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엠 러브 - I am lov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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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고혹적이라고밖엔 말할 수 없는 가족 사진이 시선을 잡아 끈다. 그들은 바로 밀라노의 상류층 재벌가 레키 가문으로, 영화는 눈이 소담스럽게 내리는 한 겨울의 밀라노 정경을 비춰주면서 시작한다. 소복 소복 내리는 눈을 감상할 여유도 없이 레키가의 며느리인 엠마는 시아버지의 생일 파티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자 드디어 파티는 시작된다. 최근 병이 든 것을 알게 된 시아버지는 생일 축사로 근엄하게 " 나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외친다. 의당 그가 내뱉을 만한 말이라고 생각했는지 파티 참석자들은 감격에 겨운 모습으로 박수를 친다. 생일 선물로 손녀에게 사진을 선물받은 시아버지는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림이니 그림을 그리라고 말한다. 행여 딸이 상처 받을까 염려가 된 엠마는 딸에게 멋진 사진이라고 연신 칭찬을 해준다. 하지만 그런 엠마의 마음이 딸에게 전달이 되었을지는 미지수, 죽지 않을 거라 선언한 시아버지는 그래도 켕기는 구석이 있었는지 이젠 자신의 후계자를 지명할 때가 왔다고 말하고, 남편 탄크레디와 아들 에도와도르가 지명한다. 안도하고 축하하는 분위기속에 파티는 하기애하게 이어지지만, 일찍 지쳐버린 엠마는 자신의 방으로 숨어 버린다. 이어 장면이 바뀐 여름, 시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러게 죽음과는 함부로 맞서는게 아니라고 하질 않는가.
 

러시아에서 이탈리아 재벌 가문으로 시집 온, 모든 여자들이 꿈꾸는 백마탄 왕자를 만난, 한마디로 땡 잡은 여자 엠마. 그녀의 삶은 완벽 그 자체로 보여진다. 남편에게 흠없이 외조하는 아내로, 세 아이를 잘 키워낸 엄마로, 시부모에게 인정받는 며느리이자 집안 살림을 완벽하게 조율하는 살림꾼으로써 말이다. 하지만 그런 외면을 유지하게 위해 그녀가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는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결혼을 한 뒤로 한번도 고향에 가본적이 없다고 말하는 그녀는 그후로 이탈리아인이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 노력이 어찌나 철저했던지 가족의 구심점이 된 그녀는 자연스럽기 그지없다. 아무도 그녀의 표정속에서 긴장감을 읽어내지 못하는 가운데, 우연히 발견한 딸의 메모는 그녀를 흔들어 놓는다. " 이 가족중에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건 에두와르도, 오빠뿐이야." 라고 말하는 딸은 자신이 레즈비언이라고 밝힌다. 딸의 고뇌를 짐작하면서도 서운한 마음을 감출 길 없는 엠마는 밀라노 시내를 하염없이 걸어다닌다. 
 

아들 에두와르도는 친구인 요리사 안토니오와 함께 레스토랑을 열 계획을 세운다. 친구의 요리를 극찬하면서 엄마에게 소개하는 에두와도르, 엠마는 그의 요리 열정에 잠시 시선을 빼앗긴다. 그가 목요일에 쉰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엠마는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갖게 된다. 예기치 않게도 둘의 만남은 겉잡을 수 없는 열정으로 발전하게 된다. 안토니오의 좁고 더러우며 초라하기 짝이 없는 방을 싫은 기색 없이 따라들어가는 엠마는 오랜만에 그녀 자신을 찾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이탈리아 인이 되기위한 노력이 자신에겐 너무 버거웠다는, 결코 남들에게 털어놓지 못했던 비밀을 안토니오에게 말하면서 자유를 느끼는 엠마... 머리를 자르고, 허름한 옷을 입고, 산을 올라 가는 등 평소 자신과 전혀 다른 모습에도 이질감 보다는 해방감과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그녀는 자신이 사랑에 빠졌음을 알게 된다. 한편 남편은 자신이 물려받은 기업을 다국적 기업에 팔기로 결정하고, 이는 에도의 반발을 사게 된다. 비지니스를 위한 만찬 파티에서 요리를 담당하게 된 안토니오는 엠마에게서 배운 러시아식 생선 스프를 변형한 메뉴를 내놓는다. 이를 본 에도는 그간 의심해 왔던 것을 확신하면서 화를 내는데... 과연 엠마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참 리뷰를 길게 쓰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은, 이라고 한탄할만큼 줄거리가 없는 영화다. 간단하게 말하면--그리고 냉소적으로--한 부잣집 마나님의 불륜 이야기니 말이다. 대사도 별로 없고, 드라마틱한 전개도 별로 없는 탓에 어떻게 포인트를 잡아서 설명해야 좋을지 난감했다. 물론 이탈리아 장인의 한땀 한땀 자신감이 배여있던 화면들이었으니, 프레임 하나 하나 뜯어서 설명하려고 하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서도, 굳이 그렇게 해서 읽는 사람들을 질리게 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내가 싫어하는 불륜이란 소재에 , 별다르게 이야기할 줄거리도 없는 영화를 이렇게 장황하게 언급하는 이유는?

