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페인 유골 분실 사건 - 상식의 탄생과 수난사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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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폴 콜린스의 신작이라고 해서 반색해서 보게 된 책이다.우리나라에선 비교적 지명도가 낮은 그의 책이 그래도 계속 발간이 되어 준다는 사실에 감동하면서...첫 페이지를 읽으면서 그의 글발이 여전하다는 사실에 우선 만족을 했다. 미국 독립과 프랑스 혁명을 이끈 사상을 주도했던 인물, <상식>이란 팜플렛의 저자인 토머스 페인이 마지막 숨을 거둔 거리를 찾아 헤메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하니 말이다. 적절하고 매력적인 도입부다. 그래, 폴이 원래 글을 이렇게 잘 썼었지.라면서 그의 팬인 독자답게 자랑스러움이 밀물듯이 몰려 들었다. 그리고는 이 책이 걸작은 아니래도 어느정도 수작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그러니까 책은 다 읽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책을 다 읽은 다음엔 난 폴 콜린스가 본격적으로 걱정이 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왠만하면 전적으로 신뢰를 보내던 폴에게 난 어떤 헛점을 발견하게 된 것일까?  

토마스 페인 유골 실종사건이라는 제목에서 보듯 이 책은 토마스 페인이 죽은 뒤 그의 유골이 어떤 경로를 거쳐 여기저기 떠돌게 되었는지 추척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적이고 지극히 상식적인 말을 한다는 이유로 오해받고 버림받아 쓸쓸하게 죽어간 토마스 페인, 그의 드라마틱한 삶은 그가 생을 마감하고도 끝나지 않았다. 뒤늦게 그의 이상을 알아보고 추종하게 된 영국인이 그를 무덤에서 꺼내 영국으로 가져갔기 때문이다. 그 영국인의 만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페인의 유골이 논란 거리가 될 거라는 영국인의 생각과는 달리 그가 벌이려던 이벤트가 흐지부지 무산되고 말자 그는 페인의 유골을 함부로 방치하고 만다. 아무리 죽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엄연히 한 인간의 유골임에도 그는 자신의 이용가치에 별 도움이 닿지 못함이 판명되자 골방에 두고 잊어버린 것이다. 평생 험난하고 소란스러운 삶을 살았으니 무덤속에서나마 조용한 삶을 보내게 했음 좋았으련만, 인간의 무분별한 욕심은 그를 가만히두지 않는다. 그렇게 영국을 떠돌던 그의 유골은 이 사람 저사람을 거쳐 결국 공중분해되기에 이르른다. 과연 페인의 유골을 다시 짜맞춰가는 그의 여정은 성공할 수 있을까? 작가의 과거를 쫓아가는 여정은 추리 소설 못지 않게 어려워만 가는데... 

 그러니까, 시대를 앞서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다. 그는 존중받고 인정받아 마땅한 사람이었지만 시대를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 통에 인간다운 삶을 역설했던 그는 쓸쓸하게 비참한 말로를 맞아야 했으며, 놀랍게도 그의 죽음 뒤에도 그런 여정들은 계속되었다. 폴 콜린스는 그가 살았던 시대나, 그리고 그의 유골이 지나친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그와 연관된 사람들이 그와 마찬가지로 시대를 앞서나간 이상주의자들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그들이 페인의 유골을 접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대의 이방인이자 주변인으로, 하지만 누구보다 세상이 상식적으로 돌아가길 원했던 인간으로써 자신이 바라던  세상이 도래함을 목격하지 못했던 역사의 선각자들을 폴 콜린스는 조명하고 있었다. 잊지 말라는 것이다. 그들은 비록 역사속에서 잊혀진 사람들에 불과하지만, 그리고 역사는 그들을 무모한 미치광이로 치부했지만 그런 이들의 꿈이 없었던 들 우리가 이런 삶을 영위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일단은 맞는 말이다. 역사 중심부에 한번도 서지 못했기에, 그저 역사속 일화에서나 나오는 인물들 역시 중요할 수 있다. 그들이 희생으로 우리 역사가 이렇게 진보한 면도 있으니 말이다. 작가의 시선이 틀렸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문제는 , 그가 이런 사람들만 쫓는다는데 있다.< 네모난 못>에서 자페인에 대해 열렬하게 옹호하더니--그건 전적으로 옳은 시도였고 , 또 성공적인 작품이었다.-- 그 다음 작품에서도 역사속에서 잊혀진 인물들을 조명하더니, 역시나 이 책에서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인물들을 조명해 내고 있었다. 한 작품 정도에서 그러는 것은 식상하지 않은 시도라는 점에서 박수를 받을만 하지만, 모든 작품들에서 이렇다는 것은 그가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것이 아닐까 싶어 저으기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탁월한 글발을 가진 그가 주변부만 치고 다닌다는 사실이 안타까운 것이다. 

