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 온리 유 - P.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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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을 뽑는 작업은 하던 루이스는 자신의 첫사랑과 이름이 똑같은 원서를 보고 깜짝 놀란다. 포트폴리오를 접수시켜야 한다는 이유로 그를 학교로 불러낸 루이스는 실제의 그가 과거의 첫사랑과 모든 면에서 판박이란 사실에 경악을 하고 만다. 정신을 차릴 사이도 없이 그를 집으로 불러 들여 관계를 갖게 된 그녀는 혼란에 빠진다. 과연 이 사랑(?)을 계속 이어가야 하는가 ,아니면 과거의 것이니 접어야 하는지라는...자신의 생각을 추스릴 사이도 없이 과거 첫사랑의 훼방꾼이었던 친구가 다시 등장해 그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다. 그와의 추억은 루이스만의 것이 아니었으니 자신에게도 나눠 달라는 것이었다. 질색하는 루이스, 그에 더불어 이젠 친구처럼 지내는 전남편이 그간 숨겨왔던 비밀을 털어놓는다.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 그녀는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할지, 앞으로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데...

 

도대체 감독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내내 의문이 들었던 영화다. 과거의 추억은 소중한 것이여? 내진 과거의 추억은 왜곡되기 마련인 것이여를 들려 주려 한 것일까? 어딘지 완벽하게 이야기가 정리되어다기 보다는 어수선하게 흘러가다 뜬금없이 끝이 나고만 영화가 아닌가 싶었다. 무엇보다 만난지 몇 시간이 되지도 않은 학생을 집으로 불러들여 섹스를 하는 교수는 영 반갑지 않았다. 만약 그 둘의 성이 바뀌었다면 성추행 논란이 일었을만한 장면이구만, 그걸 아름답게 포장해서 넘어가는 것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뭐야, 남자들의 성은 별로 보호할 가치가 없다는 말인가? 물론 로라 린니처럼 멋진 여성이라면 그 누가 마다하겠는가 만은...로라닌니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팬심으로다가 봐도 좋을 듯. 그녀는 여전히 매끈하게 아름다우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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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서의 우리 上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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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를 한없이 존경스럽게 만들던 책이다. 물론 번역이 잘 되어 있어서가 아니다. 이렇게 읽기조차 지루한 책을 끝까지 번역해 내었다는 인내심이 존경스러웠다는 것이지... 역자와 작가는 다르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기 때문에 --말하자면 자신의 아이--그것이 못난이인지, 지루한 아이인지, 매력이 없는 아인지, 내진 형편없는 졸작인지 알 길이 없을 수도 있다. 만약 자기 머리속에서 그런 것들을 알아차릴 센서가 작동했다면 그 작품을 모든 사람들이 보게 출간할 이유가 없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번역자는 다르다. 문학을 좋아하고, 외국어를 알고, 좋은 책을 소개하는데다, 돈까지 번다는 생각에서 책 번역을 시작했다고 치자. 그런데 막상 맡겨진 책이 읽어보니 재미 있지도 않고, 말이 안 되는 이야기로 줄곧 횡설수설 하는데다, 책과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로 내내 헤메기만 한다고 해보자. 문학과 돈에 대한 왠만한 애정이 있지 않고서야 그걸 번역한다는게 쉽지많은 않을 것이다. 욕을 하면서도 끝낸다면 다행 아니겠는가. 예를 들면 이 책처럼 말이다. 그렇다. 난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것도 아니고, 단지 역자가  완역을 해냈다는 것에 감동을 받고 말았다. 완독조차 욕이 나왔으니 말이다. 물론 상 권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러나 중권이 이르러 한없이 헤매려는 듯 보이더니 하권에 가서도 본격적으로 헤메기만 하고 있더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정신사납기 이를데 없는 책이었다.