 

생각해 볼만한 진실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한 정신과 의사가 이렇게 말한걸 들은 기억이 난다. 불륜에 관한한 자신은 무어라 한마디로 말할 수 없다고 말이다. 한마디로 불륜을 저지른 당사자가 가해자라는 인식은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라는 것이다. 부부 사이의 문제는 당사자만이 아는 것이기에 다른 사람들이 뭐라 왈가불가 할 것이라 못 된단다. 특히 불륜에 관한 한...그렇다고 불륜이 잘하는 짓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고 단지 이 영화를 보면서 엠마의 불륜을 막장 불륜이라고 폄하할 수는 없었다. 불륜을 저지르면서도 너무도 당당한 엠마가, 그리고 불륜을 추궁하는 아들에게, 나를 믿어달라고 내 설명을 들으면 너도 이해할거야, 라고 말하는 그녀가 정말 이해가 됐기 때문이다. 그래, 에도라면 그녀를 이해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에도 같이 이해심 많은 착한 청년이라면 충분히 엄마를 이해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다만, 그럴 만한 시간이 없었던 것일뿐...

 

그렇다면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재벌가 귀족 마나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나는 이것을 "당신은 누구십니까?" 의 문제로 보았다. 러시아의 키티쉬는 이탈리아에서 엠마가 되었다. 애벌레에서 나비가 되는 것만큼이나 과격한 변신이다. 엠마는 그 대단한 레키 가문에 맞추기 위해 어찌나 노력을 했던지 이젠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한 개인으로써의 눈물겨운 노력은 하지만 단지 가문안의 일원으로써 조용히 있을때나 빛을 발한다. 숨소리 내지 않고 며느리로써, 아내로써, 엄마로써 그들이 바라는 상에 걸맞는 여인으로 서있을때나 말이다. 자신의 정체성과 주변 사람들이 기대하는 이미지 사이에서의 갈등은 엠마에게 피곤을 불러온다. 그녀는 딸의 메모에 적힌 "아무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는 말과 안토니오의 등장으로 흔들리게 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맞춘 나를 만들어 가는 것이 결국 나를 행복하게 하지는 못한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던 엠마는 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리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인정해주는 사람을 향해 달려 간다. 과연 그녀의 결정을 잘못했다고 우리는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난 못한다고 본다.

 

내 생각엔 이렇다. 타인의 기대에 맞춰 5년 정도는 살 수 있다고... 하지만 10년을 넘어서서 그렇게 살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행복해질 순 없다. 왜냐면 자신이라는 것은 인생에서 결코 버려서는 안되는 최후이자 최선의 것이니 말이다. 자신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데, 자신을 뺀 인생을 어떻게 유지해 나갈 수 있겠는가. 하여 엠마의 불륜은 내겐 불륜이라기 보다는 반란같아 보였다. 자신을 찾아가기 위한...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장면에서 남편이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 넌 이제 존재하지 않아" 라는 선언 말이다. 절대 죽지 않겠다고 선언하던 시아버지에 못지 않는 거만한 말 아닌가. 어떻게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그것이 엠마의 가족내에서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아닐까까 싶었다. 그런 점이 엠마를 불행하게 했고 말이다. 이런 상황일진대, 과연 누가 감히 엠마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오히려 자신을 찾아가려는, 그리고 자신에게 솔직한 엠마가 대단해 보였다. 모든 것을 버리고서라도 사랑을 찾으려 하는 그녀의 심정이 비겁해 보이지 않았고 말이다. 하니, 사랑을 하는 사람들을 주의할 일이다. 과연 당신은 상대의 무엇을 보고 있는가라는 것을. 상대를 나에게 맞추려는 시도는 언제나 실패한다. 나를 상대에게 맞추려는 시도 역시 마찬가지일테고 말이다. 결국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고 받아줄 수 있는 관계가 가장 건강한 관계의 시작이 아닐까 한다. 평생 이어져야 하는 기본일 터이고...