역사속에서 잊혀진 사람들을 찾아 다닌다는 것은 좋다.그런데 왜 그들이 잊혀졌을까? 단지 우리들이 배은망덕해서? 전적으로 그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우리들이 주목해서 봐야하는 교훈이나 드라마가 그들에겐 부족해서 일 수도 있다. 한마디로 재미도 흥미도 별로 없다는 뜻이다. 꼬리잘린 여우는 그저 꼬리잘린 여우일 뿐이다. 그들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모든 여우의 꼬리를 자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점에서 폴 콜린스가 꼬리 잘린 여우들만 주목한다는 점은 심히 걱정이 됐다. 말하자면 아무리 파고, 아무리 치장을 해도 별로 흥미로울게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나...아무리 페인이 시대를 앞서나간 이상주의자이고, 세상이 그를 몰라주었다고는 하나, 그의 유골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놀라울 것도 흥미로울 것도 재밌을 것도 하나도 없었다. 처음엔 흥미가 있었을지 모르나, 조금 지나다 보니, 도무지 이 양반은 이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유골이나 찾으러 도서관과 영국 시골을 떠돌고 있다는 것이냐, 안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그가 재밌다고 설득을 해도, 재료의 한계라는 것이 있지 않는가. 양념을 아무리 많이 쳐도 맛이 없는 음식이 있고 말이다. 

하여간 폴 콜린스의 글발이 여전함은 확인하긴 했지만 그의 관심이 한정되어 간다는 점에서 실망스럽기 그지 없는 책이기도 했다. 아니, 실망스럽다기 보단 걱정이 된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제발 부탁이니. 그가 주변이 아닌 중심부에 관심을 좀 가져주길 기대해 본다. 우리가 주목하지 않는 것들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어느정도는 말이다. 그가 그의 탁월한 글발을 별로 쓸모없는 것들에 낭비하는 것을 더 이상 목격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나보다는 머리가 좋은 양반이니, 아마도 자신의 문제를 이미 짐작하고 있을 거란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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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에 바라다 - 제142회 나오키상 수상작
사사키 조 지음, 이기웅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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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지 음산해 보이는 표지에 끌려 읽게 된 책인데, 한마디로 제목값도 하지 못하는 그런 책이 아니었나 한다. 일본의 나오키상을 수상한 책이라고 하는데, 나오키상이 무슨 상인지는 모르겠으나 상을 받을만한 책은 아니었다는 느낌이다. 상이 부실한 것인지 ,아니면 올해만 수상작이 부실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도무지 왜 이 책이 상을 받았는지 이해가 되질 않더라. 추리 소설이라고는 하나 긴박감 하나없는 엉성한 추리에, 설득력도 별로 없고, 사건 자체도 인상적이지 않으며, 전개 역시 그다지 재미가 없었으니, 뭐, 그저 흔해빠진 그렇고 그런 소설이라고 밖엔 보이지 않던데, 도무지 왜 이 책이 상을 받은 것일까? 의아해진다. 그렇다고 심리적인 면에서 탁월했다거나, 인간을 잘 통찰했다거나 그런 면도 없는데 말이다. 아마도 나오키상이라는 것이 그다지 신빙성있는 상은 아닌 모양이다. 뭐, 하긴 상을 받았다고 해서 좋은 책이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니 내가 굳이 거품을 물 필요는 없어 보이지만서도.... 

줄거리는 형사라는 본분을 잊어 버리고 미적거리는 바람에 납치 피해자가 살해되어 버리는 끔찍한 사건을 경험한 센도 다카시는 현재 휴직상태다. 과거의 사건이 트라우마가 되어서 그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형사 노릇을 하고 싶어도 강제로 휴직을 당하고 있는 상태인 그에게 이런 저런 연줄로 사건이 의뢰되어 온다. 휴직상태라 수사권도 관할권도 없는 그는 하지만 현직 형사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헛점들을 알아내면서 사건들의 본질을 파악하도록 돕게 되는데... 

