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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인덱스 - 아버지의 선택 그리고 그 후 ㅣ 나에게 필요한 책 840 영문학 장서 2
조앤 위커셤 지음, 정연희 옮김 / 소수출판사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자신의 부모를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쉽다라기보다는 고통스럽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이다. 부모란 자신을 보호해주고, 무엇을 하건 지지해주며, 세상으로 나가는 길을 일러주고, 언제나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으로 존재한다는 관념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그 관념에 반하는 생각 자체가 배신처럼 느껴질 터이니 말이다. 부모는 아이를 보호해주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아이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믿음 때문에, 그런 최소한의 자질도 가지지 못한 사람을 부모로 둔 사람들은 자신의 자아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일으키기 쉽다. 내가 처한 현실과 세상이 바라는 이상향 사이에서 메울 수 없는 간격이 생길 시, 만약 그것이 가장 원초적인 관계라 할 수 있는 부모-자식 관계라고 한다면, 인생 시작 초기부터, 그리고 인생의 근원에서부터 삐꺽댄다고 봐도 좋을 테니 말이다.
만약 당신이 그런 삶을 살고 있다면, 우선은 안심하시라. 당신이 최초도 아니고, 최후도 아닐 것이며, 어쩌면 다수를 점하는 사람들에 속해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니 말이다. 부모를 공경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당위 명제에 맞서 그들 대다수는 입을 다물고 살긴 하지만서도, 그들의 고통과 의문들은 결국 그들로 하여금 회피를 입을 열게 만드는 계기로 작동하게 된다. 아무리 착하고 무식한 자식이라해도, 고통와 의문이 감당하기 커지게되면 어쩌겠는가, 그 의문을 풀어야 할 밖에...그런 이유로 객관적인 평이 불가능한 존재에게 현미경을 들이대면서 연구를 시작하는 심정은 비참하지만 절박한 데가 있다. 과연 무엇이 문제였을까? 우리의 관계가 이렇게 고통스러워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묻는다. 다행히도 운이 좋다면 그들은 문제점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에나, 알고보니 우리의 부모는 그렇게 완벽한 존재가 아니었다네!라는 깨달음도 그것이다. 그런게 차근차근 자식들은 부모의 서투름과 완고함, 위선과 표리부동, 패배의식과 나약함, 그리고 유유부단을 이해하게 된다.
그들은 단지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무지했을 뿐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나약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자식조차 제대로 건사하지 못했다는걸 이해하고 나면 좀 나은 기분이 될지도 모른다. 최소한 그들이 작정하고 나를 파괴하려 했던건 아니라는 생각에 들테니까, 그저 그들은 그것이 우리에게 고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미쳐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들의 삶도 살아가기 버거웠다는 것을 이해하면, 다시 말해 부모들 역시 폭압적인 인생에 끌려 다니면서 어쩔 줄 몰라했던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적어도 그들을 원망하는 마음이 약해질지 모르겠다. 똑똑하고 강하며 선한 인간이 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면 적어도 그들 잘못만은 아니질 않는가. 그런 깨달음은 우리로 하여금 부모들에게 면죄부를 내 줄 수 있게 한다. 같은 인간으로써 연민을 품을 수 있으니 말이다. 내가 이런 말을 쓸데없이 길게 한 이유는 이 책이 자신의 부모에게 할 말이 많은 여자의 이야기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 자신의 부모에게 면죄부를 주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건 부모에 대한 이해가 우선해야 했기에, 그녀는 시작한다. 그녀를 가장 고통스럽게 했던 아버지의 자살로부터...
어느날 평소와 같이 평범한 새벽을 맞이한 작가의 아버지는 엄마에게 커피를 가져다 준 후, 서재로 가서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날려 버린다. 전혀 뜻밖의 결정이었기에 가족 모두는 혼비백산하고 만다. 차라리 타살이었다면 받아들이기가 더 나았을 거란 생각에 타살 가능성을 문의하던 작가는 자살을 의심할만한 증거가 없다는 말에 실망한다. 아버지가 자살을 할 만큼 고통스러워 했는데 자식들 중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를 어둠속에 방치했다는 죄책감은 그 후로 작가를 짓누르면 모든 행동과 생각을 한정지어 버린다. 정신적인 감옥에 갇혀버린 것이다. 그런 10여년간의 혼란과 사투가 고스란히 배여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한, 그리고 부모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그녀는 아버지의 자살을 이해해야 했다. 그녀 역시 살아가야 했기에, 아버지를 제대로 보내 드려야 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아버지의 삶을 재구성해보던 작가는 아버지의 시각에서 그의 삶을 들여다 보게 된다. 회장과 친척이라는 이유로 사장이 되긴 했지만 악역을 맡기엔 너무 신사다워 종래 해고를 당한 아버지는 그 후 계속 실패의 삶을 살게 된다. 아버지의 추락은 허영이 심했던 엄마에게 실망을 가져오고, 그런 실망은 종래 아버지에 대한 무시와 경멸로 나타난다. 다른 남자를 불러들여 시시덕거리면서 아버지를 고문했던 엄마, 그녀는 무능한 아버지를 대신해 사업을 시작하지만 그녀 역시 돈만 말아먹은 채 주저앉고 만다. 그 후로 자신의 직업을 갖게 된 엄마는 아버지를 더 노골적으로 무시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 작가의 의붓 시아버지가 등장한다. 사업 투자자로 아버지를 꼬신 그는 사업이 실패하자 돈을 돌려 달라면서 아버지를 들들 볶는다. 그렇게 어디에서고 배신과 경멸과 무시를 당하던 아버지는 어느날 자살을 감행해 버린다. 돈때문이었을까 생각하던 딸은 아버지가 자살한 것은 삶에 대한 실망때문이었을 거란 결론에 이른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그대 슬퍼하지 말라는 시인의 말은 그저 잠깐의 마취제일 뿐이다. 삶이란, 그것이 우리의 기대를 속인다면 당연히 우린 슬퍼하는게 인지상정이니 말이다. 우리가 그것에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착각이거나 오해이거나 희망사항이거나 회피일 뿐이다. 그렇게 자신의 슬픔과 우울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버지를 결국 방아쇠를 당겼고, 그것마저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아서 아버지를 고통을 겪어야 했다. 나중에 아버지가 거의 자살에 실패했을 뻔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엄마는 그 와중에 아버지를 비웃는다. 그래, 뭐든 제대로 하는 것을 못 봤으니까. 그것이 엄마의 아빠에 대한 최종적인 평이었다. 참 부부애가 넘쳐나는 커플이지 않는가.