그렇다보니 책을 덮는데 번역자 이름을 다시 한번 안 들여다 볼 수가 없더라. 김 소연이시라는 분이라고 한다. 대단하다고 칭찬을 안 해드릴 수 없다. 나라면 이런 책 억만금을 준다고해도 완역 못한다. 돈도 다 필요없으니, 그냥 다른 사람 알아보라고, 번역을 맡긴 분에게 하소연을 했을 것이다. 주변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혹 돈이 궁해서 무엇이라도 하고픈 사람이 있다면--톰 소여의 재치를 잠깐 빌려와 대단히 근사한 프로젝트라고 입에 거품 문뒤 슬쩍 떠넘기기 작전을 구사할지 모른다. 하여간 반색을 하면서 희희낙낙 군침을 삼키면 번역하게 되는 책은 절대 아니었을 것이다.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다른 리뷰나 이 책의 정보란을 뒤져 보시길...추리 소설이라고는 하나, 등장인물들이 추리는 뒷전이고 선승 놀이를 줄곧 하고 있다는 사실만 부연해 드리겠다. 게다가 밝혀지는 진실이라니... 참, 짜증이 확 밀려 들었다. 세세하기는 또 왜 그렇게 세밀한지...일본 작가의 소설 아니랄까봐 말이다. 그렇게 세세하고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고 해서 책이 더 재밌어 지거나 구성이 탄탄해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뭐 리뷰를 길게 쓸만한 책은 아니었고 하니 이쯤해서 접기로 하고, 단지 일본 소설을 읽으면서 든 의문 하나를 적어본다. 

정말로 궁금한 것이었는데, 과연 일본 사람들은 근친상간이 어쩌다 일어나 별일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이 책의 뉘앙스로 보면, 그저 내가 과거에 잘못했는데 , 이제 잘못을 깨달았으니 다음번엔 제대로 대해 주겠다 그런 정도니 말이다. 정말로 그래? < 삼수탑>에서는 강간을 당한 피해자가 가해자를 사랑하게 된다는 설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더니만, 여기선 근친상간이 어쩌다 벌어진 일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눈살 찌프려 지는 설정이다.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가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밝혀내는 분야라고 하지만서도, 정말로 그것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우리나라 정서에서만큼 혐오하는 기색이 없는 걸 보면 일본 다운 어떤 문화 감수성이 있는가 싶기도 하고.  일본인들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근친상간도 어쩌다 보면 할 수도 있는 거라고 말이다. 나중에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본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고 그들은 믿고 있는 것일까?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 되질 않아서 한자 적고 간다. 언젠가는 그 의문에 명쾌한 해답을 얻게 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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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zi 2011-03-28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이 시리즈가 좀 지루하긴해요. 영화 보셨어요? 이네사님이 좋아하시는 아베히로시가 탐정 역할 하는데! 캐릭터가 매력 있다 뿐이지.. 저도 언제 끝나나 언제끝나나 하면서 읽던 시리즈.--저, <샐리의 따뜻한~> 땡스 투 하러 왔다가 들렀는데 여기 좋으네요. 이네사님의 리뷰 읽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니까요. 특히 혹평들! ㅎㅎ

이네사 2011-03-28 23:20   좋아요 0 | URL
깜짝 놀랐네요. 제가 아베 히로시를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까 하고 말이죠. ㅋㅋㅋ
최근 이웃 되신 지지양이시군요? 맞죠? 양쪽을 하고 있긴 한데, 간단평들은 여기에 먼저 올리는 편이라 좀 더 생동감은 있을 거여요. 말하자면 읽고 나서 기억이 생생할때 쓴 거라고 할까요. 덕분에 철자가 엉망이라도 그냥 넘기지만서도요. 방문자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별로 신경을 안 썼거든요.
앞으론 신경을 써야 할까 싶네요. 아시는 분들이 본다면 당연히 그래야 겠죠.^^

아~~~아무리 아베 히로시를 좋아해도 영화까진...패스하고 싶네요.
팬심으로다 볼만큼 좋아하진 않거든요. 히로시...
 
삼수탑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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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추리 작가들 중에서는 가장 믿을만 하다고 생각하는 요미코조 세이시의 작품이다. 그의 책이라면 나오는 족족 놓치지 않고 보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나를 실망시킨 책이 바로 이 책 되겠다. 이 작가에겐 크게 실망한 적이 없었기에, 게다가 간만에 나와준 책이라 기대가 컸었던 탓에 기분이 왕창 잡쳐 버렸다. 다작을 하시던 분이라고 하니, 때론 엉성하게 쓰일 수도 있고, 그가 신도 아니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틀릴 경우도 있으며, 무엇보다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에 대한 추측이 완전하게 틀려 버리는 것도 이해되며, 모든 인간은 시대를 거슬러 살만큼 대단하지 않는데, 그 역시 그렇게 개방적인 인간은 아니셨다는 점이 놀라운게 아니라는걸 감안하면 이런 작품이 나와준다는 것도 놀라운 것은 아닐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런 작품들을 양산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작가는 칭송을 받아야 할지 모른다...라는건 나를 위한 위로일 뿐이고. 살짝 실망스러운 기분이 드는건 어떨 수 없었다. 어쩌랴. 이미 돌아가신 분에게 다작은 안 해도 좋으니 좋은 작품만 써달라고 주문할 수도 없고 말이다. 하여간 요미코조 세이시의 단점들이 한작품에 두드러지게 모아진 책이 아닐까 한다. 그가 가진 모든 편견과 아집과 독단이 교교히 흘러주던 작품이니 말이다. 