한마디로 추리소설치고는 심심하다. 사건을 추리해서 풀어가는 과정도 허술하기 그지 없고, 그는 마뜩잖아 하던 관할 형사들이 어딘지 엉성해 보이는 그의 추리를 선뜻 받아들인다는 전개도 우습기만 했다. 그렇게 열린 자세를 가진 형사들이 처음에는 그를 그렇게도 거부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더군다나 별로 치밀해 보이지 않던 그가 추리해내는 것을 현직 경찰들은 발견해내지 못한다는 설정도 어딘지 미심쩍었다. 하여간 형사 콜롬보 같은 형사물을 만들고 싶어한 듯한데--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고독한 형사의 이미지를 덧붙여서--전혀 콜롬보 같지 않았다는 것만은 알려 드리고 싶다. 실은 그 근처에도 못 갔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형사보다 못한 소설속 형사는 별로 매력적이지 못하단 것이지. 하여간 무언가 있어 보이는 제목에 비하면 별게 없었던 소설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만일 기억이 난다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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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 홀 2 - 2009년 맨부커상 수상작
힐러리 맨틀 지음, 하윤숙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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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커상 수상작이라는 문구에 아무 정보없이 보게 된 책이다.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하며 첫 페이지를 넘기고는 약간 실망했다.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헨리 8세를 다룬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뭐야, 그렇게 써대고도 아직도 쓸 것이 남았다는 거야? 거기다 부커상을 탔다고? 시간상으로나 거리상으로 한참 떨어진 한국에서 조차 유명한 인물이라면 당연히 본국인 영국에서야 모르는 사람이 없을만한 이야기인데, 그걸 다룬 이야기가 상을 받았단 말이지. 흠...이해되지 않았다. 설마 헨리 8세에 대한 영국인들의 사랑이 차고 넘치는 바람에 그 시대를 다룬 책을 쓰면 일단 상먼저 주고 보자는 심사가 아닌 다음에야, 널리 알려지다 못해 식상해져 버린 소재를 다룬 책에 도대체 상은 왜 준 것일까?  어쨌든 역사소설이라고라, 흐미...지루한건 싫은데, 라면서 뜨악한 표정으로 페이지를 넘겨 보았다. 그리곤...단박에 알아차렸다. 왜 이 책이 상을 받았는가 하는 것을. 비록 소재는 식상할지 모르나, 이야기를 다루는 폼새나 인물들을 파악하는 통찰력, 한 시대를 풍미한 역사적인 인물들에 대한 현대적인 시각이 전혀 색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찌나 그 시대를 생생하게 그려냈던지, 책에서 인물들이 줄줄이 몰려나와 나에게 말을 건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에 작가의 역사 전반을 아우르는 통찰력에, 공정하고 공평한 시선, 인물을 새롭게 조명할 줄 아는 편견없는 자세, 무엇보다 힘있게 주제를 밀어붙이는 집중력엔 감탄할 수 밖엔 없었다. 요즘 이렇게 신선한 책을 만난 적이 있던가? 없지 싶다. 한자 한자 읽어 내려갈때마다 줄어드는 페이지가 어찌나 아깝던지 일부러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책장을 덮으려니 한없이 아쉽긴 했지만서도, 뭐, 읽는 동안 희희낙락했으니 그것만이라도 감지덕지다. 실은 요즘 읽은 책들이 다 거기서 거기라 다소 포기하는 심정이었는데, 그런 와중에 만난 책이라 그런지 더 신선했다. 그래, 부커상을 아무에게나 줄리는 없지. 역시나 부커상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어. 라면서 부커상 찬가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다. 그렇다면 그토록 나를 열광하게 한 책의 진가는 무엇일까? 소개해 보기로 한다.

 

2. 우선 이 책의 특징을 뽑으라면 주인공이 헨리 8세나 그의 아내 앤 볼린, 그리고 그들과 대척점에 서 있었던 토마스 모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이라면 영화 <천일의 앤>이나 <사계절의 사나이>, 그리고 요즘 새롭게 조명되어진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익히 알려졌을텐데, 흥미롭게도 이 책의 주인공은 그들이 아니라, 그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속에서 악역이나 조연으로 등장하는 토마스 크롬웰이다. 어떤 역사 교과서나, 영화속에서도 악마로 등장하는 바로 그 말이다. 그렇다면 토마스 크롬웰은 누군가? 그는 애정이 식어버린 조강지처를 버리고 애첩과 결혼하기 위해 이혼이 간절하게 필요해진 헨리 8세를 도와 나라의 종교마저 바꾸어 놓은 인물이다. 이해가 되시는가? 나라의 종교를 바꾸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냈다는 것을. 그것도 올바른 대의 명분에 의한 것도 아니고, 단지 왕의 재혼을 위해서 말이다. 이 얼마나 웃기는 사건인가?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을 해내기 위해 과연 얼마나 많은 중상모략에 설득에 협박에 계획과 추진력, 의지가 필요했을까?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런 결과가 필요했던 인물이 헨리 8세였다면 그걸 가능하게 한 사람이 바로 토마스 크롬웰이다. 과연 어떤 인물이었기에 그 말도 안되는 과정들을 해낸 것일까? 역사가들이 서술하듯 그는 단지 출세에 눈이 먼 아첨꾼에 불과한 사람일까? 그래서 마냥 고귀하고 품위 넘치는 우리들은 그를 마음껏 비웃고 비난해도 좋은 것일까? 혹시 역사에서 악역을 맡고 있는 그에게서 배울만한 점은 없는 것을까? 한번도 이런 점들에 의문을 품지 않았던 분들이라면 아마 이 책을 읽으시는 동안 생각이 달라지실 것이다. 이 책의 작가인 힐러리 맨틀이 너무도 설득력있게 당시를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통에, 그녀의 시선을 통해 줄거리를 따라가다보면 그간 내가 알았던 것들이 단지 한 면만 줄기차게 바라본 편협적이고 단편적인 것이었음을 알게될테니 말이다.  모두에게 알려진 역사를 가지고도 이렇게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니, 작가가 존경스러웠다. 어릴적 실종사건으로 아버지를 잃은 뒤 사건 이면을 통찰하는 눈이 생겼다던데--쉽게 말하면 다르게 보는 삐딱한 시선?--그녀의 인간에 대한 통찰력은 그야말로 경이로울 정도였다. 하여간 그녀의 눈을 통해 들여다 본 16세기 영국 튜더왕정의 실체는 매혹적이고 흥미로움 그 자체였다고 보심 된다.

