데, 책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그렇게 볼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녀가 떠나기로 한 것이 결국 남편의 불륜때문이 아니던가. 세월이 흘러서 기억을 못하는가 본데, 그녀 역시 자신에게 잘해 준 여인의 남편을 빼앗은 여자다. 똑같은 주제에 자신이 밥을 먹여준 친구가 남편을 빼앗았다고 난리를 치면서 집을 나온 것이 과연 자아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이 세상에 바람을 피고 있는 모든 남성들은 아내의 자아 찾기를 돕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것이 되질 않겠는가.  하여간 이야기가 그다지 매끄럽게 연결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주인공이 매력이 없다. 작가 생각엔 이렇게 정신 사나운 여자가 무척 사랑스럽다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서도, 그러니까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레베카 밀러는 왜 이런 주인공만 내세우는 것일까? 한번도 매력적인 주인공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녀 자신이 그렇지 않은가 싶을 뿐이다. 아니면 그녀가 생각하는 매력이란게 보통 사람과 다른 것인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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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나침반
앤 타일러 지음, 변용란 옮김 / 살림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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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일해온 학교에서 조기 은퇴를 권고받은 육순의 리엄은 자신이 벌써 은퇴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랬다고, 씀씀이만 줄이면 사는 덴 지장이 없을 거라고 자신을 다독이는 리엄... 집 먼저 줄여야 겠다 생각한 한 그는 퇴직을 하자마자 임대주택으로 이사를 한다. 이사한 그날 밤, 이곳에서 내가 말년을 보내겠구나 생각하던 리엄은...그 후 병원에서 정신이 들고 만다.

 

이사간 첫 날, 집에 강도가 들었다는 것이다. 집 구조에 익숙치 못했던 리엄이 문을 잠그지 않고 잔 것이 화근이었다. 그나마 이웃집 부부의 신고로 목숨은 건졌다는데, 머리에 상처를 입고 입원중인 리엄은 그 상황이 조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리둥절해진 리엄은 꼬치꼬치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물어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아무도 모른 다는 것... 다들 충격때문에 그럴 수 있다며 위로를 해주지만, 목숨이 위태로웠을 정도의 사건을 겪었는데도 기억이 없다는 것에 그는 기분이 상해버린다. 갑자기 참을 수 없이 기억에 집착하게 된 리엄은 사라져버린 기억을 찾겠다고 뇌 신경과 전문의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노망난 할아버지의 기억을 되새겨주고 있는 유니스를 보게 된 그는 자신에게도 기억을 되살려 주는 사람이 있었음 바라게 된다. 그 할아버지가 부러워진 그는 거짓말로 유니스에게 접근하는데... 

 

내가 미국의 박완서라고 부르는 앤 타일러의 신작이다. 연세가 드시면서 내놓은 작품들이 좀 비관적인 것들이라 걱정을 했었는데, 이 책 역시 노년이 겪는 여러 난감한 상황들을 보여줌으로써 다소 암담하다는 느낌은 들긴 했지만, 과거 작품들보단 그래도 밝은 느낌이 들어서 안도했다. 글을 잘 쓴다는 의미에서 미국의 박완서라고 했지만--또 존경받는 여류 작가기도 하고--리뷰를 쓰면서 생각해보니, 삶을 다루는 태도에선 닮은 점이 없어 보이기는 한다. 어찌보면 공통분모가 여자인게 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갑자기 드네...흠.

 

뭐, 하여간, 노년의 일상을 꼼꼼하게도 담아놓으셨는데, 이렇게 쓸쓸할까? 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암담하긴 하다. 거짓말을 못하시는 분이니, 정말 그럴지도 싶기도 하고, 또 시각 차이이니 이렇게 나쁘진 않을거야. 라는 생각도 든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녀가 그린 책속의 일상들이 너무도 설득력 있어서 그럴 듯 하긴 했으나, 분명 우리의 삶과는 많이 달랐지 않는가. 그렇다면 앤 타일러가 그린 이런 노년처럼 늙어갈 확률은 0.1% 정도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우리랑 정서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노년을 바라보는 시선도 다르니 말이다. 무엇보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도 있는 것이니까.