 

추신 1-- 참 ,예술이란...이렇게 인생을 깔끔하게 이해하게 만드는 창이 되기도 한다. 아들 친구와의 불륜이라는 막장이라 할만한 소재를 가지고도, 이렇게 훌륭한 영화를 만들어 내다니, 놀랐다. 연기자들의 연기도 좋고, 배경도 눈이 시릴 정도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이야기 전개 흐름이 탁월하게 자연스럽다는 것이었다. 전혀 설득하거나 설명하는 논조가 아닌데도, 그냥 왜 엠마가 그렇게 행동하게 됐는지, 보고 있으면 이해가 됐다. 참 대단한 설득력 아닌가. 어떻게 그걸 그렇게 쉽게 해내는지 보는 내내 감탄하면서 봤다.

 

추신 2--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마지막에 엠마가 집으로 들어오는 표정을 보더니 냉큼 달려가 가방을 싸주던 가정부 이다의 모습이었다. 가방을 열심히 싸주다 엠마와 포옹을 하는 장면은 어찌나 짠하던지...  이다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엠마가 얼마나 힘들게 재벌가 사모님 노릇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걸 말이다. 여자들의 진한 연대가 느껴지던 포옹,  난 그래서 여자들이 좋다.

 

추신 3--아이들 동요에 "당신은 누구십니까?" 라는 노래가 있다. 기억나실지 모르겠는데, 그 노래의 끝은 형용사로 끝맺게 되어 있다. 명사가 아니라... 그렇다. " 당신은 누구입니까?"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대답할 형용사가 하나 정도는 있으신지, 한번 되짚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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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1-02-16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재미 있다가 난리던데 보셨네요 ㅎㅎㅎ

글에 덧붙이는글 원투뜨리가 흥미롭네요

영화를 꼭 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됫어요 ㅋㅋ

이네사 2011-02-20 18:52   좋아요 0 | URL
그래요? 재밌게 보셨음 좋겠네요. 뭐, 재미는 아니라도 워낙 잘 만든 영화라서, 보시면 후회하시진 않을 거여요. 이렇게 잘 만들기도 쉽지는 않거든요. 취향을 떠나서 말이죠.
 
내 어둠의 근원
제임스 엘로이 지음, 이원열 옮김 / 시작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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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과거엔 스릴러 작가가 그냥 되는 것인줄 알았다. 재능만 있다면 말이다. 연쇄 살인범이나 학대자들, 그리고 인육을 먹는 엽기 살인범, 강간범등을 책 속에 풀어 놓는 작가들을 보면서 참 이런 심리를 어떻게 다 알까 궁금하기만 했다. 그 궁금증을 풀어준 작가가 바로 이 사람이다. 제임스 엘로이. 

결론적으로 말하면, 보통 사람들인 연쇄 살인범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통 사람은 연쇄 살인범을 추적하는 작가는 되지 않는다는걸 알게 해줬다. 어찌나 심난하고 기괴하며 상식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주시던지...그가 자신의 어두운 심리를 바탕으로 글을 써서 성공한 것은 정말 다행이다 싶었지만서도, 거기에 이르기까지 그의 변태적인 삶을 들여다 보는 것은 전혀 즐겁지 않았다. 아마 본인 자신도 자신의 어린 시절의 삶에 대해 무척이나 불만이 많을 듯. 절대 아이들이 살아야 하는 삶은 아니니 말이다. 

무능력한 난봉꾼인 아버지와 헤어진 엄마는 아버지를 피해 이사를 간다. 혼자 몸으로 나를 키우던 엄마는 어느날 저녁 나갔다가 강간 살해범에게 살해되고 만다. 블랙 달리아라는 이름이 붙여진 엄마의 사건은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탔지만 결국 범인은 잡지 못한다. 알콜 중독자였던 엄마에게 질렸던 나는 아빠와의 생활이 시작된다는 생각에 흥분한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제약이 없는 아이들이 꿈꾸는 생활을 하게 된 제임스는 곧 그 생활이 그다지 유쾌하지 못하다는걸 알게 된다. 엄마가 강간 당한 후 살해되었다는 강박은 그로 하여금 범죄 심리물에 심취하게 만들고, 곧 현실과 환상을 구별하지 못하는 생활로 넘어가게 된다. 같이 살긴 하지만 버려졌다 시피 방임으로 큰 제임스는 어디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깽패들과 어울리면서 섹스와 마약에 심취하게 되는데... 