 

3.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다. 토마스 모어가 명망높은 변호사 가문에 태어나 천재 소리를 들으면서 자랄 동안, 토마스 크롬웰은 비천하고 비루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무지막지하게 패는 아버지를 피해 간신히 집을 빠져나온 그는 유럽 이곳 저곳을 떠돌면서 성장하게 된다. 용병에 고리대금업자, 그리고 무역상을 하며 떠돌던 그는 변호사가 되어 영국에 정착하게 된다. 당시 영국의 실세인 울지 추기경의 휘하에 들어간 그는 처음으로 아버지다운 인물을 만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해 나간다. 부자 미망인과 결혼한 그는 아들과 딸을 얻고는 바쁘지만 안락한 삶을 살아가지만, 열병으로 아내와 두 딸을 하루아침에 잃고는 충격을 받는다. 그러던 와중 그를 비호해주던 울지 추기경이 헨리 8세의 눈 밖에 나면서 서서히 권력 밖으로 밀려 난다. 권력의 정점에서 추락해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한 울지를 보면서 크롬웰은 정치의 비정함을 체험한다. 비천한 출신에 의심스러운 과거, 모든 귀족 나부랭이들이 그를 천시하는 가운데 그의 능력에 주목하게 된 헨리 8세는 골치아픈 일들을 그에게 떠맡긴다. 생기발랄한 앤 볼린과 사랑에 빠진 헨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조강지처를 버리고 이혼을 하려 하지만 쉽지가 않았다. 주변 국가들과의 역학 관계, 카톨릭 수장인 교황이 이혼을 허락하지 않는데다, 왕비에게 동정적인 여론이 팽배해지자, 헨리는 인내심을 잃고는 나라야 어떻게 되던지 간에 자신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라고 크롬웰을 닥달한다. 거친 환경에서 자라면서 현실 감각 하나만은 탁월했던 크롬웰은 그만의 끈기와 통찰력, 간계로 서서히 불가능해 보였던 프로젝트를 성공시켜 나간다. 드디어 앤과의 결혼에 성공한 헨리는 크롬웰을 국왕 비서에 임명하고 그는 비로서 자신의 성공을 실감하게 된다. 더 없이 좋은 나날을 보내고 있던 그는 모어의 고집앞에서 갈등하게 되는데...

 