 

여성이라면 적어도 친구나 가족들이 주변에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인 리엄에겐 남은 것이라곤 자신뿐이다. 사별한 아내 한 명에 이혼한 아내 한 명, 그리고 딸 셋과 손자가 있긴 하지만 모두 다 그에게는 먼 사람들이다. 가족이라기 보다는 가끔 만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밖엔 없으니 말이다. 결국 그의 노년의 희망이라면 짝을 만나는 것,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평생 살아도 만나지 못한 짝을 육순의 그에게 찾아올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없다고 보심 된다. 그렇게 인생을 놓다시피 체념하고 살아온 그에게 강도를 만난 사건은 자신 안의 무언가를 일깨우는 사건으로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놀랍게도 자신을 좋아해주는 유니스를 만난 리엄은 뒤늦게나만 삶의 희망을 움켜 쥐게 되는데, 과연 그는 그것을 계속 잡을 수 있을 것인지...그것이 아마 작가 앤 타일러가 하려던 말이 아닐까 싶었다. 

 

전작보단 덜 슬퍼서 좋았다. 전작인 <아마추어 매리지>에선 결혼과 인생을 어찌나 비관적으로 그려놓았던지 읽다보니 세상이 다 암담해 보이더라. 환상에 절은 책도 별로지만은, 현실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도 보기 버겁다니까. 하여간 육순의 이혼한 은퇴자 리엄이 주인공이길래 설마 이 책도? 라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톤은 그리 비관적이지 않았다. 나이 든 남자의 일상을 따라다니면서, 희망을 잃고 자신을 홀로 고립시킨 채 살고 있던 사내에게 은혜처럼 희망이 찾아오지만 결국 그가 놔버린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내용이 그닥 밝다고는 할 수 없음에도 비관적이지 않다고 하는 이유는, 억지 결론이 아니라, 자연스런 순리를 그리고 있어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어찌보면 희망을 그린다는게 더 슬플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냥 인생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마음 편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슬프지도 기쁘지도 낙관적이지도 비관적이지도 않겠지만, 그리고 남들이 보기엔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 같아서 심심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일은 아니니 말이다. 음, 그러고보니 앤 타일러가 말하려던 것이 그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늙게 되면 더 이상의 드라마를 만드는 것도 , 자신을 속이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 말이다. 그런 현상들이 젊음이가 짐작하는 것만큼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고, 어쩜 그렇게 인생이 흘러감을 받아들이는 것도 지혜일지 모른다는 말을 작가는 하려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뭐, 이런 책 하나를 보면서 인생 전반을 깨친 듯 난리를 피울 생각은 없으니, 삼천포로 빠지는 것은 이쯤에서 하기로 하고... 

 