내용은 이렇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어 양부모 손에 고이고이 자란 오토네는 먼 친척인 삼촌 겐조가 자신에게 거액의 유산을 남겼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단 거기엔 조건이 있었는데, 겐조가 지정한 남자와 결혼을 해야 한다는 것,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사실에 걱정이 되면서도 그녀는 그가 자신의 운명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예깜이 허탈하게도그 남자는 자신을 길러준 이모부의 생일 잔치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다. 더군다나 오토네는 용의자가 자신이라는 사실에 놀라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살인사건이 벌어진 뒤 모르는 낮선 사내에게 강간당한 오토네는 그의 노예가 되어 그가 하라는 대로 움직이게 된다. 약혼자의 살해 이후, 유산을 나눌 겐조의 친척들이 하나 둘씩 살해되어 버리자, 미심쩍은 행동을 일삼던 오토네가 살인용의자로 본격적으로 수사선망에 오른다. 결국 자신을 강간한 남자와 함께 도피한 오토네는 유산에 대한 모든 의문을 해결하게 된다는 삼수탑을 향해 가게 된다. 그곳에 오른 오토네는 결국 자신은 그 남자의 손에 죽는 것이 아닐까 두려움에 떠는데... 

얼굴도 모르는 채 강간당한 남자에게 연정을 느끼는 주인공에, 동성애를 혐오하는 작가--당시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이해가 안 가는 설정도 아니다. 이성애자라면 동성애자의 행태가 도무지 이해가 안 갔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세간의 평을 그대로 작품 속에 싣는다는건, 편견을 부추길 위험이 있는 것이고 당연히 눈살이 찌프려진다.--라. 참 설득력 농후하시겠다 이거다. 페미니스트라면 당연히 읽기 힘들만한 그런 설정이었다. 이런 소설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건 작가가 그만큼 남성 우월주의자였다는 말이겠지. 솔직히 남성우월론자라기 보단 여성 혐오론자라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싶지만서도.  아마도 그게 맞지 싶다. 다른 작품속에서도 보여지듯 여타의 작가에 비해 여자가 범인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유난히 많은 걸 보면 말이다. 하여간 여자를 싫어하는 내진 두려워 하는 추리 소설 작가라....여자에 대해 환상이 있는 것도 작가로써 그다지 바람직하진 못하지만, 여자를 혐오하는 것도 작가로썬 그다지 환영할만한게 못되지 않을까 한다. 여자들에게 정상적인 관심을 갖지 못하는 남자들이 --여자를 무서워 하건, 두려워 하건, 혐오해서 싫어하건 간에--아마도 유난히 그를 좋아하지 않을까 라는 추측을 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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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인덱스 - 아버지의 선택 그리고 그 후 나에게 필요한 책 840 영문학 장서 2
조앤 위커셤 지음, 정연희 옮김 / 소수출판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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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부모를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쉽다라기보다는 고통스럽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이다. 부모란 자신을 보호해주고, 무엇을 하건 지지해주며, 세상으로 나가는 길을 일러주고, 언제나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으로 존재한다는 관념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그 관념에 반하는 생각 자체가 배신처럼 느껴질 터이니 말이다. 부모는 아이를 보호해주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아이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믿음 때문에, 그런 최소한의 자질도 가지지 못한 사람을 부모로 둔 사람들은 자신의 자아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일으키기 쉽다. 내가 처한 현실과 세상이 바라는 이상향 사이에서 메울 수 없는 간격이 생길 시, 만약 그것이 가장 원초적인 관계라 할 수 있는 부모-자식 관계라고 한다면, 인생 시작 초기부터, 그리고 인생의 근원에서부터 삐꺽댄다고 봐도 좋을 테니 말이다.