4. 이 시대 이야기의 줄거리는 대강 아시리라 본다. 다만 그렇다고 재미 없진 않을까 걱정하진 마시라. 이 책에서 주안점은 줄거리가 아니니 말이다. 그 이야기를 둘러싼 인물들의 갈등이고, 그 캐릭터들을 인상적으로 그려낸 개성들이며, 장면들을 배치해내는 작가의 안목이니 말이다. 16세기의 일들을 어찌나 현재처럼 그려내 보이던지, 전혀 고루하지 않았다. 역사 소설을 읽게 되면 흔히들 작가들이 하게 되는 오류가 그들은 과거 사람이라 현재와는 다를것이라는 생각인데, 이 책의 작가는 그런 틀에서 일찌감치 벗어나 있었다. 어찌 다르겠느냐는 것이다. 그 인간이 다 그 인간이지...하여 그들이 욕망과 이상, 현실이 충돌하면서 보여주는 갈등들이 생생하다못해 동시대를 보는 듯 실감이 났다. 그들은 결국 중뿔난 인물들이라서 그런 일들이 벌어진게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인물들이었기에 그런 일들이 벌어진 것이라는 견해엔 꼼짝없이 설득당하고 말았다. 거기에 사건을 이끌어 나가는 재치있는 대화들에 선명한 인물 묘사, 탄탄한 구성에 역사적인 인물에 대한 충실한 해석, 이미 죽어서 매장되어 버린 역사적인 인물들을 어찌나 매력적으로 살려 냈던지, 도무지 단점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그런 책이었다. 가디언지 서평에 " 방대한 양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도 더 읽고 싶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고 했던데 전혀 빈말이 아니었다. 이 책에 열광한 독자인 나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이 작가가 후속작을 쓰고 있다고 한다. 부디 그것이 사실이길 바라면서, 빨리 후속작이 나와주었음 하는 바람이다. 비천한 출신에 학대하는 아버지를 둔 크롬웰이 한 나라의 최고 실력자로 성공해 가는 과정을 이 책에서 봤으니, 그렇게 매력적이고 인간적인 그가 어떻게 헨리 8세의 신임을 잃고 사형집행인의 도끼질에 목이 잘리게 되었는지 그 몰락 과정 역시 읽어보고 싶다. 물론 역사속의 사실들은 바뀔리 없으니, 다른 책을 통해 찾아 본다면야 알 수 있겠지만서도, 중요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 이 작가의 시야에 잡혀 걸러진 역사 아니겟는가.  하여간 대단한 작가임에는 틀림없었다. 간만에 만난 탁월한 책, 실은 이렇게 잘 쓴 책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다. 하니, 인간과 역사에 대해 무게 있는 책을 읽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혹시 역사 소설인데다 두껍다면서 망설이고 있으시다면, 작가가 유머감각과 재치가 돋보이던 사람이라 전혀 지루하지 않았음을 알려 드린다. 오랜만에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걸출한 책을 만나게 되서 무척 반가웠으니, 다른 분들도 나 못지 않은 감동과 재미를 느끼셨음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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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 홀 1 - 2009년 맨부커상 수상작
힐러리 맨틀 지음, 하윤숙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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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부커상 수상작이라는 문구에 아무 정보없이 보게 된 책이다.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하며 첫 페이지를 넘기고는 약간 실망했다.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헨리 8세를 다룬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뭐야, 그렇게 써대고도 아직도 쓸 것이 남았다는 거야? 거기다 부커상을 탔다고? 시간상으로나 거리상으로 한참 떨어진 한국에서 조차 유명한 인물이라면 당연히 본국인 영국에서야 모르는 사람이 없을만한 이야기인데, 그걸 다룬 이야기가 상을 받았단 말이지. 흠...이해되지 않았다. 설마 헨리 8세에 대한 영국인들의 사랑이 차고 넘치는 바람에 그 시대를 다룬 책을 쓰면 일단 상먼저 주고 보자는 심사가 아닌 다음에야, 널리 알려지다 못해 식상해져 버린 소재를 다룬 책에 도대체 상은 왜 준 것일까?  어쨌든 역사소설이라고라, 흐미...지루한건 싫은데, 라면서 뜨악한 표정으로 페이지를 넘겨 보았다. 그리곤...단박에 알아차렸다. 왜 이 책이 상을 받았는가 하는 것을. 비록 소재는 식상할지 모르나, 이야기를 다루는 폼새나 인물들을 파악하는 통찰력, 한 시대를 풍미한 역사적인 인물들에 대한 현대적인 시각이 전혀 색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찌나 그 시대를 생생하게 그려냈던지, 책에서 인물들이 줄줄이 몰려나와 나에게 말을 건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에 작가의 역사 전반을 아우르는 통찰력에, 공정하고 공평한 시선, 인물을 새롭게 조명할 줄 아는 편견없는 자세, 무엇보다 힘있게 주제를 밀어붙이는 집중력엔 감탄할 수 밖엔 없었다. 요즘 이렇게 신선한 책을 만난 적이 있던가? 없지 싶다. 한자 한자 읽어 내려갈때마다 줄어드는 페이지가 어찌나 아깝던지 일부러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책장을 덮으려니 한없이 아쉽긴 했지만서도, 뭐, 읽는 동안 희희낙락했으니 그것만이라도 감지덕지다. 실은 요즘 읽은 책들이 다 거기서 거기라 다소 포기하는 심정이었는데, 그런 와중에 만난 책이라 그런지 더 신선했다. 그래, 부커상을 아무에게나 줄리는 없지. 역시나 부커상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어. 라면서 부커상 찬가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다. 그렇다면 그토록 나를 열광하게 한 책의 진가는 무엇일까? 소개해 보기로 한다.

 

2. 우선 이 책의 특징을 뽑으라면 주인공이 헨리 8세나 그의 아내 앤 볼린, 그리고 그들과 대척점에 서 있었던 토마스 모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이라면 영화 <천일의 앤>이나 <사계절의 사나이>, 그리고 요즘 새롭게 조명되어진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익히 알려졌을텐데, 흥미롭게도 이 책의 주인공은 그들이 아니라, 그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속에서 악역이나 조연으로 등장하는 토마스 크롬웰이다. 어떤 역사 교과서나, 영화속에서도 악마로 등장하는 바로 그 말이다. 그렇다면 토마스 크롬웰은 누군가? 그는 애정이 식어버린 조강지처를 버리고 애첩과 결혼하기 위해 이혼이 간절하게 필요해진 헨리 8세를 도와 나라의 종교마저 바꾸어 놓은 인물이다. 이해가 되시는가? 나라의 종교를 바꾸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냈다는 것을. 그것도 올바른 대의 명분에 의한 것도 아니고, 단지 왕의 재혼을 위해서 말이다. 이 얼마나 웃기는 사건인가?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을 해내기 위해 과연 얼마나 많은 중상모략에 설득에 협박에 계획과 추진력, 의지가 필요했을까?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런 결과가 필요했던 인물이 헨리 8세였다면 그걸 가능하게 한 사람이 바로 토마스 크롬웰이다. 과연 어떤 인물이었기에 그 말도 안되는 과정들을 해낸 것일까? 역사가들이 서술하듯 그는 단지 출세에 눈이 먼 아첨꾼에 불과한 사람일까? 그래서 마냥 고귀하고 품위 넘치는 우리들은 그를 마음껏 비웃고 비난해도 좋은 것일까? 혹시 역사에서 악역을 맡고 있는 그에게서 배울만한 점은 없는 것을까? 한번도 이런 점들에 의문을 품지 않았던 분들이라면 아마 이 책을 읽으시는 동안 생각이 달라지실 것이다. 이 책의 작가인 힐러리 맨틀이 너무도 설득력있게 당시를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통에, 그녀의 시선을 통해 줄거리를 따라가다보면 그간 내가 알았던 것들이 단지 한 면만 줄기차게 바라본 편협적이고 단편적인 것이었음을 알게될테니 말이다.  모두에게 알려진 역사를 가지고도 이렇게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니, 작가가 존경스러웠다. 어릴적 실종사건으로 아버지를 잃은 뒤 사건 이면을 통찰하는 눈이 생겼다던데--쉽게 말하면 다르게 보는 삐딱한 시선?--그녀의 인간에 대한 통찰력은 그야말로 경이로울 정도였다. 하여간 그녀의 눈을 통해 들여다 본 16세기 영국 튜더왕정의 실체는 매혹적이고 흥미로움 그 자체였다고 보심 된다.