괴물을 쫓다보면 괴물이 되버리고 만다는 말이 있다. 엄마가 살해됨으로 인해 어린 시절을 어둠속에서 보내야 했던 한 소년의 기괴한 일상이 작가의 손에 의해 펼쳐지는데 참 읽기가 무척 고역이었다. 그가 어른이 되서 그나마 제대로 된 삶을 살게 된 건 얼마나 행운인지...다행히도 지금은 좋은 여자를만나,어린 시절의 자신을 냉정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하니, 이거 기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대단한 정신력이다. 나이가 들어서 이제 엄마를 다시 조명하게 됐다는 그는 지금도 엄마를 죽인 범인을 찾고 있다고 했다. 참 가여운 인생이다. 평생을 그런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말이다. 하긴 생명을 강간 살해범에게 빼앗긴 제임스 엘로이 엄마에 그 가여움을 비하겟는가 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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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4 2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04 2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윤수 옮김 / 들녘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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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반전이 꽤나 먹먹하다고 해서 고른 책, 결론적으론 먹먹하다기보단 정신 사납다고 하는게 맞지 싶었던 스릴러 소설이다. 특히나 작가가 정신분열 증세가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복잡하게 독자를 이리 저리 끌고 다니는게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뜻밖의 전개로 인한 참신한 반전이기 보다는, 너 이래도 놀라지 않을래 식의 막가파 반전이라고나 할까. 반전도 정도껏 해야지 말이야. 하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다보니 나중엔 그래, 뭐. 니 맘대로 하셔요, 라는 말이 흘러 나오더라, 너무 반전 위주로 몰아가다 보니 종래 흥미를 잃어다는 뜻이다. 

내용은 뭐, 초등학교 4학년인 나는 종업식날 학교를 빼먹은 친구집에 선생님 심부름을 가게 된다.좋은 일 하려는 마음에 손을 든 것인데, 괜히 손들었다 반성을 하면서 친구 집에 간 나는 친구가 목을 매 숨져 있는걸 발견한다. 간신히 학교로 가 친구의 자살 소식을 알린 나는 경찰과 담임으로부터 친구의 시체가 사라졌다는 말을 듣게 된다. 정말로 게가 목을 맨게 확실하니? 라는 말에 어안이 벙벙한 것은 오히려 나...도무지 내 말을 믿어 주지 않는 어른들 때문에 나는 미치고 팔짝 뛰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데 그 친구가 거미로 환생을 해서 다시 살아나 나를 찾아왔다. 그는 자신은 살해되었다면서 자신의 시체를 찾아달라고 내게 부탁을 한다. 더군다나 살인범으로 유력한 것이 담임이라는 말에 나는 절대 친구의 원한을 풀어주겠노라고 다짐을 한다. 담임을 감시하다가 마주치게된 할아버지는 친구와 아는 사이였다면서, 혹시 친구의 자살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지 묻는다. 과연 그 할아버지의 정체는 무엇일까? 거미로 변신한 친구의 시체는 과연 어디에? 그리고 그 친구가 나를 찾아오게 된 계기는? 

구역질이 나는 소설이었다. 아이가 자살한다는 설정도 그렇지만, 그 아이를 자살하게 한 것이 또래 아이라는 설정 역시 구역질 나기는 마찬가지. 시체의 다리를 부러뜨리는게 쾌감을 느끼는 사람이 나오질 않나, 죽은 다음 곤충으로 태어나 찾아온다는 것도 환상 소설다운 설정이라기 보다는 작가의 정신에 무척 문제가 있는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게 했다. 전문가가 아니라서 확신은 못하겠지만, 아마도 이 작가는 정신분열적인 정신과적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한다. 이 작가의 다른 단편을 얼마전 읽었는데, 그건 참 정돈되고 완성된 작품이었구나 싶다. 그에 비해 이 책은 조잡하고 어지러운 복선으로 충격요법이 아니라면 내가 어떻게 너희들의 주목을 받겠니 하는 노골적인 작가의 노력이 돋보이던 책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줄줄이 반전이라는 타이틀에 기대 이어지더니만, 끝내 말도 안 되는 결말로 끝을 맺는것을 보곤 실소했다. 자신의 아이를 학대하던 엄마가 갑자기 천사표가 된다는 결말은 도무지 이해되질 않는다. 왜 갑자기 해피모드로 결말을 맺게 된 것일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사이 다들 죽어서 다른 곤충으로 태어나 행복해졌다는 설정을 놓친 것인가는 모르겠는데, 어쨋꺼나 아들을 학대하던 엄마가 갑자기 개과천선하는 결말을 미심쩍기만 했다. 아마도 작가가 장편을 쓰다보니 결말을 마지막까지 모두를 불행하게 하고 끝을 맺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게 아닐까 싶지만서도. 