만약 당신이 그런 삶을 살고 있다면, 우선은 안심하시라. 당신이 최초도 아니고, 최후도 아닐 것이며, 어쩌면 다수를 점하는 사람들에 속해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니 말이다. 부모를 공경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당위 명제에 맞서 그들 대다수는 입을 다물고 살긴 하지만서도, 그들의 고통과 의문들은 결국 그들로 하여금 회피를 입을 열게 만드는 계기로 작동하게 된다. 아무리 착하고 무식한 자식이라해도, 고통와 의문이 감당하기 커지게되면 어쩌겠는가, 그 의문을 풀어야 할 밖에...그런 이유로 객관적인 평이 불가능한 존재에게 현미경을 들이대면서 연구를 시작하는 심정은 비참하지만 절박한 데가 있다. 과연 무엇이 문제였을까? 우리의 관계가 이렇게 고통스러워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묻는다. 다행히도 운이 좋다면 그들은 문제점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에나, 알고보니 우리의 부모는 그렇게 완벽한 존재가 아니었다네!라는 깨달음도 그것이다. 그런게 차근차근 자식들은  부모의 서투름과 완고함, 위선과 표리부동, 패배의식과 나약함, 그리고 유유부단을 이해하게 된다.  

그들은 단지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무지했을 뿐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나약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자식조차 제대로 건사하지 못했다는걸 이해하고 나면 좀 나은 기분이 될지도 모른다. 최소한 그들이  작정하고 나를 파괴하려 했던건 아니라는 생각에 들테니까, 그저 그들은 그것이 우리에게 고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미쳐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들의 삶도 살아가기 버거웠다는 것을 이해하면, 다시 말해 부모들 역시 폭압적인 인생에 끌려 다니면서 어쩔 줄 몰라했던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적어도 그들을 원망하는 마음이 약해질지 모르겠다. 똑똑하고 강하며 선한 인간이 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면 적어도  그들 잘못만은 아니질 않는가. 그런 깨달음은 우리로 하여금 부모들에게 면죄부를 내 줄 수 있게 한다. 같은 인간으로써 연민을 품을 수 있으니 말이다. 내가 이런 말을 쓸데없이 길게 한 이유는 이 책이 자신의 부모에게 할 말이 많은 여자의 이야기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 자신의 부모에게 면죄부를 주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건 부모에 대한 이해가 우선해야 했기에, 그녀는 시작한다. 그녀를 가장 고통스럽게 했던 아버지의 자살로부터... 

어느날 평소와 같이 평범한 새벽을 맞이한 작가의 아버지는 엄마에게 커피를 가져다 준 후, 서재로 가서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날려 버린다. 전혀 뜻밖의 결정이었기에 가족 모두는 혼비백산하고 만다. 차라리 타살이었다면 받아들이기가 더 나았을 거란 생각에 타살 가능성을 문의하던 작가는 자살을 의심할만한 증거가 없다는 말에 실망한다. 아버지가 자살을 할 만큼 고통스러워 했는데 자식들 중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를 어둠속에 방치했다는 죄책감은 그 후로 작가를 짓누르면 모든 행동과 생각을 한정지어 버린다. 정신적인 감옥에 갇혀버린 것이다. 그런 10여년간의 혼란과 사투가 고스란히 배여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한, 그리고 부모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그녀는 아버지의 자살을 이해해야 했다. 그녀 역시 살아가야 했기에, 아버지를 제대로 보내 드려야 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아버지의 삶을 재구성해보던 작가는 아버지의 시각에서 그의 삶을 들여다 보게 된다. 회장과 친척이라는 이유로 사장이 되긴 했지만 악역을 맡기엔 너무 신사다워 종래 해고를 당한 아버지는 그 후 계속 실패의 삶을 살게 된다. 아버지의 추락은 허영이 심했던 엄마에게 실망을 가져오고, 그런 실망은 종래 아버지에 대한 무시와 경멸로 나타난다. 다른 남자를 불러들여 시시덕거리면서 아버지를 고문했던 엄마, 그녀는 무능한 아버지를 대신해 사업을 시작하지만 그녀 역시 돈만 말아먹은 채 주저앉고 만다. 그 후로 자신의 직업을 갖게 된 엄마는 아버지를 더 노골적으로 무시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 작가의 의붓 시아버지가 등장한다. 사업 투자자로 아버지를 꼬신 그는 사업이 실패하자 돈을 돌려 달라면서 아버지를 들들 볶는다. 그렇게 어디에서고 배신과 경멸과 무시를 당하던 아버지는 어느날 자살을 감행해 버린다. 돈때문이었을까 생각하던 딸은 아버지가 자살한 것은 삶에 대한 실망때문이었을 거란 결론에 이른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그대 슬퍼하지 말라는 시인의 말은 그저 잠깐의 마취제일 뿐이다. 삶이란, 그것이 우리의 기대를 속인다면 당연히 우린 슬퍼하는게 인지상정이니 말이다. 우리가 그것에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착각이거나 오해이거나 희망사항이거나 회피일 뿐이다. 그렇게 자신의 슬픔과 우울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버지를 결국 방아쇠를 당겼고, 그것마저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아서 아버지를 고통을 겪어야 했다. 나중에 아버지가 거의 자살에 실패했을 뻔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엄마는 그 와중에 아버지를 비웃는다. 그래, 뭐든 제대로 하는 것을 못 봤으니까. 그것이 엄마의 아빠에 대한 최종적인 평이었다. 참 부부애가 넘쳐나는 커플이지 않는가.