 

3.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다. 토마스 모어가 명망높은 변호사 가문에 태어나 천재 소리를 들으면서 자랄 동안, 토마스 크롬웰은 비천하고 비루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무지막지하게 패는 아버지를 피해 간신히 집을 빠져나온 그는 유럽 이곳 저곳을 떠돌면서 성장하게 된다. 용병에 고리대금업자, 그리고 무역상을 하며 떠돌던 그는 변호사가 되어 영국에 정착하게 된다. 당시 영국의 실세인 울지 추기경의 휘하에 들어간 그는 처음으로 아버지다운 인물을 만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해 나간다. 부자 미망인과 결혼한 그는 아들과 딸을 얻고는 바쁘지만 안락한 삶을 살아가지만, 열병으로 아내와 두 딸을 하루아침에 잃고는 충격을 받는다. 그러던 와중 그를 비호해주던 울지 추기경이 헨리 8세의 눈 밖에 나면서 서서히 권력 밖으로 밀려 난다. 권력의 정점에서 추락해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한 울지를 보면서 크롬웰은 정치의 비정함을 체험한다. 비천한 출신에 의심스러운 과거, 모든 귀족 나부랭이들이 그를 천시하는 가운데 그의 능력에 주목하게 된 헨리 8세는 골치아픈 일들을 그에게 떠맡긴다. 생기발랄한 앤 볼린과 사랑에 빠진 헨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조강지처를 버리고 이혼을 하려 하지만 쉽지가 않았다. 주변 국가들과의 역학 관계, 카톨릭 수장인 교황이 이혼을 허락하지 않는데다, 왕비에게 동정적인 여론이 팽배해지자, 헨리는 인내심을 잃고는 나라야 어떻게 되던지 간에 자신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라고 크롬웰을 닥달한다. 거친 환경에서 자라면서 현실 감각 하나만은 탁월했던 크롬웰은 그만의 끈기와 통찰력, 간계로 서서히 불가능해 보였던 프로젝트를 성공시켜 나간다. 드디어 앤과의 결혼에 성공한 헨리는 크롬웰을 국왕 비서에 임명하고 그는 비로서 자신의 성공을 실감하게 된다. 더 없이 좋은 나날을 보내고 있던 그는 모어의 고집앞에서 갈등하게 되는데...

 