5년만의 신작이라고는 하지만, 그녀의 최고 걸작은 못된다는 걸 알려 드린다. 흠. 과연 앞으로 나올 책들 중에서 그녀의 최고 걸작이 있으려는가는 모르겠지만서도, 아마 그렇기는 힘들 것이다. 아무래도 나이가 드시니 젊은 시절의 발랄함과 재치, 따스함과 너그러움, 그리고 순발력과 유연함이 예전만 못하다. 그럼에도 썩어도 준치라고 , 아무리 못 쓰신다고 해도 중간은 되신다. 하긴 평생 글을 써 오셨는데, 그 가락이 어디 가겠는가만은... 맞아, 글을 잘 쓰시는 분이었지, 라는걸 기억나게 할만큼 잔잔한 설득력은 여전했다. 하지만 그녀를 잘 알지 못하는 독자라면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을 듯... 하니 앤 타일러에게 애정을 붙이시고 싶은 독자라면 다른 책들을 집어 드시라고 권하고 싶다. <우연한 이방인>이나 그외 다른 책들, 다 아름다운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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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스크로 가는 기차 (양장)
프리츠 오르트만 지음, 안병률 옮김, 최규석 그림 / 북인더갭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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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숨겨진 수작이라도 발견한 듯 난리를 쳐대길래 본 책. 실은 3년 전엔가 이웃 블러그 포스트에서 본 단편인데, 그때는 감동을 받은 기억도 있고 해서 다시 보게 되었다. 두번째 본 느낌을 말하자면, 아무래도 이 작품은 과대평가되고 극찬된게 아닐까 싶다는 것. 완벽한 단편소설이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하고, 오로지 뇌리에 남는 것이라면 못다이룬 꿈에 대한 나른한 향수 뿐인데...뭐, 살다보면. " 아 ,내 꿈은 어디고 갔는고, 난 원래 이렇게 살게 될 줄 전혀 몰랐는데..." 라면서 한탄도 하게 되지만서도, 어떻게 그런 인생살이에 빠져들게 되었고, 꿈을 잃어버린 자의 절절한 심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꿈만 있고, 삶은 없는 그런 글에는 생명력이 없다는 것이지. 생명력이 없는 글은, 그리고 땀 냄새가 배여 있지 않고, 치열하게 산 흔적이 없는 문장들은 결국은 한가해 보이기 마련이다. 삶이 그렇게 한가하기만 하다면 참 좋겠지만서도, 인생이란게 언제나 놀이하러 나온 놀이터는  아니질 않는가. 물론 놓쳐버린 꿈에 미련을 가지면서 추억하고 사는게 인생의 비극적인 비장미를 보여줄 수는 있으나, 도무지 언제까지 그렇게 길 잃은 아이처럼 놓쳐버린 꿈만 되뇌이고 산단 말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면서 마냥 안스러워 하는게 삶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는 모르겠으나, 보는 나는 질리더라. 철 좀 들라고 말하고 싶다.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이고...그치? 꿈을 잃어버렸다면, 현실에 부딪쳐 보는 것도 멋진 인생살이 방법이 아니겠는가. 꼭 내가 꿈꾼 목적지가 아니라고 해도 흥겹게 살아갈만한 의지나 유연함이 없다면 이 지루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꿈의 상실에 비참해 하는 것은 안 배워도 아는 것이니까, 알려 주면 고맙겠다는 것이지. 삶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 말이야. 그런데 이 단편엔 그런 점이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난 이 책이 별로였다. 지리 감각이 없어서 종종 길을 잃는 듯한 작가의 말투도 반복되니 질리고 말이다. 무슨 배를 타고 가면서 종착지를 헷갈려 하는 단편에서는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아 참...그것 외엔 그렇게 쓸게 없다요? 지도를 갖고 다니시던가, 아니면 그냥 집에 있으쇼. 적어도 길을 잃지도 않고, 목적지가 아닌 곳에 떨어졌다고 난리를 필 염려도 없고 말이죠, 종착지가 거기가 아니라고 하면서 승객들과 다툴 일도 없으니 말이요...라고 작가에게 말하고 싶었다. 하여간 지리 문제로 헷갈리게 구는건 멀미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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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리얄리 2011-03-31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네사님 평은 언제나 시원시원해서 좋아요. 저는 감상쓸 때 그렇게 잘 못하거든요. 그래서 더 즐겨찾게 되지만..
어쨌거나 제게는 그럭저럭 괜찮은 책이었던 것 같아요. 두번째 읽게 되면 생각이 좀 달라질지 모르겠지만요.

이런 류(?)의 책으로는 예로페에프의 [모스크바발 페투슈키행 열차]가 어떨까 하네요. 주인공이 술에 만취한지라 지리감각 실종의 개연성도 있고, 승객들과 싸우고 어울리고 하면서 뭔가 정신분열(?)적인 말과 행태가 비꼬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설득력이 있고.. 개인적으로는 [곰스크...]보다 더 높게 쳐주고 싶은 책인데, 괜히 이네사님께 혹평받는거 아닌가 해서 걱정이 되네요.

이네사 2011-03-31 12:53   좋아요 0 | URL
예, 그럭저럭 괜찮은 책이긴 했죠. 수작이라고 할만한 책은 아니었다는 말이었어요.
그리고 두번째 보니까, 긴장감이 없어서 그런가 싱겁게 느껴지더라구요. 결말을 알고 보는 거잖아요.
아마 그 탓도 있었을 듯 싶지만서도..아니여요. 처음 봤을때도 그냥 그랬네요. 사람들은 이런 나른한 낭만들을 좋아하는구나. 싶었던거요.
여긴 안 썼지만 이 책의 느낌은 이런 사람을 만났을때와 기분이 비슷했어요.
실은 나 능력이 대빵 많은 사람인데 말이야, 사정이 이러저러하다보니 인생이 이모양 이꼴이 되어버렸어..라고 말하는 우울증 환자요. 아마도 어느정도는 그런 성향의 사람들이 이 책을 좋아하지 않을까 해요. 처음 이 글을 소개해주신 블러거도 좀 그 비슷하신 분이었거든요. 자신의 능력을 맘껏 펼치지 못하고 늙어간다는 것이 무척 우울해하시던 분이었죠. 자신은 절대 이렇게 늙어갈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했는데. 솔직히 그런 사람이 한둘인가요?

소개해주신 책은 처음 듣는 작품인데, 찾아봐야 겠네요. 혹평 받으면 어떤가요? 안 그래요?
본인이 쓴 글도 아니잖아요? 그죠? 이런 소개 고맙게 생각하니까, 그런 걱정일랑 마시고, 좋은 책 있으면 저한테도 좀 알려 주셔요~~~다른 사람들은 건성으로 들을지 모르지만 전 꼬박꼬박 찾아서 본답니다.
그건 보장!
 