무능한 아빠,그런 남편을 못 견뎌 하는 허영끼 가득한 아내, 엄청난 돈을 벌었다고 자랑을 하고 다니면서도 아빠에게 모든 빚을 떠안기던 의붓 시아버지, 그 모든 과정에서 아버지를 두둔할 수 없었던 딸인 나...아버지의 삶을 되돌아보던 작가는 아버지에게 미안해진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아무리 자신이 괴롭다고는 하나 그렇게 자살을 선택했다는 것에 분노한다. 왜냐면 남겨진 자의 고통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만약 아버지가 자신들이 겪었을 고통을 조금이나마 알았거나 헤아렸다면 자살을 멈추었을까? 그건 영원히 알 수 없는 질문일 것이다. 왜나면 이미 벌어진 사건을 되돌릴 수가 없으니 말이다. 

아버지의 자살이라는 화두를 진지하게 고찰해 간 수필이다. 쉽지 않았을텐데도 최대한 담담하고 냉정하게 서술하려 한 노력이 돋보였다. 그럼에도 종종, 하고 싶은 말을 다 내뱉지 못하고 주저한다고 해야 하나? 뻔히 보이는 사실을 회피하려는 모습도 종종 보였다. 뭐, 이해되지 못할 일도 아니지 않는가. 자신의 가족 모두를 까발리는 글을 쓰는데 어떻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겠는가. 그들이 글로 인해 입을 상처까지 고려한다면 이런 책을 냈다는 자체가 놀라운 일일 것이다. 때문에 그녀가 최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서술한 곳에서는 그녀의 통찰력이 빛을 발하지만, 어떤 부분에선 어떻게 하면 두리뭉실하게 표현하면 좋을지 머리를 굴리는 듯한 것이 느껴져서 답답하기도 했다. 하긴 자기 부모의 시체를 난도질 하는데, 그 누구가 쉽겠는가 만은... 직설적이고 단도직입적으로 눈 딱감고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글을 쓰지 않는 한, 자신의 부모에 대해 진실을 고발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워 보인다.

자살이 가족에게 미치는 파괴력을 보고 싶으신 분들은 제대로 읽게 되실 것. 하지만 작가에게 미안하게도, 작가 가족들이 별로 매력적인 사람들이 없어서인가 종래 흐지부지 된다는 점이 별로였다. 자살이라는 파괴력만 제외한다면 가족들에게 별로 이렇다하게 특이할만한 사항이 없었던 탓이다. 자살외에 특이점 없는 인생을 산 사람들을 가족으로 둔 작가가 가엾긴 했다. 거친 세상에 맞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종래 감을 잡지 못했던 무능한 아빠, 그런 아빠를 감싸기 보다는 화를 내고 경멸하며 다른 남자와 시시덕대기 바빴던 엄마, 그런 부모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딸...희생하는 가족 구성원 하나 없이 피해자만 양산하는 가족은 대부분이 그렇듯 재미도 매력도 없다. 아마도 그걸 까발려야 했던 딸 입장에서는 그것이 더욱 더 고통스럽지 않았을까 한다. 누구를 지목하건 간에 그녀가 사랑해야 하는 가족 구성원이니 말이다. 