4. 이 시대 이야기의 줄거리는 대강 아시리라 본다. 다만 그렇다고 재미 없진 않을까 걱정하진 마시라. 이 책에서 주안점은 줄거리가 아니니 말이다. 그 이야기를 둘러싼 인물들의 갈등이고, 그 캐릭터들을 인상적으로 그려낸 개성들이며, 장면들을 배치해내는 작가의 안목이니 말이다. 16세기의 일들을 어찌나 현재처럼 그려내 보이던지, 전혀 고루하지 않았다. 역사 소설을 읽게 되면 흔히들 작가들이 하게 되는 오류가 그들은 과거 사람이라 현재와는 다를것이라는 생각인데, 이 책의 작가는 그런 틀에서 일찌감치 벗어나 있었다. 어찌 다르겠느냐는 것이다. 그 인간이 다 그 인간이지...하여 그들이 욕망과 이상, 현실이 충돌하면서 보여주는 갈등들이 생생하다못해 동시대를 보는 듯 실감이 났다. 그들은 결국 중뿔난 인물들이라서 그런 일들이 벌어진게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인물들이었기에 그런 일들이 벌어진 것이라는 견해엔 꼼짝없이 설득당하고 말았다. 거기에 사건을 이끌어 나가는 재치있는 대화들에 선명한 인물 묘사, 탄탄한 구성에 역사적인 인물에 대한 충실한 해석, 이미 죽어서 매장되어 버린 역사적인 인물들을 어찌나 매력적으로 살려 냈던지, 도무지 단점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그런 책이었다. 가디언지 서평에 " 방대한 양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도 더 읽고 싶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고 했던데 전혀 빈말이 아니었다. 이 책에 열광한 독자인 나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이 작가가 후속작을 쓰고 있다고 한다. 부디 그것이 사실이길 바라면서, 빨리 후속작이 나와주었음 하는 바람이다. 비천한 출신에 학대하는 아버지를 둔 크롬웰이 한 나라의 최고 실력자로 성공해 가는 과정을 이 책에서 봤으니, 그렇게 매력적이고 인간적인 그가 어떻게 헨리 8세의 신임을 잃고 사형집행인의 도끼질에 목이 잘리게 되었는지 그 몰락 과정 역시 읽어보고 싶다. 물론 역사속의 사실들은 바뀔리 없으니, 다른 책을 통해 찾아 본다면야 알 수 있겠지만서도, 중요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 이 작가의 시야에 잡혀 걸러진 역사 아니겟는가.  하여간 대단한 작가임에는 틀림없었다. 간만에 만난 탁월한 책, 실은 이렇게 잘 쓴 책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다. 하니, 인간과 역사에 대해 무게 있는 책을 읽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혹시 역사 소설인데다 두껍다면서 망설이고 있으시다면, 작가가 유머감각과 재치가 돋보이던 사람이라 전혀 지루하지 않았음을 알려 드린다. 오랜만에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걸출한 책을 만나게 되서 무척 반가웠으니, 다른 분들도 나 못지 않은 감동과 재미를 느끼셨음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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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라의 돼지
나카지마 라모 지음, 한희선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아프리카 주술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스타덤에 오른 민속학 교수 오우베 다이치로는 8년전 케냐에서 딸을 사고로 잃은 뒤 술에 절어 산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으로 망가져 가는 것은 아내인 이쓰미도 마찬가지...조교와 대학원생의 신분으로 만았던 둘의 사이는 점차 거리를 알 수없을 만큼 멀어져 간다. 어떻게 해야 관계를 되돌릴 수 있을지 감을 못 잡는 채 방황을 하던 부부는 아내가 신흥 종교에 빠지면서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주변의 도움으로 간신히 신흥 종교 주창자가 실은 사기꾼이라는걸 아내에게 설득한 오우베 교수는 기분 전화삼아 가족들을 데리고 아프리카에 가기로 한다. 딸을 잃은 뒤 절대 발을 들여 놓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그 땅으로 말이다. 

물론 그것은 본인의 의지때문은 아니었다. 아프리카 주술사들이 진짜인가 라는 궁금증을 찍기 위한 TV 다큐용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굳건한 제자와 아내, 아들과 신통력을 가지고 있다고 소문이 난 청년과 함께 아프리카로 간다. 오랜만에 주술사의 마을인 "쿠미나타투"에 도탁한 교수 일행은 그곳이 초토화 된 모습에 의아해 한다. 더군다나 그것이 사악한 주술사의 등장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는 설명을 들은 일행들은 그들의 말에 반신반의하게 되는데....과연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책에 관한 첫인상을 말하자면 일단 두껍다. 두꺼운데다, 주술이라는 이상한 이야기--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애매한--에 아프리카와 민속학을 넘나드는 이야기들로 종회무진 정신이 없었던 소설이었다. 다행이라면 소재가 무거운 것에 비해 작가의 서술 자체는 무겁지 않아서 쉽게 읽힌다는 것이다. 이런 소재를 별로 매끄럽달 수는 없지만 그래도 꾸준히 밀고 나가는 나카지마의 저력에 새삼 흐믓한 미소를 지었다고나 할까. 하여간 특이한 작가임에는 틀림없네...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주술사가 진짜인가 사기인가...라는 물음에 작가는 이렇다 저렇다 단정을 내리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진짜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기이니 조심하라는 정도? 그 사기 수단들을 이 책 한 권을 통해 세세히 까발리고 있다고 보면 좋을 정도로 다양한 사기술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마도 그 분야에 대해 작가가 꽤나 연구한 느낌이 들었다. 대충 넘겨짚어서 쓰는게 아니라, 르뽀기자 답게 제대로 취재를 해서--다시 말해 발로 뛰어서--글을 쓴다는 점은 참 우러러 보이더라. 하나의 소설을 쓰는데 이 정도의 공은 들여야 하지 않냐는 듯, 자연스럽게 녹여 내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새로운 정보들을 이해하기 쉽게 서술해 주던 점도 장점... 

자, 그렇다면 장점에 대해선 대충 이야기 했으니 이제 단점에 대해 이야기 해야 겠지? 