하여간 이 작가, 이 책으로 돈을 좀 버셨다면 꼭 정신과 상담을 받아볼 것을 권하고 싶다. 이 정도의 심난함이라면 한번 정도는 치료를 받는 것도 괜찮지 싶다. 정신이 좀 나가는 한이 있어도 좋은 작품을 쓸래?라는 생각으로 버티고 계신다면...한마디 하겠다. 이런 작품 안 써도 괜찮으니까, 말짱한 정신으로 사는 걸 생각해 보시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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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안전성
A.M. 홈스 지음, 이수현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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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 를 쓴 홈즈의 초기 단편집이다. <이 책이...>를 좋아한 탓에 덜컥 집어들었는데, 솔직히 실망이 크다. 우선 단편집 치고는 완성도가 그리 높지 않고, 초기 작이라서 그런지 성애에 대한 묘사가 좀 지나치다. 처음엔 한 편으로 그칠 줄 알았더니 전편에 걸쳐 성에 대한 기이한 시선이 보는 이를 불편하게 했다. 어린 시절 무언가 색다른 경험을 했거나 상상을 하면서 자란 듯...보통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할만한 상상은 아니니 말이다. 

특이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자식들을 시어머니에게 휴가 보내고 남편과 일탈을 일삼은 주부, 식물인간이 된 아들을 더 이상 못견디고 살해하려는 엄마, 동생의 바비 인형을 성애의 대상으로 삼는 청소년등...비교적 색다른 시선으로 사람들을 관찰하는가 보다 싶게 만드는 소설들이었다. 그렇게 장점보다는 단점들이 더 눈에 들어왔지만서도, 가끔가다 보여주는 인간과 사물에 대한 통찰력은 과연 그녀가 소설가의 자질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젊은 시절의 뽀족함이 중년이 되서 조금 둥글어진 결과 만들어 낸 책이 <당신이 ...>가 아닐까 한다. 앞으로 주목해봐야 할 작가인 것 같지만서도, 다음에 다른 책이 번역되어 나온다면 좀 망설여질 것 같긴 하다. 남다른 성애나 마약 흡입기 등은 별로 관심이 없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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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9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정명환 옮김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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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폴 샤르트르의 어린 시절을 그린 자서전이다. 그가 쉰이 넘어서 쓴 작품이라는데, 어찌나 기억력이 생생하던지 마치 어제 일들을 쓴 것처럼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점이 특징이다.  머리가 좋다고 하더니 정말로 그래보이더라. 아마도 그런 그의 천재성은 어린 시절부터 돋보였던 모양으로, 그의 외할아버지는 손자가 머리가 나쁘다는, 내진 월반을 할 정도로 실력이 되지 않는다는 말에 교장과 싸웠을 정도로 손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고 한다. 그럴만도 했지 싶다. 이런 글을 쓸 정도의 천재성라면 어린 시절 가족들의 눈에 뜨이지 않을리 없으니 말이다.

 