무능한 아빠,그런 남편을 못 견뎌 하는 허영끼 가득한 아내, 엄청난 돈을 벌었다고 자랑을 하고 다니면서도 아빠에게 모든 빚을 떠안기던 의붓 시아버지, 그 모든 과정에서 아버지를 두둔할 수 없었던 딸인 나...아버지의 삶을 되돌아보던 작가는 아버지에게 미안해진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아무리 자신이 괴롭다고는 하나 그렇게 자살을 선택했다는 것에 분노한다. 왜냐면 남겨진 자의 고통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만약 아버지가 자신들이 겪었을 고통을 조금이나마 알았거나 헤아렸다면 자살을 멈추었을까? 그건 영원히 알 수 없는 질문일 것이다. 왜나면 이미 벌어진 사건을 되돌릴 수가 없으니 말이다.
아버지의 자살이라는 화두를 진지하게 고찰해 간 수필이다. 쉽지 않았을텐데도 최대한 담담하고 냉정하게 서술하려 한 노력이 돋보였다. 그럼에도 종종, 하고 싶은 말을 다 내뱉지 못하고 주저한다고 해야 하나? 뻔히 보이는 사실을 회피하려는 모습도 종종 보였다. 뭐, 이해되지 못할 일도 아니지 않는가. 자신의 가족 모두를 까발리는 글을 쓰는데 어떻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겠는가. 그들이 글로 인해 입을 상처까지 고려한다면 이런 책을 냈다는 자체가 놀라운 일일 것이다. 때문에 그녀가 최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서술한 곳에서는 그녀의 통찰력이 빛을 발하지만, 어떤 부분에선 어떻게 하면 두리뭉실하게 표현하면 좋을지 머리를 굴리는 듯한 것이 느껴져서 답답하기도 했다. 하긴 자기 부모의 시체를 난도질 하는데, 그 누구가 쉽겠는가 만은... 직설적이고 단도직입적으로 눈 딱감고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글을 쓰지 않는 한, 자신의 부모에 대해 진실을 고발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워 보인다.
자살이 가족에게 미치는 파괴력을 보고 싶으신 분들은 제대로 읽게 되실 것. 하지만 작가에게 미안하게도, 작가 가족들이 별로 매력적인 사람들이 없어서인가 종래 흐지부지 된다는 점이 별로였다. 자살이라는 파괴력만 제외한다면 가족들에게 별로 이렇다하게 특이할만한 사항이 없었던 탓이다. 자살외에 특이점 없는 인생을 산 사람들을 가족으로 둔 작가가 가엾긴 했다. 거친 세상에 맞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종래 감을 잡지 못했던 무능한 아빠, 그런 아빠를 감싸기 보다는 화를 내고 경멸하며 다른 남자와 시시덕대기 바빴던 엄마, 그런 부모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딸...희생하는 가족 구성원 하나 없이 피해자만 양산하는 가족은 대부분이 그렇듯 재미도 매력도 없다. 아마도 그걸 까발려야 했던 딸 입장에서는 그것이 더욱 더 고통스럽지 않았을까 한다. 누구를 지목하건 간에 그녀가 사랑해야 하는 가족 구성원이니 말이다.
하나, 자살에 대해선 별로 알려 주는 것이 없었다. 그녀 자신이 자살자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자살의 피해자기 때문에 자살의 메카니즘에 대해선 알지 못하는 듯했다. 아버지가 왜 자살을 해야 했는지,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 아버지의 삶을 이해한다는 것이 자살을 이해하는 방법은 되지 못하니 말이다. 이 책을 보면서 자살자의 심리는 어쩌면 자살자만이 알 수 있는게 아닐까 싶었다. 자살을 고려해보지 않은 사람은 자살자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씀...어쩌면 작가 자신이 자살을 고려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아버지를 이해하는 긴긴 여정을 겪은게 아닐까 싶었다. 아버지의 입장에선 그렇게 비통해 할만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감정으로건 이성으로건 이해하지 못했다고나 할까. 단점이 있건 없건 간에 자신의 가족을 해부한다는건 쉽지 않은 일이기에, 작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그녀가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