하나, 자살에 대해선 별로 알려 주는 것이 없었다. 그녀 자신이 자살자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자살의 피해자기 때문에 자살의 메카니즘에 대해선 알지 못하는 듯했다. 아버지가 왜 자살을 해야 했는지,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 아버지의 삶을 이해한다는 것이 자살을 이해하는 방법은 되지 못하니 말이다. 이 책을 보면서 자살자의 심리는 어쩌면 자살자만이 알 수 있는게 아닐까 싶었다. 자살을 고려해보지 않은 사람은 자살자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씀...어쩌면 작가 자신이 자살을 고려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아버지를 이해하는 긴긴 여정을 겪은게 아닐까 싶었다. 아버지의 입장에선 그렇게 비통해 할만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감정으로건 이성으로건 이해하지 못했다고나 할까. 단점이 있건 없건 간에 자신의 가족을 해부한다는건 쉽지 않은 일이기에, 작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그녀가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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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 민음사 모던 클래식 41
다니엘 켈만 지음, 임정희 옮김 / 민음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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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 명예" 라고 지었던데, 다 읽고 난 지금에도 왜 제목이 그렇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작가가 젊은 나이에 걸머진 명예를 지키기 위해 안감힘을 쓰고 쓴 책이라는 의미일까, 아니면 지금 자신에게 존재하는 명예가 한낮 허명이기에 이 책을 빌어 다 없애 버리고 싶다는 의미일까. 만약 작가에게 어떤 의미가 있어 지은 이름이라면 "민폐"라는 이름으로 제목을 짓는게 적당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보다 더 민폐일 수는 없다 싶을 정도로 한심스런 책이었기 때문이다. 어찌나 정신만 사납던지, 이 책을 쓰기 위해 작가가 정신을 쏟은 나머지 정신분열증이 걸렸던 것이 아닐까 추측이 될 정도였다. 어디를 보나 심난해, 총체적으로 정신 사나워, 이야기 전개는 어이없어로 귀결되는, 한마디로  대단한 책을 쓰겠다는--보다는 특이한 혹은 사람들에게 인상적이여 보일--작가의 욕심이 지나치다보니 프로젝트 자체가 하늘로 올라가버린 결과물처럼 보였다.  쉽게 말해 실패작!

뒷 표지에 '지금 보고 싶은 사람에게 전화하세요, 인생은 아주 빨리 지나가고,잊히고, 사라진까요! 그러라고 휴대전화가 있는 겁니다!'라고 쓰여져있다. 

책을 읽고 난 지금 이 문구를 읽고 있자니 웃음이 나온다. 다른건 몰라도 이 책의 작가인 다니엘 켈만은 이렇게 다정한 사람이 아니다. 보고 싶은 사람에게 전화하라고 다그치고, 인생이 빨리 지나가지 낭비하지 말라고 부추기는 인생 찬미자가 아니란 말이다. 재치가 뛰어날 지는 모르나, 전형적인 서양 사람답게 냉소적이고 냉담하며 다시 희박한 정情의 소유자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반적인 기준이 의하면 싸가지 없는 자식이라는 말을 듣지는 않을까 싶은....뭐, 그건 내 인상에 그렇다는 것이고. 하여간 저 문구를 누가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의 선전문구보단 휴대전화 광고 문고로 썼으면  괜찮지 않았을까 한다. 물론 저렇게 촌스러운 문구가 광고 문안으로 쓰여졌을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게 이 책의 성격보다는 더 알맞는 문장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휴대전화를 광고하기 위한 책일까? 다들 휴대전화 하나씩 장만하시라고, 그래서 아는 사람 모두에게 전화 한통씩 넣어주시라고, 그런 말을 하려는 것일까? 차라리 그랬다면 나았을 것이다. 작가는 유치한 쪽을 택하느니, 정신 사나운 쪽을 택하는 사람이니 말이다. 인간적인 정? 그딴거 작가는 모른다. 그저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과 냉정함과 가식과 위선과 배신과 광기와 비이성만이 그의 관심사일뿐. 하여 그가 창조해내는 사람들이 다들 정상적인 사람이라기 보다는 정신 나가기 일보 직전인 사람들, 구원을 바라기에도 억만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통에 그저 현재 비정상임을 틀키지 않고 오늘만을 보내면 다행인 사람들뿐이다. 구원? 사랑? 우정? 인간애? 그런것은 지옥에나 가버리라고 해.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무슨 있지도 않는 관념에 내가 관심을 보이겠느냐? 뭐, 그런 류라고 보심 된다. 