이 책의 장점이라면 장 폴 샤르트르에 대한 비밀을 풀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생후 2살때 재빨리도 그의 인생에서 사라져 버린 아버지 사망 이후, 그는 아버지라는 존재 자체를 몰랐기에 자신은 '초자아'가 아예 없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한다. 쉽게 말해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았다는 뜻이다. 그가 보봐르와 한 계약 결혼이나 그 외 다른 사람들 눈에는 특이하게 비췄던 모든 기행들의 출발점이 바로 아버지의 부재라는 고백은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또 그걸 또 나쁘게 받아 들이는게 아니라, 좋은 뜻으로 해석해 내는 샤르트르의 낙천성도 천재답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렇게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그는 외갓댁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외할아버지의 넘치는 사랑은 그에게 책과 문자에 대한 사랑으로 연결시켜 준다. 20살의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되어버린 엄마에 대한 묘사도 간간히 들어있는데, 어린 시절 그는 엄마를 하녀나, 그 비슷한 미성년의 존재로 인식했다고 한다. 정상적인 인간관계라고 볼 수 없다는 점도 그렇지만, 결혼 한 후에 부모 집에서 하녀처럼 살아갔다는 그의 엄마가 가엾게 느껴졌다. 하여간 아버지고 엄마고, 할아버지고 간에 자신이 말하고 싶은대로 까발리는데는 못 당하지 싶다. 자신의 가장 근원이라 할 수 있는 가족에게조차 이렇게 냉담하고 잔인한 분석을 틀을 들이대는걸 보니, 어떻게 그가 이름을 남기는 철학자가 되었는지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 성역이나, 금기, 넘지 말아야 할 선, 복종이나, 권력에의 의지등, 보통 사람들이 흔히 가지게 되는 많은 복잡한 감정들이 그에게 아예 없거나 무시되니 말이다. 확실히 보통 사람들과는 여러면에서 다른 사람이었지 싶다.

 

그외에, 자신은 나르시스가 아니라고, 나르시스를 넘어섰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엔 중증의 나르시스가 맞지 싶었다. 어찌나 자신에 대해 말이 많던지, 그의 날카로운 통찰력이 본인에 대한 집착 때문에 빛을 잃는 듯한 느낌이었다. 난 이렇게 자신에게 관심이 많다 못해 넘치는 어른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렇게 말을 늘어놓았음에도 더  할 말이 없는지 찾아 헤메는 듯한 남자는 더더군다나... 한마디로 자신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은 관찰하거나 분석하거나 기록할 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그에게 본인이란 존재가 없었다면 과연 무엇을 가지고 평생을 버텼을지 의문이다. 그동안 샤르트르와 보봐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의문이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더 의문이 들었다. 도무지 보봐르는 왜 이런 남자에게 매여 평생을 보낸 것일까? 머리가 좋아서? 색다른 매력이 있어서? 서로의 공감대가 같아서 ? 내진 똑같은 사람들이었기에? 가장 그럴듯한 대답은 보바르 역시 조금은 비정상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이여서가 아닐까 싶기는 한데... 가장 최악의 가정이라면 그녀 역시 <매 맞는 아내 >증후군이라, 자신이 학대를 받고 산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산 것은 아닐까 싶지만서도. 이렇게 오로지 자기 중심적인 남자와 사는 것이 유쾌했을리는 없으니 말이다. 물론 선량한 사람이고, 섬세한 감수성에, 세상 어떤 사람과도 같지 않은 매력이 있는 사람이었던것 같다해도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그나마 보봐르가 미치지 않았던 것은 샤르트르랑 계약 결혼을 했기에 슨한 유대를 유지한 덕분이 아닐까한다. 뭐, 그런 저런 추측도 그들을 잘 알아야 하는데, 난 그들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으니 추측성 발언은 이쯤해서 그만하기로 한다.

 

 하여간, 말이 많다.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끝도 없는 이야기가 늘어진다고 보심 되니 말이다. 그것이 독자들에게 재미가 있건 ,이익이 되건, 지루해하건, 전혀 상관없이 시시콜콜 하나도 빠짐없이 그당시에 느꼈던 모든 것을을 떠들고 있는데, 물론 때론 그런 천재적인 아이들이 읽고 상상하고 연기하고 세상을 알아가고 하는 것들이 귀여울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장 폴 샤르트르다. 책에서 받은 인상으로는 한없이 밉살맞은 조숙한 천재 아이 같던데, 딱 스머프 나라의 왕따 안경잽이가 연상되는 녀석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그가 나중에 세계적인 철학자가 된 것은 굉장히 놀라운 사건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밉살맞은 녀석이 세계의 석학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세상은 살기 힘들다는 것이다. 머리가 좋다고 큰소리 떵떵 치는 녀석들이 이렇게 근본적으로 밉살맞으니 말이다. 우리 같은 둔재들은 그냥 하늘을 바라보면서 신의 불공평함에 대해 불평이나 해야 할 듯... 

 

그럼에도 초반 인물 묘사는 참 좋다. 중반을 넘어가면서 꼬마의 책에 대한 여정이 이어지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진지하게 지루해지긴 하지만서도. 그의 지루한 수다를 참아낼만한 인내심이 있다고 생각되시는 분들은 한번 보심도...그의 진면목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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