언더그라운드 언더그라운드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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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발생한 동경 지하철 사린 살포사건을 르뽀 형식으로 재조명한 작품. 가해자의 시선이 아니라, 피해자의 육성을 듣고 정리한 것이다. 하루키 자신의 일본에 대한 사랑을 짐작하게 할 수 있던 프로젝트였는데, 가해자들에 가려서 보이지 않던 피해자들을 지상으로 끌어내려 시도한 것은 박수를 받을만지 싶다. 자국민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시도 못했을 프로젝트지만, 또 그 덕분에 지루함 감이 있는 책으로 묶여져 나온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하루키가 사린 피해자 르뽀를 쓴다고 했을때 다들 망서리며 인터뷰에 응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의 상처는 큰 반면에 그들의 상처를 제대로 짚어주는 매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자신은 그들을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고, 당신들의 피해를 기록으로 남겨 그날을 영원히 기억하게 하겠노라는 점이라는 걸 누누히 설명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런 다짐은 이 책을 다 쓰기전까지 이어진 듯해서, 꼼꼼하게 쓰고 조심스럽게 피해자들을 다룬다는 인상이 짙었다. 자신을 믿어준 사람들에게 더 이상의 피해가 가지 않도록, 행여나 상처를 더할까 조바심 내는 모습에서 그의 성실한 인간성을 보는 듯해서 좋았다.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일본인들 특유의 정서가 그에게도 비껴갈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사린 사건이 왜 그렇게 일본인들을 흔들어 놓았느냐고? 뭐, 많은 이론들이 있을 것이고, 어떤 이론을 갖다 댄다고 해도 완벽한 설명은 되지 못할거라 본다. 한가지 문제만으로 해결될만한 사건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루키 자신도 자신만의 견해로 조심스럽게 진단을 하고 있는데, 어느정도는 일리있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그쪽으로 심도있게 파고 나갔다면 훨씬 더 재밋었으련만, 그는 후기에서 몇 장 할애하고 있을 뿐이다. 그가 이 책에서 보여주고 싶어한 것은 가해자들이 왜 그랬냐가 아니라, 피해자들의 인생이 그날 그 시간 이후 어떻게 변했는가라는 점에 있었으니 말이다. 

성실함도 좋다. 이용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지킨 것도 좋다. 자국민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것도 좋다. 그런데 문제는 이 책이 지루하다는 점이다. 왜냐고? 사린이란 독극물에 노출되었을 시 증상이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야가 좁아지고, 어두워지며, 기침이 나오고, 숨 쉬기가 어려워지면, 어지럽고, 몸을 가누기 어려울 만큼 마비가 오고, 그 정도를 넘어서면 죽음에 이르는... 과정들이 다 비슷했던 것이다. 정도 차이고, 사람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었을만정 대다수의 피해자들의 경험들은 대동소이했다. 그렇다보니, 40여명의 피해자의 비슷비슷해보이는 피해일지는 읽는데, 도무지 작가라는 사람이, 이렇게 반복되는 말들을 늘어놓아서 어쩌자는 것인지 의아해졌다.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알았을텐데 말이다. 같은 책 안에서의 반복은 죽음인데, 40개의 반복이라니...용기를 내서 귀찮은데도 인터뷰에 응해준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억지로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 적어 놓은 듯 보이던데, 프로 작가라는 입장에서는 그게 옳은 것이었을까 싶었다. 

그러니까, 피해자에게 촛점을 맞추지 않은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들의 증상이 비슷하다는 것, 한명의 이야기만 들으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대략 유추해 보면 된다는 것이다. 자신은 모든 것을 성실하게 담겠다고 인테부어들과 약속을 했다지만서도, 하루키는 미처 이것은 모르지 않았을까? 개개의 증언이 결국은 하나의 증언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말이다. 

결론은 반복되는 증언을 청취하다보면 원래의 취지는 생각나지 않고, 단지 지루함만 느껴진다는 것이다. 좋은 책이 되고자 했다면 반복되는 이야기를 줄이거나 다르게 편집했어야 했다. 하루키가 그러지 못한 것은? 피해자에 대한 연민이 너무 큰 탓이 아니었을까? 결국 이 책은 하루키와 지하철 사린 사건의 피해자들을 위한 개인 문집이 되버린게 아닐까 싶었다. 뭐, 일본 내에서는 기록 문학으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니, 그건 됐고, 일본인이 아닌 우리로써는 그다지 읽어봐야 할만한 책은 못되지 않는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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