그렇다보니 11편의 이야기는 단 한편도 정상적인 경로를 거치지 않고 가차없이 일탈의 횡보를 걷느라 산만하기 이를데 없었다. --물론 그 11편의 주인공들이 서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점에서 무슨 대단히 지적인 구성이나 한것처럼 거품을 물고 있던데, 내 말하건데 그들이 연결되어 있건 아니건 간에 별로 차이는 없다. 이 책이 별로라는 점에서는 말이다.--유명 배우 랄프에겐 자신에게 갑자기 전화가 걸려오지 않자 의아해 한다. 그 후 이상한 일들을 연이어 겪게 되던 그는 아예 자신을 랄프짝퉁으로 남들에게 소개하기 시작한다. 랄프와 비슷해 보이기는 하지만 닮지도 않았다는 말을 듣게 되자 기분이 으쓱해지던 그는 자기집 집사마저 자신을 몰라보자 식은땀이 흐른다. 그에 비해 마지못해 휴대전화를 구입한 에블링은 자신의 전화로 랄프를 찾는 전화를 계속받게 된다.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그들은 장난치냐면서 오히려 그를 나무란다. 갖가지 수단을 써봐도 랄프를 찾는 전화가 계속 이어지자 그는 이참에 소심한 자신을 버리고 랄프를 연기해보기로 한다. 어차피 자신도 아닌데 뭐 어쩌라 싶었던 것이다. 어이없게도 그의 그런 시도가 먹혀 들어가자 그는 진짜 자신을 버리고 자신이 만들어 낸 랄프로 살아보기로 한다. 어찌되었건 자신의 삶보다는 재밌으니 말이다. 

그외에도 소설가와 그의 애인,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팬과 그의 적수 작가, 그 책 안의 주인공들이 나와서 그야말로 책속에 책 속에 책속의 이야기를 펼쳐대고 있었다. 이중도 아닌 삼중? 정도의 공간을 만들어 냈다는 의미인데, 그래서 뫼비우스의 띠처럼 어디가 현실이고 어디가 책속이며 어디가 꿈인지 헷갈리게 하겠다는 의도였는가는 모르겠는데, 그저 심하게 정신이 없었을 뿐이다. 딱히 그럴 듯한 이야기도 없었고, 특히나 맨처음 전화가 잘못 걸린다고 계속 휴대전화 회사에 항의하는 에블링의 말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 전화로 똑같은 일들이 벌어진다는 설정은 그 자체로 개연성을 잃고 있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이 책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읽으심 되요 .별로 현실과는 닮지 않았거든요.라는걸 선언하고 있다고나 할까. 

그래도 <세계를 재다.>라는 데뷔작을 통해 전 세계에 이름을 날린 작가답게 종종 보이는 재치과 통찰력은 여전히 작가의 이름이 헛되게 나온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해 줬다. 아무리 재능있는 사람이라고는 하나 작가로써는 일찌감치 성공한 케이스다. 그가 그 성공에 압박감을 느꼈을지 안 느꼈을지, 그것은 내가 알 길이 없지만서도, 전작에 못 미치는 책임에는 틀림없다. 고심해서 1년만에 내 놓은 책이 이것이라면 무언가 잘못되었음에도 누군가 그걸 지적해줄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여 보이고 말이다. 하여간 이 책은 작가의 실패작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모든 작가들이 성공작만은 내놓은 수는 없으니 말이다. 심지어는 살만 루시디도 드물게 이상한 책을 내놓고, 노벨 문학상을 탄 쿳시조차 가끔 제 정신인가 싶은 책들을 내놓으니 말이다. 그래, 아직 다니엘은 젊다. 아직은 그에게 많은 것을 기대해도 괜찮을 거라 본다. 그의 다음 작품에선 화이팅을 바라본다. 제발 ,그가 자신의 벽을 깨부셔 주기를. 나태하지 않고, 세상의 모든 것에 귀 기울여 주기를. 바라건데 제발 정신은 놓지 않고 현실을 바라 보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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