가정 먼저 눈살을 찌프리게 한 것은 작가 본인의 소설적 자아같아 보였던 오우베 교수를 통해 대마초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설파하려는 시도였다. 담배보다 대마초가 낫다네...라는 말을 일평생 주장하고 다니셨다는데, 꼭 그걸 이 책 속에 풀어놓으셔야 했는지, 그것도 열 세살 어린 아들에게 대마초를 권하면서 말이다. 아무리 너그럽게 본다고 해도 열 세살 중학생 아들에게 대마초를 권하는 장면은 징그러웠다. 도무지 그 나이 아이에게 대마초를 피면서 환상이나 뽕가야 할 이유가 무엇이 있다고 말이다. 그런 장면들을 통해 대단히 쿨한 부모인 듯 포장하는 장면은 역겹더라. 나카지마상, 당신 아이 없죠? 잉? 아마 진짜 아들이 있어서 자신의 아들에게 대마초를 권했다면 나중에 그 아이가 자라서 아버지가 자신을 학대했다고 주장하고 나설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간 나카지마상, 그건 아니여요. 열 몇살 먹은 아이에게 대마초는 무리랍니다. 그걸 꼭 그렇게 소설속에 쓰고 싶으셨나요? 묻고 싶었다. 

알콜 중독에 대한 이야기 역시 그 자신을 연상하게 해서 별로였다. 자신이 그 파괴력을 너무 잘 알면서도, 뭐랄까. 쉽게 다룬다고나 할까?  

이야기 자체도 좀 엉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선을 연구했다는 선승이 아프리카에서 온 주술사에게 허무하게 당하는 장면이나--그렇게 허무하게 당할 것이었으면 도무지 왜 그렇게 대단하다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공을 들여 그를 선전했다냐--마지막에 가문의 신비력을 내려받은 사람으로 오우베 교수가 뜬금없이 나타나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설정 역시 그랬다.  

간간히 보이는 유머와 기괴한 이야기를 설득력있게 풀어낸 문장력은 좋았지만서도, 그 장점에 비해 단점들이 두드러지다보니--실수라고 여겨질 정도로 말이다.--그가 왜 이렇게 뚱뚱한 소설을 만들만한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주류 작가가 될 수 없었을지 이해가 됐다. 한마디로 일류가 되기엔 품성이 모자란 다고나 할까. 아마 이 이야기를 들으면 일류대 못간 것에 평생 울분이 되었을 천재 작가님께서 입에 거품을 물고 뒤집어 지실테지만서도 말이다. 일본인인데다가, 알콜중독에 기행스런 삶 때문인지 50대 중반에 돌아가신 양반이라서, 내 리뷰를 읽지 못하실테니 다행이다 싶다. 

그의 장점과 동시에 단점 역시 뚜렷이 보이던 소설, 한마디로 특이한 소재긴 했고 , 또 그걸 성실하게 풀어내긴 했으나 걸작이라고 말하기는 많이 부족한, 잘 쓴 대중 소설이라고 보기에도 어딘지 어설픈 소설이 되겠다. 뭐, 어쨌거나 이건 내 느낌이지만서도 말이다. 하여간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나카지마라는 작가에 대해 가졌던 흥미가 사라졌으니, 매력은 그다지 보장되지 않는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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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리얄리 2011-03-10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읽으면서 첫번째 들었던 생각이 '일본의 그 많은 퇴마사, 음양술사, 공작(응?)은 다 어디 갔나?' 였어요.
앞부분의 신흥종교에 빠진 아내의 이야기는 군더더기처럼 보였고, 신흥종교의 사기행각을 밝혀내면서 부부간의 갈등도 깨끗이 봉합되는 건 어쩐지 억지스러운 느낌이 가시질 않네요. 물론, 특이한 소재를 재미있게 읽긴 했습니다.
근데.. 성경에 나오는 '가다라의 돼지몰살사건'은 뻥이라는 것일까요?

이네사 2011-03-16 02:4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제목하고 내용하고가 그다지 잘 매치되진 않았죠? 굳이 왜 그 제목을 달았을지 의아하긴 하더군요. 억지로 갖다붙인 느낌이 역력...하여간에, 그다지 잘 만들어진 소설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그걸 이렇게나 두꺼운 책으로 만들어 냈다는 사실에서 놀랐어요. 저라면 중간에서 길을 잃고도 남았을텐데 말이죠. 아니면 절망했거나...^^

zizi 2011-03-28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들은 모르겠는데 딸이 있어요. 딸도 소설가랬나? 암튼 부모님이(라모부인도) 요상하다 보니 체념한 말투가 인상적이었어요. '난 추리소설은 못써!'라고 징징 거리더니 역시 엉성하군요. 그래도 이 책이 출세작인데..

이네사 2011-03-28 23:09   좋아요 0 | URL
와아~~~딸이 있었다구요? 의외인데요? 딸이 있었다고는 하나 진심으로 키우진 않으신 모양인듯...
아이를 진심으로 키운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소설이라고는 하나 그런 발언은 못하거든요.
이 책에 출세작이여요? 하하하...하긴 조사를 꼼꼼하게 하시고, 도입부가 박진감이 있긴 했거든요.
전체적으로 본다면 잘된 작품은 아니지만서도. 이 작가의 최고작품은 < 오늘밤 이 바에서는> 인가 그 책인것 같아요. 그건 참 좋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